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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행전 29장 (행 28: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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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9장 (행 28:30~31)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 모두는 기대하지 않은 실망스런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보는 관점만 바꿀수 있다면 실망도 희망으로, 불유쾌한 경험도 독특한 흥미로운 경험으로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베스트셀러 중에 암과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유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장영희 교수는 미국 보스턴 미술관을 한국에서 온 여 동생, 조카들과 함께 방문했던 경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행은 미술관 방문 기념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점잖게 생긴 중년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는 자신이 가진 카메라와 같은 모델을 갖고 있어서 부탁을 하자 쾌히 승낙을 했다고 합니다. ‘김치~~예, 완벽합니다. 한번 만 더, 예~ 한번만 더 찍겠습니다.’ 아주 능숙하게 세 차례에 걸쳐 촬영을 마친 그 분에게 장 교수 일행은 감사를 하고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며칠 후 필름을 현상해 본 장 교수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첫 번째 사진은 가족 모두의 머리를 짤라 놓았고, 두 번째 것은 동생의 발만 크게 확대해 놓았고, 세 번째 것은 가슴만 확대해 놓은 괴기한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장 교수는 사진 찍은 사람의 인간성 자체에 대한 회의와 불쾌감으로 열이 뻗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옆에서 열심히 사진을 함께 들여다보던 장 교수의 초등학교 1학년 조카 건우라는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와, 이모! 이 사진들 짱 멋있다. 그때 그 미술관에서 본 추상화같다. 우리가 미술관앞에서 찍으니까 이렇게 찍어 주신 모양이지. 완전 예술품이다. 예술품!” 그리고 보니 자신을 방금전 까지 불쾌하게 한 사진들이 전위 예술품으로 아니 샤갈의 그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관점의 전환>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관점을 갖게 되면 고난의 상황조차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실현하기 위한 기회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도 여행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재판받게 된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선교적 관점에서 자신의 고난을 본 순간 그것이 오히려 놀라운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에게 이 모든 고난은 아직도 미완의 선교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비전 매핑 설교의 마무리, 바울의 로마 입성 선교 경험을 통한 주님의 두 가지 특별한 섭리적 계획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복음 전도의 기회의 문을 열어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 열린 전도의 기회앞에 순종으로 응답하든가 이런 열린 문을 무시하고 살아가던가 말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바로 쓰임받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임받으려면 무엇보다 열린 문에 대한 민감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아~하나님이 나에게 문을 열어 주고 계시구나”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것을 ‘성령 사역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난 우리 모두가 이런 민감성을 갖고 일생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그런 우리의 신앙의 선배였습니다. 그는 비록 로마의 감옥에 매여 있었지만, 미결수로서 그것이 완전 감옥이 아닌 연금 상태에 처하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회인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본문 30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어디 머물렀다고 했습니까? ‘셋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가택 연금상태이었던 것입니다. 

행28:23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날자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중요한 것은 그가 기회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열린 기회를 복음 전도의 기회로 최선을 다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믿었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다시 중요한 것은 바울을 통해 이제 로마가 복음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로마에 하나님 나라의 지평이 넓혀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전도의 기회, 선교의 기회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로마에 와서 열린 선교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무리하게 로마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도 유의할 필요도 있습니다. 문이 닫혀 있을 때에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며 기다리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그 기회 앞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 가정에, 마을에, 직장이나 일터에 하나님이 열린 문을 주셨는가를 주목하십시오. 

계3:8에 보면 주님은 소아시아 빌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며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능력을 가지고 얼마나 전도하라는 선교하라는 명령에 순종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성도들은 작은 능력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 작은 능력으로 열린 기회의 문에 순종의 응답을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지평을 넓히시고 계십니다.

2. 시간의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도록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은 시간이었습니다. 본문 30절에 의하면 바울이 이 셋집에 머문 시간이 모두 2년이었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바울이 AD62년경에 로마에서 로마법을 위반한 특별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가택 연금(AD60-62)에서 석방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 후 다시 체포될 때까지 약 4년 동안 최후의 전도 여행을 그레테, 에베소, 밀레도, 마게도냐, 고린도 지방을 여행하며 교회들을 굳게 하다가 다시 체포되어(AD66) AD67년 6월에 순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장 선교의 열매가 컸던 때가 에베소 3년 사역과 로마의 가택 연금 2년의 기간이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리고 보면 로마의 가택 연금의 시간은 아주 특별한 섭리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본문 3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비록 몸은 쇠사슬에 매어있고 감시당하고 있었지만 복음은 거침없이 전파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복음화 아니 세계 복음화의 과업을 위해 하나님은 여기 로마에서의 아주 특별한 2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인생을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의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인생의 평가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사는 동안 어떤 특권을 누렸는가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보람찬 시간을 보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인생 평가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를 장영희 교수의 카메라 사진 찍기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이 사진 사건보다 더 큰 황당했던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 뉴욕 주립 대학의 박사 논문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2년간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그녀는 논문을 완성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논문 최종본을 여행 트렁크에 넣은 채로 친구 집에 잠간 커피 마시러 갔다가 그 논문이 들어있는 트렁크를 도둑맞는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내 논문 내 논문을 외치며 기절한 그녀는 닷새를 어둠속에서 지나다 다시 일어나 논문을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의 시간을 연장하며 마침내 논문을 완성하며 통과 받으면서 논문의 헌사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께 이 논문을 바칩니다. 그리고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장을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 강해를 마치면서 이런 말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친 인생이야 말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진정한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오늘의 설교 제목을 <사도행전 29장>이라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을 가르쳐 학자들은 ‘오픈 엔딩’(open ending)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은 28장에서 끝났지만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일터에서 이제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자, 우리의 사도행전 29장을 위해 이제 다시 우리의 주인되신 그분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인생을 그분에게 후회 없이 헌신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순종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동안 솔직히 헌신을 못하셨다구요? 순종을 못하셨다구요? 괜찮습니다.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자, 다시 한번의 도전을 위하여 이제 헌신의 인생, 순종의 인생을 시작할 준비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장영희 교수는 그녀의 유작에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용기가 된 말이 <괜찮아>였다고 회상합니다.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하여 친구들의 놀이에 끼지 못해 서운했을 때 지나가던 깨엿장수가 미소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괜찮아>! 

2002년 월드컵 4강에서 졌을 때 대한민국의 관중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괜찮아>! 혼자 끝까지 남아 골든벨에 도전하다가 마지막 문제를 풀지 못한 친구들에게도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동안 우리가 비록 실패 투성이의 인생을 살았어도 아니 불순종의 인생을 살았어도 부끄러움의 인생을 살았어도 남은 인생 <사도행전29장>의 과업을 향해 다시 일어 설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오늘 우리를 응원하실 것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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