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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들 (행 1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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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들 (행 18:5~11)


한국 사람들 중에서 박지성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키도 그렇게 크지 않은 선수가 세계 최고의 명문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이드>의 당당한 주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박 선수는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산소통>이란 별명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런 체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언젠가 신문에서 박 선수의 체력의 비법은 산삼과 장어를 넣어 달인 즙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구미가 당기십니까? 박 선수 같은 체력이 부럽다면 우리도 구해서 먹을 수 있겠지요.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몸이 허약한 것은 그렇게 해서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인생입니다. 곧 쓰러질 것처럼 연약한 우리의 인생은 무엇을 구해 먹으면 강해지겠습니까? 도대체 그 비법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강건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비법을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공담을 듣기 위해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묻고 싶은 게 많을 것입니다. <어떻게 가난을 극복하고 부자가 되셨나요?, 어떻게 가출한 자녀를 바로 잡으셨나요?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슬픔을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어떻게 암을 극복하셨나요? 돕는 사람 하나 없이 사방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 이런 식의 질문은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 보다 먼저 악조건을 이기고 승리한 선배 한 분을 만나 보고자 합니다. 그 분은 <바울 사도>입니다. 본문 말씀에 바로 그 비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생각하기 전에 당시 바울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 바울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사도행전 17장부터 살펴보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가 그 곳의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의 성도들이 바울을 밤중에 베뢰아로 피신시켰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와서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바울은 할 수 없이 동료인 디모데와 실라와 헤어져 아테네로 왔습니다. 

그 후 그는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실라와 디모데와 합류했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도 핍박에 봉착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울의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너무도 편히 예배를 드리고 있기 때문에 핍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릅니다. 지난 번 중국에 갔을 때 김정광 목사님과 한 병원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한 조선족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 분의 남편은 전도사입니다. 그 분은 중국 국적을 가졌기에 북한에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 내외는 북한 주민들과 비밀리에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도사님 부인께서 북한 땅에서 체포되었고, 모진 고생 끝에 15년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붙들릴 때 입고 있던 얇은 여름옷을 입은 채로 감옥에 갇혀 엄동설한을 났습니다. 온 몸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먹지 못해 영양실조가 되었습니다. 그 감방에 17명이 있었는데, 너무 좁아 다 누울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의 죄목이 모두 같았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기적적으로 북한에서 구출되어 나왔고,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이뿐입니까? 여러분, 얼마 전에도 북한은 기독교인을 공개 처형했다고 합니다. 지금 북한에는 수 만 명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핍박입니다. 예배드린다고 잡혀가고, 말씀 배우다가 숨어야 한다면, 예배당은 빼앗기고 가정집에 숨어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바울은 늘 그랬고, 고린도에서도 같은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바울과 같은 신앙적 핍박은 없지만, 우리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치료해도 낫지 않는 질병 때문에 고통받으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 가난 때문에 너무도 고생하는 분들, 무슨 일이라도 해 보려 하지만 일자리가 없는 이들,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사업에 실패하여 깊이 절망하고 있는 분들, 자식 때문에 속이 시커멓고 썩고, 부부 관계에 실패하여 우는 이들, 섬기는 교회가 어려운 시험을 만나 영적 혼란 중에서 애태우는 분들,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 목회 자체에 절망하고 있는 목회자들, 교우들 간의 갈등으로 시험을 받아 신앙 자체가 흔들리는 이들.....잘 해 보고자 했지만, 힘이 다 빠져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엇을 붙잡고 일어서겠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지탱해줄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바울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바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힘든 상황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승리했습니다. 

바울은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일 년 육 개월은 우리 생각에는 짧은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요즘은 한 목회자가 한 교회에서 십 년, 이십 년, 평생을 목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날 같은 목회자가 아니라, 순회전도자였습니다. 그는 한 도시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일 년 육 개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 완전한 교회가 세워질 때까지 그 곳에서 버티어냈습니다. 화면에 보시는 사진이 고린도에 있는 바울사도 기념예배당입니다. 그 다음 사진은 교회 입구에 있는 역대 목회자의 명단입니다. 그 첫 이름이 <파울루스>, 바울입니다. 바울은 당당히 고린도에 교회를 세우고, 사명을 다했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거둔 승리를 영도중앙교회 교우들이 거두길 기원합니다. 바울이 악조건을 이기듯 우리도 이기길 원합니다. 바울이 끝까지 버틴 것처럼 우리도 버티길 원합니다. 바울이 목표를 이루듯 우리도 이루길 원합니다. 바울의 승리의 비결을 우리도 배우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슨 힘으로 고린도에서 버틸 수 있었습니까? 그 힘든 상황에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울에게 <밤중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밤중에 있었던 것은 주님과의 은밀한 데이트였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밤중에 바울 사도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밤중의 사건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바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본래 바울은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주님의 사람이 될 때부터 그는 비밀이 많았습니다. 그는 본래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렸던 인물입니다. 그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기 위하여 가던 어느 날 정오쯤 되었을 때, 그는 정오의 햇빛 보다 더 밝은 빛에 사로잡혔습니다. 강한 빛이 그를 비추었습니다. 그는 땅에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2장 9절에 보면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료들은 빛은 보았지만, 소리는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남들이 듣지 못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게 그의 비밀이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그를 죽이려 했을 때, 천부장이 그를 군부대 안에 보호하고 있을 때도 밤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을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안심하라. 유대인들이 널 해칠 수 없다. 넌 로마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비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 지중해를 건너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무서운 폭풍으로 배가 거의 뒤집힐 지경이 되자 모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담대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밤중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 바울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비밀을 공개했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게 바울이 끝까지 버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주님과의 비밀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은 그를 위로하셨고, 격려하셨습니다. 약속하셨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우리가 주님을 사적으로 만나길 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건 주님과 우리 사이의 비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적인 관계를 좋아하십니다. 은밀한 데이트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공적인 데 너무 관심이 많습니다. 공적인 것이란 직분, 신앙생활을 한 연수 등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같은 직분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게 아닙니다. 10년, 20년, 30년 교회에 다녔다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 주지 않습니다. 영적 파워는 거기서 나오지 않습니다. 참된 힘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의 교제입니다. 

최근에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님을 만나 개인적으로 상담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냥 이런 공적인 예배에만 한 번 다녀가시는 것은 아닙니까?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다녀가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공적 직함을 다 버리고,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너무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한 연약한 인생으로서 주님 앞에 만남을 요청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매우 존경하는 선생님이 계시다고 해 봅시다. 그 분만 만나면 지금 자신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수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그 분은 너무 만나기 힘든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념식장에서 그 분을 먼발치로 보았다면 무슨 도움이 될까요? 물론 사람들에게 말하겠지요. <난 그 선생님을 알아, 오늘도 먼데서 보았는걸...> 그러나 그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념식이 끝난 후 선생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저 아무개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인사도 드리지 못하다가 불쑥 나타나 죄송합니다. 저 혹시 제게 시간을 한 번 내 주시겠습니까?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약속이 잡혔다면 그 약속을 깨서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어렵게 성사된 만남인데요. 만사를 제쳐놓고 나가야지요. 만났더니 그 분이 사정을 듣고 말씀합니다. <진작에 찾아오지 그랬어. 걱정 마. 내가 도와 줄 테니, 식사나 잘 해> 그 다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집에 돌아오면서 싱글벙글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저 사람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친구가 물을 것입니다. <그 문제 어떻게 되었어?> <응, 다 해결됐어!> <어떻게?> <응, 그런 게 있어. 비밀이야!>

이런 비밀스런 기쁨이 우리에게도 있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그 비밀스런 기쁨을 선물해주실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통해 비밀스런 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 비밀이 밤중에서 생기고, 낮에도 생기고, 새벽에도 생겨나길 원합니다. 

그리고 아십니까? 주님은 우리가 힘들게 찾아가서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오셨음을 아십니까? 주님은 바울 사도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찾아오는 주님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 분의 내민 손을 잡으십시오. 찾아오신 주님께 문을 여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여 일어서십시오. 주님만이 우리의 힘이시며, 의지이십니다. 

다윗은 이런 비밀스런 기쁨을 맛보면서 살았던 사람들 중의 한 분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그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편 7-8절의 말씀입니다. 

또 시편 5편 11절에서는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죽이려는 위협에서도, 무수한 전쟁에서도 다윗을 지탱해 준 것은 주님으로부터 얻은 비밀스런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비밀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밤중의 사건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께 데이트를 신청하십시오. 와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다윗처럼 하십시오. 시편 16편 7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할렐루야! 

뉴기니의 숲 속에 나무로 엉성하게 지어진 한 예배당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는 주일 예배가 끝난 후 언제나 예배당에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슴에 팔로 십자가를 그린 뒤 강대상을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그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던 선교사가 물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릎을 꿇고 무엇을 하십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탱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버팀목입니다. 하나님을 통해 어려운 삶을 이겨나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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