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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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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I. 들어가는 말: 예수님과 초대교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에서 매우 뚜렷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자원하여 바치는 삶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저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신 것 자체가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위해서 사셨고, 그 뜻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은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바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을, 먹고 마시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 5:30에 보면,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나는 나의 원대로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행동지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으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선언하시기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당신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무서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고백하시고 순종하시어,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하나님의 뜻만을 위하여 세상을 살았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도 바로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행전 21장 14절에서 사도 바울과 초대교인들의 이런 신앙고백을 들을 수 있는데, 거기에 보면 성령님의 뜻에 의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 순례의 발걸음을 옮기는 바울과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행 21:1-14). 

이 때 바울의 앞에는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음을 성령님께서 말씀하셨고(“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롬 20:23), 바울의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그 사실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 되었습니다(행 21:4, 11절). 이 때 바울의 제자들과 사람들은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말렸습니다(행 21:12). 

그러나 그 때 바울은 “나는 지금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간다”(행 20:22)고 하면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담대히 외치고, 고난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의 길을 올라가게 됩니다. 이 때 바울의 결연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초대교인들은 마침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모두 함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요,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2.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고백의 의미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도 보았듯이, 그리고 사도 바울을 비롯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고백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그들의 고백은 은 하나같이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도 소원했고, 또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고 복종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백에는 도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이 고백에는 어떤 의미가 있기에, 우리 주님께서도 그렇게도 강조(“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고, 또 초대교회 교인들의 하나같은 고백이 된 것일까요? 

여러분, 사실 이 고백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영광을 돌리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분은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옵소서”라고 땀이 피가 되도록 간구하셨지만, 결국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고백하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귀하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도 가장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주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항상 그것들을 공급해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님까지 정말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사랑하는 외아들까지 우리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 어찌 그 이외의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제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룬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기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의 고난도, 슬픔도, 실패도,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변하여 놀라운 선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결과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도 가장 좋은 것이 이루어지는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 나의 간증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얼마나 섬세하게 계획하시며, 보호하시며, 섭리하시며 인도해 주시는 분이신가, 그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신가 하는 것을 저의 집안의 역사를 통해서도 확실하게 깨달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오늘 새문안교회에서의 저의 마지막 설교를 간증설교로 맺고자 합니다. 저의 가정에는 순교자가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제가 이미 여러 번 소개한 저의 친할아버님 되시는 고 주기철 목사님이고, 또 한 분은 저의 백부님이신 고 주영진 전도사입니다. 

저의 백부님 되시는 주영진 전도사님은 해방 후 평양 근교 긴제라는 곳에서 그 당시 벌써 500여명 출석하는 긴제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면서, 그 당시 교역자가 없는 평양 산정현 교회의 저녁 예배 설교를 하시다가,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한 달 뒤에 7월에 공산당에서 잡혀가 생매장 당하고 말았습니다. 대를 이어 순교를 한 것이지요. 

저는 주기철 목사님의 “세 째 아들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님 이야기, 그리고 큰 아버님의 이야기를 부모님과 삼촌들로부터 아주 자세하게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분들이 고문당한 이야기, 그리고 가족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희 집안의 이야기, 즉 주기철 목사님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할아버님의 고문당한 이야기, 그리고 저희 아버님들이 엄청나게 고생한 이야기들을 듣는데, 언젠가 한번은 제 마음속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아주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할아버님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하심으로 순교의 면류관을 쓰셨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족들은 그로 인하여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붙들려 감옥에 들어가시고, 그리고 그 교회는 강제로 문이 닫히고, 그리고 가족들은 평양의 그 추운 겨울에 영하 20도의 추위 때 사택에서도 쫓겨나 갈 곳이 없어 헤매고, 도대체 가족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는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저의 아버님들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은 없고, 방은 냉골인데, 할아버님이 감옥에 들어가시면, 할머니는 금식기도를 선포하십니다. 그러면 그 추운 겨울에 불도 안 때고, 음식도, 쌀 한 톨도 어디론가 싹 치워버리십니다(물론 먹을 것도, 뗄 감도 없었지만). 그리고 일주일 금식기도를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그 때에 오산학교에 다니시던 중부님(둘째 큰 아버님)은 겨울 방학 때 집에 오면 어머니가 매일 같이 금식기도 해야 한다면서 밥도 제대로 안주니, 어머니에게 대들면서 “어머니 왜 이렇게 매일같이 금식기도를 강요하십니까? 그리고 이제 겨우 초등학생들인 동생들을 왜 이렇게 굶기십니까?” 항의를 하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면 이미 소천하신 저의 선친(그 당시 초등학교 5-6학년 나이), 그리고 저의 숙부님(영락교회 은퇴 장로님, 당시 초등학고 1-2학년 나이)만이 집에 남아 밤새워 기도한다고 기도하다가, 추워서 서로 부둥켜 앉고 있다가 쓰러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나간 백부님이 살짝 들어와서 동생들에게 화장실 서까래에 “풀빵 얹어 놓았느니 그것을 먹어라”고 하면, 추운 밤에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 둘이서 꽁꽁 얼은 풀빵을 녹여가면서 먹었다는 일화서부터 무수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 평양에서 사택에서 쫓겨나 몇 년 동안 11번도 더 이사 다닌 이야기, 추운 겨울에 온 가족이 바깥에서 거적떼기 깔고 지내던 이야기, 밀가루, 수수자루 던진 이야기, 소망교회 은퇴 권사님 만난이야기, 동네 방앗간에서 이삭 줍던 이야기, 죽 한 그릇이 하루 식사, 굶기를 밥 먹듯 함) 

그리고 할아버님이 44년도 순교하시고, 해방 후 1년 만에 할머니마저 소천 받고 난 다음에, 저의 아버님들은 고아원으로, 통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님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를 못했습니다. 저희 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데도 무려 7개 학교를 옮겨 다닌 끝에 겨우 사설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학교에서의 아침 조회. 동방요배 안함. 순악질 목사 자식들이라고 퇴학당함. 사설 학원에서 있었던 이야기. 아버님 5학년, 숙부님 2학년에 입학. 동방요배 연락. 어머니와 의논. 결국 절을 하지 않고 할머님께서 자퇴시킴. 이렇게 여러 번 선친께서는 퇴학당한 끝에 17살에 겨우 사설 학원 같은 곳을 졸업. 영락교회 은퇴 장로님이신 주광조 장로님은 14살이 될 때까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봄)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제 마음속에는 아까 그 질문이 더욱 짙게 다가왔습니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순교의 면류관을 쓰셨지만, 결국 가족들은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라는 이 질문이 해결되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 질문을 해결함 받은 것은 제가 철이 들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후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은 제가 결혼 한 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느 날엔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제야 비로소 할아버지의 그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앞선 질문을 하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일종의 분노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8순의 어머니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다 내버려두고 자신만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낫지나 말지... ” 
(선친의 생애를 생각하면 화가 남. 1927년-1945년 18년 동안 그 온갖 고생을 함.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음. 해방 후에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짐, 6. 25를 겪음. 부산으로 피난을 가 밤에는 손양원 목사님이 운영하던 애린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통공장에서 일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함. 폐병에 걸려 노숙자처럼 길거리에서 죽을 뻔함. 역사의 희생물) 그래서 선친의 생각을 하면 할아버님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고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이 문제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었는가 하는 것을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저의 아이들을 보면서 할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과도 같은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읽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설교는 “다섯 가지 종목의 나의 기도”(마 5:11-12, 롬 8:18, 롬 31-39)라는 설교였습니다. 그 분은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결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아닌 우상 앞에 절대로 절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주님의 제단 앞에 바칠 것을 비장한 모습으로 설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 설교를 들은 2천여 명의 평양 산정현 교회의 교인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그 설교의 세 번째 대지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서의 의무도 지중하고, 가장으로서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1)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이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하였습니까?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성모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였을까?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80이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2)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일생을 내게 바쳤지만, 나는 남편 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이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되시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불초 이 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3) 세상에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네 명의 아들이 있고, 그 중에는 어린 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 것들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에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늘, 어린 자식 떼어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이 내 마음 끝없이 비참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위로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 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였을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나의 자식을 부탁합니다. 어미 죽은 어린 자식들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4) 나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을, 내 양떼들을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합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에, 이리 때 가운데 내 양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맡기나이다. 맡기나이다. 내 양들을 대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손에 맡깁니다. 

나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길 잃고 헤매는 자를 주님 손수 인도하여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 한 자를 주님의 보혈로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내 마음 차마 못 할 일입니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시옵소서. 

나의 늙으신 어머님과 나의 병든 아내를 주님께 부탁하고 나의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양떼들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현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을 따라 주님의 피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 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주님 따라가는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그분의 이 설교를 이제 홀로되신 8순이 되신 저의 어머니와 저의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이 설교가 얼마나 피맺힌 설교였는가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종의 이 피맺힌 설교와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기 위하여 눈물로 노모와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교인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의 이 기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제가 오늘 이 설교를 소개한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존경하는 저의 숙부님(영락교회 주광조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신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총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순교하시고, 해방 후에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누구 하나 돌보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고아원으로, 통공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6.25을 겪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저의 숙부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자살을 하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숙부님을 지켜주셨고, 마침내 당신의 종의 간구를 들으사 영육 간에 많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극동건설, 극동 쉘, 극동 도시가스 등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하심. 많은 물질적인 복을 받으심) 언젠가 그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아였던 내가, 아무런 세상적인 힘도 권력도, 백도 없던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정말이지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의 피맺힌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고 말입니다. 지금 그 분은 영락교회 은퇴 장로로, 극동방송 고문으로 섬기시면서 여생을 주님만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의 집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집안은 특별히 영적으로 놀라운 복을 주셔서, 제가 목사가 되고, 저의 누님 셋이 다 사모가 되었습니다. 매형 세분이 다 목회자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제 둘째 아이가 제가 가르치는 장로회 신학대학교 기독교 교육학과에 다니다가 지금은 공군 군종병으로 가 있습니다. 앞으로 제대하면 복학하여 신학대학원까지 마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 조카 하나가 저희 학교 신대원에 다니고 있고 또 하나는 졸업하여 미국에 유학을 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카 사위 하나가 목사입니다. 이제 앞으로도 주의 종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할아버님께서 지어주신 아버님들의 별명: 루터(주영진 전도사), 어거스틴(주영만), 사무엘(주영해 장로), 다윗(주광조 장로)==>참으로 놀라운 섭리와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결국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순교의 길을 가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던 “노모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양떼들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저는 본문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아니,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있는 자들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도, 눈물도, 절망도, 실패도, 심지어는 순교와 같은 죽음조차도 우리 하나님의 손에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들 앞에 서 있는 제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나는 열매 먹고 사는 사람이다. 숙부님에게 주신 할머니 유언, 시편 37:25-26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4. 초청의 말씀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려고 하십니까? 집문서 입니까? 땅문서 입니까? 아파트 등기부입니까? 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물려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1대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정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신앙의 유산, 바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위하여 헌신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는 그 모습, 그 신앙의 모습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하여 더 나아가 이 민족을 위하여 무릎 꿇고 눈물로 중보기도하는 그 신앙의 모습, 그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된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새문안교회 성도들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문안교회는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어머니교회입니다. 어둠과 절망의 땅에 120년 전에 복음이 전해지고 최초의 열매로 맺힌 교회가 바로 새문안교회입니다. 이 시간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5천년 동안 암흑과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암흑인지, 고통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빛을 전해 주고자 이 땅에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선교사님들의 눈물의 기도과 그들의 헌신과 섬김을, 우리 주님께서 받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한국 땅은 놀라운 은총의 땅이 되었고, 그 첫 번째 열매인 새문안교회가 여기 이 땅에 이렇게 우뚝 솟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문안교회는 우리 한국교회 전체를 보아서도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그리고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교회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중요한 신앙의 전통을 가진 교회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역사적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역사적 사역에 동참하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새문안교회의 이런 역사적 의미와 귀한 신앙의 유산을 생각하다가,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새문안교회의 건축은 바로 한국교회의 과제요, 따라서 한국교회에 속한 바로 저의 과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역사적인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사역에 오늘부로 저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였습니다. 그것이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은 제가, 믿음의 조상이 눈물로 뿌린 믿음의 씨앗이 자라서 맺은 열매를 먹고 있는 제가 동참해야 할 매우 소중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8주 동안의 저의 설교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늘 깨닫고, 그 뜻에 온전히 순종하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정성을 다해 섬김으로 헌신하십시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이렇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섬기고, 헌신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자자손손 귀한 은혜와 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바라기는 우리의 생애 전부를 주님의 손에 맡기어, 나를 향하신, 내 인생을 향하신, 그리고 우리 가족과 일터를 향하신, 그리고 우리 교회를 향하신, 그리고 64번째 8.15 광복절을 맞이한 우리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 모두의 섬김과 헌신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를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승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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