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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닻 소망 (히 6: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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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닻 소망 (히 6:17~20)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다에 비유하여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바다와 같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 척의 작은 배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닻과 같이 붙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에“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라고 하셨습니다.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험한 세상을 버티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철강 왕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볼 폼 없어 보이는 그림 한 폭이 벽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도 아니었습니다. 그림 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나룻배에 노 하나가 배 위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초라한 그림이었습니다. 그 배는 물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썰물에 밀려 황량한 모래사장에 놓여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카네기는 보물처럼 아꼈다고 합니다. 

그가 춥고 배고팠던 청년시절 어느 날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카네기는 나룻배 밑에 작가가 적어놓은 글을 읽고 희망을 가졌다고 합니다.“반드시 밀물이 밀려오리라.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카네기는 이 글을 읽고 눈을 번쩍 떴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춥고 배고픈 역경의 나날이지만 “밀물”이 밀려올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 글귀가 카네기로 하여금 시련을 극복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훗날 세계적인 부호가 된 카네기는 자신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준 나룻배 그림을 고가에 구입하여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곧 소망의 힘입니다. 

1. 사람의 소망은 배의 닻과 같습니다. 

항해하는 배에 꼭 있어야 할 장비가운데 하나가 닻입니다. 닻은 파도가 칠 때 바다 밑 땅에 박혀 배가 표류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닻이 없는 배는 파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에는 반드시 닻이 있습니다. 작은 배는 작은 닻, 큰 배는 큰 닻, 배마다 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저마다 소망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소망이 있습니다. 농부는 농부로서의 소망이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소망이 있습니다.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소망이 있습니다.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소망이 있습니다. 목회하는 목사에게는 영혼구원과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려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모든 활동과 노력의 배후에는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다면 일할 힘을 잃게 됩니다. 소망이 없다면 노력할 용기가 사라지게 됩니다. 소망이 없다면 인내할 의지가 없어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살을 합니까? 소망이 사라진 사람의 최후 선택이 자살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소망은 한시도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삶의 필수요소에 대해 고린도전서 13:13에 말씀하시기를“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절대 소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13장 5절에 약속하시기를“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본문인 17절~18절에도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지키신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맹세로 보증하신 것이며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과 맹세는 히브리서 6장 13장~14절에 기록된 말씀“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험한 세파를 이기고 승리한 다윗은 시편 62편 5절~8절에 말하기를“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우 가난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에 8남매를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 한 이들은 매일 새벽 자녀들을 깨워서 가정예배를 드린 후 또 교회에 나가서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장로와 권사로 교회를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를 드리기 위해 집을 나섰던 부모는 물에 흠뻑 젖어 되돌아왔습니다. 빙판길에 미끄러져 강물에 빠진 것입니다. 옷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이들은 몸도 녹이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고 다시 교회로 갔습니다. 자녀들의 가슴에 이런 부모의 모습이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으며, 부모의 기도 제목대로 모두 장로와 권사가 됐습니다. 특히 이중 한 명은 법무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됐고, 또 한 명은 제14, 15대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또 한 명은 미션스쿨의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또 두 명은 탄탄한 기업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 가족이야기는 김승규 장로와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을 역임한 김명규 장로의 가족이야기입니다. 

이들 8남매는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신앙교육이 라고 말했습니다.“항상 큰 비전을 갖고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하는 신앙인이 되라. 남에게 유익을 주고 선을 베푸는 꿀벌 같은 인간이 되고 이웃 교회와 사회 에 덕을 끼쳐라.”이것이 이 가족의 전통적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들은 이 기도의 힘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손들도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안의 소망은 반드시 때가 되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Your God is too Small" 이라는 책은“네 인생의 크기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가 얼마나 좋은 조건으로 인생을 출발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을 하나님도 사랑하셨습니다.“이새의 아들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하신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2. 이 세상의 소망은 한계가 있습니다. 

배의 크기에 따라 닻의 크기가 다르듯 사람마다 바라는 소망도 다릅니다. 학생의 소망은 지식과 인격의 함양일 것입니다. 농사하는 농부의 소망은 풍년일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의 소망은 사업의 번창일 것입니다. 예술가의 소망은 걸작을 창작하는 것일 것입니다. 과학자의 소망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의 소망은 지위나 권세, 명예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세상의 소망에는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소망하는 것들이 그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안 되는 것이 더 많은 듯합니다. 학문을 탐구한다 하여 다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한다 하여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짓는다 하여 다 풍년을 맞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가라 하여 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소망을 갖는다하여 다 그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진 소망에 실망이 있고, 비극이 있습니다. 설사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기대했던 것만큼의 만족은 없습니다.“돈만 모으면”하다가도 모아 놓고 나면 그렇게 만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Kodak"이라는 사진기나 필름을 우리는 잘 압니다.‘Eastman Kodak'이란 사람이 미국인으로서는 제일 먼저 손 사진기를 만든 사람입니다. 필름도 제일 먼저 만든 사람입니다. 미국‘Rochester New York’에‘Eastman Kodak Company'가 들판 하나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회사를 소유할 정도로 사업가로서는 대성공을 거둔 인물입니다. 이렇게 사업에 크게 성공하고 많은 돈을 모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처절한 실패로 끝을 맺었습니다. 삶의 환멸을 느껴 자살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다 그렇습니다.“내가 박사만 되면”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연구에 몰두하여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할 곳이 없어 고등실업자가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대통령이 되면”하면서 그 정상의 자리에 오르고자 피눈물 나는 투쟁을 했습니다. 드디어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소망이 이루어진 후 그에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국민들의 가슴에 환멸만 남기고만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저 사람과 결혼만 하면”하고 행복의 꿈을 꿨는데, 그 결혼이 불행의 덫임을 몰랐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마치 바다 속에 있는 해초와 같아서 물속을 들여다볼 때에는 굉장히 아름다우나 정작 손으로 잡고 꺼내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다 잠깐입니다. 곧 쇠하고 맙니다. 시듭니다. 떨어집니다. 썩어집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다 안개와 같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망의 결국은 식은 재로 화하고 맙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참 소망이 아닙니다. 썩은 소망이요, 죽은 소망입니다. 결코 영혼의 닻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1장 2절에 말씀하시기를“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2장 11절에 밝히기를“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 19절~20절 말씀에“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후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도 장차 주님계신 그 곳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참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는 닻과 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때가 되면 다 없어지지만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계신 하늘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꿈의 성취 즉 성공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서는 흔히 자기가 꿈꾸는 것을 성취하는 것을 성공으로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 성공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이룬 것을 보람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루어 놓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보람되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고생하며 이룬 것이 도리어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삶의 목적에 대해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먹든지 마시는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9절에는“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에는“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우리들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 하나님과 계산을 해야 할 날이 옵니다. 마태복음 5장에 있는 달란트 비유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계산하시는 원칙은, 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이웃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공은 자기의 소망을 이루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데 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17절에 말씀하시기를“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하셨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아니한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말씀하시기를“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철저한 십일조로 큰 복을 받은 미국의 존 록펠러의 인생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30세에 100만 달러를 모았고 43세에 미국 최대의 정유 회사를 세웠습니다. 53세에는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대부호가 됐습니다. 그때 그는 음식을 전혀 소화해 내지 못하고 눈썹과 머리카락이 빠지고,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불치병을 앓았습니다. 이제 그의 남은 삶은 고작 1년이라고 의사는 진단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움을 겪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성경을 폈던 록펠러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그는 이 말씀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축복으로 받았지만 자기만 위해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많은 재물을 교회와 구호단체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록펠러의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록펠러재단을 세워 많은 사회사업과 선한 일을 하기에 힘썼습니다. 24개 대학과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헌납했습니다. 그 후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욕심의 자물쇠로 마음의 문을 닫으면 기쁨과 건강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을 위해 사랑을 베풀면 건강과 행복을 선물로 얻게 됩니다.

소망은 배의 닻과 같습니다. 닻이 없는 배는 파도에 밀려 파선할 수밖에 없듯, 소망 없는 인생은 살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낙심과 좌절과 포기는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소망을 가지되 이 세상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참된 소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의 모든 것은 불타 없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삶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는 거룩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이 소망이 참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후회함이 없습니다. 
이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더욱 풍성한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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