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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 (요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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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  (요 11:1~16)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보통은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가 된다. 
인간의 뇌는 성공의 경험을 통해서 성공의 원리를 학습한다고 한다. 실패를 통해서는 실패가 학습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실패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1.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사로가 중병이 들었다. 나사로는 마르다와 유명한 마리아 오빠이다. 
마리아는 향유를 주님께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던 여인이다. 특별한 헌신을 하는 사람이다. 나사로의 가족이 다 주님을 특별하게 사랑했던 것 같다. 주님도 그 집 식구들도 주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3절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5절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의 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자주 들러 먹고 쉬었던 집이다. 
*목회자들이 교회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헌신된 교인을 자랑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귀한 헌신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도 병이 들 수 있다. 그냥 병도 아니고 죽을 병이다. 
믿음 좋은 사람도 큰 고난을 겪을 수 있다.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도 고난을 겪는다. 
*욥의 고난. 욥은 하나님이 인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욥1:1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러나 그런 욥도 고난을 당했다. 감당키 어려운 고난을 당했다. 
그런데 왜?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난을 통해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이 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 남을 판단하지도 말라. 
오히려 대충 신앙생활하는 데도 아무런 고난이 없으면 그것이야 말로 긴장해야 할 일이다.*히12:7-8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는ㄹ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 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라는 말이 영어성경에는 훈련이라는 단어 discipline 이다. 

2.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이다. 

나사로의 두 동생이 예수님께 급히 사람을 보내어 연락을 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 
그 말속에는 ‘왜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일어난 겁니까’ 하는 당황스러움이 배어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우리가 아는데, 그런데 왜 이런 큰 고난이 일어나는 겁니까? 

연락을 들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4절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을 병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그 병이 걸린 이유를 말씀하신다.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찬양<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1.왜 나만 겪는 고통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뒷편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보며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2.왜 이런 슬픔이 찾아왔는지 원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잃은 것보다 주님께 받은 은혜 더욱 많음에 감사하세요. 
(후렴)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지금 나타난 현상은 중병이다. 죽을 병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현상이 모든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최종적인 결과를 알고 계신다. 최종 결과는 나사로의 죽을 병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것을 알고 계신다.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과정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고난의 현상을 보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많이 다를 수 있다. 
견해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사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혼자 고난 속에 빠져 들어가지 말라.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의 기회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3. 문제 속에서도 영광의 때를 기다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으신 예수님이 이상한 행동을 하신다. 
6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지금 같으면 119라도 불러서 달려가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시던 곳에서 의도적으로 이틀씩이나 그냥 머물러 계신다. 요단강 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계신다. 

이틀 사이에 병든 나사로는 죽었다. 11절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이 이틀을 늦게 오시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져버리고 말았다, 
왜 그러셨나? 왜 이틀을 더 머무셨나? 왜 주님은 그냥 가만히 계시는 것인가? 
*우리의 혼란스러움- 주님은 왜 침묵하고 가만히 계시기만 하는가? 
슬픔을 아시는가? 답답함을 아시는가???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 하나님의 영광의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나님의 때이다. 하나님의 타이밍이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있다.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안다. 17세 소년 때에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한다. 애굽나라에 노예로 팔려갔다. 주인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여 감옥에 갇혔다. 감옥 안에서 만난 왕의 측근 신하의 꿈을 해몽해 주었다. 그리고 억울함을 왕에게 이야기해서 석방시켜 달라고. 그러나 그는 요셉을 잊어버렸다. 
바로가 꿈을 꾸고 해몽할 사람을 찾았다. 그 때 그 신하가 요셉을 기억하였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면서 지혜를 인정받아 애굽의 실세 총리가 된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있다. 내 생각보다 아주 길수도 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라. 
앞서가지 말라! 뒤처지지도 말라! 믿음으로 기다리라.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라.”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타이밍은 반드시 온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 

4.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라! 

이틀을 더 지연하신 예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신다. 
몇 일 전에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잡으려 하였다. 그 사람들을 피해서 요단강가로 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 붙어있는 동네다. 
오리길 쯤 된다. 나사로의 집에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자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묻는다. 가면 또 돌로 쳐 죽이려고 할 겁니다. 뻔히 알면서 왜 가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요단강 가에서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거기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요10:42). 그런데 환영받는 자리를 떠나 죽을 곳으로 찾아 가시는 것이다. 

알송달송한 말씀을 하신다. 지금은 낮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낼 일이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에게 돌로 맞고 안 맞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었느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보셨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아닐 때는 돌로 치려는 사람들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요단강가로 오셨다. 이제는 하나님의 타이밍이 되었다. 그래서 환영받는 사람을 떠나 돌로 치려는 사람들 가운데로 가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영하냐? 돌로 치냐? 그것보다 그 자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리냐 아니냐를 훨씬 중요하게 보셨다. 사람들이 거부해도, 돌로 치려고 하여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리라면 그 자리로 가신다. 

죽음의 자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리라면 기꺼이 가셨다. 그래서 십자가의 자리로 가신 것이다. 왜? 그 자리가 영광의 자리기 때문이다. 누가 영광을 받을 자리인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자리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가신 것이다. 
십자가를 앞에 두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요12:23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십자가는 영광의 자리이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넌 후 무한영광일세. 

맺는 말 
*국민일보에 나온 남서울 교회 성가대 지휘자 권명선 성도 간증이다. 2년 전 27세 때에 건강에 이상이 왔다. 음식도 물도 거의 삼킬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위에 염증이 좀 있을 뿐이라고. 발이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했단다. 병원에서는 인대에 염증이 약간 있을 뿐이라고. 영양부족으로 온 몸에 피부병이 생기고, 가려워서 옷을 입을 수도 없고, 그러다가 쓰러졌단다. 혈압은 50-80. 의사는 죽을 것 같다고. 
죽음을 앞에 두니 명예, 돈, 삶에 대한 집착을 다 버리게 되었단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니 그 날부터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피부명도 나았고.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노랫소리가 들렸다. 선율과 가사가 다. 그래서 7개월간 200여곡을 작곡했단다. 미완성곡도 800여곡이나 된단다. 이 분이 음악신동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음악공부를 했었단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길 바랄뿐 다른 소원이 없단다. 

인생의 가장 큰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된 믿음의 사람인 것 같다.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기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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