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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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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  (약 5:7~11) 

  
나쁜 사람들이 부자가 되어서, 잘 사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주님이 살아 계시는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성실한 사람보다 잘살 수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이렇게 안 오실까?”하며, 성도들은 믿음의 회의를 느낄 수 있다.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사도들이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소망을 안고, 신앙생활에 열정을 가지고 임했다. 초대교회는 마라나타(주님께서 다시 오신다)의 신앙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재림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자, 신앙의 열정이 식어지고, 사도들을 원망하기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원망하지 말고(9), 주님의 강림하심을, 조급하게 기다리지 말고 인내하라. 인내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주님께서 반드시 오시기에,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선악 중에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신앙의 성공은, 인내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재능이 많다고, 성공하지 못한다.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성공하지 못한다. 또한 용기가 있다고 성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인내가 없기 때문이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이다. 도중에 모두 다 포기하기에, 성공하지 못한다. 성공하려면 정말 인내가 필요하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경건 훈련을 받았다. 거기서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지난날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과 무술에 능통했다. 나이 40이 되었을 때,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을 각오를 했다. 사명감도 있었다. 갖추어야 할 것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내함이 부족했다. 모세는 스스로 메시아처럼, 성급하게 나서다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고, 모세를 두둔할 줄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따르지 않음으로, 그는 미디안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거기서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해가 뜨며 양들을 몰고 나가고, 해가 지면 양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일을 통하여, 인내를 배웠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하다. 자녀를 잘 교육시켜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인내가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진급하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1940년 ‘체스턴 칼슨’이라는 사람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본도 없었고, 제품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어, 상품화할만한 회사를 찾아다녔다. 이 아이디어는 성공할 만한 아이디어이니, 한 번 해보자고 제의를 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아이디어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무려 7년 동안, 20개의 회사를 찾아다녔다.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언젠가는 자기 아이디어를 인정해 줄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뉴욕의 ‘헬로이드 컴퍼니’라는 회사의 사장과 만나서, 자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조금만 도와주면 할 수 있다.”하고 열정적으로 간구하였다. 그의 말에 그 회사 사장은, 시범적으로 그 제품을 만들어보게 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만들어져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두 사람은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이 제품이 바로 복사기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소망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참고 기다리다가 지치셨나요? 그러나 조금만 인내하면, 반드시 복이 찾아옴을 믿으시기 바란다. 

1. 왜 인내가 필요한가? 

(1) 주님께서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이다(7-8). 주님은 재림이 가깝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성결하고, 위대한 부흥을 체험한 시기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였을 때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소망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교리와 가르침 때문에,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 주의 재림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수많은 가짜 종말론과, 가짜 구세주 사건이,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을, 회피하도록 만들고 있다. 참으로 우려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주님 오실 날이 가깝다”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혹시 저 사람 사이비 아닌가 하고 바라본다.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줄어든다. “오실 때가 되면 오시겠지, 신경 끄고 살자”는 안일한 태도를 지니고 살아간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명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믿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란다.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 날이 바로,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의 최후의 날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엡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했다. 즉 사탄은 지금, 공중의 권세를 잡고,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며 세상을 흔들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포악해져 가고 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음란과 탐욕과 교만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보면서,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이, 그 뒤에서 배후 조종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탄은 자신의 최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사탄의 최후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 못 속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 때가 바로, 예수님께서 만 왕의 왕이 되셔서,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다. 그러니, 사탄이 얼마나, 그 날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겠는가? 

사탄은 패망할 줄 뻔히 알지만, 마치 자신을 따르면, 모든 것을 얻을 것처럼, 유혹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 마음속에 “재림은 없다. 이 세상이 전부다. 그러니 마음껏 먹고 마시고, 네 마음대로 살라”고 유혹하고, 믿음에서 떠나게끔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재림에 대한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진다.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음에서 비롯된다(벧후3:9).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 죄를 고백하고, 믿음으로 더욱 굳게 서자. 

조그마한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갈대신앙’이 아니라, 어떠한 사탄의 세력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줏대신앙’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성도들이 되려면,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모든 일은,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즉시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 사탕을 먹으려고 해도,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 있다. 

농부는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쉬지 않고 가꿔야, 가을에 추수하게 된다(7). 이스라엘에는 이른 비가 10월 하순부터, 11월 상순 사이에 내리는데, 이른 비는 흙을 부드럽게 한다. 그리고 늦은 비는 주로 3월에서 4월에 내리는데, 이 비는 곡식을 자리게 한다. 

그래서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이 기간을 지나지 않고는, 아름다운 추구를 기다릴 수 없다.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걸을 수 없듯이, 모든 일에는 일의 순서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쌀을 사서, 솥에 밥을 해야 먹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자마자, 성경을 모두 다 알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 알 수 없다. 무슨 일이든지 잘 하려면, 꼭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하다. 군인이 훈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진정한 군인이 될 수 없다. 훈련은 전쟁을 대비하여, 적응하도록 연습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훈련이 어렵다고, 훈련을 거부하고 도망가면, 전쟁이 정말 일어났을 때, 과연 제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기에, 인내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다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하나씩 쌓아 나가기를 바란다. 

(3) 인내는 하나님의 축복을 만들어 낸다. 
성도들이 세상을 이겨나가려면, 강해야 한다. 그러나 강함은 인내할 때, 이루어진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간, 인내하며 연단을 받았기에,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백성을 인도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광야는 덥고,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위험한 일들이 그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다윗도 연단을 받았기에, 거인 골리앗을 단번에 물리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 받았지만, 25년 동안 인내하여, 100세에 약속하신 아들, 이삭을 얻었다. 

야곱도 20년 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일하며 고생을 했다. 그 후에야 거부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셉은 13년 동안, 종노릇하고, 감옥생활을 했지만, 꿈을 가지고 인내하는 중에, 30세에 바로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 

아브라함과 야곱, 요셉, 다윗 등은, 오랜 세월을 인내와 연단을 통해,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몇 달 동안 고통을 당한다고, 또는 몇 주간 어렵다고 해서, 원망 불평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더 훈련되고 준비된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다. 

성도들의 최고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데 있다. 여기에 필요한 덕목에는 모두, 인내가 포함되어 있다. (고전13장)에 사랑의 15가지 덕목이 나온다. 그 중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4),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7)는, 인내와 관련된 사항을 3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성령의 열매에도, 인내의 항목인, 오래 참음의 덕목이 들어가 있다(갈5:22), 우리가 힘써 가져야 할 신의 성품 8가지 덕목에도, 인내가 포함되어 있다(벧후1:6).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닮는 데에는 “인내”가 필수적이다. 인내 없이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을 수 없다. 

가정이 어려워서, 참지 못합니까? 자식들이 배우자가, 속상하게 만들어 참지 못하겠는가? 직장의 어려움을 참지 못합니까? 사업이 부진하고,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아서, 참지 못합니까? 노력해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아서, 참지 못합니까?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서, 참지 못합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지 않아서, 참지 못합니까? 그래도 인내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 바란다. 욥은 고난을 통해 겸허하게 되었고, 고난 받기 이전보다, 갑절로 욥을 축복해 주셨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지체하시는가? 지체하실 때마다, 갑절의 축복을 준비하신다. 

2. 인내를 필요로 하는 때는 언제인가? 

인내는 휘포모네(ὑπομονή)로, 휘포메노(ὑπομένω)에서 왔다. ὑπο(아래) + μένω(남다, 머물다)는 말이다. “그 아래에서 견디다.”는 의미로, 군사적 용어로, 자주 사용되었다. 주님 밑에 거하시기 바란다. 

(1)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을 지킬 때다(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모든 자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예고하셨다(막13:13). 이러한 가혹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인내이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지 않고 인내한 사람,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다.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인내하시기 바란다. 

(살후1: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고 함으로, 인내하는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환난이 다가올 때, 인내하기는 어렵지만,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 

(2) 교회의 직분을 맡았을 때다(고후12:12). 
바울은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말함으로, 교회의 직분을 맡았을 때, 인내가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특별히 (딤후2: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라고 했다. 거역하는 자들을 회개시키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칠 때, 인내가 특별히 절실하다. 

(3)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선을 행할 때다(약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였다.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처럼 우리 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성도들은 길이 참아야만 한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마크로뒤메오(μακροθυμέω)로, μακρός(긴, 오래) + θυμός(욕정, 격노, 분노)로 ‘오래 참는다, 인내하며 견딘다.’는 말이다. 분노를 분출하지 않고, 오랫동안 참고 기다림을 말한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선을 행하면서 인내해야 한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 주의 강림이 가깝다. 주님의 재림이 더딘 이유는, 아무도 명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라며, 선을 행하자. 

3. 인내로서 얻어지는 축복은 무엇인가? 

(1) 시비를 그치게 한다(잠15:18).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당나라 때 “장공예”라는 사람은, 9대가 한 가정에 살면서, 매우 화목하게 지냈다고 한다. 어느 날 천자 고종이 그를 불러, 화목한 비결을 묻자 “참을 인(忍)”을 백 번 써서 바쳤다고 한다. 이는 가족끼리 백 번을 참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다(마10:22). 
주님께서는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하셨다.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만, 인내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3) 결실을 맺는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열심히 농사를 지은 농부의 인내는, 그가 가꾼 수확물을 얻음으로, 그 결실을 맺는다. 이와 같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설명해 주시면서,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셨다.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 

(4) 땅을 차지하게 된다(시37:7-9).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스피드시대다. 컴퓨터가 느리면, 갑갑해서 견딜 수 없다. 음식도 빨리 나와야 한다. 사진도 즉석에서 나와야 한다. 고통을 참지 못해서, 자살하는 자들이 많다. 

(5) 약속하신 것을 받게 된다(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주님 약속은 인내할 때, 이루어진다.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게 된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몸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손을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시리라는 약속을 인내로써 끝까지 바라봄으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얻을 수 있었다(히6:14-15). 이와 같이 우리도 끝까지 인내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다. 
(6)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한다(딤후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인내할 때 얻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우리가 영원한 그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을 바라본다면, 한없는 축복과 상급을 내려주신다. 

현대 사회는 옛날에 비하여, 인내가 많이 부족하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말세에는 사람들이 조급해질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딤후3:4). 그러면 사람들이 조급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본성 가운데, 인내가 부족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며, 또한 급변하는 문명의 발달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자동화 되어가고, 빨라지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이 조급함이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기다림과 인내의 미덕을 빼앗아가고 말았다. 주님의 강림시기가,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을 믿고, 모든 일을 참고 견딤으로, 그 날을 사모함으로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모두 들어가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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