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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와 교제 (고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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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제 (고전 1:9)


데미안 신부는 벨기에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19세에 예수님을 영접한 후 선교사의 사명에 불탔습니다. 1873년 33살의 데미안 신부가 하와이에서 선교생활을 9년째 하던 해에, 당시 극성을 부리던 전염병인 나병이 심각하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염병인 나병을 막기 위한 해결책으로 환자들을 몰로카이 섬으로 격리시켰는데, 이 때 데미안 신부는 자진해서 몰로카이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몰로카이 섬에는 나병 환자들로 악취가 심하고 얼굴과 손발이 썩어 들어간 환자들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좌절과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데미안 신부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병을 치료해 주고 도움을 주고자 원했지만 몰로카이 섬에 있는 나병 환자들은 데미안 신부 근처에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같이 대화를 하려고 해도 대화도 안되고 교회 예배도 참석 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그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나병환자가 되면 어떻겠느냐? 신분이 같아야 네 말을 듣는다. 네가 정말 저들을 사랑하면 너도 나병환자가 되라!” 얼마 있지 않아 데미안 신부는 나병환자가 되었습니다. 

그후로 신분의 동일성을 느낀 사람들이 데미안 신부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됐고 절망과 고통의 땅인 몰로카이 섬은 희망과 사랑 그리고 생명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진정한 교제는 서로의 처지나 신분이 같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람과 대화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사람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교제하며 우리를 구원하게 되신 것입니다.

 1.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자

그러면 누가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어떤 특정인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까? 지위 고하의 문제도, 빈부의 차이도, 민족과 피부색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이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로 13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민족과 피부가 같거나 다르거나 관계할 필요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혈통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니고 육정을 통해서 구원한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말씀하는데 미쁘다는 것은 성실하다는 말입니다. 변함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교제의 열매

교제가 있으면 어떤 열매가 맺어지는 것일까요? 우리가 서로 교제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라고 말씀한 것 같이 우리가 마음을 같이해서 대화 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골로새서 2장 2절에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풍성한 교제를 통해 연합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되면서 남자는 사냥꾼으로, 여자는 집과 자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그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냥꾼은 비바람 속에서도 짐승의 발자취 소리나 음성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성향은 자기가 몰두하는 일이 아니면 귀담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의 역할을 해온 여자들은 집 안팎의 사소한 일 모두를 알아야만 가정과 자식들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와 달리 한꺼번에 많은 일에 관심을 기울여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자와 여자의 성향은 서로 상반되게 발달되어 그것이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남자들은 집에 돌아오면 말을 안합니다. 저녁식사 한 후에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부인이 무슨 말을 해도 가만히 앉아서 고개만 끄덕끄덕하다가 한마디 합니다. 

“밥줘” “자자” 남자들은 한곳에 집중적으로 마음을 두고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인과의 대화에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자를 돕는 배필로 아담에게 주었으므로 두 사람은 같이 살아야 됩니다.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해야 됩니다. 서로 양보하고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서로 동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말씀하며 빌레몬서 1장 5절로 6절에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교제하고 서로 이해하게 되고 서로 동정하게 되면 믿음이 더 자라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서로 사랑을 하려면 교제를 해야 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통해 서로 교제하여 이해심이 쌓이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1절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말씀합니다. 그냥 무조건 하고 사랑하라고 한다고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교제가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 교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소설가인 은희경 작가의 ‘관계’라는 글은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공감을 줍니다. “지금 눈앞의 저 낯 모르는 사람이 피를 콸콸 쏟는다 해도 몇 분 후면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가 고개만 조금 숙여도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며,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없다. 관계에 의해서 특별해질 뿐이다” 서로 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가 신문지상에 보면 교통사고가 나거나 자연사태로 목숨을 잃고 집을 잃는 기사를 읽습니다. 홍수가 나서 동네가 떠내려가고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신문에서 읽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내 부모나 형제나 자식에게 다가오면 나하고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굉장한 마음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교제해야 서로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지 교제 없이는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늘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예수님을 더욱 이해하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의 교제방법

성경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온 보혜사로서 항상 우리와 같이 계셔서 도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성령께 의지하고 바라면 성령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언어’라는 책의 저자 김우현은 방언이야말로 하늘 문을 여는 “하늘의 언어”로서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유익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언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방언을 말하고 기도하는 체험을 하면 할수록 개인과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것으로, 방언은 신앙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체험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면서 “방언은 성령께서 영으로 비밀로 기도하는 것이므로 사탄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사랑의 비밀을 하나님께 고하고 나누는 밀어입니다. 사탄의 방해 없이 아버지의 심장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 방언입니다. 방언은 성령님의 역사에서 가장 기초이며 놀라운 능력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방언은 마귀도 알아들을 수 없고 사람도 알아 들을 수 없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서 많은 시간 방언으로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이해하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했듯이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우리가 주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4장 12절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우리 마음속에 영과 혼을 쪼개어 분별을 하게 하며 지혜와 총명, 모략과 재능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1850년 12월 6일 주일, 영국의 한 도시가 심한 눈보라 때문에 교통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날 한 청년이 날씨 때문에 집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교회  목사님도 눈에 갇혀서 못 왔습니다. 몇 사람 안모였는데 평신도가 대신 일어나서 설교를 합니다. 얼마 안 되는 성도들을 앞에 두고 그 평신도는 더듬거리며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그의 설교는 더듬거리고 서툴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그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는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 때 설교자가 그를 향해 “젊은이, 그대는 매우 곤고해 보입니다. 그럴수록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밑도 끝도 없이 자기만 쳐다보고 고함을 칩니다. 

이 청년은 그 때 이 말씀이 마음에 깊이 박히게 되어 일평생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게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훗날에 위대한 설교자가 된 찰스 스펄전 목사님입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위대한 주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외우고 입으로 시인하면 그 말씀이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깊이 교제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누구든지 매일 아침 15분만 기도하면 인생에서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말씀하듯이 교회에 와야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교회와 예배를 통해서 주님과 가까이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그룹 모임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가까워 질수 있는 것입니다. 구역예배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전도서 4장 11절로 12절에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는데 두 사람 이상 세 사람이 되면 엄청나게 강력한 힘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하듯이 모이기에 힘써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교제의 결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것은 너의 죄,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대신 청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삶이 거룩해 집니다. 우리가 술꾼과 교제하면 같은 술꾼이 되고 도박꾼하고 교제하면 같은 도박꾼이 되고 방탕한 자와 교제하면 같이 방탕하고 방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하늘이 가까워지고 마음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열매는 삶의 성결화인 것입니다. 월라드 F. 할리는 ‘러브 버스터’라는 책에서 행복이란 고기를 잡는 그물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어부는 고기를 잡아서 바구니에 담는 것만 할뿐 아니라 그물을 씻어서 언제나 그물이 엉키지 않고 찢어지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물과 같아서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므로 우리 신앙의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찌꺼기가 끼지 않도록 항상 정비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심신이 건강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죄책과 좌절과 절망으로 마음이 병들고 또 육체가 병들고 생활이 병들고 인생과 병은 떠나지 않습니다. 늘 병때문에 사람들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병에서 우리가 놓여나기 위해서는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예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좌절과 절망, 죄책에서 놓여남을 받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면 용기와 힘이 생겨서 병하고 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심을 하면 병과 싸워서 이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면 우리는 자연히 우리 생활 속에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못살고 가난하고 실패하고 어렵더라도 주님이 같이 계시면 주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과 교제하면 부활 영생 천국이 마음에 뚜렷해집니다. 주님과 멀리하면 천당도 자꾸 멀어지고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천국이 늘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회퍼는 “그리스도인 간의 교제란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교제해야 참 교제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해야 그 교제가 참 교제가 되는 것이다. 참다운 교제는 결국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제만이 성도간의 교제를 거룩한 교제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만들었으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제 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항상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우리는 방송매체와 인터넷 온갖 통신기기를 통해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눕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등한이 한 때가 많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신앙이 식어지고 교회에 가는 것이 형식적이 될 때 더욱더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이 깊어질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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