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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 (렘 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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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 (렘 33:1~3) 


(렘33:1-3)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1.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약 10만개이며 최신 전자 망원경을 가지고 한 은하 안에서 볼 수 있는 별의 수는 2,000억 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신 망원경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그 전체 우주 속의 별들의 수는 2,000억×1,000억 개라는 천문학적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지 못한 별의 수는 얼마나 더 많겠습니까? 또한 지금 반짝거리는 별빛은 10만 광년 전에 반짝였던 빛이 오늘 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자기야, 오늘 저녁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지?” 라는 말은 작업하기 위해 분위기 띄우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천체를 연구하는 우주 물리학자 보이드 박사(런던 대학)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깊이 하나님을 깨닫고 찬송가 40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을 자기 신앙의 간증이라고 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신묘막측(神妙莫測), 즉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두렵고 놀랄 정도(fearfully and wonderfully)로 신기하고 오묘하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하루 평균 2500칼로리의 열을 발하는데 25잔의 커피를 끓일 수 있는 열량입니다. 신체의 각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뇌는 자율신경 온도조절 장치로 몸이 덥거나 추우면 대뇌에서 혈액 순환과 땀으로 열의 발산량을 조절합니다. 

약 1,000만개의 신경세포로 된 뇌는 0.07볼트의 전기를 내며 눈은 30만 개의 회로로 대뇌와 연결되어 있어서 꽃을 보면 수천 개의 회로가 작동해서 꽃의 크기, 모양, 색깔을 구별합니다. 눈은 자동조절입니다. 아무리 세밀한 카메라도 눈처럼 자동 조절되지 않습니다. 안구에는 약 1억만 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거리와 광도를 자동 조절하며 색상을 구별합니다. 피아노는 88건반이지만 귀는 1,500개의 키보드가 있습니다. 청각신경은 예민하여 방음장치가 온전하면 혈관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심장에 연결된 혈관을 한 줄로 연결하면 1만 마일이 넘으며 하루 평균 10만 번 이상 고동(鼓動)합니다. 과로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1초당 15분지 4초씩 휴식을 취하므로 하루 6시간씩 쉬는 셈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창1:27)하셨는데, 이를 다윗 왕은 시편 139편에서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시139:13-18) 주는 내 몸의 모든 기관을 만드시고 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베 짜듯이 지으셨습니다. 내가 이처럼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어졌으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는 어머니 태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그 때에도 주는 내 형체를 보고 계셨습니다. 주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보셨으며 나를 위해 작정된 날이 하루도 시작되기 전에 그 모든 날이 주의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생각은 나에게 정말 소중합니다. 어쩌면 주는 그렇게도 많은 생각을 하십니까? 내가 만일 그 수를 헤아린다면 해변의 모래알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깰 때에도 주는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한 마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신비롭게 창조하시고,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인간의 길과 생각보다 높으신”(사55:8-9) 하나님의 생각과 뜻대로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이 태에서 만들어지기도 전부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태와 모습을 알고 계셨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갈 여러분 인생 전부를 “하나님의 책”에 기록하셨다는 것에 다윗은 경외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다윗 왕은 본 시편 139:1-4에서 “여호와여, 주는 나를 살피셨으니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께서는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며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내가 일하고 쉬는 것을 다 보고 계시며 나의 모든 행동을 잘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다 아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오른 손으로 붙드실 것을 믿기 때문에(10절) 비록 ‘흑암이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이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결코 어두워지지 않고 대낮처럼 밝은 삶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11-12절) 그래서 다윗 왕은 주의 생각이 자신에게 정말 소중하다는 것입니다.(17절) 이사야 선지자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다윗 왕이 시139:12에서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며, 밤도 대낮처럼 밝으니, 주님 앞에서는 어둠과 빛이 다 같습니다.”고 고백한 것처럼, 성도 여러분의 인생에 비록 어두움과 환난이 덮인다 해도 하나님 앞에 사는 성도 여러분에게는 어둠도 어둠이 안되고 밤도 대낮처럼 밝은 삶으로 창조해주신다는 것입니다. 


2.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셔서 부하게 하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입니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그래서 하나님은 자녀들이 비록 어두운 일을 만들어도 그것을 빛으로 지어 성취해 주십니다. 구약 시대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환난에 빠진 70명 가족들을 이끌고 애굽에 와서 바로 왕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자기 인생을 털어놓습니다. 

“(창47:9)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이러한 그의 고백대로 그의 ‘험악한 세월’ 중 숱하게 어두웠던 삶들을 대낮처럼 밝게 인도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었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야곱’이었습니다. 이 야곱이 결국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붙잡아(‘야곱’은 ‘기만하다’는 뜻), 

다시 말해 형을 속여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마저 속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버립니다. 형 에서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 임종이 가까워 오자 야곱을 죽이고자 합니다. 이러한 에서의 의중을 어머니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시킵니다.(창27장) 형 에서의 분노를 뒤로 한 채 천리 먼 길 외삼촌 라반의 집 밧단 아람으로 향합니다. 외롭고 두렵기도 한 도피 길에 피곤하기도 하고 날이 어두워져 돌을 베개삼아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내 꿈을 꾸었는데 끝이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 하나가 땅에 서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노라. 네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 동서남북으로 사방 흩어져 살 것이며 세상의 모든 민족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며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노라.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행할 때까지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니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그대로 다 이루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다 이루기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고독하고 깊은 밤길같은 어린 야곱의 앞길을 대낮같이 밝혀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침내 야곱이 외삼촌 집에 도착합니다. 라반은 조카 야곱을 보고 ‘너야말로 살과 피를 나눈 진짜 내 친척이구나’며 반갑게 맞이합니다. 야곱이 그 곳에 머문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라반이 야곱에게 ‘네가 내 친척이라고 해서 아무런 댓가도 없이 어찌 내 일만 할 수 있겠느냐? 보수를 얼마나 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고 하자 그 동안 외삼촌의 둘째딸 라헬을 몰래 사랑했던 터라 ‘만일 외삼촌께서 라헬을 내 아내로 주신다면 내가 외삼촌을 위해 7년 동안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기 위해 7년 동안을 수일처럼 여겨 일했습니다. 약속한 7년이 다 되어 야곱이 라반에게 ‘약속한 기한이 찼습니다.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하자 라반이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베풀어 결혼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토록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습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가서 ‘외삼촌은 어째서 나에게 이런 짓을 하셨습니까? 내가 라헬과 결혼하려고 보수도 받지 않고 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나를 속이셨습니까?’ 하고 따지자 ‘동생을 언니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것은 우리 지방의 풍습이 아니다. 7일 동안의 결혼 잔치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내가 라헬도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너는 나를 위해 7년 동안 더 일해야 한다.’ 면서 무보수로 7년을 더 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어 터진 것입니다. 

결국 7년을 더 일해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이 두 아내를 통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12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이 외삼촌에게 속아 무려 14년을 종살이 하다시피 지내게 된 것입니다. 때가 된 것 같아 야곱이 라반에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라반은 야곱으로 인해 자기 집안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유하게 된 것을 깨닫고 ‘네가 나를 좋게 여긴다면 그대로 머물러 있거라. 보수를 얼마나 주면 좋겠는지 말해 보아라. 내가 얼마든지 주겠다.’ 며 야곱을 더 붙들어두고자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재산이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재산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외삼촌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가족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까?’라며 떠나고자 합니다. 라반이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라고 거듭 부탁하자 ‘당장 무엇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외삼촌께서 내가 제시하는 조건을 승낙하신다면 계속 외삼촌의 양떼를 먹이고 지키겠습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짐승 가운데서 검은 양과 얼룩덜룩하고 점이 있는 양과 염소를 가려낼테니 앞으로 그런 것이 나오면 내 삯이 되게 해 주십시오. 나중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 만일 얼룩덜룩하지 않은 점이 없는 양과 염소가 있거나 검지 않은 양이 있으면 그것은 훔친 것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는 조건으로 한시적으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약속과는 달리 그날 밤으로, 야곱이 검은 양과 얼룩덜룩하고 점이 있는 양과 염소를 가려내기 전에 먼저 가려내어 모두 자기 아들들에게 주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라반의 양떼를 먹일 때,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플라타너스 가지를 꺾어서 흰 줄무늬가 생기도록 여기저기 껍질을 벗겨 그 가지들을 양들의 물구유에 갖다 두어 양들이 물을 먹을 때 정면으로 그 가지들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양떼가 물을 먹으러 왔다가 교미할 때 알록달록한 가지를 보게 해서 새끼를 밸 때 그 무늬의 영상(映像)이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암양은 수태시 자극을 받으면 그 여파를 새끼에게 전하는 감응력이 강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과학적 안목으로 보면 동물의 생식 행위를 자극하여 의도한 종자를 얻으려 한 야곱의 이러한 행위는 생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인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행위가 비록 비과학적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 알록달록한 양 새끼를 낳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어 많은 남녀 종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창30장)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고 야곱에게는 ‘어두움’만을 안겨주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어두움을 오히려 ‘빛’으로 창조해 주셨습니다.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인생의 어두움을 빛으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을 속이다’, ‘기만하다’는 이름을 가진 야곱을 이렇게 축복하시는 근거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벧엘의 언약입니다. 하늘 끝에 닿는 사닥다리 꿈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언약입니다.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들을 그대로 다 이루어 주기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벧엘의 언약’에 따라 야곱을 거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라반이 못내 아쉬워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을 뒤쫓아 가 ‘어째서 네가 아무 말도 없이 몰래 달아났느냐? 네가 가겠다고 나에게 말했더라면 내가 북과 수금에 맞춰 즐겁게 노래하며 너를 보냈을 게 아니냐? 너는 내 손자 손녀들과 내 딸들에게 입맞추며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소행이 정말 어리석구나.’며 따졌습니다. 

이에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20년 동안 외삼촌과 함께 있었지만 외삼촌의 양이나 염소가 낙태한 적이 없으며 또 내가 외삼촌의 수양을 먹은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은 외삼촌에게 가져가지 않고 내가 언제나 그 손실을 보충하였고 낮에 도둑을 맞았건 밤에 도둑을 맞았건 외삼촌의 요구에 따라 내가 그것을 물어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낮에는 더위를 먹고 밤에는 추위에 시달리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외삼촌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20년 동안 있으면서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해 14년을 일하고 또 외삼촌의 양떼를 위해 6년을 일했습니다. 그런데도 외삼촌은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셨습니다. 만일 내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내 아버지 이삭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외삼촌께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시련을 당하며 수고하는 것을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외삼촌은 무려 10번이나 나를 속여 내 인생을 암울하게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벧엘의 언약’대로 모든 일들을 지어 성취하여 자신을 거부가 되도록 축복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외삼촌 집에서의 20년 세월의 모든 어두움을 말끔히 거두시고 대낮같이 밝은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어두움으로 설명되는 세상에서(요1:5) 

여러분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지라도 생명의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의 어둠을 빛으로 창조하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누구의 죄로 이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습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니라. 우리는 낮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밤이 오면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소경이 못에 가서 눈을 씻자 눈을 뜨고 돌아왔습니다. 나면서부터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소경이 눈을 뜨고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눈을 뜬 소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자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를 출교 처분했습니다. 

훗날 예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그 소경되었던 사람을 만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고 묻자 ‘주님, 내가 믿습니다.’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요9:34-38) 그 인생이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는 하나님,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 사람을 소경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을 보게 하셨습니다. 세상이 어두워도 예수께서 함께 하시는 동안은 빛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어두움이 사라지고 생명의 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낮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분,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세상에 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생명이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두움을 빛으로 창조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어두움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으로 세상에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향해 가실 때, 굳이 사마리아를 통해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길이 멀어도 베뢰아로 돌아서 갈릴리로 갔습니다. 이유는 이방인과 혼혈족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관례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수가라고 하는 한 마을 우물 곁에 앉으셨습니다. 때는 낮 12시경이었는데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습니다. 여염집 아녀자라면 해가 떨어져 선선한 저녁에 물 길러 오는데 이 여인은 대낮에 물 길러 온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시자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고 대답합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고 하자 ‘선생님,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런 생수를 구한단 말씀입니까? 이 우물을 우리에게 준 우리 조상 야곱과 그의 아들들과 가축이 다 이 물을 마셨습니다. 선생님은 야곱보다도 위대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내가 주는 물은 그에게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자 그 여인은 ‘선생님, 그런 물을 나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뜬금없이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이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나 지금 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사실 네 남편이 아니고 보면 너는 바른 말을 한 것이다.’며 그 여인의 지금까지의 삶을 훤히 꿰뚫어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선생님, 내가 보니 선생님은 선지자이십니다.’고 하자 예수님은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이 비로소 예수께서 바로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신 것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단숨에 마을로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자신의 삶, 그간 어두움에 빠져 살았던 자신의 삶에 빛으로 오셔서 새로운 삶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다고 굳이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어두운 여인의 삶에 빛을 창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한편 마을로 들어가 예수님의 잡수실 것을 구해가지고 온 제자들이 ‘선생님, 좀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자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서로 의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4:34)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제자들은 육신의 양식만을 양식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 양식을 참된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적 양식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어두움에 살고 있는 인생들을 빛으로 인도하여 구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음식을 먹어야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갈 때 영적인 생명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하는 자에게 한하여 이런 귀한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을 두고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성도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로 택하신 목적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엡1:3-6)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때까지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줄 양식이니라.”(요6:27)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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