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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신비로운 힘 (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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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신비로운 힘 (엡 2:11~22)


마라나타, 아멘! 
예수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나를 의롭다 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여 주시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시어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며 당신의 진리 안에 살게 하십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공급하여 주시고, 하늘의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은혜의 중심인 교회로 세우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살게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날에 칭찬받을 수 있도록 오늘을 최상의 날을 만들며 살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미국의 기독교출판협의회가수여하는 ‘골드 메달리언 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 John Trent박사가 2008년에 쓴 “Chasing Skinny Rabbits”가 번역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달콤한 유혹들’-"깡마른 토끼를 조심하라.”입니다. 

멋진 대왕 수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멋있는 사냥꾼들이 사냥개들을 동원하였습니다. 말을 타고 숲으로 달려 나간 사냥꾼들은 여러 날 동안 그 수사슴의 발자국을 찾아  여러 날 동안 숲을 헤치고 다녔지만, 찾지 못한 사냥개들도, 사냥꾼들도 기진맥진해졌습니다. 준비해 온 식량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사냥에 나섰는데, 자신의 오른 쪽에 무엇인가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틀림없이 자기가 쫓던 수사슴이라고 직감하고 말에 박차를 가하여 사냥꾼 대열에서 급히 빠져나왔습니다. 그 움직임을 쫓아 계속 달려가는 동안 그는 사냥꾼들의 무리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끈질긴 추적 끝에 좁은 골짜기 안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 후에 확인한 것은 대왕수사슴이 아니라 깡마른 토끼였습니다.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왔는데 고작 깡마른 토끼를 쫓아왔으니,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해버린 사냥꾼은 절망과 수치심에 힘없이 말머리를 돌렸으나 이미 자신이 돌아갈 방향감각도 잃어버렸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방황해야할지, 그의 후회는 얼마나 더 계속될지, 삶의 손실은 얼마가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존 트랜트 박사는 조언합니다. 
“조심하라! 당신 주변에는 깡마른 토끼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있다. 깡마른 토끼는 당신이 일하는 곳에 몰래 들어와 잠복하고 있다. 그래서 가치 있는 일-행복한 결혼, 직업적 목표, 평생 우정 등-을 향한 당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다. 또 당신이 속한 이런 저런 모임들, 회사 심지어 교회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하찮은 가치에 자신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6:31-33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인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찮은 가치 때문에 소중한 가치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는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를 바로 알고 섬겨야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1.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값으로 세워졌습니다.

예수 십자가는 하늘 문을 여는 힘입니다.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에베소서5:25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주님의 생명입니다. 이 교회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위대한 사랑의 희생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된 것은 예수의 피 흘리심 때문입니다. 
교회에 십자가를 세우는 의미는 예수의 피 없이는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라도 이 십자가를 통과하여 들어오면 교회의 한 지체가 됩니다.   

에베소서2:11-13은 이 사실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는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여기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니는 거룩한 흔적인 할례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밖에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밖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소망 없이 살았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삶의 가치이고 관심사항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하늘은 없었습니다. 
이 땅에 것이 전부였습니다.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단한 특권을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였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와 같은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들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서로를 외면하고, 정죄하며, 살았습니다. 
굳이 하나 되려고 하는 노력들은 다 부질없는 헛수고라고 생각하여, 
이 땅에 같이 살면서도 서로를 닭이 개보듯, 개가 닭 보듯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에베소서2:14은 놀라운 사실을 선언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의 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보배로운 피가 이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다리입니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절망을 희망으로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서로의 정죄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화해의 다리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저는 말레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우리교회에서 함께 사역하셨던 김권민목사님의 사역을 지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레시아 소수민족인 이반족의 젊은이들과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습니다. 
생김새도, 피부색갈도, 언어도, 문화적인 배경도, 생활수준도 ······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분명 하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십자가의 피를 수혈 받은 새로운 생명의 공동체인 교회의 한 지체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같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같은 성령으로 한 주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우리는 분명 한 소망 안에 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같은 성경을 읽었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의 피! 
십자가의 보혈!
하늘 문을 여는 힘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하늘 문이 열립니다. 
누구나 예수 이름으로 열린 문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늘 문을 막는 것은 사람의 죄입니다. 이사야59:1-에 이 죄를 버리고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죄를 버릴 능력이 없습니다. 이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동일한 자격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형제입니다. 자매입니다. 

2.교회는 모든 담을 헐고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의 교회, 하나의 성전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4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십자가는 원수 사이를 친구와 가족으로 하나로, 화평으로 만드시는 놀라운 힘입니다. 
둘 사이에 쌓았던 높은 담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십자가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하나로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이 아버지와 자녀가 되는 일을 위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대속적인 대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와 나를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십자가는 위에서 아래로 연결하는 기둥과 좌에서 우로 연결하는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서로 간에 막힘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 인간의 교만이 무너집니다. 
지난 2007년 한국교회 부흥1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전도함으로 시작한 한국교회가 결정적으로 부흥의 역사를 이루었던 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축제였습니다. 

그 사건은 바로 회개였습니다. 
1903년 여름 원산에서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선교사들이 여름 수련회로 모였습니다. 수련회를 인도하는 한 선교사가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한다면서 나는 너무 교만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무시하였습니다. 말만 앞서고 생활에 도무지 변화가 없는 조선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복음의 문, 전도의 문, 생명의 문을 가로막은 죄를 회개합니다. 

우리교회가 개척되고 난 다음 6개월 동안 교회를 지도하셨던 하디 영 목사님의 회개가 선교사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선교사수련회에서 시작된 회개가 그 주일 강단에서 쏟아졌습니다. 
이 교만의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소로의 가슴에 가로막고 있었던 장벽들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곳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회개의 역사가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교회에 대 부흥의 역사가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에베소서2:16,17,18에는 이렇게 하나 되게 하시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함이라.”
둘이 하나 되지 않은 상태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둘을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그것도 원수와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둘이 하나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십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혼자 독야청청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단독 자!
이를 신앙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합니다.
여기에는 회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바로 봄으로 회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회개의 증거로서 반드시 화평을 이루어 함께 하나님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5:23,24에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교회는 화평의 공동체입니다.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뜻에서 교회는 철저히 공동체입니다.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나 혼자 조용히 와서 예배를 드리고 혼자 조용히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담장을 쌓아가는 곳이 아니라, 담을 허무는 곳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아주 귀한 보물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귀한 보석입니다. 무슨 보석이 그렇게 생겼느냐고요? 
그렇습니다. 콘크리트 벽돌 조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독일을 통일 시킨 증거가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소련이 주재한 동독과 미국영국 프랑스가 주재하는 서독으로 나누어진 이래 서로를 갈라놓는 높은 장벽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1989년 11월 9일 독일인의 한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조약을 채결하고 분단 45년 만에 통일되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바로 이 콘크리트 벽돌 조각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의 벽돌 조각입니다. 

교회는 벽을 허무는 사람들 사이에 세워집니다. 모두가 예수 안에서 구원받은 한 형제, 자매가 함께 손에, 손잡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성경 에베소서2:19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함께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당신은 이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동일한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예수의 제자 됨의 표식은 기적이 아닙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능력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함께 나아가는 사랑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에베소서2:20-22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예수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께로 담대히 나아가는 거룩한 성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그 어떤 장벽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죄와 허물도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로 철폐하셨습니다. 
회개는 그 모든 장애물들을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입니다. 
하늘의 동일한 시민권을 가진 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 되어 함께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처럼 아직도 교회문턱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두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직도 세상의 깡마른 토끼를 쫓아가느라고 자신의 삶을 올인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는 화평이 있습니다. 
모두를 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거룩하신 성령의 능력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0:10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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