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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일꾼이 필요합니다 (행 6:1~7) - 직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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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꾼이 필요합니다 (행 6:1~7)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생포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붙잡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침몰되어 가는 꿈과 미래를 다시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희미해져 가는 믿음의 등불을 다시금 환하게 밝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그의 길이 형통하고 그가 하는 일에 복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창 39장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애굽의 노예라고 하는 험난한 인생길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인생길에 동행하시고 인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생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일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리라!"는 믿음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겠다는 자기 선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그렇게 선언을 하고 꿈을 꾼다고 해서 모든 인생이 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조건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일들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존귀한 자로 나를 세워주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것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관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거룩한 것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것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으로 관심의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바뀌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확실히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냥 타협해 버리고 맙니다.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놓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천은 이론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때는 잘못 배운 것이 차라리 배우지 않은 것보다 훨씬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어정쩡한 믿음이 참된 믿음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어느 때엔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그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그 기회를 붙잡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그의 가는 길이 형통하다고 했습니다 ♬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 어떤 상황에 이르든지 오직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자신의 유능함이나 고귀함을 인정받고 평가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것은 입을 가진 사람은 할 말이 언제든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고귀함과 깨끗함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자 해명하고 변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 믿는 척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자기 증명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 표현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다"라고 하는 증명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자기 표현을 통해서 "나를 보고 나를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자신됨을 인정받으려고 해명하지 않습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애써 잘 믿는 척 해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삶의 모습 속에서 자기 증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잘 믿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믿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잘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마음껏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적극적인 자기 표현을 하는 것이 믿음의 축복을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매일 매 순간 마다 삶의 열정이 있습니다. 삶의 희망찬 열정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아주 특별한 축복입니다. 삶에서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희망 찬 열정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희망찬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느 시대나 어느 역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라를 바로 잡았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만나게 되면 그의 신앙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의 인간됨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일거리를 보게 되면 일꾼 됨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일들을 보고서 그 일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으로 알고 그 일을 사명으로 붙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일이 부담스러워서 물끄러미 뒤로 물러나 구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일들 앞에서 구경꾼이나 방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명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단순한 꿈보다는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것이 내가 주 앞에서 복을 받는 길입니다.

내가 교회의 집사가 되고, 권찰이 되고, 교인이 되었다고 하는 소속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여입니다. 소속감에 만족하지 마시고 그 일에 참여를 하시기 바랍니다. 참여가 기적을 낳습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알아 가는 믿음보다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시간마다 증거하는 행동으로 옮기시기 바랍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십시오. 차이점을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가는 길에 남과 다른 차이점을 행동으로 보여 주십시오. 주님의 일 앞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기 위해서 몸부림치십시오. 이것이 충성된 주님의 일꾼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일꾼을 세웠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도들이 보다 원활하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땅의 교회가 일꾼을 세우는 것은 목사들이 보다 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목회는 목사가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일꾼으로 세움을 받은 여러분들은 목사가 보다 원활하게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우셔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와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꾼 된 여러분은 전도와 봉사와 재정적인 부문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책임을 감당해 주셔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교회 행정이나 봉사하는 일에 시간을 다 보내면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성도 여러분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부흥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기도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연구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설교하는데 시간을 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 성장을 위해서 모두가 지켜야 할 교회의 질서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의 질서도 무너집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의 성장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똑같은 본문의 말씀에서 주님께 쓰임 받는 일꾼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참되고 충성된 일꾼은 세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워 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앞에서 참되고 충성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부단한 자기 성찰과 자기 노력이 없는 일꾼은 게으르고 나태했던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 앞에서 책망 받을 수밖에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필요로 하고 주님께서 찾으시는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 앞에 서야 합니까?

첫째로, 교회가 필요로 하고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의 어떤 모임이나 단체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일꾼은 그가 가지고 있는 기능과 능력과 학력을 우선하기보다는 영적인 성숙도를 우선합니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이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말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은혜의 역사가 실질적으로 그의 삶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영성에서 끝나고, 말로만의 영성에서 끝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실제적으로 미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말로만 충만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아름다움을 그의 삶 속에서 실현시키는 사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솔직히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여전히 육적인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함께 믿음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일꾼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교회에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고 구제와 봉사를 많이 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가지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직분자들이 다 그렇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교회가 필요로 하고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켄 가이어는 '묵상하는 삶'에서 지혜라는 뜻을 "살아가는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일으켜 주고 그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가 없으면 죽어 가는 기술로 가득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순수하고 믿음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어서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그의 열심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나 교회에 상처를 주게 되고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보다 지혜로운 일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분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리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조직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앞뒤를 아는 사람이요, 서야 할 자리와 서지 말아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아는 사람입니다. 평화를 만들어 가는 화해자의 모습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 것을 주장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평안해집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교회는 날마다 든든히 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가족 여러분들이 모두가 이런 지혜로운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보면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식은 부족한데 지혜가 풍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차원이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 주님이 찾는 일꾼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식은 자기도 모르는 강퍅함과 교만으로 적을 만들어 갑니다. 

반면에 지혜는 사랑과 온유와 슬기와 조화로 팀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지식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가 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동기는 좋았는데, 결과가 나빠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을 위해서 했고, 교회를 위하여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이 열심만 있어도 문제입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혜로운 일꾼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기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그들 자신에 관한 이야기와 가문의 족보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에게도 동일하게 말하기를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지혜로운 일꾼이 되기를 원하시는 사랑하는 여러분, 논쟁하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논쟁은 자기의 지식을 과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그 결과는 언제나 유쾌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논쟁에서는 지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주님의 교회는 똑똑한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주님의 일을 은혜롭게 잘 감당할 수 있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교회가 필요로 하고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가 주님의 일꾼입니다. 성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라고 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은 칭찬 듣는 조건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칭찬의 대상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칭찬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고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칭찬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4절에 보면,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며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8절에서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칭찬 받을 만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일군이 되려면 사람들로부터 지탄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으로부터 칭찬 받아야 합니다. 이웃들로부터 칭찬 받아야 합니다.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모든 사람의 평판이 좋은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교회에서 칭찬 듣는 사람이 될까요? 말없이 조용히 믿은 대로 실천하면 칭찬 듣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고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남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고,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배경막이 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선택된 일곱 집사들은 소매를 걷어부치고 교회의 영적 성숙에 대한 모범적인 길을 앞서 행했습니다. 교회와 이웃을 돕는 강한 열정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칭찬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에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은혜로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칭찬 듣는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 교회는 날마다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7명의 일꾼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7이라는 숫자에서 놀라운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역"이라는 것입니다. 혼자 일하지 않고 7명이 서로 은사가 다르지만 그들이 협력하고 섬기고 도와주는 관계를 보게 됩니다.

독창과 합창의 차이를 아십니까? 독창은 자기의 소리를 가지고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합창은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합창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리를 죽이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공동의 소리를 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하모니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합창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소리가 강한 사람은 그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목소리가 아름다워도 합창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일꾼은 혼자서 하는 독불장군이 아닙니다. 마치 합창과 같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자기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일은 함께 감당하는 것입니다. 경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협력하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소리, 자기의 의견, 자기의 감정을 가지고서는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참된 일꾼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가 시끄러워집니다. 분열이 일어납니다.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소리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감정을 죽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맞지 않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역사상 최초로 일곱 명의 사람들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결과가 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렇습니다. 좋은 일꾼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더 크게 부흥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어려운 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힘드는 일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낙심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셔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살고, 주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길입니다. 잘되는 교회는 결정할 때는 바로 결론을 내리고 일할 때는 각자 자기 일을 맡아 열심히 수고하는 교회입니다. 

반면에 어려운 교회는 결정할 때는 절차가 복잡하고 말이 많다가 정작 일할 때는 잠잠하고 조용하여 나서는 사람이 없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잘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훗날 주 앞에 섰을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듣는 주님이 인정하시는 일꾼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지금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일꾼은 하나님의 진리와 뜻 앞에 서서 일감을 사명으로 알고 충성되게 감당하는 일꾼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미래는 교회의 외형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바로 '그 사람'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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