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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을 끄지 말라 (레 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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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끄지 말라  (레 6:12~13)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 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불끄지 말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열정에 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불끄지 말라는 것은 열정”을 가지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정, 교회를 위한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합니다. 불 꺼진 싸늘한 난로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식어버린 구둘장 방바닥처럼 싸늘해선 안 됩니다. 계 3:16절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덥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미국의 심리학자 ‘밀그램’ 이 실험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뉴욕 번화가의 인도에서 한 사람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건너편 빌딩 6층을 유심히 올려다보는 행동을 하게했습니다. 그랬더니 지나가던 사람들 42%가 같이 올려다보더랍니다. 
3명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땐 60%의 사람들이 3명을 따라 같은 행동을 했고 5명이 했을 때는 86%의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밀그램이 한 이 실험의 결론은 단 세 사람만 있으면 최종적으로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불러 훈련시켰지만 그 중 3명과 중심적인 사역을 합니다. 그들은 1세기 역사를 변화시켰으며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 때 12지파를 통하여 가나안 땅을 점령하였지만 선봉장에 서서 적을 섬멸하며 땅을 점령하는데 앞장 선 지파는 세 지파였습니다. 세 명의 수가 작은 수가 아닙니다. 

열정을 가진 세 사람이면 수많은 군중을 모을 수 있습니다. 
물이 100도가 되어야 증기기관차를 움직이든 열정을 가진 세 사람이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류가 누리는 역사적 산물이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입니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편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청각 장애 가운데서도 한 곡을 쓰기 위해 10번 이상 다시 썼고, 최후의 만찬은 무려 10년에 걸쳐 그린 그립니다. 열정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고후11:2)" 라고 했습니다. 그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하였고 열정으로 한 시대를 움직이었습니다. 열정이 있습니까?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끄지 말아야 열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시 일으키고 언제나 타오르게 해야 할 불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모임의 불입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교회는 모이는 불이 있었습니다. 행 2: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 10:25절에 보면 주님의 재림 즉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모이는 불이 식어질 것에 대하여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급속하게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던 이유 중에 하나가 모이는 일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주일 예배 뿐 아니라 새벽, 철야, 금식, 산상기도 등 모이기를 힘썼기 때문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은 카할입니다. 회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카할이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에클레시아”로 번역됩니다. 뜻은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모임 공동체입니다. 모여야 교회가 됩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모이는 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마 18: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횟수를 줄이면 안 됩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교회에 모이는 횟수가 자연적으로 증가합니다. 모이는 불을 타오르게 합시다. 모임의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모일 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모이는 열정이 있으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중직자들부터 모이는 열정을 냅시다. 모여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열심히 말씀을 들으면 부흥의 불길이 붙기 내 마음에서부터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 전파의 불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복음을 내 나라 내 땅에서 같은 동족에게 전하면 전도하는 것입니다. 말이 다르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합니다. 복음 전파는 주님이 주신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복음 전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왜냐면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야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마 24:14절에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라고 했습니다. 당장에 큰 열매가 없어도 우리는 전도와 선교의 불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교회에서 선교한다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전도와 선교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복음 전파의 열정을 불태워야 합니다. 교회가 지상에 존재하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이 바로 선교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해야할 일 도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을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이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선교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전도의 불, 선교의 불이 꺼진 교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선교의 불이 꺼지면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셋째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마 24:12절에 보면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사랑의 불이 끊임없이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돈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압니다. 정치나 외교문제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미국 작가 잭 캔필드가 쓴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직장 여성이 저녁 귀가 길에 다른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두 차의 앞뒤 범퍼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그녀의 차는 출고된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에 남편을 졸라 겨우 마련한 차였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기 위해 차 안에 있는 큰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때 종이쪽지 하나가 봉투에서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큼지막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고가 날 경우에 이것을 잊지 말아요. 내가 사랑하는 건 차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걸!" 

그렇습니다. 
요일 4:18절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상처 받은 마음들이 나의 사랑을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서로를 감싸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고전 13:13절에서 “믿음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천국이 오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소망도 그 나라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까지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합니다. 

요일 4:20-21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생 텍쥐페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서로 마주보고 싸우지 말고 같은 방향을 함께 봅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불길을 바라봅시다. 열정이 있는 신앙 빛이 있는 신앙 그래서 사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합시다.

하루는 에디슨의 한 친구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되어 사회로 첫 걸음을 내딛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일평생을 살고 느끼면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되었던 것” 한 가지를 자기 아들에 말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이 그 친구의 아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일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게"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쯤 설교가 언제 끝날까하고 시계를 보고 싶으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시계를 보든 안보든 설교가 끝나야 끝납니다. 

에디슨이 친구의 아들에게 말한 “일평생 시계를 보지 말라” 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하는 동안에는 그저 열심히 일만하라는 것일 것입니다. 보수라든가, 일함으로써 생기는 그 다음 결과라든가, 칭찬이라든가, 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일하는 동안에는 오직 그 일만 열심히 하라” 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팔십이 넘은 그의 생일 축하파티에 친구들이 다 모였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요즘 생활이 어떠한가?" 라고 물었습니다. 에디슨은 "나는 매일 다섯 시간 쉬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실에서 일하네. 나는 장례식 3일 전까지 이렇게 일할 걸세." 라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 에디슨은 그가 미리 얘기한 그대로 일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에디슨이 팔순이 넘도록 일할 때, 무슨 다른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보수를 생각한 것도 아니고, 칭찬을 생각한 것도 아니고, 성공이나 명예를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일한 것 뿐이요, 일을 즐겼을 뿐입니다. 일에 열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일에 도취된 것뿐입니다. 그 열정이 그를 성공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머슨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업적은 강한 열정의 결과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불을 다시 일으킵시다. 모임의 불을 일으켜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며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웁시다. 그리고 복음전파의 불을 일으켜서 전도와 선교에 열정을 쏟읍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불을 일으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이웃들을 긍휼히 여기고 서로 용서합시다. 
주님 오실 때에 싸늘하게 식은 가슴으로 설 수 없습니다. 

냉냉한 가슴으로 어떻게 주님을 맞이합니까? 이시간 성령의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합시다. 모임의 불을 일으켜 주옵소서. 전도의 불, 선교의 불을 일으켜 주옵소서. 사랑의 불을 일으켜 달라고 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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