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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받을 복 (시 3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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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받을 복 (시 34:1~11)


오늘 시편 34편 말씀을 연구하다보면, 히브리어로 된 본래 구약성경에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1절로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34편은 22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22자의 알파벳(알렙베트)의 순서대로 첫 글자를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를 정형시라고 부릅니다. 1절 말씀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라고 했는데, 1인칭 “내가 송축하다”, “내가 찬양하다”는 말로  “아바라카”라고 기록하여, 히브리어 자음의 첫 글자인 알렙을 쓰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은 ‘주님만을’, ‘여호와를’ 이라고 번역하는 단어 “바예호바”라는 히브리어의 두 번째 자음 베트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22절까지 히브리어 자음 22자를 넣어 34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를 지을 때에 이렇게 알파벳 순서를 따라서 기록하면, 암송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데, 매우 쉽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란 분은 시인입니다.  정말 히브리어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으로, 아마추어 시인이 아니라, 시를 아는 전문적인 시인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히브리어 정형시는 그 특이한 구조까지 우리말 성경에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시를 이해하려고 할 때에, 시인이 처하였던 삶의 정황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 시를 짓기 전에 참으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스라엘 왕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 죽이고 개선할 때에, 온 이스라엘이 나와서 노래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이 말은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는 말이었습니다.  수많은 여인들이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나와 맞이하는 데, 여인들이 뛰놀면서 노래하는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민심의 동향을 잘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노랫말에 기분이 상하였습니다.  불쾌하여 심히 언짢아하였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루는 사울 왕이 악신에 들려 실성거리고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은 시인이요, 수금을 잘 타는 음악가였기에 손으로 수금을 타고 있는데, 사울이 손에 창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윗은 벽에 박아버리겠다고 창을 던졌는데, 그 날 두 번이나 피하였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사울에게 함께 하는 줄로 알았는데 자기에게서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면서, 속이 타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모든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골리앗을 죽이면 사위를 삼겠다고 약속하였는데, 큰 딸은 다른 청년에게 시집보내고, 두 번째 딸 미갈이 다윗을 잘 따르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다윗을 둘째 사위로 맞이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장인어른과 사위는 참으로 사이가 좋은 관계입니다.  장인의 입장에서 사위를 볼 때에,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사랑하면서 보호하고 자식 낳고 사는 것을 보면 얼마나 믿음직하고 좋아 보이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딸 가진 아버지들은 사위를 인정해주고, 격려하고 더 귀한 아들로 받아주어야 합니다. 

다윗이 천부장으로 군대를 통솔하며 여러 대적을 막아 전쟁하는데, 가는 데마다 승승장구하고, 백전백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위가 나가서 잘 싸우는데도 사울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다윗이 친형제 이상 가까운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에게 직언하여 신하 다윗을 미워하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여러 번 간청하였지만, 이제는 아들 요나단도 죽이려고 합니다.  저녁에 딸 미갈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간 다윗의 집을 포위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미갈이 재치가 있어, 다윗이 자고 있는 것처럼 위장해놓고, 도망치게 했습니다.  

다윗이 피신하는 모든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철천지원수의 나라, 적국 불레셋 나라에 망명을 신청합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는 5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나라가 한 해씩 돌아가면서 블레셋연합국가의 왕을 맡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가장 호의적인 가드의 왕 아기스라는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말은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블레셋이나 그랄국의 왕을 부르는 말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나라 가드에 가서 망명을 신청하였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합니다.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삼상21:11)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은 아닙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는 여러 명의 왕이 있어, 서로 연합하고 한 왕이 대표할 때가 있으니, 다윗도 사울과 대등하게 보면서 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신하들이 말하는 것이나 아기스의 어전을 살펴보니 공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네 병사를 수없이 죽였고, 장군 골리앗을 죽인 자인데, 가만 두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데, 미친 체하고, 침을 수염에 흘리고 모자라는 척하라는 것입니다.     아기스라는 왕은 통이 큰 사람입니다.  망명한 적장을 어전에서 죽인다는 것을 왕으로 체면이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신하들이 직언하는데, 무시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기스의 마음을 다스려주었습니다.   미친 체하는 다윗을 보면서, 아기스는 다윗을 살려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주 실감 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기스가 신하들에게 소리쳤다.   ‘아니, 미친 녀석이 아니냐? 왜 저런 자를 나에게 끌어 왔느냐?  나에게 미치광이가 부족해서 저런 자까지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왕궁에 저런 자까지 들어와 있어야 하느냐?’”라고 돌아가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기스의 마음을 다스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죽음을 당하지 않게 막아주시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지금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귀하신 섭리와 원하시는 뜻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3)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1-3)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송축하는데, 항상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항상 해야 합니다.  

삶의 모든 정황 속에서, 번성할 때에도 실패할 때에도, 안전하거나 위험하거나, 평안하거나, 곤고함에 빠져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랑이라는 말은 ‘할랄’이라는 말인데, 빛내다. 밝히다, 찬양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감히 우리의 아버지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총입니까?  

다윗의 위대함은 자기만 혼자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3)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도 빼놓지 말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시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 믿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성도로 살아가야겠습니다. 

한 때 미국 오페라 계에서 활약했던 할버튼이란 유명한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버튼은 자기 집에 돌아오면서 자기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놀면서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이웃집 아이가 말합니다.“우리 아버지는 시장님을 잘 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버튼의 아들은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당당히 대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화를 들은 할버튼은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서재로 들어가 실컷 울었다는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씀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이나 모세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고 하는 말은 우리도 그들처럼 믿을 수 있다는 말이요, 그렇게 되어야 제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 정말 흥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가장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가장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은 놀라운 감격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분은 나의 하나님이요,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2.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8)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4-8)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잠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친 척하여 피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요,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의 얼굴을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니다.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신다고 약속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부리시는 천사들을 보내어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져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피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약속과 은총은 기도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힘입어 살겠다고 하는 결단입니다.  

기도는 무엇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신 방법입니다.  기도를 무시하는 사람은 기도하라고 하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약4:2하반절에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에 태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긴급한 것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얻지 못하는 것은 간절히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4:16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도록 하나님께 정하신 방법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통로가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기도를 말씀하시면서 요16:24에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약속해주신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지상에도 하늘에도 없습니다.  시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일생 목회자로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벽기도는 하루를 조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회에 가보면 악단이 연주하기 전에 피아노의 음에 맞추어 조율합니다.  조율하는 시간에 음을 들어보면 참으로 요란합니다.  시끄럽습니다.  모든 음이 맞지 않아, 앵앵거립니다. 

중국 선교의 선구자인 허드슨 테일러는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중국 땅을 밟아 평생 동안 중국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의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되고 행복해지게 마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새벽기도는 허드슨 테일러의 간증과 같습니다.  연주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삶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줄이 느슨해졌으면 조이고, 너무 조여서 끊어질 것 같으면, 풀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음을 낼 수 있게 합니다.   조율이 잘 된 악기들이 모여서 화음을 만들어내면, 정말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조율이 잘되었습니다. 

3.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9-11)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9-11) 

성경에서 경외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레'라고 하는데, 경외 한다,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엄위하심 앞에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때에 처음에는 무서워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진정한 교제를 나누라고 창조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셨지 결코 무서워하라는 말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 경외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높여드리는 것이며, 경건한 자세와 받드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잘잘못을 가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진품명품’ 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골동품의 진위와 가치를 가격으로 평가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이 감정 평가단으로 나옵니다.  먼저 골동품 소장가들에게 그 물건을 소장하게 된 사연을 직접 듣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주었느니, 비싼 값을 주고 구입한 경위를 말하며,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백자 화병 한 점에 5억 원 가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먼저 연예인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골동품의 가격을 정합니다.  연예인들이 하는 일은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당한 지식을 가진 연예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문가들이 진품여부를 확인하고 가격을 확정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골동품 가운데 고가의 진품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가짜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중년 신사가 오래 되어 보이는 붓글씨 한 점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분은 애국지사가 쓴 작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연예인 감정가들도 감탄하면서 매우 비싼 가격을 매겼습니다.   소장자도 감정가를 1억 원이 넘게 써냈습니다.  모두가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평가를 기다립니다.  숨을 죽이고 전광판을 지켜보는데 감정가가 단돈 500원이 나왔습니다. 소장자의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니 금방 표정이 굳었습니다.  그것은 진품이 아닌 가짜였습니다.  소장자는 지금까지 가짜를 진짜인줄 알고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진품명품 프로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살펴보시더니 가짜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진품이 아닌 가짜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안타까울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진짜입니까?  아니면 가짜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고 하감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의 신앙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시는 성도들이 되어, 풍성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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