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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제자들 (마 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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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 (마 10:1~15)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실 때에 혼자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훈련시키시고, 그들에게 일을 맡겨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공동제의 리더 즉 팀 리더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이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스승 예수님처럼 공동체정신(team spirit)을 가지고, 공동으로 일하고(teamwork), 공동으로 사역하는 것(team ministry)을 배워야 합니다. 

누군가 함께 일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서 훈련시키고 일을 맡기셨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요? 

一.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까? 

오늘 본문 2절~4절을 보면 제지들의 이름이 나옵니다.“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출신지역을 보면, 가룟 유다만 빼놓고 다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나라의 가장 북쪽 지방으로서 천대받던 지역이었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만은 수도에서 가까운 헤브론 남부지방 출신이었습니다. 어떤 분이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 열두 명의 이력서를 경 영 컨설팅 전문 회사에 의뢰해 컨설팅을 받은 것처럼 상장해서 만든 얘기입니다. 

나사렛 예수 귀하! 
당신이 의뢰한 열두 명의 이력서를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와 직업 적성검사 자료를 모아 컴퓨터에 넣어 결과를 뽑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귀하가 계획하는 단체의 새 단체의 간부 사원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학력이 낮고 단체생활을 할 능력이 없으며 협조 정신이 약해 경영 관리자로서 부적합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신적 안정성이 결여돼 있고 성격이 과격해 지나친 부분이 많습니다. 안드레는 한마다로 무능력합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할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회사의 이익을 제쳐놓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입니다. 도마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질문도 많지만 추진력을 갖고 일할 사람은 아닙니다. 마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두 사람은 사회혁명을 노리는 과격분자들입니다. 불온사상에 감염돼 귀하가 이룰 온건한 기업에는 합당치 못합니다.

귀하가 추천한 열투 명 중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사랑은 단 한 명,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능력 있고 사회에 대한 지식도 풍부합니다. 경영 감각이 있고 상류층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는 예의와 기풍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상당소는 가룟 유다 한 명만 추천하고 나머지는 다시 찾을 것을 권고합니다. 

누군가 지어낸 말이지만, 어쩌면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가장 유능한 제자는 가룟 유다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은 가룟 유다에 비해서 특별한 것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대부 분 가난하고 학력도 낮으며 사회적인 지위도 행편 없었습니다. 어부, 세리, 열심당원 등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비범하고 뛰어난 사람들을 무시하나 배격하신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학벌과 문벌이 좋은 바울을 뽑은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첫 제자를 뽑으실 때 이렇게도 보잘 것 없고 미련한 사람들을 선택하셨을까요? 아무리 부족해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위대한 인물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성경이 기록되었고,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오늘의 모습이 아무리 부족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남편들이, 아내가, 자녀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기대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얼마든지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볼품없는 제지들이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순종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오라고 할 때 따라가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고 따라가다가 예수님이 붙잡히고 십자가에 달리시자 다 도망갔습니다. 무기력을 해결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후 그들은 죽기까지 충성하는 강력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볼품없는 제자들이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은 비결은 순종과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순종할 수만 있다면, 좋으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생애는 주님의 제자다운 제자로 존귀한 인생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는 성도,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성도되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기도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제자들의 명단에 직업이 기록된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3절 중반절에 나오는 세리 마태입니다. 그는 이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마태는 왜 제지들의 명단을 기록하면서 유독 자신의 직업을 밝혔 을까요? 자랑스러운 직업이었기 때문에 직업을 자랑하고 싶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당시 세리는 손가락질 받던 직업으로 매국노처럼 여겨지던 직업인데, 한 때 그가 세리였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사실 이 직업만}큼은 감추고 싶은 과거였을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가 기록한 마태복음에서 얼마든지 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는 빼지 않았을까요? 

은혜를 받고난 사람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마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같이 못난 인간도 주님이 이렇게 주님의 영광스러운 제자로 뽑으시고 사용해주셨다고 그 주님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같이 부족한 인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를 만에 하나 천에 하나 뽑아 영광스러운 주님의 제자로 삼아주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그 은혜를 높이고 싶어서 기록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천대받던 한 인생을 치료해서 오늘 영광스러운 제자로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도 이렇게 희망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성령 충만을 받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수치스러운 과거를 가지고도 주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더 이상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 간증의 제목으로 삼는 과거가 될 것입니다. 서양이름 가운데 열두 제자의 이름을 따르는 이름이 많습니다. 
베드로 = Peter, 야고보 = James, 안드레 = Andrew(Andy), 도마 = Thomas (Tom), 시몬 = Simon, 요한 = John. 빌립 = Philip. 마태 = Marthew(Matt) 

얼마나 주님께서 그들을 복 주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들의 이름을 얼마나 복주셨으면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나서 그런 인물이 되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어 주었겠습니까? 그들의 출발은 미미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순종하게 되었을 때 그들의 생애가 그토록 가치 있는 생애가 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충만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생애는 가면 갈수록 복된 생애가 될 것입니다. 

二.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을까요?

제자들을 불러서 그저 호의호식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예수께서 12제자를 부르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5절에서는“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보내시며 임무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1절은 제자를 부르신 것을 말씀하시고, 5절은 제자를 보내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제자로 부르신 것은 모아놓고 훈련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멈추면 제자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을 망각한 것입니다. 예배에서 은혜 받고, 제자훈련과 각종 훈련을 통하여 제자로 훈련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지지하는 오늘 본문에 또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이 12명의 뽑힌 사람을 제자라고 부르는데, 2절에서는 사도라고 부릅니다. 제자란 배우는 사람(마쎄테스: 배우는 사람)을 뜻하며, 사도란 보냄을 받은 사람(아포스톨로스: 보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는 12제 자만을 가리키지 않고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6장 1절 말씀에“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성도를 제자로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6장 2절 말씀에“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제자란 일반적인 성도를 가리킵니다.

또한 사도행전 6장 7절 말씀에“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되어 성도들의 수가 심히 많아졌는데 그 성도들을 가리켜 제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도가 제자라면, 모든 성도는 사도처럼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냄을 받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들이 군에 입대하면 신병훈련소에 가서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신병훈련 과정을 다 받고 나서도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일부의 병사들은 조교로 선발되어 계속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대다수의 군인들은 배운 것을 가지고 실무부대로 가서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교회는 신병훈련소와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훈련받고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병훈련소와 다른 점은 신병훈련소는 한번 수료하면 다시 들어가지 않지만, 교회는 매주일 이곳 교회에 와서 훈련 받고, 6일 동안 세상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런데 교회에도 신병훈련소 조교처럼 계속 남아서 훈련생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교역자들입니다. 그 외는 전부 사회 속으로 보냄을 받아 그 속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성도가 처한 세상 속에서의 삶의 실천을 가리켜 마태복음 5장 14절에는“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성도들은 어떤 임무를 위해서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을까요? 

1. 영혼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10장 6절에“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하셨습니다. 

누가 잃어버린 양일까요?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다 잃은 양입니다. 왜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야할까요? 목자가 이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오늘도 목자 되신 주님의 심장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들에게 가 있습니다. 인생은 영혼의 목자 되신 예수님께 돌아오기까지는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양에게로 나아가야 합니다. 양에게는 다음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양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너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걸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양은 반드시 목자가 옆에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지옥의 멸망길인지 알지 못하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피할 길은 목자 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 외에는 달리 없습니다. 

둘째, 양은 방어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는 동물 압니다. 자신을 방어할 날카로운 발톱도, 날카로운 이빨도, 단단한 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자의 보호가 있어야만, 평안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보호가 없이 사는 인생은 마귀의 공격 앞에 무기력하게 상처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보호하시는 목자 앞으로 돌아 와야만 합니다. 

셋째, 양은 잘 넘어 집니다. 
양의 다리는 튼튼하지 않고 재빠르질 못하고, 넘어질 때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주님의 보호 없이는 돌부리 같은 시험과 유혹에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필요합니다. 

넷째, 양은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양은 일단 넘어지면 말 그대로‘벌러덩’뒤 집어 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뒤집힌 양은 스스로 이러나질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와서 일으켜 세워 줄 때까지 그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이 양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주님이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넘어진 인생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지들은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목자 되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해 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주변에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은 누구인가요? 그분이 여러분의 배우자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일 수 있습니다. 오랜 친구일 수 있습니다. 자주 가는 수퍼마켓 주인이나 직원일 수 있습니다. 이발소나 미장원의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함께 운동을 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의 동료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분들의 인생의 허무와 깊은 고독을 보십시오. 시련 앞에 넘어진 양과 같은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제는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좋은 목자 선한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자 앞에 돌아오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11절에“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4절~7절에는“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과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복음 전도의 사역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이들을 되찾기 위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10장 7절에“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고...”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도 분명히 있지만,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즉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여기서도 천국의 기쁨과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파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2. 사람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10장 8절에“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육신의 질병, 영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3대 사역 중에 하나가 치유사역입니다. 우리는 회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파괴자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처 주는 자가되면 안됩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함으로 치료하고, 위로함으로 치료하고, 내게 주시는 능력을 따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치료의 주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이 손대어 주시도록, 주님이 역사해 주시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일본에서 기생첩의 아들로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자라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년 시절에 그의 성격은 비뚤어지고 어두웠습니다. 게다가 폐병 3기로 얼마 더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가 어느 겨울 오후에 담장 밀에 혼자서 햇빛을 받고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북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면서“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라며 그에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얼어나 전도지를 붙잡고 물었습니다.“나 같이 가난하고 병들고 천한 기생의 자식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그러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그럼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지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감동해서 가가와 도요히꼬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 후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이 자랑하는 사랑의 성자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입니다. 그는 고베와 도쿄에서 수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일본이 낳은 최고의 전도자요 저술가요 자선사업가인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애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전도의 힘이요, 복음의 능력이며, 하나님이 나타내시는 치유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를 보면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주님이 잡아 주시면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자녀들도 순종과 성령 충만함으로 이러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날이 갈수록 지금보다 더 잘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는 12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제자입니다(행 6:1~7).

제자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하는 일과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서 예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살맛나는 인생을 제공하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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