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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대헌신예배] 하모니를 만드는 사람 (롬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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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를 만드는 사람 (롬 16:1~6)


1.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목사님께서 어느 날 “거룩. 성결”이라는 주제로 설교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우리가 거룩한 성도임으로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고했다.
“만약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맥주가 있다면 그것을 저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소서.”
성도들은 소리쳤다. “아멘! 할렐루야!”
“만약 우리 손에 세상의 모든 위스키가 있다면 그것도 저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소서.”
여기저기에서 “아멘!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다. 
“만약 우리 손에 세상의 모든 참이슬이 있다면, 그것도 저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소서.”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 설교와 예배는 정말로 은혜로웠다. '

설교가 끝난 다음 헌금 시간에 찬양대석에 있던 한 사람이 나와서 헌금찬송을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 솔리스트가 나와서 찬양하기 전에 한 마디를 했는데, 성도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왜 그랬을까? 
그 솔리스트는 찬양을 하기 전에 자기가 부를 노래 제목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부를 찬양의 제목은 <그 강가로 모이게 하소서>입니다.”

제가 어떤 교회의 주보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 날 그 교회의 주일낮 예배 1, 2, 3부의 설교 제목은 “풍랑 속을 걸어가신 예수님”이었다. 그런데 찬양예배의 설교 제목은 “예수님을 찾아서”였다. 예수님이 물에 빠져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것은 사전에 예배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님과 목사님 간에, 목사님과 찬양대간에, 예배를 생각하고, 기획하고, 인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예배에는 종합 예술적 요소가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녹아서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가는 것 바로 그것이 예배다. 믿음을 견고하고 하고, 성도들의 삶을 뒤 흔들어놓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요즘에는 예배에 목숨을 거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올림픽공원 쪽에 있는 오륜교회도 그런 교회가운데 하나다. 그 교회 김은호 목사님은 “나는 예배에 목숨을 걸었다”고 공언하는 것을 들었다. 그 교회는 예배에 목숨을 걸기 위해서, 예배를 살리기 위해서, 예배를 통해서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서 예배팀이 매주 모인다. 예배의 하나의 초점을 살리기 위해서, 모든 팀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눈다. 예배의 방향이 설정되고,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면, 그 교회는 반드시 예배 리허설을 한다. 예배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일 전에 미리 연습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게 기획하고, 연습하고, 모이는 것. 너무 인간적인 것이지 않느냐?” 그러나 그 목사님의 예배 철학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상의 예배를 드릴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친하게 지내야 할 사람이 있다. 목사님이다. 까페에서 차 마시고 있는 사람과만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 찬양대원은 목사님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목사님과 예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조언하고, 협력하고, 동역해나가야 한다. 


2. 찬양대원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는 찬양대원이다. 찬양대는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높은 소리, 낮은 소리, 중간소리. 스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심지어는 찬양대의 공공의 적인 삑싸리까지 이 모든 다른 영역의 음이 하나로 모아져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는 것. 이것이 찬양대이다. 그래서 저는 찬양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하모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찬양대로 일평생을 산다는 것은 “하모니의 일생을 산다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 각각 다른 소리를 내지만, 다른 소리를 낸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다 똑같은 소리를 낼 때 우리는 불평한다. 
  
그러므로 찬양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서도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노래하고 찬양할 때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와 성장 배경이 다른 사람, 나와 사는 정도가 다른 사람, 나와 문제 인식이 다르고, 문제 해결의 방법이 다른 사람, 나와 성격이 다른 사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사람들이 여러분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을 왕따시키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만약 여러분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을 차별한다면, 여러분은 삶에서는 찬양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교회에서 찬양대로 봉사하면서, 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삶에 있어서도 찬양대로서 살아가야 한다. 
  
한국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면 매도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적인 생각이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할 수 있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다. 
  
한스 큉은 <교회의 4가지 본질>을 이렇게 말했다. <거룩성, 통일성, 보편성, 사도성>
죄성 가운데 있는 거룩성, 다양성 중의 통일성, 개체성 중의 보편성, 사도성이다. 
그가 말한 교회의 특징 가운데 통일성이 있다. 이 말을 획일성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통일성은 다르지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다양성 중의 통일성이라는 말에 유의하라.)  그러나 획일성은 무엇이든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획일성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다름을 인정하는 곳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곳이 교회이다. 
  
예배학자 로버트 웨버는 오늘날 새롭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교회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만의 선입견을 버리고, 다른 교단과, 다른 교회와, 다른 예배와 교류하는 교회들이라고 했다. 그런 교회들은 자신들의 예배 전통을 지키면서도, 타교단의 전통을 도입하여 호흡을 맞추고, 역사적 전통 속에 있는 예배 요소들을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선입견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는 시도. 그것이 로버트 웨버가 관찰한 현대 교회와 현대 예배의 흐름이었다. 
  
사랑하는 호산나 찬양대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아름다운 하모니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 “집사님! 어쩜 그렇게 베이스 소리가 좋아요?” 이렇게 칭찬하는 소프라노 집사님이 계셨다면 그 분은 삶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호산나 찬양대 야유회 가서 다들 오리로스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돼지 목삼겹이 좋아요”하는 분이 있다고 해도, 뒤돌아서서 까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사명은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 천국에서
  
여러분은 천국의 모습을 상상해 보셨는가? 요한계시록의 천상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이 찬양대의 모습이다. 찬양대 여러분은 참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교회에 있어도 언제나 천국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분,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날, 나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 곳에서는 나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토록 만나기 원했던 주님을 볼 것이다. 천국에서 나보다 먼저 그 곳에 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요한...) 말로만 듣던 그 사람들을 거기에서 만날 것이다. 천국에서 나는 나보다 먼저 그 곳에 가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날 것이다. 그 곳에서 사랑하는 내 남편과 내 아내, 그리고 아주 드물게 나보다 먼저 간 내 자녀들도 거기에서 만날 것이다. 천국에서 나는 우리교회성도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된 세상의 모든 성도들도 만날 것이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출석부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부부의 이름, 자매의 이름, 남매의 이름, 어머니와 아들의 이름.....
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오늘 내가 여기까지 복음을 전하며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사람들 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수고와 사랑,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것 같다. 그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이것으로 인해 이 사람에게 감사한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여러분 오늘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시면,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이렇게 써 보라. “내가 당신을 기억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아래 줄에 이름 하나를 써 보라. 그리고 다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써 보라. 또 다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써 보라. 여러분의 종이위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빼곡해질 것이다. 
  
여러분은 천국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기를 원하는가? 나는 오늘 바울의 이 출석부와 같은 것을 하나 가지고 가고 싶다. 천국에 도착했을 때, 천국 문 앞에 베드로 사도가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그 출석부를 그 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사람들 있잖아요? 내가 이 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저를 위해서 참 수고를 많이 하셨지요.” 그러면 베드로 사도는 그 이름을 쭉 훑어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이 사람들이요? 어떤 사람들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이곳에 와 있지요. 당신보다 먼저 온 그 사람들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거리에다 큰 글씨로 무언가를 써 놓은 플래카드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었지요.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렇게요.”
  
호산나 찬양대 여러분! 바로 여러분 곁에 앉아 있는 그 분의 이름이 여러분의 출석부에도 있기를 바란다. “이 분(집사, 장로, 형제, 자매) 은 제가 이 천국에 오기까지 저를 수없이 도와준 분이지요. 힘들 때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낙심했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믿음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 내 손을 굳게 붙잡아 준 분이죠. 저는 이 분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것 뿐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그 분을 여러분의 출석부에 꼭 써 넣어라. 그리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이 사람의 출석부에 꼭 이름이 적힐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우리는 교회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하모니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계속된다. 마침내 우리가 천국에서 만날 때 우리 모두는 하모니의 일생을 다한 사람으로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일생, 우리 모든 성도들의 일생, 그리고 나의 일생도 하모니의 일생이다. 아름다운 일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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