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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로 된 포도주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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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된 포도주 (요 2:1~11)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에는 8개의 기적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은 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요 2:1-11), ② 왕의 신하의 병든 아들을 고친 기적(요4:46-54), ③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친 기적(요 5:1-9), ④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요 6:1-15), ⑤ 물위로 걸으신 기적(요 6:16-21), ⑥ 소경을 고치신 기적(요 9:1-10), ⑦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요 11:21-), ⑧ 예수님 자신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기적(요 20장) 등입니다.

이런 기적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란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신적 존재로서 우리의 삶에 기쁨을 회복시키고, 삶에 기적을 베푸시고, 삶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구나!”라고 단순히 알뿐만 아니라, “아멘!”하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여서 삶에 기쁨을 회복하고, 삶에 기적을 체험하고, 삶에 변화를 경험하게 되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예수님의 기적은 여러분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가나의 혼인 잔칫집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잔치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들떴던 잔칫집 분위기가 일순간 가라앉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저가 이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삶에 기쁨을 회복시키십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이사람저사람을 만나며, 이것저것을 입거나 먹어보지만 기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3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결혼식 잔치에서 손님을 초대해놓고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것은 준비성이 부족한 아주 무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음식은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다하더라도, 포도주만큼은 7일간 계속되는 잔치를 위하여 넉넉히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집에서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들뜬 축하의 잔치자리가 싸늘한 비난과 경멸의 자리로 변할 참입니다.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기쁨이 가셨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에도 ‘기쁨이 가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좋은 게 없습니다.
다 시들합니다.
슬퍼지기도 합니다.
죽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왜 우리의 삶에 기쁨이 없어집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몇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 자신감 상실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비참하다.’, ‘나는 쓸모가 없다.’, ‘나에게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는 이제 한계를 느낀다.’ 뭐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보지요?

㉡ 자기 미움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내 얼굴은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머리가 좋지 못할까?’, ‘나의 환경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죄책감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것이 기쁨입니다.

㉣ 배신감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자기와 멀어져 갈 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말이나 행동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기쁨은 가시게 됩니다.

㉤ 생활의 염려가 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 자녀에 대한 염려, 직장에 대한 염려, 질병에 대한 염려, 죽음에 대한 염려가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이런 원인들을 언뜻 살펴보면, 우리 삶에서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보면 그게 아니에요. 
우리 삶에서 기쁨이 가시게 되는 것은 마음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주먹보다 작은 마음이 문제예요! 
마음이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일으키기도 하고, 쓰러지게도 합니다.
마음이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합니다.

둘러보세요.
오히려 실패의 환경을 도전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오히려 실패한 현실을 성숙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마음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기쁨이 가신 잔치 집에서는 ‘예수님’이 계심으로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여기에 정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자리에 다시 모셔 들여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은혜 받았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듣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제일 먼저 오는 것이 무엇이든가요? 
기쁨이 아니던가요? 
환경에 관계없이 기뻐하고, 자기 삶이 사랑스러워지고, 살 소망을 갖게 됩니다. 

행 2:12-13절에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을 때의 반응이 나옵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성령이 임하면 술 취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 충만을 술 취한 것으로 표현했을까요? 
술 취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쁩니다! 

저는 술을 못하지만, 저의 형님은 술을 참 좋아하십니다. 
술 한 잔 드시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봐요. 
속에 넣어둔 말씀도 잘 하시고, 호기도 부리시고, 조카들도 잘 껴안아줘요. 
사람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실 때 환경에 관계없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삶에 기쁨을 회복시키는 분입니다.

2. 예수님은 삶에 기적을 베푸십니다.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마술의 세계로 이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이란 사람의 지식, 사람의 힘, 사람의 애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예기치 못한 일이었듯이 우리 삶에는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많이 찾아옵니다. 
지식으로도 안 되고, 힘으로도 안 되고, 애씀으로도 안 되는 어려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신앙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신앙일까요? 
그것은 과학이 아닙니까? 
신앙이란 어차피 이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포월’이라는 말을 씁니다. 
즉 신앙이란 이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성을 넘어서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기적을 많이 보고 경험하잖아요?

우리 유 권사님!
검사 결과를 보고 담당의사도 놀라고, 의사의 설명을 듣는 환자도 놀라고, 그 소식을 들은 교우들도 놀라고........
인생에는 이렇게 놀랄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마술은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성경의 기적은 인격적입니다. 
사람의 태도와 반응이 아주 중요합니다. 
마술은 비인격적입니다. 
사람의 반응에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요한복음에 나온 8가지 기적을 한번 조사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기적이 어떤 때 일어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인격적인 조건이 있어요.
예수님의 기적은,

① 강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저는 죽고 맙니다.”
렘29:13절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 구절을 개역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려면 강한 열망을 가져야합니다.

②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야!” “주님은 하실 수 있어!”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신다면 이것쯤이야!”
웰즈(H. G. Wells)는 ‘대주교의 죽음’이란 단편을 썼습니다. 
대주교는 날마다의 습관처럼 그날 저녁에도 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늘 똑같은 기도를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Yes. What is it?)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를 듣자 대주교는 너무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이 단편은 풍자입니다. 

대주교는 평생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를 정말 듣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기도가 정말 응답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대답하시자 너무 놀라 쓰러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래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③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5절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8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연회장은 포도주가 떨어져 지금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하인이 ‘맹물을 포도주’라고 갖다 주면 “바쁜데 누굴 놀리느냐.”고 뺨이라도 맞지 않을까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데에는 뺨 맞을 각오를 한 하인의 순종이 있었음을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하인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 가지고 가는 중에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한 열망과, 확실한 믿음 그리고 순종을 통하여 삶에 기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3. 예수님은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킵니다.

9절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물이 얼음이 되거나, 기화되어 공기 중에 흩어졌다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맛없는 맹물이 맛이 있는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일으킨 그 수많은 기적들 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을 제일 먼저 소개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은 가정을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예수를 믿으면 사람이 변화될까요?(질문)
정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변화됩니다! 
하나님이 사람 하나 변화 못 시키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 될 것은,

① 기질(Character)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혈질, 어떤 사람은 담즙질, 어떤 사람은 외향적, 어떤 사람은 내성적인데 이런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써 다 선한 것이고, 다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인격(personality), 사람됨은 변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남을 사랑하게 되고, 독선적인 사람이 남의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해지고,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이 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이 되고........
사람의 인격이 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 예수 믿더니 변했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고후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국민일보 2009년 9월 2일자에 전 아시아나 항공 부사장이었던 박용태 성도의 간증이 실렸습니다.
그는 공군 소장에 오르기까지 공군사관학교 동기 중에서 항상 앞서 나갔습니다.
공군사관학교에 158명이 입학했는데 조종사가 된 사람은 63명이고, 18명이 비행사고로 죽었습니다.
그는 사고 없이 전투비행 4,000시간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부족함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만했고, 부하들에게 엄격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중장 진급에 실패하여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화여대 졸업을 앞둔 큰 딸이 말기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그런 고난이 오리라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샛노랗게 변하고, 세상이 온통 휘청거렸습니다.
뒤돌아보니 그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인생 중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6.25전쟁 중에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였습니다.
동기생의 권유로 교회에 나갔지만 그의 눈에는 주변의 기독교인들이 구질구질해 보였습니다.
오래 못 나갔습니다.

두 번째는 대령시절 성남비행장에서 주위 사람의 강권으로 교회에 나갔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딸에게 찾아온 고난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스로 교회에 나갔던 것입니다.
교회를 찾은 그날, 머리 숙여 기도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름대로 승승장구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말기암인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지만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딸은 1년여의 투병 끝에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딸은 그의 가정을 구원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천국에 갔던 것입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그렇습니다.

가장 위대한 순간은 부자되는 순간도 아니고,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는 순간도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순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자각하는 순간입니다.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터치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높이셔서 아시아나 항공 부사장이 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가나의 혼인잔치 자리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세요.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 기쁨을 가져다주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삶에 이성을 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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