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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 (엡 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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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라 (엡 2:11~22)

    
설교내용       
1871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돌판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이방 사람은 이 담 안에는 들어오지 못함. 만일에 들어오게 되면 죽 을 것임. 그러나 그 책임은 본인에게 있음 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의 가장 안쪽에는 소위 제사장의 뜰이 있어서 이 뜰에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족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스라엘의 뜰이 있어서 이스라엘 남자들은 거기까지 접근이 허용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인들의 뜰이 있어서 이스라엘 여성들이 접근이 거기까지 허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의 뜰에서 다섯 계단을 올라가면 1.5m 높이의 바리케이트가 쳐 있었고 거기서 다시 열네 계단을 올라가면 존재하는 뜰이 바로 이방인의 뜰이었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이 유대인에게만 출입이 허용된 성전 구내에 침입을 시도하는 모든 이방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문이 거기에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택하여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어 가도록 큰 비젼을 주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선민이라는 자만으로 이방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이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고 교만에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오신 이유가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하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평화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화목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평안을 주기위하여 오셨습니다. 

17∼18절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던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원수처럼 살아야 했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빗장을 여신 것입니다. 주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주님이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들려 주신 말씀이 내가 아버지와 하나된 것같이 너희도 하나 되고 너희가 내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이 말씀을 강조하여 들려 주셨습니다. 주안에서 하나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성경 창세기에는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진 이유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형상으로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히 기뻐 하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단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고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 언약을 지키면 인간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이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그 과일을 따먹습니다. 이 불순종이 인간을 죄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과 담을 쌓게 되어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 갈 수가 없게 되고 그래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이 됩니다.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복의근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으로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모든 축복을 잃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많이 가지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복입니다. 건강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 하나님 없는 건강은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이 복의근원입니다. 복의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우리 가슴에는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 심장은 여러분의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뛰고 있습니다. 내 심장이면서도 내가 잠시 쉬게 하거나 멈추게 하거나 빨리 뛰게 하거나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심장이 뛰는 동안만 살 수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다 죽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의사들도 사망진단을 심장이 뛰는가 아닌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이 심장이 멈추게 되는 요인이 있습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심장이 멈추어 버립니다. 우리 혈관이 막혀서 피가 공급되지 않으면 심장이 멈추고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영혼이 죽습니다. 영원히 죽습니다. 육체는 다시 살릴 수가 있습니다. 영혼은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5장 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했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데 있습니다. 오늘 성경 11절 이하의 말씀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 달라진 우리의 신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에 보면 그때에 하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때 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살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본문 13절로 가면. 이제는 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된 이제는 이라는 말입니다. 그때 와 이제 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스도 밖에 살던 때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게 된 이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가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록 몸은 같은 몸이지만 그 영혼이 옛 것은 지나가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12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 하는 자들로 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한마디로 비참 합니다. 

우리는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믿음 없이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살면서 실패의 생활을 거듭해 왔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던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었습니다. 우리는 전에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13절을 보십시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전에는 우리가 멀리 있었습니다. 할례 받은 유대인에게 비하면 할례 받지 못한 사람으로 멀리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 밖에서 멀리 살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으로, 이방인으로 멀리 살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멀리 살았었습니다. 이와 같이 살던 우리가 이제는 가까워졌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하나님과 멀리 있던 우리가 예수 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복의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18절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나라의 외인이 아닙니다. 이방인이라고 취급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나그네도 아닙니다. 갈 곳이 분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시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란 말은 하나님의 가족(The Family of God)이란 의미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영광스런 단어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방인처럼, 방문자처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의식의 변화를 통하여 새 신분을 부여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이데올로기나 과정을 이수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으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세상의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고 오직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21절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성전(聖殿)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하나님의 가족’이란 개념과‘하나님의 성전’이란 개념이 우리의 신분을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당시에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여겨지는 아데미(Artemis)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의 위엄과 웅장함을 익히 아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너희가 성전이다”는 말은 생생히 이해될 수 있었고, 따라서 그들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22절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미 우리 주님께서 우릴 성전 삼으셨지만 성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함께”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우리보다 더 열악한 형편에 있었지만‘함께 지어져 가고’있었습니다. 바울은 우리를 주님 앞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완성 되어가고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어 갑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셨습니다. 모퉁이 돌이 되어서 서로 연결하게 하셨습니다. 주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가족이 하나 되고 이웃이 하나 되고 성도들이 하나 되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함께 복의 복을 받으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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