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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지 마라 (겔 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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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지 마라 (겔 29:1~7) 

(겔29:1-7) 제 십년 시월 십 이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온 애굽으로 낯을 향하고 쳐서 예언하라. 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애굽왕 바로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내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네 강의 고기로 네 비늘에 붙게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네 강들 중에서 끌어내고 너와 네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음을 입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식물로 주었음이라. 애굽의 모든 거민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1. 지팡이(短杖)는 원래 병약자나 노약자가 약한 몸을 의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팡이 중에 눈에 잘 띄게 흰색을 칠한 ‘흰 지팡이’가 있는데 시각장애인이 길을 걸을 때 이 지팡이를 사용한다면 이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보행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표지입니다. 

시각 장애인에게 있어 ‘흰 지팡이’는 촉각을 연장하는 도구로 지면의 변화와 장애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안테나이며, 귀나 코와 같은 감각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는 때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권위의 상징으로 또는 호신용으로도 이용되기도 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는 일반인의 보행용 외에 왕이나 신의 존엄성과 위력의 상징으로 때때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던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팡이로 사용되기도 해서 소위 “하나님의 지팡이”로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출3:10-11)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며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출3:12)며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모세는 “만일 그들이 나를 믿지 않으며 내 말도 듣지 않고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며 또 거절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네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입니다”고 대답하자 “그것을 땅이 던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것을 땅에 던졌더니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앞에서 피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내밀어 저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밀어 그 뱀을 잡으니 다시 그것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가 요구했던 하나님의 나타나심,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 주셨습니다. 

하찮은 지팡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임을 보여주시고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뱀은 애굽 왕 바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뱀의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를 제압하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백성들은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며 모세에게 따지며 죽일 듯이 대들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서로 힘과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지도자 모세에게 전가시키고 다투고 돌을 던져 죽일 기세였습니다. 모세는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도가 없어서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출17: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너는 백성들 앞으로 가거라. 네가 갈 때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내가 시내 산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겠다. 너는 그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 그러면 바위에서 물이 나와 백성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나일강을 쳐 피로 변하게 했던 그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터져 백성들과 가축들이 모두 충분히 해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말씀대로 지팡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지팡이가 비록 광야에서 양을 칠 때 사용했던 것이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불렀습니다. 광야 여정 중 아말렉이 공격해왔을 때 모세는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겠노라.”(출17:8-16)며 여호수아에게 병력을 동원하여 나가 아말렉과 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과연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들고 있는 동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해가 질 때까지 그들이 양쪽에 서서 하나는 이 팔을, 하나는 저 팔을 붙들어 그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수아는 아말렉군을 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은> 모세의 손에 달려 있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때 인간의 힘이나 지혜, 능력 등을 의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권능으로 성취하십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사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만한 애굽의 통치자 바로를 나일 강둑에 서식하는 큰 악어로 비유하면서 이 악어를 하나님께서 갈고리로 아가미를 꿰고 그 악어의 비늘에 달라붙은 강의 모든 물고기와 함께 끌어내 멀리 허허벌판 사막에 던져 들짐승과 공중의 새에게 먹이로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겔29:4-5) 내가 갈고리로 네 아가미를 꿰고 네 강의 고기로 네 비늘에 붙게 하고 네 비늘에 붙은 강의 모든 고기와 함께 너를 네 강들 중에서 끌어내고 너와 네 강의 모든 고기를 들에 던지리니 네가 지면에 떨어지고 다시는 거두거나 모음을 입지 못할 것은 내가 너를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식물로 주었음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일 강 큰 악어의 운명이 될 애굽을 의지하는 행위는 마치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갈대’는 나일 강둑에서 자생하는 풀로 지팡이로 결코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일 강의 갈대는 모두 속이 비어 있어서 그것을 부러뜨리면 날카로운 갈대 껍질이 지나는 사람의 어깨를 상하게 하고, 만일 갈대에 몸을 기대게 되면, 물론 기대기도 어렵지만 기댄 사람의 허리를 상하게 하기 때문에 의지할만한 ‘지팡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겔29:7)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로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갈대와 같은 애굽은 결코 의지할 대상이 아니며 도리어 의지한 자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황폐화된 애굽이 나중에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회복되기는 할지라도 나라들 가운데서 가장 힘없는 나라가 되어서, 다시는 다른 민족들보다 높아지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나라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애굽은 “갈대 지팡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겔29:14-16) ....그들이 거기서 미약한 나라가 되되 나라 중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열국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라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뢰가 되지 못할 것이요 

‘애굽’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의지하고 사는 것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에,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갈대 지팡이”같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경고하셨습니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사30: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 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으니 죄에 죄를 더하도다....

(사31: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당장 눈에 부강해 보이는 애굽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애굽’은 늘 매력적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그 땅에 기근이 심해 먹고 살기가 힘들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약속의 땅에 먹을 것이 없었을 때 애굽에는 음식이 풍부했던 것이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가 먹고 살고자 자기 아내를 두고 오빠행세하다 장차 ‘열국의 어미’(창 17:16)가 될 아내를 바로 왕에게 빼앗길 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어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바로 왕에게 큰 재앙을 내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털끝 하나 손대지 못하게 해서 되돌려 주셨습니다.(창 12:10-20) 이러한 일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도 또 나타납니다.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는데, 이삭 때에도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이삭이 애굽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창26:1-4)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네가 이 땅에서 살아야, 내가 너를 보살피고, 너에게 복을 주겠노라. 그리고 이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노라.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약속을 이루어서,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노라.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노라. 그래서 결국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독립하여 창창한 미래를 향하여 첫발을 내어 딛을 때 가장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그 곳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곳이 바로 애굽 땅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 땅이 약속의 땅 바깥에 위치해 있을 지라도 롯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나 롯이 선택했던 소돔과 고모라는 애굽 땅과 같았을지라도 결국 유황불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롯은 빈털터리가 되어 겨우 두 딸만 데리고 나와 생명을 건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약 1300년 전 이스라엘 사사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가나안 땅, 그 중에도 가장 풍요로운 땅 베들레헴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살았는데 흉년이 들자 두 아들을 데리고 흉년을 피하기 위해 모압 지방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흉년을 피해 들어간 모압 지방은 롯이 자기의 큰딸과의 근친상간을 통해서 얻은 맏아들(창 19:37) 모압의 후손들이 살던 곳입니다.

(렘 48:24; 룻 1:2, 6; 2:6). 이처럼 “모압 지방”은 소돔에 살던 사람들처럼 육체의 소욕에 따라 사는 불륜의 땅입니다. 이들 롯의 후손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유황불 심판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육체의 쾌락을 쫓아 살았습니다. 모압은 한 마디로 애굽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형입니다. 나오미는 잠시 흉년이 들었다 해서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이러한 모압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들이 모압으로 내려간 결과를 룻기 1:3-5에서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모압 ‘세상’으로 내려간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우상숭배하는 이방 모압 여인들과 결혼시킨 두 아들마저 잃었습니다. 사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잃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자신을 더 이상 나오미, ‘기쁨’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삶의 모든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괴로움’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라고 불러달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났던 자신의 인생과 가정에 괴로움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룻 1:20-21)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나 오미라 칭하느뇨 

이처럼 애굽이나 모압 등으로 나타나는 “갈대 지팡이”를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가라지’나 ‘마라’ 인생이 되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은 어려운 일을 겪게 될 때마다 언제나 쉽게 돌아가고픈 매혹적인 곳이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보고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물이 넉넉하여 애굽 땅과 같이 장래성과 성공에 대한 기대치가 가장 높아 보이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풍요함과 안전, 그리고 성공에 대한 쉬운 길을 제공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애굽이나 소돔과 고모라, 모압 등 세상은 “갈대 지팡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갈대 지팡이”같은 세상을 결코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에 대한 경고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17:5-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왕에 등극하여 전국에 걸쳐 모든 우상과 우상숭배의 신전들을 철저히 파괴하여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정결케 하여 모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참으로 히스기야 왕은 전무후무할 정도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왕하18:3-6)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 왕은 더 나아가 당시 최강국 앗수르 제국에 조공을 바치고 국가 안보를 의지했던 외교관계를 깨끗이 단절해버렸습니다.

(왕하18: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러자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예전처럼 비굴하게 앗수르에 공물을 바치고 타협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10:24-26)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갈대 지팡이”같은 애굽을 의지했다가 오히려 막대기와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앗수르가 너희를 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채찍으로 그들을 멸하여 앗수르의 멍에를 부숴뜨리고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짐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주리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성전에 나가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밤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을 쳐 18만 5천명 앗수르 군사를 전멸시켜버렸습니다. 아침 일찍이 이스라엘 군대가 앗수르 진영에 가보니 송장만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왕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히스기야 왕은 “갈대 지팡이”를 버리고 모세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성전에 나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했습니다. 갈릴리 어부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빈 배로 돌아와 힘없이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찾아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눅5:5-6)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곳에 그물을 내리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이 찢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까지 불러 두 배에 고기를 가득 채우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서 잠언은 “(잠 16:20,28:25)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풍족하게 되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갈대 지팡이”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은 하나님의 축복”(렘17:7-8)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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