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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고후 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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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고후 4:5~10) 
   
   
이것은 수건입니다. 사각 링 안에서 권투 선수가 경기를 합니다. 무진장 얻어맞습니다. 주저앉고 쓰러집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코치가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될 때에 이 수건을 링 안으로 집어 던집니다. 이것은 기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기하겠다는 뜻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관계가 힘들어서, 부부 관계가 너무 너무 힘들어서 이것을 집어 던져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안 계십니까? 사는 것이 왜 이렇게 고단한가? 이제 이 인생을 접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은 안 계십니까? 
오늘 본문이 있는 고린도후서4장에서는 낙심이라는 단어가 3번(1절, 8절, 16절)나옵니다. 

히브리어로 ''낙심''이라는 말은 ''녹이다, 황폐시키다'' 는 뜻입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면 삶이 녹아 버립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면 회사(학교)에는 지각을 합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모임에도 나가기 싫습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약속은 물처럼 녹아버립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될 때에 삶이 황폐케 되고, 생각이 황폐케 되고, 관계가 황폐케 됩니다. 

헬라어로 ''낙심''이라는 말은 ''무가치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낙심하게 되면 그 때부터 세상이 무가치해 집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자식을 키우느라 그런 고생을 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수건을 집어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낙심은 병균과 같습니다. 

그래서 낙심에 감염이 되면 무기력해 집니다. 낙심에 감염되면 세상을 비관합니다.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보고 비아냥거립니다. “살아서 뭐해. 회사를 가선 뭐해. 잘해 보았자 뭐해. 자식도, 부모도, 남편도 아무 소용이 없어”. 낙심은 염병입니다. 낙심은 전염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낙심하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녹아버립니다. 남편이 낙심하면 그 아내의 삶이 황폐케 됩니다. 목사님이 낙심하면 교회가 사막처럼 삭막해집니다. 사장님이 낙심하면 사원들의 사기가 물처럼 녹아버립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계속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수건을 집어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진짜 수건을 던져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바울입니다. 바울이 당했던 어려움은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고린도 후서 11장 23절-28절에서 바울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번 옥에 갇혔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여러 번 죽을 뻔 했습니다. 사십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습니다. 타고 있었던 배가 세 번 파선하였습니다. 여러 날 잠을 못 잤습니다. 굶주렸습니다. 목말랐습니다. 춥고 헐벗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 수건을 던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 본문에서 3번이나 이렇게 말합니다. 1절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8절에 ''낙심하지 아니하며'' 16절에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도바울이 겨우 겨우 버텨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만 두고 싶을 때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오늘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3가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위를 바라보라. 
여러분이 수건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 위를 바라보세요. 여러분의 눈을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따라서 수건을 집어 던질 수도 있고, 그 수건을 이마에 둘러메고 싸워 이길 수도 있습니다. 수건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위를 바라보라”는 말은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하늘나라의 대사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4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 말은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이 직분을 맡겨주셨다. 이 직분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가정,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생명,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직장, 그 학교,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수건을 던지시면 안 됩니다. 삶의 환경에 반응하지 마세요.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그 환경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는 것, 힘듭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자녀를 키운다는 것, 힘듭니다. 그러나 공부한다는 것, 특권입니다.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 특권입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영광중에 영광입니다. 그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1852년에 캘리포니아에 아주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포도원마다 다 망했습니다. 포도원 주인들은 다 파산했고, 포도원 주인들 중에는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쭈그러진 포도를 다 따서 시장에 갔다가 팔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물이 가득한 생 포도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전 처음으로 쪼글쪼글한 포도를 먹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먹어 보니까 맛이 있었습니다. 주머니에 넣어도 옷이 버리지 않습니다. 멀리 여행 갈 때도 좋고, 며칠을 두고 먹어도 썩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이 사람이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건포도입니다. 건포도 산업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포도가 찌글어 질 때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가 찌글어 질 때 그것으로 오히려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낙심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늘어지지 마세요. 수건, 던지지 마세요. 힘들고 어려울 때 그 환경에 반응하지 말고 그 환경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를 바라보세요. 
두 번째, 내 안을 보라.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 안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안을 보라는 말은 내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잘 깨집니다. 우리는 잘 깨지는 질그릇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어려움을 당하면 포기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보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에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북극해를 여행한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다. 북극해를 여행하다가 보면 빙산을 보게 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무엇이든지 바람과 같은 방향으로 밀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빙산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합니다. 왜 빙산은 바람 부는 방향을 향해서 갈까요? 그것은 빙산의 90%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빙산의 무게 중심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나무 잎사귀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빙산입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만 봅니다. 

우리의 질그릇만 봅니다. 그들은 우리 속에 있는 이 보배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면 떠내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면 질그릇 같은 나 때문에 실망을 합니다. 그러나 보배되신 우리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수건 던지지 마세요. 우리 속의 무게 중심이신 성령님을 바라보세요. 

세 번째, 내 앞을 보라.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 앞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앞을 보라는 말은 내 앞에 있는 영광을 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지금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그 눈물 때문에 장차 여러분은 웃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하는 시련, 지금 당하는 어려움, 여러분을 짓누르는 이런 삶의 중압감은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다이하드'' 라는 영화를 참 좋아 합니다. 4탄까지 다 보았습니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를 당해도 저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주인공이 반드시 살아서 적들을 다 없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내 앞의 영광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차 대전 중에 옥스퍼드 대학의 졸업식에 처칠 수상이 축사를 하기 위해서 이 대학 강당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칠 수상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통째로 다 외우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그 연설문을 가르쳐 드릴 테니 여러분들도 그 연설문을 통째로 다 외우시기 바랍니다. 다행히도 연설문이 짧습니다. 처칠이 모자를 단상에 벗어놓고 지팡이를 놓은 다음에 그 많은 석학들과 졸업생들을 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Never give up''(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이제 그 다음 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처칠이 또 입을 열었습니다. ''Never give up''(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처칠이 이렇게 말하고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들고 단상에서 내려갔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런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되어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수건을 던지지 마세요.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세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정 풍성한 영광을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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