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완전한 사람으로 서라 (골 1:24~29)

  • 잡초 잡초
  • 369
  • 0

첨부 1


완전한 사람으로 서라 (골 1:24~29)


마라나타, 아멘!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
세계최고의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가 쓴 책이다. 김연아와 함께 해온 지난 3년간의 이야기와 자신의 선수시절 이야기를 쓰고 있다.   브라이언 오서는 김연아가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스케이트를 탔다는 점, 아니 타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아해서 아무도 말릴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무언가를 무조건 즐기는 마음이 나와 연아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한 계기였다. 재능이란 너무나 즐거워서 스스로 노력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참고 견디며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즐긴다고 해서, 재능이 있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가족이 지원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저 아이가 얼마나 참고 견디면서 자신의 꿈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가에 달려있다.”

“연아는 매일 100%최선을 다한다. 모든 스텝, 모든 표현, 음악의 뉘앙스까지 해석하고 연습한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좀 더 쉽게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실로 포기를 모르는 선수이며, 무엇이든 배우고자,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연습하는 선수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사는 끈질긴 인내와 노력이다.  노력과 인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간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아이가 기고 뒤집고 앉고 일어서고 걷고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쉽게 해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 하나, 하나의 행동이 되기까지 수백 번 혹은 수천 번의 반복된 연습을 통해서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스스로 해내기 때문이다. 누구의 권면이나 강요에 의해서 하거나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임에 틀림이 없다. 

이 은사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에도 적용된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태어 났다.  하나님의 생명인 성령님이 우리 속에 오심으로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 속에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은사로 주셨기 때문에 성장을 갈망하게 하신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묵상하며 그리스도예수를 닮아가게 하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5:42에서 제자들에게 성장의 목표를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
이 말씀은 제자에게 스스로 신격화해서 새로운 교주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뜻이다. 
성경은 줄기차게 이것을 명령하신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5:16)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명령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신다.
고린도전서15:57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후서2:14이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심은 특별한 소수의 무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멈출 수 없다.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인격이 형성될 때까지 우리의 성장은 계속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이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1:28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 말씀은 성도들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첫째,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완전해 지는 데 있다. 
어떤 집단이나 전체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로 세워지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누가복음15장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여 주셨다.  
열 드라크마 중에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는 여인의 마음이다. 
100마리의 양 가운데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마음이다. 

두 아들 가운데 집을 나간 아들 하나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족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하나에 관심하신다. 그 잃어버린 하나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하지 않으신다. 
1/10, 1/100. 1/2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그 하나로서 그 가치는 온전하다고 보셨다. 절대적인 가치로 계산하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이다. 
그래서 이 하나를 찾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시고 그 하나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나머지 전체와 동일한 기쁨으로 표현하셨다.   
한 생명을 찾은 기쁨을 천하를 얻은 기쁨이라고 하셨다. 

성장에 대한 기대도 동일하다.  
99명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만약에 한 사람이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버지는 그 하나 때문에 괴로워하신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원하신다. 
에베소서4:13은 그리스도인이 성장할 수 있기 위한 조건을 말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온 교회가 영적인 성장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확신반, 성장반, 제자반, 기타 훈련을 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성도 여러분의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개설한 과정에 참여하여 함께 성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 한 사람에게 관심하신다.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믿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를 안닥 hgksmsrjt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가? 
요한복음1:10-12이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진실로 그러하였다. 
예수님이 가장 안타까워하셨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가 누구신지 알ㅈ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그리스도예수를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예수를 바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지 아는가? 
마태복음16:16을 보라. 
베드로가 고백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한 마디에 예수님이 주신 약속이 무엇이었는가? 
십자가 위에서 최후에 기도하신 것이 무엇이었는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우리 각 사람이 완전한 자로 세워져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구도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 밖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의로워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율법적인 의의 경쟁에 말려들고 있다. 
누가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는가를 묻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오직 예수뿐이다.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의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성경은 그리스도를 비밀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실로 그러하다. 율법으로 이루지 못한 인간의 의로움을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의는 비밀이다.  

골로새서1:27을 읽어보라.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풍성한 영광은 비밀이다. 
이 비밀은 이미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은총! 
이 엄청난 일이 바로 비밀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비밀인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수도사였다. 
그는 수도원에서 죄로 인하여 심각한 고민을 하였다. “내 죄, 내 죄 내 죄이다.” 하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로마에 있는 스칼라 산타성당에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으실 때 올라가셨다는 계단이 있었다. 이 계단은 콘스탄틴 대제 어머니 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뜯어다가 로마에 옮겨 놓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내리면서 죄사함을 받는다고 여겼다. 루터도 이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입을 맞추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러나 다 올라갔을 때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바로 그 때 귀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이 있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루터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았다. 죄의 문제가 십자가의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자 그는 모든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신뢰이다. 
결국 그의 믿음에 자유를 준 것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능력이었다. 

믿음생활이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하게 되는 것은 사고의 전환 때문이다. 
은혜에서 율법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복음과 은혜로 시작한다. 

에베소서2:8,9이다. 
“너희는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러나 신앙의 연조가 더해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집사가 되었는데, 장로가 되었으니, 목회자가 된지 30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달라져야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절망한다. 

제자 베드로가 물 위로 걷다가 물속에 빠진 사건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끝까지 예수만 바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3:20-24은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놀라운 선언이다.  

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로울 수 없다. 
이제는 율법으로 이루는 인간의 의의 시대가 지나갔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가 나타났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신 의로움이다. 
여기에 완전함이 있다. 

인간의 의로움은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에 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도행전20:24에서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이 시간에도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는 말씀은 바로 이 복음이다.  

셋째, 여기에 교회일꾼들의 사역이 있다. 
골로새서1:28이다.“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라.”
교회의 사역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 진리를 권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을 전하는 것이다. 

본래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와 그를 좇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였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그의 삶이 180도로 바뀌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94장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1.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2.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 하는 맘 뺏지 못해. 

3.이 세상 행복도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후렴>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자랑거리를 예수 이외의 그  무엇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좌절하고 절망한다. 
왜냐하면 그 무엇도 진정한 의미의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자식도, 그 무엇도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자랑하는 자는 예수 안에서 자랑하라”
예수만 높이고, 자랑하라. 

십자가 이외에 어떤 것도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연조가 깊어지면서 훈장을 다는 것처럼 가슴에 다는 것에 관심하기 시작한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높이며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내일부터 교회에서는 부흥회를 연다. 
강사로 오시는 정삼수 목사님은 이번 말씀주제를 “복음이 있습니까?”라고 했다. 
그렇다!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부흥이다.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너무 많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구제하고 섬겨야한다. 
이 시대의 기독교의 화두는 나눔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이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시작한 교회가 세상적인 힘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게 되면 당연히 세상의 구제에 관심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복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일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될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에 있다. 
우리가 이 진리 위에 서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복음이다. 
이 복음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 수 있게 하는 진리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