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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릇보다 담겨진 내용이 중요합니다(고후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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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보다 담겨진 내용이 중요합니다

어떤 골동품 애호가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그 집 개의 밥그릇이 청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저것을 가져갈까 궁리하다가 잡종 개인 그 개를 30만원이나 되는 많은 돈을 주고 사겠다고 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좋다고 개를 팔았습니다. 개를 안고 나오면서, 값을 후하게 쳐주었으니 저 개 밥그릇도 같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정색을 하면서 개 밥그릇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 개 밥그릇 때문에 이제까지 개를 30마리도 더 팔았다는 것입니다.  개 밥그릇이지만 주인에게 가장 많은 수입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을 그릇에 비유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잘 사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을 그릇에 비유하는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질그릇’이라고 합니다.  질그릇이라는 것은 깨어지기 쉽고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구약 사 64:8에서는 『...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고 말씀하시면서  질그릇은 스스로 빚어질 수 없고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었다고 선포합니다. 

또 바울은 딤후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딤후 2:20-21, 개정)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은 그릇에는 주인의 뜻대로 만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그리고 질그릇 등.  모두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지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달란트 비유에서도 어떤 이에게는 5 달란트를 어떤 이에게는 2 달란트를 어떤 이에게는 1 달란트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종류의 그릇인지, 얼마를 받았는지는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면서, 우리들이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취직하기 좋은 호시절에 태어날지, 지금처럼 금융위기든지 10년 전에 IMF 관리체계의 위기든지.  통일되고 자원이 풍부한 호주에 태어날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두동강난 대한민국에 태어날지. 머리 좋게 태어날지, 나쁘게 태어날지.  부자로 태어날지, 가난하게 태어날지 내가 정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보니 지금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우리가 변화할 수 없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싸움하지 맙시다. 전전긍긍하지 맙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 나아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방황하다가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넘어졌더니 금덩이를 주웠습니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데리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릇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은 쓸 수 없습니다. 깨끗해야 무엇이든 쓸 수 있습니다.   천원 짜리도 종이고 5만원 짜리도 종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고 무엇이 쓰여져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달라집니다.  진짜 중요한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안에 예수 보화가 담겨 있으면 잘 삽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질그릇에 보화를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면 심히 큰 능력이 더불어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고후 4:7, 개정)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 안에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에게서 심히 큰 능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박해를 받아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기억합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아람군대가 도단성에 있는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하여 도단성을 포위했습니다. 힘있는 군대가 한 사람을 잡으려고 포위하고 둘러 섰으니 엘리사는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우겨쌈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서 보니 우겨쌈을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람군대가 하늘 군대에게 불말과 불병거에게 우겨쌈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에게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살다가 원수들에게 우겨 싸일 때 두려워하지 말고 내 속에 계시는 보배이신 주님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싸이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사에는 ‘제2차 세계대전 미스테리’라는 것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중에 “던커스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1940년 5월 하순 독일군에게 패배하여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의 던커크에서 영국으로 철수하려고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 34만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기계화 부대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34만 명이 전멸하면 구라파는 독일의 손에 넘어가고 영국까지도 독일의 손에 넘어가고 재기하기도 힘이 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전 국민에게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의 찬양대석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상과 전 국민의 기도에 응답을 하셨습니다. 던커크만 일대에 큰 폭풍우가 다가와서 비바람이 치고 엄청난 파도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우세한 공군력을 가진 독일 비행기가 뜰 수가 없어서 폭격을 못했습니다. 그리고 퇴로에 차단하며 던커크만에 진치고 있던 독일 잠수함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구데리안 장군이 이끄는 독일의 기계화 부대는 던커크 마지막 방어선인 운하를 깨치고 쳐들어오고 있는 순간에 갑자기 히틀러가 구데리안 장군에게 즉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 히틀러가 철수를 명령했을까요?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사건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 결과 포위되었던 연합군은 11일간의 철수작전으로 33만8226명의 연합군 장병을 영국으로 철수시키는 데 간신히 성공했습니다. 얼마나 전세가 급박했던지 사람만 철수하고 중장비 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철수했답니다. 
우겨쌈을 당해도 보화이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싸이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눈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있고 그 주위에 흰자위가 있습니다.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믿음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의 지혜의 보고인 탈무드에 이렇게 쓰여 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을 만드실 때 가운데의 까만 부문과 바깥 편의 하얀 부분으로 만드셨고 물체를 보는 것은 흰자위를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있는 검은 자위 곧 눈동자를 통해서 보게 하셨다.  그 이유는  "너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할지라도 너의 현실이 눈동자와 같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 어두움(이것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눈동자입니다)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이니라.  그러니 낙심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 "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엡 3:13, 개정)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이 겪는 환난이 영광이랍니다.  환난, 어려움, 답답한 일은 낙심할 일이 아닙니다.  예수 보화를 가진 자들에게는 변하여 영광이 될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허락하신 새땅에 들어가려면’을 지은 복음성가 가수 피터 빌 혼 씨의 간증입니다.  그는 아이오아주 포트메디슨 형무소에서 죄수들을 위하여 노래할 때 "날개가 상한 새는 다시 하늘로 날 수 없다"는 내용의 복음성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자 한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나처럼 날개가 상한 새는 희망이 없습니까?"그는 아주 슬픈 얼굴로 질문했습니다. 이에 가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다. 그 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새로운 복음성가를 지었습니다.
"예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는다. 예수님께 맡기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된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라.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 높이 푸른 하늘로 날 수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나 피터 빌 혼 씨가 YMCA 에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집회가 한 육군대령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년 전 나는 아주 불량스러운 청년이었습니다. 아주 못된 짓을 하다가 교도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갇혀 있던 교소도에서 선생님께서 복음성가를 불러 주셨습니다. 상처받은 날개도 주님의 사랑으로 새로워지고 다시 하늘로 날 수 있다는 복음성가였습니다. 나는 그 성가를 듣고 용기를 얻어 주님께 다시 나를 맡기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보화를 가진 사람은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질그릇이 모인 곳입니다. 이 질그릇이 모여서 질그릇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사랑하며 찬양하며 질그릇을 위하여 우리를 회복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교회로 못 들어옵니다. 그물망에 걸려 가지고  모두 교회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고 하는 좋은 땅에서 내 잘났다고 갔던 사람들이 다 그물망에 걸려서 교회로 못 나옵니다. 
아버지 집에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과 같이 연약한 그릇이지만 주님이 이 질그릇에 축복을 무한히 담아 주십니다. 쌀을 수북수북 담아 주시듯이 예수 믿는 성도들은 빈 그릇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축복을 담습니다. 행복을 담습니다. 건강을 담습니다. 구원을 담습니다.   보화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 승리의 삶을 삽니다.  
여러분 안에 보화이신 예수님이 계심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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