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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의 힘 (창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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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힘 (창 37:1~11)

 
여러분은 혹시 ‘폴 포츠’라는 분을 아십니까? 우리 한국에는 ‘수잔 보일’과 함께 소개된 인물입니다. 그는 40대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외판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영국의 어느 한 TV에서 주최한 노래자랑대회에 나가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가수로 등극하게 됩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해서 서울광장에서 무료공연을 갖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사진에서 보듯이 별로 잘생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외모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습니다. 또 이 분이 뇌종양을 앓아서 건강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또 쇄골이 부서져서 오랫동안 중환자로 있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어릴 때부터 꿈이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성가대로 열심히 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악가가 될 수 있는 길이 다 막혀있었습니다. 한 번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이태리의 유명한 ‘파바로티’에게 가서 레슨을 받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TV '브리튼스 갓 탤런트‘라는 프로그램에 나가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수로 등극하고 처음 낸 앨범이 세계적으로 500만장이 팔렸다고 합니다. 500만장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이 팔린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은 그를 부러워하고 또 그를 볼 때마다 도전을 받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폴 포츠’를 만든 것은 바로 그의 마음속에 포기하지 않았던 꿈입니다. 어릴 때 가졌던 성악가의 꿈, 그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휴대폰 영업사원을 하면서도 그 꿈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꿈은 힘입니다. 꿈은 능력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꿈을 가지면 그 꿈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꿈은 그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분의 생일이 1월 15일인데, 미국 국경일 중에 1월 15일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생일을 국경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개인의 생일이 국경일이 된 두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조지 워싱턴 1대 대통령이고, 두 번째가 바로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생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릴 때 흑인이지만 백인 아이들과 놀다가 거절을 당합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부둥켜안고 주저 않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침례교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족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에서는 백만의 흑인이 모여서 흑인의 인권을 위해서 노래하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부른 놀라운 노래가 있습니다.
“I Have a Dream" 
“나는 꿈꾸노라, 언젠가 나와 내 아이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닌 그 인격에 따라 평가되는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을. 오늘 나는 꿈꾸노라, 언젠가 앨러바마주에서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이 손을 잡고 형제와 자매로서 같이 지내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

어찌 보면 그것은 그 당시 한낱 환상에 불과했을지 모릅니다. 적어도 그 당시만 해도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이 버스를 탈 수 없었습니다. 앞자리는 백인들 자리이고 저 뒷자리에나 겨우 흑인들이 앉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서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 나란히 앉아서 찬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흑인교회와 백인교회가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식당에 들어가서 흑인과 백인이 마주보고 앉아 식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시대에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게 어디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그 노래는, 그 꿈은 오늘날 이루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통해서입니까?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바마, 그는 흑인입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옴으로서 이제는 백과 흑의 차별이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물론 ‘완전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흑인도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꿈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꿈은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결코 외모나 그의 가진 환경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유명한 헬렌 켈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비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질문에 “시력은 있으되 비전이 없는 사람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마음속에 꿈이 없는 사람, 그는 가장 가난하고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꿈을, 거룩한 소원을 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제가 한 두 달 전에 우리 교회 한 권사님 가정을 심방한 일이 있습니다. 구역지도자들과 심방을 했는데 그 권사님이 새로 이사하셔서 입주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 좋은 집에 새로 단장을 하고 가구도 새로 준비하고 입주하니 너무 좋았습니다. 그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꽤 오래전에 3층짜리 건물을 사서 이사를 했는데 돈이 부족했답니다. 

그래서 3층, 제일 넓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집은 전세를 주고, 반 지하 같은 1층, 반쪽짜리 집을 얻어서 거기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주인이면서도 가장 안 좋은 환경 가운데 생활을 했습니다. 그 권사님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빨리 돈을 마련해서 저 3층에 있는 사람을 내 보내고 그리로 들어가야지.’ 그것이 권사님의 기도의 제목이었고 꿈이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돈이 준비되어서 이제는 주인이 그 3층 넓은 집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 교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3층집을 다 사서 저를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얼마나 기쁜지 마음껏 축복해주었습니다. 그 권사님이 가지고 있는 소원이, 그 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권사님에게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미담이 있습니다. 아주 어렵게 살 때 제가 언젠가 한번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가보니 벽에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우리 교회 새로 짓기 전 그림입니다. 십자가 탑이 있고  교회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네 사람의 가족이 손잡고 교회 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이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지난번에 그런 설교 하지 않았느냐고, 우리가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더 구체적으로 아예 그림을 그려놓고, 붙여놓고 기도하면 더 빨리 응답한다고. 그래서 그 설교를 귀담아 듣고는 집에 와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 두 아이는 교회 나가는데 남편은 아직 교회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를 그리고 네 식구가 함께 손잡고 교회 현관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그려서 벽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심방 갔더니 그 그림이 보였습니다. 참 감사하기도 했지만 또한 걱정도 되었습니다. 저렇게 하다가 안 되면 어떡하나? 실망하면 어떡하나? 그런데 그 다음에 얼마 안 되어서 그 남편이 교회 등록하고 지금 열심히 나오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꿈을 품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꿈을 품되 구체적으로 품으십시오. 그리고 아예 그림을 그려서 붙이십시오. 여호수아 1장에 보면 “너희가 가서 가나안 땅의 그림을 그려오라.”고 여호수아가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십시오.

어떤 중학교에 지리시간에 선생님이 숙제 물을 내 주었습니다. “다음 주에 올 때는 세계지도를 깨끗하게 그려가지고 오너라.” 하고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다른 아이는 숙제를 다 해가지고 왔는데 한 아이는 숙제를 안 해왔습니다. 선생님이 몹시 화가 나서 마구 꾸짖었습니다. 

“이놈아! 왜 숙제 안 해왔니?” “선생님! 저는 숙제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숙제 못할 이유가 뭐냐?” “제가 만약 세계지도를 그리면 세계가 달라질 거 같아서요.”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확신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세계지도를 그리면 세계 경계선이 달라질 거 같아서. 우리가 꿈을 가지고 기도할 때 이런 놀라운 기적과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놀라운 꿈을 꾸면서 살아갔던 한 인물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요셉이라는 인물입니다. 여러분은 요셉을 너무 잘 아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 다음에 네 번째 등장하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야곱은 부인이 네 명이었습니다. 얼마나 집안이 복잡했을까요? 그리고 야곱은 네 명의 부인으로부터 몇 명의 아들을 낳았을까요? 

1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가운데 11번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라헬이 자기 동생 12번째 형제인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해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없이 요셉과 베냐민은 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야곱이 보기에 너무 불쌍했습니다. 엄마 없는 자식이라 더 사랑해주었습니다. 12아들에게 옷을 사주어도 요셉에게는 특별히 더 좋은 옷을 사주었습니다. 그를 더 귀여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다른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없을 때 요셉을 몹시 미워했습니다. 요셉은 미움 받으며 성장한 소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평범했습니다. 또 요셉의 안 좋은 성격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형들이 무슨 일을 하다가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요셉이 와서 아버지에게 고자질 아닌 고자질을 했습니다. 형들이 양을 치다가 양을 몰래 팔아먹었다던가, 양털을 깎아가지고 누구에게 주었다던가 하면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습니다. 그러니 형들이 요셉을 더 미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 없이 자란 외로운 소년이었습니다. 또 형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미움 받던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 꿈이 바로 요셉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요셉의 꿈을 읽어보실까요? 창세기 37장 6절, 7절을 함께 읽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더 분노했습니다. 

“야 이놈아! 그럼 우리가 너에게 절한단 말이냐?” 요셉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가을에 수확하느라 단을 묶고 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 11개는 내 단을 향해서 절하더이다.” 그 이야기는 형들이 요셉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모욕적인 이야기입니다. 형들은 더욱 요셉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느 날 요셉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계시의 꿈을 꿀 때는 꼭 두 번씩 반복되는 것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꿈을 한번 꿨다면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개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꿈을 말씀하실 때 꼭 두 번을 꾸게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계시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꿈으로 혹은 선지자를 통해서, 혹은 말씀으로 자신의 뜻을 드러내곤 하셨습니다. 두 번째 꾼 꿈이 무엇입니까? 요셉이 와서 또 이야기 하는데 “내가 꿈을 꿨는데 해와 달과 열한개의 별이 저에게 절하더이다.” 해와 달은 부모를 의미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야곱은 분노했습니다. 꾸짖었습니다. “야 이놈아! 어떻게 부모가 너에게 절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결국 이것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먼 훗날 형제들이 거하는 유대 땅에 기근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갔는데 애굽의 국무총리인 요셉 앞에 절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요셉이 그 가정의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부모마저도 요셉의 말에 참으로 귀를 기울일 정도로 요셉은 권위 있는 인물이 됩니다. 바로 그런 상징정인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과 형들의 삶을 갈라놓은 것은 바로 요셉이 꾼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5절부터 11절까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꿈입니다. 그 꿈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아십니까? 7번이나 나옵니다. 7번이나 꿈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요셉의 생애는 꿈과는 구분해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꿈꾸는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꿈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갔습니다. 때로 그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도, 때로는 애굽의 노예상인에게 팔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의 종이 되었을 때도, 때로는 주인의 부인을 범하였다는 억울한 모함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갇힐 때도,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의 쓴 잔을 마실 때도 그는 그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꿈이 요셉의 생애를 이끌어 갔고, 요셉은 하루아침에 종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에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는 국무총리가 되어서 수많은 사람을 기근에서 건져낼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가족을 애굽으로 초청해서 그들의 모든 식량을 제공해 줄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는 정말 화려하고 위대한 생애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은 이처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의 꿈을 꾸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연세가 드셨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은퇴하신 자리에 있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갈라놓기 때문입니다.

꿈에는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로 꿈은 삶의 분명한 목표를 가지게 합니다. 꿈은 삶의 분명한 목표를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8장에 보니 “꿈이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동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릇 행하기 쉽습니다.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니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주신 꿈을 가질 때 그들은 겸손하게 하나님 주신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꿈은 우리 삶을 인도하는 방향키와 같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하버드 대학에서 오래전에 이런 조사를 했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당신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설문에 응한 학생의 27%는 아무런 삶의 목표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 응한 60%는 아주 희미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는 분명한 단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3%는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조사 후 25년이 흘렀습니다. 25년 후에 그들이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한 교수가 조사해보았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아무런 목표를 가지지 못했던 27%는 오늘날도 실직과 취직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기에도 허덕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미하나마 어떤 목표를 가졌던 60%는 중하위층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겨우 그저 의식주나 해결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단기적인 목표를 가졌던 10%는 중상위층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게 직업이 변호사나 의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분명한 장기적인 목표와 꿈을 가졌던 사람들은 미국을 움직이는 지도층의 자리에 서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십니까? 어떤 꿈을 가지느냐가 여러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꿈을 가졌기 때문에 목표를 잃지 않았습니다. 핍박 속에서도 좌절 속에서도 그리고 때로는 억울한 모함 속에서도 그는 목표를 상실하지 아니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삶을 살아야할 이유와 목표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15년 전에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독립기념관 옆에 조그만 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에 한 바위에 이런 무명 독립투사의 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어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일제의 억압 가운데 한 독립투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나라가 독립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 당시 일제의 억압 하에 있을 때 독립, 자유, 인권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불가능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꿈을 가지고 기도할 때 오늘 조국 광복, 8.15 광복의 기쁨이 우리에게 임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민족이 커다란 꿈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 너무나 중요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교회들은 모일 때마다 독립을 위해서 기도했고, 독립을 위해서 그들은 소원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꿈은 우리에게 목표를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평화통일주일’로 지킵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광복절 감사기념주일’이었습니다. 일제의 억압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평화통일주일’로 바뀌어서 분단된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주일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 세계적으로 단일민족으로서 나라가 분단된 민족은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우리는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에 한국에 오셨던 하와이 열방대학 총재이신 ‘로렌 커닝햄' 목사님이 명지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그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0년 안에 아마 한국에 통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분입니다. 그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예언하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찌 보면 지금 요원한 것 같지만 남북통일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 ’평화통일주일‘에 남북통일을 위해서 꿈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꿈은 삶의 열정을 갖게 만들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꿈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연세가 드셔도 늘 무언가 새로운 비전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제가 얼마 전에 양평에 있는 수석박물관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한 은퇴하신 목사님이 양평에 좋은 자리 옥천이라는 곳에 수석박물관을 직접 돈을 들여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져온 5천점의 수석을 전시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전시하지 않은 5천점은 창고에 쌓여있습니다. 그것을 보느라고 한 두세 시간은 걸린 듯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돌이 다 얼굴이 있었습니다.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기회가 되면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은 은퇴 후에도 그 수석박물관을 통해서 선교하시는 꿈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고 계셨습니다. 전혀 늙지 않으셨습니다. 젊은이와 같이 아주 왕성하셨습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퇴직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아주 폭삭 늙으셨습니다.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니 병들고 빨리 늙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꿈을 가질 때 여러분은 열정의 주인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요셉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노예로 팔려가서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열정의 사람은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눈치 보지 않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습니다. 요령 피우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위대장인 보디발이 보니까 그 많은 종들 가운데 요셉이 단연히 눈에 띄었습니다. 그를 불러서 자기 집의 가정총무로 삼았습니다. 가정총무란 그 집의 모든 재산의 관리인입니다. 모든 종들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위대장은 요즘으로 말하면 경호실장입니다. 대통령 경호실장입니다. 대통령 경호실장의 집에 제2인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열정 때문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그가 억울한 모함을 받아서 지하 감옥의 죄수로 전락했지만 거기서도 그는 교도관의 눈에 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시키면 열정이 있는 요셉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결국 거기서도 그는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꿈이 있는 사람은 바로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열정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젊은이가 박물관에 와서 취직하겠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에는 직원을 뽑지 않았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박물관 마룻바닥을 닦는 일이 있는데 이거라도 하시겠습니까?” 명문대학을 나온 그 젊은이는 좋다고 승낙을 했습니다. “박물관 바닥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박물관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박물관 바닥을 윤이 나도록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는 틈틈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연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그는 직원으로 채용되었고 수년 후에는 그 박물관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삶의 열정을 갖게 만듭니다.

세 번째로 꿈은 기도하게 만듭니다. 꿈꾸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꿈꾸는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가능한 꿈을 꾸십시오. 그리고 그 꿈꾸는 것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 꿈은 언젠가 실현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 꿈을 꿀 때 이왕이면 불가능한 꿈을 꾸십시오. 

돈 주고 살 수 있는 그런 꿈 말고, 카드 긁으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꿈 말고, 도저히 내 환경으로 보나 내 능력으로 보나 불가능한 그런 꿈을 꾸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의그룹의 ‘채의숭’ 장로님이라고 훌륭한 장로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가난한 시골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그는 가난한 시골 학생이었을 때 그는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첫 번째는 박사학위였고 두 번째는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하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는 백 개의 교회와 학교를 건축하는 일 이였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헌납하는 일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 꿈이 어디 가능합니까?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요셉이 그 애굽 땅에서 열한 번째 아들로 형들에게 미움 받으면서 생활할 때 그 요셉이 높은 자리에 앉고 형들이 그에게 절한다는 거 참 황당무계한 이야기 아닙니까? 여러분! 꿈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보고 몽상가라고 조롱했습니다. “저기 꿈꾸는 자가 온다.”고 비웃곤 했습니다.

오늘 ‘채의숭’ 장로님의 고등학교 때 꿈도 그러했습니다. 누가 이룰 수 없는 꿈이였습니다. 불가능한 꿈입니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84년 그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10개의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현재까지 68개의 교회와 학교를 건축해서 사회에 기증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가난한 시골고등학생의 꿈이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부럽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이런 꿈을 저와 함께 꾸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여러분의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꿈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꿈은 여러분의 자손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5110비전의 꿈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 천명의 성도가 모여서 예배드리고, 백 개의 교회를 건축하고, 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열 개의 교회를 건축하는 이 아름다움 꿈이 저는 반드시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꿈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저는 또 하나 기도하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우리 교우들도 열심히 십일조하고 헌금합니다만, 우리가 앞으로 열 개의 교회를 세우고 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려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의 교우 중에 적어도 매달 천 만원 이상의 십일조를 낼 수 있는 분이 열 분이 나오는 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웃지 마십시오. 이것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자녀들 가운데, 아니 여러분 대에 저는 이런 일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기업하는 분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매달 천 만원의 십일조를 낼 수 있는 그런 기업으로 발전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을 꾸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꿈을 꾸면 가능한 것입니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마석기도원 집회에 갔더니 ‘장학일’ 목사님이 간증하셨습니다. 자기교회가 있는 ‘에수마을교회’가 가난한 신당동 동네에 있는데 자기도 그런 꿈을 꾸었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꿈을 이루어주셨다고 간증하셨는데 너무 부러웠습니다. 우리교회도 백 만원, 이 백만원 십일조 하는 분들은 계시지만 아직 천 만원 하시는 분들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우리교회의 천 만원 십일조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겠다고 한번 꿈을 가져보십시오. 

거룩한 꿈을 가져보십시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통해서 내가 선교하고, 개척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내가 보람되게 사용하겠다고 한번 거룩한 꿈을 품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어린이는 소방관가 되는 꿈, 교사가 되는 꿈, 간호사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소방관도 못하고, 교사도 못하고 간호사도 못하고 그 꿈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왜 사십니까? “자식 때문에 살죠, 죽지 못해 살죠, 그럭저럭 살지요” 여러분 꿈을 포지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꿈을 마음에 품고 있을 때, 그 꿈은 언젠가는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을 생각해보세요. 출발이 좋지 않아도 여러분의 꿈을 포기하지 마세요. 요셉은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국무총리 정도 되려면, 대학교수쯤은 되어야하지만 그는 노예, 종, 죄수로 출발했습니다. 여러분 출발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결과가 중요합니다.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상원의 선거에서 낙선하여 몹시 실망했습니다. 

그는 기운을 차리고 그는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그는 다시 나가 도전했습니다. 그는 몇 번의 고배를 마신 후에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아브라함 링컨을 능가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었습니다.  출발은 좋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가족들은 요셉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열 명의 형제들은 요셉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이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미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품고 있다면, 여러분은 당황하지 마시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생애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포기라는 Give up 이라는 말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생애에는 포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포기는 배추 담을 때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꿈을 품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그 꿈은 언젠가 생명의 씨앗을 맺고 열매를 맺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폴 포츠’의 이야기로 설교의 서론을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불러서 더 유명해진 노래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로가 있습니다. 가사가 너무 좋아서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하면서 설교를 마치고 싶습니다.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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