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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각목과 은혜 (출 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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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목과 은혜 (출 25:10~22)
  

이번 휴가 때에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로 거제도를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에게 포로수용소와 거제도의 해변을 따라 펼쳐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해안을 따라 올라오던 중에 몽돌해수욕장이라는 곳에 들렀습니다. 그곳은 해수욕장이 모래가 아니라 몽돌로 되어 있습니다. 몽돌해수욕장에서 듣는 파도 소리는 다른 해변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습니다. 참으로 정겨웠습니다. 저희 작은 아들이 그 파도 소리를 제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다. 바닷물이 몽돌 사이로 밀려 왔다가 빠져 나갈 때 ‘짜르르르, 짜르르르’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았습니다. 

몽돌이라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모난 돌이 오랫동안 개울을 굴러다니다가 귀퉁이가 다 닳아서 동글동글해 진 돌을 몽돌이라고 합니다. 조약돌 보다는 조금 큰 돌입니다. 몽돌은 처음부터 동글동글 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거친 돌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에 파도에 쓸리며 모난 부분이 조금씩 깎이면서 동그란 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거친돌이 몽돌이 되어 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기적이고 거친 우리의 모습과 성품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에 잠기며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때에 성소와 성물에 대한 설교를 연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소를 세울 때 사용하는 널판과 성소 안에서 사용하는 성물들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씀을 찾아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25장 10절에는 조각목으로 언약궤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25장 23절에는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설병 상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장 15절을 보면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을 세우는데 사용되는 널판도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장 1절을 보면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 돼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단을 만드는 데도 조각목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소와 성소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는 조각목으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조각목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나무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거하시는 성소와 성소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를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말씀하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저는 조각목에 대해 조사해 보면서 조각목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조각목은 성경에 나오는 싯딤 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싯딤 나무를 찾아보았습니다. 싯딤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사진으로 찾아보았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싯딤 나무를 아카시아 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시가 많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들판에서 자라기 때문에 곧게 자라기보다는 휘어지고 비틀어졌습니다. 나무가 단단하고 옹이가 많습니다. 아카시아 나무이기 때문에 자라면서 나무속은 비어 있습니다. 싯딤 나무는 가구를 만드는 데에 전혀 쓸모가 없고 불을 지피는 땔감으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나무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궁정을 지을 때 나무 중의 나무인 백향목으로 자신의 궁정을 건축했지만 하나님은 가장 볼품없는 싯딤 나무을 택해 당신의 집인 성소를 짓게 하셨습니다. 

싯딤 나무로 성소를 세우는 널판과 성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싯딤 나무의 가시를 제거하고 거친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옹이를 제거하고 구부러진 나무를 잘 켜서 널판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널판들을 잘 붙여 성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손이 많이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 자체가 그렇다 보니 모양이 제대로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성소의 널판과 성물을 만들게 하시고 그 위에 금으로 입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의미를 깨닫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여기에서 조각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을 의미합니다. 휘어지고 뒤틀려 있고, 가시와 옹이로 가득한 볼품없고 쓸모없는 조각목은 하나님을 떠나 죄로 물든 우리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 조각목으로 성물을 만들고 금으로 씌우라 하심은 우리의 허물과 상처를 덮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되는 성물은 그 자체가 훌륭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모나고 허물 많은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때만이 거룩한 성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을 살면서 제 잘난 맛에 산다지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조각목처럼 거친 세상에 살면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성품은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품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들이 뾰쪽하게 솟아나 있습니다. 살면서 체득한 경험과 지식들은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지혜가 되기보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진 옹이로 자리 잡아 삶을 지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더 여유롭고 넉넉해야 하는데 더 좁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고 말하는 가 봅니다. 내 마음이 커지면 주변의 사건들이 작아집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작아지면 주변의 사건들이 커집니다. 삶의 옹이와 가시는 우리의 마음을 작게 만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 받게 된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과 거친 부분을 말씀으로 다듬어 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기고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조각목을 사용하셔서 성소와 성물을 만드시고 금으로 입히게 하심은 ‘너희들이 능력이 있고 거룩해서가 아니라 내 은혜로 인해 너희들이 내 백성과 일꾼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계시록 3장 14절에서 1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영적인 추한 모습이 나옵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봅시다. 신약 402면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즉,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겠다고 말씀하시며 네 영적인 수치스러운 실상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잘난 척하지만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영적으로 눈이 멀고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스러운 모습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해 불로 연단한 금으로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믿음의 부요함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아 너의 실상이 얼마나 어리석고 추한 모습인지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은혜의 옷을 입어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스런 모습을 가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의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자신의 소리를 높이면 자신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굉장히 높은 신앙의 경지에 이른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성품과 모습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와 옹이가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싯딤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일꾼으로 세워질 수가 없으니 그 싯딤 나무의 가시와 옹이, 그리고 뒤틀림은 덮으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싯딤 나무와 같은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감싸져 하나님의 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혈통, 지식,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를 자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자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활동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초대교회를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가 다메섹을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를 받았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자신의 과거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이었는지를 고백하며 자신의 지식과 혈통, 부와 명예, 권력 등을 모두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부활의 예수님을 따라 낮고 낮은 모습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겼습니다. 훗 날에 바울은 초대교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도가 됩니다. 

바울 스스로가 자신을 높인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에 의해 영적인 권위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셨습니다. 바울은 말년에 자신의 삶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의 한 절의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신약 282면입니다.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이 조각목임을 고백합시다. 휘어지고, 곳곳에 가시가 있는 거친 모습, 무엇인가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속이 비어있는 모습, 옹이가 깊고 커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기에 한계가 있는 모습임을 고백합시다. 우리 모두 한번 저를 따라 함께 고백합시다. ‘하나님, 저는 휘어지고 뒤틀어진 조각목입니다. 

성품에 모난 가시가 있고, 이기적인 옹이를 가지고 있는 조각목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자신을 조각목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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