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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내비게이션(navigation) (시 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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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내비게이션(navigation) (시 19:1~14)


현대는 배터리 필수의 시대와 함께 내비게이션 시대입니다.  내비게이션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길눈이 어두운 운전자에게 내비게이션은 필수입니다.  내비게이션
(navigation)의 우리말은 ‘차량자동항법장치(車輛自動航法裝置)’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길안내도구’ 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공위성을 통해 가야할 위치를 알아내고 안내를 해주는 아주 편리한 도구입니다.  이제 모르는 길도 척척 찾아갑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내비게이션에 입력만 하면 알아서 갑니다.  

내비게이션이 이렇게 편리한 것이지만 기계이기에 맹점도 있습니다.  너무 그것만 믿다가 낭패를 당하
는 경우가 자주 일어납니다.  저도 종종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 내비게이션이 나올 때 어떤 관광버스 
운전사는 승객을 태우고 내비의 안내를 따라가다가 바다로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습니다.  내
비게이션의 가장 큰 실패의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1983년 9월 1일 미국에서 한국으로 비행하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전투기에 격추되어 탑승객 전원이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였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
는 소련에 항의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남의 나라 영공을 침범하고, 항로를 벗어난 명백한 잘못이
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당시 사고의 원인은 내비게이션 고장(navigation error)이었
습니다.  

조종사가 내비게이션을 믿고, 세팅을 잘못 해서 소련 영역으로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내비게이션의 잘못된 안내로 269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내비게
이션이 편리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인생과 신앙에도 내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 안내자와 같은 것입니다.  기계 
내비게이션은 잘못될 수도 있지만, 신앙의 내비게이션은 결코 잘못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인생을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안내해 줍니다.  과연 신앙의 내비게이션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자연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9편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의 믿음의 고백이면
서 기도요, 찬양입니다.  다윗은 여기에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2가지 계시를 선포하고 있습니
다.  1절부터 6절까지 전반부에서 한 가지를 말하고, 7절부터 14절까지의 후반부에서 다른 하나를 소개
합니다.  전반부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1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 자연의 세계를 노래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은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하나님의 뜻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우리 인생의 안내자요,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을 통해 전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보면서 하나
님을 알고, 신앙을 배우고, 자연 앞에 자기를 발견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
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
라” (롬1:20)  자연은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닙니다.  

자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면서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사람이라도 한평생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누구라도 알기 때문입니다.

세계 3대 오라트리오가 있습니다.  헨델의 메시야, 멘델스존의 엘리야, 그리고 하이든의 천지창조입니
다.  보통 헨델의 메시야가 가장 유명하지만 하이든의 천지창조도 크게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는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천지창조의 곡을 만들었습니다.  천지창조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
하는 것으로서 모두 3부, 총 32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1부는 창조이전의 혼돈 상태를 말하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2부는 각종 동물과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창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3부는 아담과 하와, 천사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를 찬양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1798년 4월 천지창조가 한 후작의 정원에서 초연 되었을 때 ‘빛이 생겨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의 연주가 이어질 때 청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모두 일어나 하늘을 가리키며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직 그의 믿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는 작곡하는 동안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창조, 인간창조에 대한 확신이 충만하여 피아노 앞에
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리는데 자기를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작곡했다고 말합니다.  이렇
게 만들어진 천지창조에서 하이든이 가장 감동적으로 묘사한 노래가 1부 마지막곡인데, 바로 본문을 근
거로 만든 노래입니다.  이처럼 하이든도, 다윗도,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았고, 찬양했으며, 위대함을 나타냈습니다.

1980년대 초 신군부의 등장으로 한국사회가 매우 혼탁하고 어지러울 때 불교의 큰 어른이었던 성철스
님의 법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의 법어는 아주 간단한 말이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당시 이 짧은 말이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스님이 이런 말을 했다면 뭔가 속 깊은 뜻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성철스님은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자기를 만나려면 삼천 배를 먼저 하라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결국 이 말을 남기고, 뜻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여러가지로 해석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원래 이 말은 성철스님의 말이 아니고 700년 전 이미 중국에서 도를 쌓던 야보라는 사람의 시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라고 말했는데 성철스님이 앞부분만 인용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야보스님은 이 말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내가 중생일 때는 산을 보면 곧 산이요 물을 보면 곧 물이었는데, 이치를 좀 알게 되니 눈이 차츰 열려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이제 다시 도를 크게 깨닫고 보니 산을 보면 산이요 물을 보면 물이더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만약 저 산 너머에 바다가 있다고 할 때, 철부지 아이들에게 이것을 말하면 아이들은 그대로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 그대로 믿지 않고 의심하고,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직접 산을 넘어 바다로 달려가 이것을 확인하면 다시는 바다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깨닫게 되면 마침내 산은 산으로 보이고 물은 물로 보이는 경지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깨달음을 자연에 비유하여 강조한 것입니다.  사람 안에 자연성(自然性)이 들어와 있고, 자연 안에 인간성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이고, 자연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직대통령의 유서에 인
간이 자연의 한조각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것이 야보스님이 깨달은 바로 산은 산, 물은 
물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는 아주 심오한 이치를 자연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인생을 깊이 알아가면서도 자연을 만드시고, 자연을 섭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러분,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장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 참으로 아름답습니
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자연입니다.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산은 산대로, 바다
는 바다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자연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휴양하면
서, 세계의 멋진 곳을 다니면서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자연은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신비롭습니다.  풀 한포기, 나무 하나에 담긴 자연의 생명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자연을 보면서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미련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도 자연을 우연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장 미련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자연이 
자연스럽게 거기에 있는 것입니까?  자연은 정말 신비한 것입니다.  결국 자연이 인생의 내비게이션입니
다.

그러므로 자연을 보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자연을 섭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어
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나의 작음을 알고 인생의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자연이 진정한 내비게이션입
니다.  자연을 통해 인생의 안내를 받으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말씀입니다. 

본문 7절부터 14절까지의 후반부는 말씀에 대해 강조합니다.  여기에 보면 먼저 말씀을 다양한 말로 
강조합니다.  율법, 증거, 교훈, 계명, 도, 규례 등으로 설명합니다.  모두 말씀에 대한 다른 표현들입니
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자연과 함께 말씀을 강조합니다.  특히 말씀의 기능과 능력에 대해 
말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시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지켜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의 결단과 헌신을 기도로 올려드립니다.  그래서 14절에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곧 다윗에게 말씀이 능력과 힘으로 역사하여 그의 평생의 삶을 이끈 가이드, 내비게이션이었음을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특히 여기에서 다윗은 말씀을 자연과 대비하여 더 확실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계시임을 강조합니다.  
자연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아 감동케 하고, 하나님과 인생을 배우게 하는 통로가 되지만, 말씀은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순결하고 지혜롭게 하며 마음의 눈을 밝게 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보면, 자연을 강조하는 전반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1절에 오직 한번 나오는 
것으로 그칩니다.  

하지만 후반부 말씀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7번이나 되풀이 
됩니다.  이것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간접적인 계시보다 말씀을 통하면 더욱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자연과 말씀을 통해, 특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주었기
에 이제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르거나 믿지 못한 핑계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말씀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고, 인생을 향한 확고한 진리이며, 우리 인생과 신앙에 가장 귀한 안내자, 내비게이션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무엇
을 의미하는 말입니까?  말씀이 내가 가는 길에 안내자요, 내비게이션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따라가
면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길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지럽고, 또 너무도 길이 많아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
고 답답한 세상입니다.  처음에 잘 보이는 길 같지만 점점 미궁에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 인
생길입니다.

신라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최치원이 쓴 ‘금천사 주인에게’라는 제목의 한시(漢詩) 속에는 ‘소지
문전 일조로(笑指門前 一條路), 재리산하 유천기(在離山下 有千岐)’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웃으며 문 앞 외길을 가리키니, 겨우 산 아래서 천 길로 갈라지네’라는 뜻입니다.  산 속 집 마루에 앉은 시
인은 웃으며 싸리문 밖 외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외길이 산 아래서는 천 갈래
로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외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가면 우리 인생 앞에는 천 갈래, 만 갈래의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길은 어렵고,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잠언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잠16:25)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의 양심과 도덕의 기준에 따라 살고, 그 길로 잘 가는 것 같지만 말씀을 떠난 길은 아무리 잘 가도 결국 사망의 길이라는 것을 경고합니다.

성경은 기록된 문서로서 보통 하나의 책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보통 성경을 책을 의
미하는 ‘북(Book)’이라고 말하지 않고, ‘바이블(Bible)'이라고 부릅니다.  바이블이란 말은 라틴어의 ’비블리아(Biblia)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어의 ‘비블로스(biblos)에서 유래된 말로 ’책‘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비블로스는 고대시대의 필사 재료였던 파피루스, 즉 종이 풀의 줄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우리는 그냥 ’바이블‘ 이라고 부르지 않고 ’The Bible' 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성경은 
책 중의 책이고,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성경을 ‘The Holy Bible'이
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유일하면서 가장 거룩한 책이라는 말입니다.  왜 성경이 거룩한 것입니까?  그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을 기록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의 ‘성경’도 바로 거룩한 책을 의미하는 Holy Bible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  하나님의 말씀만이 세상에 오직 절대적 진리입니다.  결국 이 진리의 말씀으로 인간은 거룩하게 됩니다. 

성경이 세상에 유일한 책이고, 거룩한 말씀이기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충분하고 완전한 내비게이
션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경이롭고, 신비롭습니다.  성경만이 진정 사람을 영원히 살립
니다.  우리 육체와 영혼을 소성케 하고, 환란과 시련의 때에 극복하는 힘이고, 갈 길을 모르는 모든 인
생을 향한 소중한 가이드, 내비게이션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치고 실패한 사람이 없었고,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치고 궁극적인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말씀만이 오직 나를 바르고 참된 길로 인도합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말씀을 사모하시고, 붙잡고, 따라가십시오.  말씀대로 살아보십시오.  
분명 말씀은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하고, 우리의 
눈을 밝게 할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과 신앙의 내비게이션은 자연이요, 말씀입니다.  산과 바다로 흩어지는 때에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씀을 통
해 힘과 위로와 안내를 받으십시오.  신앙의 내비게이션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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