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을 객관적으로 확증하라! (고전 15:2, 고후 13:5)

  • 잡초 잡초
  • 530
  • 0

첨부 1


믿음을 객관적으로 확증하라! (고전 15:2, 고후 13:5)


우리는 지금 구원에 필요한 기본적인 도리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도리를 생각하기 시작한 첫 시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시는 두가지의 방편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하나는 ‘복음’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복된 약속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 복음의 내용을 헛되이 믿지 않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과 신앙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시는 두 가지의 방편입니다. 지금까지는 구원의 방편 중의 하나인 ‘복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부터는 구원의 방편 중의 다른 하나인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신앙에 대해서 말씀할 때에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하나는 구원받는데 필요한 신앙이요, 다른 하나는 구원받은 이후에 생활에 필요한 신앙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한다면 어떤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신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에 필요한 신앙부터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Ⅰ.인생에게 있는 가장 큰 착각(고전15:2)

신앙은 신앙인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헛된 신앙’도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고전15:2에서 “너희가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할 헛된 믿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전혀 안믿는 자가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데도 헛되이 믿기에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한 평생 신앙생활을 했노라고 했는데 정작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이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할 ‘헛된 신앙’을 가지고 ‘구원의 신앙’이라고 착각한다면 그 어떠한 착각보다도 불행한 일입니다. 

순간의 착각으로 인하여 하루를 망치는 경우도 있고 일년을 망치는 경우도 있고 한 평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호남선을 타야 하는데 그만 경부선을 타가지고 종점에 와서 보니 광주가 아니라 부산이었을 경우에 하루를 망치는 것입니다. 또 농부가 쌀농사를 짓는데 농약을 준다고 하면서 제초제를 줘서 그만 일년 농사를 망치는 경우도 간혹 봅니다.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그만 악세레타를 밟아서 한 평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그만 착각하여 생긴 불행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열차를 갈아타거나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이고 다음 해에 정신차려 더 열심히 일하면 만회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가져오는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한 착각’입니다. 헛된 신앙을 가지고 구원의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살다가 간다면 그는 돌이킬 수도 없고 영원히 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면서 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정작 주님 앞에 서고 보니 주님이 모르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에 대한 착각은 영원히 망하게 합니다(마7:22-23참고)


Ⅱ.신앙의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후13:5)

그렇다면 영원을 망치는 신앙에 대한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울 사도께서는 고후13:5에서 이 물음에 대해서 분명히 답을 주고 있습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1.‘계속’해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여기서 ‘시험하라’는 말이나 ‘확증하라’는 말이 모두 “현재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여 ‘과연 그렇다!’는 확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과연 구원의 신앙인 아니면 ‘헛된신앙’인지 계속해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자기의 신앙이 구원의 신앙이라는 확증을 갖기 위해서 계속해서 시험해야 합니다. 다른 것을 확인하고 시험하는 데는 힘을 많이 기울이면서도 정작 영원한 운명이 걸려있는 신앙을 확증하는데는 게으르고 인색한 이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게 되면 교회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되고 자신의 믿음을 확증해 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이 그저 구원받은 자의 행세를 하려고 하는 거짓된 심사가 생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세례를 나도 세례를 받아야 겠다는 욕심이 생기고 다른 사람이 집사가 되었으니 나도 집사 직분을 맡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참 구원의 신앙을 가졌는지 아니면 헛된 신앙을 가졌는지를 생각하는 데는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른 사람보다 못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세례도 받고 열심히 봉사도 하고 직분을 맡아서 활동도 하는데서 의의를 찾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헛된 신앙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헛된 신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을 확증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을 자꾸 하는데서 신앙 생활의 의의를 찾기 보다는 자기의 신앙을 계속해서 시험하고 확증해 가는 일에서 신앙생활의 의의를 찾아야 합니다. 혹시 헛된 신앙을 가지고 구원의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계속해서 확인하여야 합니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참 믿음으로 착각에 빠져 있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의 신앙이 없으면서도 구원의 신앙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늘 자신의 믿음을 검토하여야 합니다. 

칼빈 선생님도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이점을 중요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Ⅱ권 2장 10항 12항)
“사람의 마음속에는 허영심이 숨을 틈이 많으며 거짓이 잠복할 구멍이 많다. 그것은 기만의 위선으로 장식되어 스스로 속는 때도 많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그림자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이점에서 마귀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충동적인 열성에 휩쓸려 그릇된 의견을 품게 되며 자신을 속인다. 확실히 이런 사람들은 심히 ‘태만’하여 올바르게 자기의 마음을 ‘검토’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담대하게 자랑하며 공허한 겉치레로 남과 자기까지 속이는 사람들이 많니 않았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2.‘객관적’(客觀的)으로 시험하여 확증해야 합니다.

여기서 특히 ‘시험하다’는 말은 원문에 “페이라조”(πειραζω)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뉘앙스를 살려서 번역하면 “객관적으로 시험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의미로서는 ‘자세히 조사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확증하다’는 말은 원문에 “도키마조”(δοκιμαζω)라고 되어 있는데 그 뜻은 “(시험하여) 입증하다!”혹은 “(시험후)인정받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시험하여 입증하여야 합니다. 과연 구원의 신앙을 가졌는지 자세히 조사하여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헛된 신앙에 빠져 스스로 속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을 자세히 조사하고 시험하여 “객관적인 확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신앙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여야 하고 “인정” 받아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구원의 신앙은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지는 것이요,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신앙입니다. 

(1)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구원의 신앙인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 받은 자라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입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이 제시하는 구원의 증거들을 통해서 객관적으로 입증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성경지식이 많이 있고 주관적으로 뜨거운 열정이 있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교회생활에 연륜이 있어서 익숙하다고 해도 그것이 구원의 신앙으로서 객관적인 증거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에게는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대한 지식이 있었지만 귀신에게 있던 그런 지식이 구원 신앙의 객관적인 증거는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신앙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내안에 있는가를 확증해야 합니다. 특히 요한일서 같은 곳에는 구원의 신앙을 확증할만한 객관적인 증거들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구원의 확증”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2)객관적으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 증거들을 찾아서 “객관적으로 입증”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객관적으로 인정”을 합니다. 객관적으로 입증된 구원의 신앙을 가진 자는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인정을 받는다고 할 때는 누군가 인정해 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를 통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구원을 인정해 주는 일을 교회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룬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인 교회를 통해서만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질의 생명을 가진 지체들을 통해서만 구원의 신앙이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이 교회안에 들어와서 생활하게 될 때에 시간을 두고서 그에게 구원에 필요한 복음을 전해주면서 과연 구원받은 자라는 확증이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구원의 신앙을 확증할 만한 증거들을 여러모로 확인하고서 ‘과연 그렇다!’는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을 때에 그가 구원받은 성도임을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인정하고 보증하기 위해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 사람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원받은 자라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가시적으로 인정하고 보증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증거들을 가질 수 있고 구원받은 자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으려면 구원에 필요한 도리들을 바르게 제시받을 수 있고 구원의 신앙을 가진 자라는 확증을 해 줄수 있는 ‘교회’를 만나야 합니다. 객관성이 있는 교회를 만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자체가 구원의 기관으로써 객관적으로 확증이 안된 교회라면 구원에 필요한 바른 도리들을 제시받지도 못하게 되고 구원의 신앙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증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객관성을 가진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그렇다면 객관성을 가진 교회란 어떠한 교회입니까? 우리가 가진 신앙이 구원의 신앙인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해 줄 수 있는 교회입니다. 그 객관성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성경 말씀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이 아니고서는 모든 교회가 성경 말씀을 전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단까지라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똑같은 본문에 근거해서 구원의 도리들을 가르치지만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서 그릇된 구원의 도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또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전하지만 구원의 도리들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해석에 있어서 객관성을 가지고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성경 해석에서의 객관성이란 역사의 한 단면을 끊어 놓고 당대의 교회들 속에서만 찾으려한다면 어떤 교회의 성경 해석이 객관적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곡되고 부분적인 것만을 붙들고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는 교회들이 많은 시대에서는 그렇게 왜곡된 교회의 가르침이 객관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도리에 대한 ‘성경 해석’이나 ‘교회’의 객관성은 역사적인 가도 위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왔던 사도들의 신앙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특히 끊임없이 정상한 교회로 돌아가려는 심정으로 교회를 이루었던 “역사적인 개혁교회”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들에 비추어서 신앙의 객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 신앙이 과연 구원의 신앙인지 아니면 헛된 신앙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개혁교회가 물려준 바른 신앙의 유산들을 잘 살펴야 합니다. 개혁교회가 물려준 바른 신앙의 유산들 중에는 여러 가지 문서나 책들도 있지만 특별히 “신앙고백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고백서들은 시대 시대마다 그릇된 신앙이 교회를 위협하고 극성을 피울 때에 그에 대항해서 바른 신앙의 내용을 정리하여 ‘표명’한 것들입니다. 신앙의 객관성을 잃고서 부분적인 것을 붙들고 주관적으로 왜곡되게 나갈 때 신앙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서 정리하여 내놓은 것이 바로 신앙 고백서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는 신앙을 자세히 조사하여 객관성을 얻을려면 역사적인 개혁교회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들을 열심히 살펴야 합니다. 특히 당대의 교회들이 객관성을 잃고 곁길로 나가는 거센 물결속에 있을 때는 교회가 진행하여 온 역사적인 가도 위에서만 객관성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들이 다 왜곡된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왜곡된 길로 나아가지 낳고 객관적으로 확증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은 역사적인 개혁교회가 물려준 신앙의 유산들을 잘 살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미 객관성이 확인된 신앙의 내용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전수하여 가는 것입니다. 

Ⅲ.객관성을 잃고 헛된 신앙으로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고후13:5)

오늘 본문 고후13:5에 보시면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버리운 자’라는 말은 원문에 ‘인정받지 못한 자’라는 말은 원문에 ‘인정받지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정당한 신앙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앞부분에서 시험하여 확증하라는 것은 이땅에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인정을 받으라는 말씀이요 그렇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의 신앙으로 객관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뒤에서 ‘버리운 자’라고 표현된데로 하나님 앞에서도 구원의 신앙을 가진 자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면서 교회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네가 만일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말씀은 이와같은 의미에서 하신 것입니다. 교회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구원의 신앙을 가진 자로 객관적인 인정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구원받은 자고 인정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얼마나 책임성 있게 성도들의 신앙을 객관적으로 확증해주고 표해주어야 하는 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신앙이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교회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동기로 세례를 베푸는 교회라면 이미 그 교회는 공교회로써의 객관성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이점을 깊이 새겨 들으셔야 합니다.

나로써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정작 하나님 앞에서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정당한 신앙이 아니라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마7:23에 보시면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데교회는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라고 하셨고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는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약2:14에서는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러한 경우들은 모두 주님 앞에서 신앙의 객관성을 상실하고 주관적인 헛된 신앙에 빠져서 스스로 속고 있는 경우들입니다. 

맺는말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시험하여서 주님 앞에 인정을 받는 구원의 신앙에 거하고 있는지 확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시 주관적인 착각에 빠지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참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헛된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분별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객관적인 확증은 어느 정도 교회 생활에 연륜이 있느냐  혹은 어느 한 순간에 뜨거운 감정적인 체험을 가졌느냐 혹은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고 있느냐 성경의 지식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주관적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공교회’로부터 “객관적”으로 확증을 받아야 합니다. 

1.성경말씀을 통해서 헛된신앙과 구원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면서 자신을 확증해 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신앙이 아닌 헛된 신앙의 경우들을 잘 살펴서 알아야 하고 참 구원의 신앙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신앙에 거하여야 합니다. 

2.그리고 공교회가 역사적으로 걸어온 자취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 개인의 구원은 자기가 속해 있는 ‘교회’에게 책임이 있으면서도 또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가 ‘성경 말씀’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확증이 있는 교회인가를 살펴야 하고 그래도 분별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역사적인 교회의 가도’위에서 객관성을 가진 교회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적 교회의 역사적인 행진을 살펴 보아서 자기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사도들의 신앙의 터 위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객관성을 확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사도적 교회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물려준 ‘신앙의 유산들’을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몸답고 있는 교회가 그러한 사도적 교회가 물려준 신앙의 터 위에 서 있는가를 확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먼저‘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신앙과 헛된 신앙을 분별하여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후에 “역사적인 공교회”가 진행하여 오면서 싸워야 했던 헛된신앙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