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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오미와 룻 (룻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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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룻  (룻 1:15~22)
 
 
나오미와 룻은 후세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미담의 주인공입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으로서 선택받은 민족의 표상이고, 룻은 조상 때부터 우상을 숭배하는 모압 출신으로서 이방인의 대표입니다. 나오미는 언약이 있는 축복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갔다가 낭패을 당했고, 룻은 자기 나라와 우상을 버리고 베들레헴으로 와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쓰디쓴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와 그를 따르려는 룻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반된 신분인 두 여인의 삶과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신앙적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포기하는 나오미
 
신앙적인 회개는 자기의 과오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오미는 먼저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1) 모압을 포기하였습니다.

일찍이 나오미는 그의 남편 엘리멜렉과 함께 약속의 땅 베들레헴을 등지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을 버리고 육신의 것을 붙잡으려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신앙의 전통을 버리고 인간적인 욕망과 물질적인 번영을 추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신앙과 경건을 포기하면 물질이라도 붙잡을 줄 알았으나 그것도 잃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편과 두 아들마저 잃었습니다. 신앙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보여줍니다. 그는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고 길을 나섰습니다(7절). 모압을 버리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추구했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삶을 하나님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합니다.

2) 며느리를 포기하였습니다.

모압을 떠난 나오미가 길을 가다가 두 며느리를 불러 놓고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9절).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서 좋은 남자를 만나고 새출발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이는 며느리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인간적인 배려이지만 한편으로 시어머니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자기의 과오로 인하여 징벌을 받았고, 그 결과 가문이 무너진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세로 자기를 비우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힘입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정리하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얍복강 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처럼 자기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3) 나오미를 포기하였습니다.

그의 이름 ‘나오미’는 ‘희락’, 곧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축복의 대명사입니다. 그의 남편 이름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으로서 신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들은 환상적인 축복의 커플이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그곳 여인들이 “네가 나오미가 아니냐?”고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그 이름으로 축하받는 것이 거북하였습니다. 20절에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모든 즐거움을 다 내려놓고 쓰디쓴 고통의 잔을 받겠다는 각오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석고대죄 하는 심정으로 대가를 치르겠다는 뜻입니다.

2. 도전하는 룻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에게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하고 달라붙었습니다. 룻은 자기의 민족과 습관이나 풍속 또는 신앙과 그의 모든 인생을 걸고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시도하였습니다.
 
1) 어머니를 따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두고 고부갈등(姑婦葛藤)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통용됩니다. 나오미처럼 나이가 들어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가진 것 전혀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런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겠다는 며느리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기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며느리에게 자유를 선언했으나 룻은 그것을 잘 알면서도 시어머니를 좇았습니다(14절). 

이것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단순한 효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일종의 모험이요, 도전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가진 재산도 없고 주변에 남편될 만한 사람도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 거기에다 자기의 인생을 걸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앙 세계의 신비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도전입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모압 족속인 룻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선언한 것은 신앙적인 개종을 뜻합니다.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16절). 그 당시의 시대적인 정서나 사회적인 통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자기의 민족과 종교를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선언입니다. 신앙은 인간이 자기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행위입니다. 

3)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입니다.

나오미를 따라온 룻은 그의 개척자적인 삶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 오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자기의 할 일을 찾아 나섰습니다. 2절에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위에 것을 바라보며 미래를 열어가는 도전을 시도합니다. 룻의 경우, 당장은 경제적인 문제가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더 힘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입니다. 유대인 특유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에다, 종교적인 편견과 민족적인 차별에 맞서며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의 도전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3.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룻기 2:12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던진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날개 아래로 찾아든 이 여인들을 몰라보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1) 이름을 찾아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생활 십년동안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중에도 나오미라는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곧 ‘즐거움’의 나오미가 아니라 ‘쓰다’는 뜻의 ‘마라’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 여인들이 본래의 이름을 알고 “이이가 나오미냐”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 자신은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1:19-21). 

그에게 나오미(즐거움)는 하나의 이상일 뿐이었고 현실은 쓰디쓴 마라의 생활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성도이지만 생활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에 걸맞도록 회복시켜 주십니다(룻 4:14-17).

2) 양식(물질)을 주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이 흉년을 피해서 모압으로 이사 갈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재물을 가지고 갔으나,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1:21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보호 받기 위하여 그의 날개 아래로 들어온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22절에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2:23에도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게 거주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여기에 해당됩니다(요6;35)

3) 기업을 찾아 주었습니다.

2:1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유력한 자’를 부호(富豪)라고 해석합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부요한 것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능력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물어주고 무너진 가문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물질이 넉넉한 재력가일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사람입니다(레 25:25). 그 모든 것 보다도 사랑과 희생을 아는 보아스의 인품이 중요합니다. 그는 자기의 침소로 찾아온 룻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성경은 이 보아스를 예수님의 그림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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