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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와 혼인잔치 (잠 15:13~15, 마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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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혼인잔치 (잠 15:13~15, 마 22:2~4) 
 
 
서론 

최근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잘못된 생활상식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블랙박스는 검다는 것이 잘못된 상식입니다. 블랙박스는 눈에 잘 띠게 하기 위하여 형광색입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실제 말은 봄에 살이 찐다고 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놀기 좋은 계절이라 오히려 다른 계절보다 독서율이 떨어집니다.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고 하지만 딸이 많으면 가정이 복잡하다고 외동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결혼 풍습도 시대상에 따라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셋 째 딸이 아니라 모든 딸을 안보고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시고 우리 모두가 보지고 않고 데려가시는 신부들인 것입니다. 

최근의 결혼풍속도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혼예식이 호화롭게 변하고, 과시적이고, 지참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혼수가 갈등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랑하면 되는데 사랑 외에 따지는 게 점점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도 문제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결혼보다 자녀의 결혼이 더 감동적이고 기쁘지 않습니까? 자신의 결혼 때는 얼결에 하지만 며느리나 사위를 볼 때는 부모의 기쁨이 한층 더 큽니다. 왜냐하면 흔히 말하는 내리사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손자사위나 손자며느리를 볼 때는 기쁨이 그보다 더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와 같다고 합니다. 자기가 아니라 아들의 혼인입니다. 아들은 자신의 상속자이며 나라의 후계자입니다. 아들의 혼인잔치는 자신의 것보다 기쁨이 배나 더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신랑으로 오셔서 베푼 기쁨의 혼인잔치입니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와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을 통하여 초대장을 보내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초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청한 사람들’이란 말은 ‘케클레메누스’로 초청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단어는 복수로서 모든 사람들이 다 초청의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로의 초청이 일회적이 아니라 반복적이며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오기를 싫어하자 다시 종을 보냅니다. 세례요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전하셨고, 70인 사도를 따로 보내시기도 하셨고, 사도들이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도 하였고, 그 후에 헤아릴 수 없는 선교사들이 끊임없이 전도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로의 초청이 계속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어 잔치는 준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혼인잔치는 완벽한 혼인잔치입니다. 양과 질 어느 것 하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고 완벽하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잔치입니다. 
  
잠언 15:15에는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항상 즐거운 곳입니다. 기쁨과 웃음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 곳은 언제나 잔치입이다. 이 잔치에 다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아이가 처음 결혼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엄마, 신부가 왜 흰 드레스를 입어?” “그건 흰색은 행복의 상징인데 오늘은 신부가 가장 행복한 날이기 때문이야.” “그럼 신랑은 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지?” 결혼은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온통 흰 색입니다. 행복과 순결의 색입니다. 우리 모두 흰 세마포로 갈아입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혼인입니다. 

마태복음 22:2에는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혼인일까요? 왜 아들의 혼인일까요? 왜 잔치일까요? 혼인은 둘이 하나 되는 일입니다. 혼인은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한 것입니다. 혼인은 연합을 의미합니다. 혼인은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모든 것이 다 함께 어우러진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혼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혼인은 귀한 것입니다. 신명기 24:5에는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혼인은 귀한 것이고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계명에도 혼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이란 한자어의 결(結)자는 실사(絲)자와 순조로운 길(吉)자를 묶어놓은 글자입니다.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 놓아야 안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혼(婚)자는 계집녀(女)자와 저녁 혼(昏)자가 합성된 말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신부를 어둠 속에서 맞아들이던 습속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원래 이 말의 뜻은 여자를 어둠 속 묶어 놓아야 길하다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요즘과는 너무 다른 습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결혼은 신랑이 신부를 사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결혼 지참금을 내고 여자를 데리고 옵니다. 여자의 가족에게 지불할 보상금을 히브리어로 ‘모하르’라 합니다. 신부의 아버지에게 지불할 지참금입니다. 야곱이 삼촌의 집에서 많은 돈을 벌어 다시 돌아올 때에 아내들인 라헬과 레아에게 아버지를 떠나가자고 합니다. 

창세기 31:5에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 버렸으니”라고 하는 말로 봐서 야곱도 상당한 모하르를 지불했던 것입니다. 신부 아버지의 지참금은 딸이 과부가 되거나 이혼하게 될 시를 위해 보관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가난하여 돈이 없으면 일로 봉사하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을 삼촌의 집에서 봉사하고 라헬을 얻었습니다. 한편 지참금이 없을 때는 신부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는 일도 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딸 미갈을 얻기 위해 사울은 원수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요즘 결혼 풍속도가 많이 바뀌어 결혼비용이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나 더 든다고 합니다. 결혼비용을 계산해 보면 평균적으로 신랑이 5천 1백만 원, 신부가 1천 2백만 원이 든다고 합니다. 중국 수나라의 왕통은 문중자(文仲子)에서 ‘혼취이논재, 이로지도야’(婚娶而論財 夷虜之道也)라고 하였습니다. ‘혼인하는데 재물을 논하는 것은 오랑캐의 법도이니라’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오랑캐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신랑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신부를 값 주고 사기 위해서 친히 제물이 되신 분입니다. 신학용어에 ‘보상설’이란 학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마귀에게 몸값을 주고 우리를 해방하였다는 설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노예들을 석방하거나 자유인이 되게 할 때 주인에게 돈을 주고 노예를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결혼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랑 되신 주님이 순결한 신부를 구하십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신부를 찾고 찾으시면 혼인하십니다. 이것이 거룩한 혼인입니다. 흔히 결혼이라고 할 때 wedding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혼인예식을 할 때는 ‘거룩한 혼인’이란 뜻의 ‘holy matrimony’라고 합니다. 모든 결혼은 거룩한 혼인입니다. 모든 결혼은 귀한 것입니다. 모든 결혼은 거룩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항상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녀가 어쩌다가 만나서 부부가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 가운데서 만나고 아이 낳고 사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는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 둘이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은 온전한 일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일체가 되는 곳입니다. 나와 그리스도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혼인입니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결혼은 일곱 가지 사랑의 코드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동의, 신뢰, 계약, 사회적 확증, 교회적 인가, 완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정입니다. 이런 온전함이 혼인에는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랑의 코드가 충족한 온전한 혼인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시 헤어지는 것도 없고 이별도 없습니다. 
  
잭 하일스는 세상 가장 위대한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사이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친구일 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남편을 위하여’. ‘사람이 아내를 위하여’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친구라고 하셨고,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완벽한 혼인입니다. 이혼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결혼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혼할 이유가 많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도 되고 사랑도 식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혼 없는 결혼만 있습니다. 한번으로 영원한 신랑과 신부의 하나 됨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께서 신부를 데리러 다시 오시면 혼인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입니다. 


마태복음 22:4에는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잔치에 오소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잔치입니다. 완벽한 혼인은 완벽한 잔치가 따릅니다. 잔치가 없는 혼인을 보셨습니까? 즐거움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는 잔치가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혼인잔치는 헬라어로 ‘가무스’인데 복수입니다. 여러 날 동안 계속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의 결혼 축제는 대개 7일이나 그 이상 밤낮으로 계속된다고 합니다.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축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혼인잔치는 주로 신랑의 집에서 합니다.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은 결혼 성립의 증인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는 신부들에게 그 잔치가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는 7일이 아니라 매일 그리고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입니다. 즐거워야 할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연회장의 실수로 있어야 할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례에 쓰는 여섯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게 하셨습니다. 그 항아리는 약 35리터가 들어가는 제법 큰 항아리입니다. 예수님은 이 많은 맛있는 포도주를 만드셔서 잔치에 즐거움을 제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잔치의 기쁨을 회복하셨습니다. 맛없는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재미없는 잔치가 재미있는 잔치로 변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것의 비유가 있습니다. 비유는 똑같이 잔치로 끝납니다. 세 비유는 똑같이 “즐거워하다”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잔치나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 천국 종치네 먼데 죄인 돌아 왔도다.” 3절을 보세요. “천국 종을 치고 잔치 베푸네 돌아온 자 참여하도다.” 상상해 보세요. 종소리가 끊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잔치입니다. 얼마나 기쁜 잔치이길래 종소리가 끊이지 않겠습니까? 
  
탕자의 비유에 보시면 큰아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입니다 형은 잔치가 즐겁지 않습니다. 돌아온 동생이 반갑지 않습니다. 율법주의는 항상 잔치를 망치게 합니다. 이런 율법주의자들은 포도주가 떨어지게 하고, 기쁨과 웃음이 사라지게 하고, 잔치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입니다. 사랑 없이 율법만 있으면 이렇게 되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경축하는 사람입니다. 잔치와 만찬이 끊이지 않습니다. 축제가 있고 흥겨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시 사는 부활신앙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카니발’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카니발은 축제입니다. 카니발이란 말의 어원은 고기를 먹는 기간이란 뜻입니다. 옛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 기간에는 금욕과 절제로 지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사순절이 끝나고 부활이 오면 고기를 먹고 다시 기쁨을 회복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축제가 카니발입니다. ‘카르네’라는 말이 고기라는 말입니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모클레스는 주전 4세기 시칠리아의 시라쿠스를 다스리던 참주 디오니시오스 1세의 신하입니다. 그는 참주에게 아첨조로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디오니시오스는 자신의 신하 다모클레스를 잔치에 초대하였습니다. 잔치 자리에는 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칼 밑에 신하를 앉히고 음식을 먹게 하였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내내 다모클레스는 머리위에 있는 칼 때문에 잔치의 즐거움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복과 위기가 항상 함께 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의 잔치를 보세요. 문자 그대로 ‘새옹지마’입니다. 당대에 의인이었던 욥도 한참 즐겁게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에 자녀들과 재산을 다 잃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 
  
최고의 잔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의 잔치, 영원한 잔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7에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라고 합니다.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할 잔치입니다. 9절을 보세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어린양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유행하던 ‘목사와 거지의 공통점’이란 유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는 대로 먹는다. 둘째는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때는 많다. 셋째는 손에 뭘 항상 들고 다닌다. 넷째는 전업이 용이하지 않다. 다섯째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다. 목사와 거지의 공통점은 있지만 목사가 거지 수준이란 말은 아닙니다. 옛날 잔치에는 유난히 거지가 많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잔치집은 누구에게나 후합니다. 그날만은 거지라도 거절 하지 않습니다. 잔치가 있는 날은 실컷 먹는 날입니다. 
  
딸이 아빠와 이런 대화를 합니다. “아빠 나 결혼할래요.” “너 그 사람 사랑하니?” “죄송하지만 그건 제 일이예요.” “그럼 그 사람은 널 사랑하니?” “그건 그 사람 일이예요.” “그런데 어떻게 살려고 그래, 너는 학생이고, 돈도 없고, 집도 없잖아.” “그건 아빠 일이잖아요.” 잔치는 모두 즐거워야 합니다. 자녀들은 즐겁고 아빠는 등이 휩니다. 아빠는 등이 휘지만 즐겁습니다. 이것이 자녀의 결혼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혼인잔치를 최대한 성대하게, 즐겁게, 자녀에게 흡족하게 해 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위한 혼인잔치를 성대하게, 즐겁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며느리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며느리이기를 원합니다. 며느리가 더 많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혼인잔치가 더 기쁘고, 큰 잔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얼마 전 신문에 ‘대한민국 1,000대 브랜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신라면, 참이슬 등이 광복 후 한국 산업에 큰 영향력 분야별 10대 간판 브랜드라고 하였습니다. 신문에는 ‘참이슬에 취하고 신라면에 중독’이라고 썼습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이 역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잔치가 많습니다. 먹고, 마시고, 웃고, 즐기는 일이 많습니다. 초상집에 가도 먹고 마시는 일이 있습니다. 손님을 대접한다고 하면 거의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처녀들이 ‘시집 안 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 가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님께 시집가는 것도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바입니다. 영원을 추구하고 죽지 않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분이 세상을 떠나면 다 “좋은 곳에 가셨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갈구합니다. 좋은 곳인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혼인 같은 하나님의 나라, 잔치 같은 하나님의 나라의 혼인잔치에 다 참여하여 신랑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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