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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자랑스러움 (골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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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랑스러움 (골 1: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골1:2)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하게 된 동기는 골로새 교인들에 대한 특별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성도로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에게 있어 너무 소중한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죄수의 몸으로 억류되어 있으면서도 성도로서의 의미성을 가지고 있었고, 골로새 교인들이 성도라는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이란 말, ‘하기오이스’(ἁϒίοις)의 의미는 ‘분리’와 함께 ‘구별됨’을 뜻하는 것으로 ‘거룩함으로 구별함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성서에서 성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진 표현은 ‘이스라엘’ 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민족들 중의 한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고 구별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 속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에 의해서 소유되고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2:9) 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로서의 구별은 교회에 다닌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세상 적인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죄의 오염에서 정결함을 입은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무리입니다. 외적인 의미의 구별이라기보다는 내적으로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생각이나 사고방식이나 마음가짐과 생활방식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문안의 말씀 중에서 성도의 자랑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문안인사의 말씀 중에서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뜻’이란 말 ‘델레마’(θελήμα)는 ‘결정’, ‘선택’, ‘의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서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셔서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시고 우리 모두를 그분의 성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대로 우리에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하심으로 성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본인의 생각과 의도와 전혀 달리 성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 적으로 불행한 조건에 빠지게 하기까지 하시면서 성도가 되게도 하십니다. 내가 성도라고 한다고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이 성도라고 해서 성도인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다는 감격을 가질 때에 ‘할렐루아!’ 라고 찬양하며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성도가 되었고 성도로서 사도가 되었습니다. 디모데도 성도로서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골로새 교인들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한 지체와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귀중함을 알고 있었기에, 죄수로서 어려운 환경 중에도 복음을 전하기에 전력했습니다. 어려움 중에도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애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영적 교훈의 나누고 싶어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골로새서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에게 있어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무조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죄을 범했을지라도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 없을지라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할 지라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긍지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다! 성도의 자랑스러움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로, 그리스도께 속해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성육화 된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과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됨 삶을 살아야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믿을 만한 그리스도인인가? 충성된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연합의 증거는 생명의 연합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몸이 하나이고 머리가 둘인 아기를 보고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기는 하나인가 둘인가요? 랍비는 한 머리를 때려 다른 머리가 아픔을 느끼면 하나이고 그렇지 않으면 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됨 입니다.   
  
저는 자식을 키우면서 하나 됨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나는 바쁘게 일하거나 활동하면서도 마음에서 자식을 잊고 있거나 자식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자식이 저의 마음을 차지하거나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수시로 확인합니다. 별일 없는지 돌보아 줄 것은 없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전화를 해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식이 마음아파하면 아빠인 내 마음이 더 아픈 것 같습니다. 자식이 슬퍼하면 제가 더 슬퍼집니다. 자식이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제가 더 괴롭고 힘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제가 더 즐겁고 기쁩니다. 자식이 행복하면 제가 더 행복해집니다. 그러기에 자식을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하여주려고 더욱 애쓰고 열심히 노력해봅니다. 왜일까요? 나의 자식과 저는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성도는 주님과 연합되어 있고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가 기쁘면 주님이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행복하면 주님이 더 행복해 하십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면 주님이 더 힘들어 하시고 괴로워하십니다. 
  
성도는 이렇게 주님과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듯이 주님이 또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열심이시고 신실하듯이,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도 그 주님께 열심을 다하고 신실한 것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열심의 대상과 하나 되어 있고 그 대상이 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심인 사람들을 살펴보면 열심의 대상이 돈이면 돈과 하나 되어 있고, 그 돈이 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심의 대상이 명예나 권세와 같은 것이면, 그 명예와 권세와 하나 되어 있고 그것이 그 사람 안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열심인 사람들을 보면 무엇인가와 연합되어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생명의 주님, 곧 우리의 구원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열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왜 믿을 만하지 못하고 충성되지 못합니까? 왜 열심과 열정을 잃어버렸을까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을 사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에게 신실하고 열정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신실함’이란 말, ‘피스토스(πιστός)’는 믿음직스럽고 충성스러운 것을 뜻합니다. 성도는 예수님께 믿음직스럽고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할 뿐 아니라 한 형제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될 뿐 아니라 성도들끼리 연합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랑입니다.

  성도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없다면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은혜라는 말, ‘카리스’ (χάρις)는 헬라인들의 인사이고, 평강 곧 샬롬(םולשׁ; 에이레네 είρήνη)은 히브리인들의 인사입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지칭하고, 평강은 그 은혜를 소유한 사람의 심령의 상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번역된 ‘카리스’는 기쁨, 호의, 친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조건 없는 호의 곧 친절을 가리킵니다. 선물을 받을 때 행복하고 기쁩니다. 그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데 넘치도록 크게 베풀어주는 선물은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아무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선물이기에 그 은혜를 받을 때에 행복하고 기쁜 것입니다. 이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 기쁨과 행복은 성도인 내게 항상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로서 은혜는, 하나님과 인간의 간격을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우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행동이십니다. 교리적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속죄의 제물이 되게 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어주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믿고 의지하는 자마다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호의로 구원받게 하신 은혜를 깨닫는 성도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한없는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감격을 본문에서는 평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과 멀어져 하나님으로부터 원수 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돌아와 화목하게 된 내적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한 사람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가지고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겪는 인생의 문제는 환경에서 오는 풍랑보다 마음의 풍랑으로 인한 것이 더 많습니다. 사단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환경을 공격하기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도록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거함으로 흔들림 없는 평안을 소유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사단의 공격은 무력해 집니다. 성도는 이 평안을 가짐으로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과 문제도 넉넉히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 가지 현상이 그의 마음과 얼굴에 나타납니다. 성도의 외적 드러남은 하나님의 베풀어주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이고, 성도의 내적 드러남은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한 여유로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가득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가지고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이 은혜와 평강은 어떤 환경경이나 어려운 조건이 빼앗아 갈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평강을 가진 자의 역사는 어두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합니다.
  
30대에 해외이민목회에 임했던 저에게 호주 수도 캔베라에서의 이민목회는 너무나 부족하고 미숙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벅차고 힘들고 어려운 목회였습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시드니에서 목회하시는 선배목사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 목사님은 제게 이민목회 멘토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분은 제게 항상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시간을 할애해 주셨고 사랑으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 분과 만나 대화할 때에 그 분의 베풀어주시는 은혜, 곧 사랑과 호의 배려로 목회의 아픔이나 외로움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을 회복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 함께하십시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의 중심에 생수가 강같이 흘러나는 은혜의 기쁨과 평강이 넘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 (요한7:37-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은혜와 평강의 역사는 성도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형제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함께 성도된 우리들 모두는, 성도로서의 영광과 성도의 복됨을 자랑스러움으로 간직하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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