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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사의 뼈 (왕하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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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뼈 (왕하 13:20~21)


며칠 전에 저는 TV에서 ‘코끼리 떼의 대이동’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아프리카 초원에 건기가 왔습니다. 건기가 오면 아프리카의 모든 동물들이 이동하게 됩니다. 어느 철에는 어떤 곳에 그들의 먹을 것인 풀들이 넉넉한가를 생각하고, 어떤 철이 되면 한 쪽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초원의 물을 찾아서 동물들이 이동하게 됩니다. 어마어마한 코끼리들이 물을 찾아서 대이동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이동하던 중 사막폭풍이 몰려왔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큰 코끼리들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습니다. 

그 중의 한 장면입니다. 어미 코끼리 한 마리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미 코끼리만 대열에서 이탈하여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아기 코끼리 한 마리도 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경험을 가진 어미 코끼리는 기어이 길을 찾아서 본래 목적지인 호수에 도착하였습니다. 아기 코끼리도 어미 코끼리와 함께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덩치를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코끼리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모릅니다. 아기코끼리가 지쳐 쓰러져있을 때면 어미코끼리가 코로 달래서 일으켜 세우면 다시 일어났습니다. 어떨 때는 아기코끼리가 가지 않으려고 꾀를 부린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또 어떻게 하든 아기코끼리를 일으켜 세워 같이 갑니다. 몇 번이나 그런 고비를 넘겨 아기코끼리도 엄마코끼리와 함께 호수에 도착하였습니다. 

호수에 도착한 이들은 물이 가득한 호수에 풍덩 뛰어 들어 수영을 하였습니다. 그 많은 코끼리들이 물속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본 저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걱정스러웠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 먼 거리를 온 코끼리들이 저렇게 깊은 물에 빠져 죽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수영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간혹 광고에서 아기들이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꼭 그것과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어미 코끼리에 비해 손바닥만한 아기코끼리도 엄마와 함께 헤엄을 치는데 정말로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다른 장면입니다. 같은 코끼리 떼에서 어린 코끼리 하나가 대열을 이탈했습니다. 이 아기 코끼리는 코끼리 대열에서 이탈할 뿐만 아니라 어미 코끼리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길도 잃어버려 길을 찾아 얼마나 헤매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이 아기 코끼리는 기어코 사막에서 쓰러졌는데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아기 코끼리는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는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엘리사는 아기 코끼리의 어미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존재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엘리사가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이스라엘 왕이 찾아와서 죽어가는 엘리사를 보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전차와 기마병이여’ 라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습니다. 이는 ‘어르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어른이 안 계시면 이 이스라엘을 누가 챙깁니까? 나 같은 어린 아이가 왕으로 있는데 나 혼자서 이 하나님 백성을 어떻게 챙깁니까?’ 라는 의미로 왕은 이렇게 크게 소리쳐 통곡했습니다. 

엘리사는 정말로 위대했습니다. 여러 가지 기적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부하게 만들기도 하였고, 불치병인 나병을 쉽게 고쳤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정말로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강대국 아람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가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수차례에 걸쳐서 침공할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계획을 세울 때마다 마치 엘리사가 작전 계획서를 다 받아본 것처럼 훤하게 꿰뚫고 왕에게 방비할 곳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군사력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군사들을 그곳에 세우니, 그들이 방어벽을 뚫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그렇게 그때 그때마다 버티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사가 살아있는 한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을 침공할 생각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사가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가 죽은 지 1년쯤 되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장사를 지냈는데 이스라엘은 우리처럼 매장도 하지 않고 화장도 하지 않고, 자연적인 동굴에 두든지 동굴을 파서 둡니다. 이스라엘에서 동굴을 파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나뭇가지나 돌멩이로 쓱쓱 긁으면 파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자연적인 동굴도 많이 있고, 이런 동굴도 상당히 많이 습니다. 죽으면 시체를 천으로 말아 그런 동굴에 집어넣는 것인데, 엘리사의 시체도 그렇게 동굴에 두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은 지 1년쯤 되었을 때, 어떤 한 사람이 죽어 사람들이 그 사람의 시체를 운구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다른 동굴에 넣으려고 했지만 마침 그때 이스라엘 옆에 있던 다른 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겁에 질린 운구하던 사람들이 가다가 시체를 던져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때 그들이 던진 곳이 바로 엘리사의 시체가 있는 동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던져 넣었던 시체가 엘리사의 마른 뼈에 부딪치자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입니다. 살아있을 때에도 엘리사는 죽은 사람을 살렸는데, 죽고 나서 한참이 지나 뼈만 남았는데 그 뼈도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인데 여러분들은 이런 일들을 대할 때 잘못된 해석을 하지 않고 바르게 해석하도록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누가 이런 기적을 베풀었다, 어떤 곳에 기적이 일어났다’ 할 때 사람들이 쉽게 잘못 해석하는 것은 ‘위대한 종은 이 정도다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이런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보아라 이분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가’ 라는 해석을 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이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줄 모릅니다. 

인간은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그런 위대한 능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 그 어떤 사람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조심하고 주의해야할 것은 사람을 절대로 우상화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상화시키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국 영향을 받아 영웅으로 만들기를 참 좋아하는데 기독교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떤 사람을 우상화시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입니다. 우리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우상화 시키는 그 어른도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어떤 분을 존경한다면 이런 일은 하지 말아야합니다. 귀하다고 생각할 뿐 넘어가야합니다. 얼른 하나님을 보고, 사람은 잊어버려야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하시면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그가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하시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죽은 사람의 뼈도 하나님께서 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지팡이도 막대기도 하나님께서 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위대한 물건이 될 수 있고, 위대한 능력을 발할 수 있다’ 라는 것이 오늘 엘리사의 뼈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에 곳곳에 나옵니다. 

여러분, 어느 호텔이든 호텔에 가서 서랍을 열어보면 성경이 나오는데 거기는 전부다 ‘기드온 협회 증’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드온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사사였는데 어느 날 미디안이라는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미디안 군사들과 전쟁을 하였는데 기드온 군사는 형편없었습니다. 군사의 수만 예를 들어도 미디안 군사는 30만 정도 되었고, 기드온 군사는 300명 정도밖에 안 되니 1000대 1이 넘는 숫자로 힘든 전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무기라도 있어야할 텐데 무기도 엉망이었습니다. 기드온 군대 무기는 마치 장난감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는 나팔을 들고 갈 것, 두 번째는 횃불을 들고 가고 세 번째는 그 횃불을 숨겨갈 항아리를 들고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쟁하는데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군사에다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미디언 군사에 비해 삼백 명밖에 안 되는 군사에 장난감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스라엘은 완전하게 승리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전쟁의 승리가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 숫자에 있지 아니하고, 무기에도 있지 아니하고, 전술에도 있지 아니하고, 위대한 작전계획에도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이번에 이겼다고 하면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면 될 것 같습니까? 어림없습니다. 한 사람도 도와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성공’ 이라고 하시면 성공하게 됩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고 자본이 많아도 너는 ‘실패’ 라고 말씀하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팡이 하면 여러분도 모세의 위대한 지팡이가 생각날 것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키니 홍해가 갈라졌고, 모세를 들면 지팡이가 뱀이 되었는데 모세의 지팡이만 그러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론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아 지팡이를 던져라” 라고 말씀하시자 그 지팡이는 뱀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그 물건에게 능력을 주시면 능력이 있는 지팡이가 되고, 돌도 되고 막대기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엘리사의 뼈와 비슷한 이야기하나가 있는데 에스겔서 37장의 그 유명한 에스겔의 마른 뼈입니다. 이스라엘이 참담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주권과 자주독립을 빼앗기고 나라의 똑똑한 국민들은 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런 형편없는 지경에 하나님께서 어느 날 에스겔을 부르셨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골짜기로 가니 사람 뼈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짝 말랐습니다. 

에스겔이 가서 ‘마른 뼈들아 일어나라 뼈에 힘줄이 붙고 살이 붙고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거라.’ 라고 말하니 소리가 나면서 뼈가 합쳐졌고, 벌떡 일어나 어마어마한 큰 군대가 된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위대해서 그런 것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이 그런 능력이 있고, 그런 위대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때 에스겔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에스겔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 말씀하시면, 여러분들이 에스겔처럼 말할 때 그런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능력을 주시게 되면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회사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고,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여러분의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누구든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보면 대단한 기적에 상당히 놀랍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는 상당한 나라였습니다. 파죽시세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진군을 막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던 이스라엘이 점점 더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있을 때만해도 이스라엘 옆에는 아람이라는 나라 하나만 강대국이었습니다. 그 외 이스라엘 주변에는 모압이라는 약소국가가 있었는데 엘리사가 있을 때 모압은 이스라엘 앞에서 큰소리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모압이 엘리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을 마음대로 유린하였습니다. 모압의 정부 군대들뿐만 아니라 도적떼들까지도 약탈하였고, 재산을 빼앗아갔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이 일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여주십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탄식하는 마음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진군할 때 그것을 막을 사람이 어디 있었는가? 이스라엘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가나안에 있는 나라들이 벌벌 떨었는데 어찌하여 오늘 이렇게 되었는가?’ 라는 탄식이 오늘 본문 안에 숨어 있습니다. 

그 탄식을 예레미야 8장 18절과 19절에서는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그렇게 잘나가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나라의 주권도 잃어버리고 독립을 다 잃어버리고, 똑똑한 나라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다 끌려갔으니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멀리 바벨론에 끌려가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장탄식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내가 그렇게 예쁘게 잘 키웠는데 어쩌다가 저 인생이 저 모양이 되었는가, 내가 저 가정에 그렇게 복을 주었는데 저 가정이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가, 내가 저 기업에 복을 내려주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되었는가,’ 라고 하나님이 장탄식하는 것이 바로 예레미야 8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렘8:1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시온에 계시고, 그 가운데 계시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힘을 누리지 못하고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가’ 라고 하나님께서 탄식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소리를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 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렘8: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 년 내내 열심히 농사지었는데 추수할 때 다 빼앗아간다고 탄식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고 탄식한다는 것입니다. 이 탄식하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딸 내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8:21) 라고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8:22) 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내가 있는데,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내가 있는데 저 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되었는가’ 라고 장탄식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남의 일이 아닙니다. ‘고민만 하고 무거운 것이 가득 찬 그런 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가?’ 라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니다, 마음대로 뒤집어놓을 수 있고 버릴 수도 있고 얻어 올 수 있는 내가 있지 아니한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엘리사의 뼈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살아있을 때는 엘리사를 통해서 그런 일을 했고, 죽고 난 후에는 죽은 엘리사의 마른 뼈를 가지고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지 않았는가 이 일을 내가 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을 두고 가난에 빠지고 힘이 없는 나라가 되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평화를 잃어버린 비참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탄식하는 모습을 우리는 오늘 성경 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이지만 어떻게 보면 참 무거운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왜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하나님의 이런 권세와 능력을 누리지 못합니까? 답답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게 얽히고설키는 일들이 자꾸 생겨납니까? 나를 배신하고 나를 억울하게 하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데 왜 그렇습니까? 오늘 성경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그렇지 않는데 속으로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믿는 듯하고 잘하는 듯 하지만 실제로 속으로 보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많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단한 믿음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겨자씨 하나만한 믿음입니다. 여러분, 겨자씨 한 알이 얼마나 작은지 아십니까? 흰깨 한 알만합니다. 정말로 얇고 작습니다. 그런 믿음만 있어도 육지에 심겨져 있는 뽕나무가 뿌리째 들려져 바다에서 뿌리를 내려 살 수 있을 정도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에 얼마나 믿음이 없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나아만의 문둥병 치료 사건입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아람사람 즉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지만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나아만의 집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끌려간 여자 하인이 주인의 나병을 보고 안타까워 주인이 내 조국에 있는 어른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기만 하면 나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여 나아만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이스라엘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아람은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도 나아만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못하고 공경해야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왕이 나아만을 정중히 모셔 엘리사 집 앞까지 안내해드렸습니다. 그런 아람의 대장군이 오셨으면 얼른 나와서 반겨야했지만 엘리사는 문도 열지 않은 채 앉아서 사환만 내보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말했습니다. 왕도 벌벌 떨면서 대접하였는데 그렇게 대하니 나아만은 분통이 터졌습니다. 화가 나서 집에 돌아가려고 할 때, 부하 한 사람이 그에게 속는 셈치고 일단 그가 말한 대로 하고, 낫지 않으면 다 없애버리자고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하여 나아만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이는 내가 택한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이방나라 사람, 믿음이 손톱만큼도 되지 아니하는 나아만도 불치의 병을 낫게 해주지 않았는가, 이방사람도 겨자씨만한 억지믿음을 보고 내가 낫게 해주었는데 이스라엘 여러분들은 내 아들딸이 아닌가? 여러분들이 나에게 오기만 하면 내가 못해줄 것이 무엇이 있으며, 안 해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할진대 이스라엘은 왜 포로로 끌려갔을까요?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믿음이 없는 사람, 밉상스러운 존재로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줄 구석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초청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초청하셨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뿐만 믿지 않는 사람도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만도 오지지 않았은가, 나에게 오기만 하면 나에게 있는 길을 주겠다, 해결을 주겠다, 마음의 평안을 주겠다, 불행이 있느냐 이제부터는 행복을 주겠다, 가정에 평화가 없고 인생에 평화가 없느냐 누구든지 오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있는 그 정도 믿음만 가지고라도 나에게 오라 내가 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주 잘 표현 것이 누가복음 15장에 있습니다. 한 부잣집에 못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받아서 먼 나라에 갔습니다. 거기서 방탕한 삶을 살다 재산을 다 탕진하여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돼지가 먹는 밥이라도 좋아라고 먹겠는데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의 굶어 죽게 되었을 때, 이 아들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버지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악해도 아버지 집에 가서 아들이 아니라 품꾼의 하나로 받아주셔서 그저 밥이라도 먹여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저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내가 저의 아버지이고 저는 나의 아들이 아닌가? 이 아비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나? 품꾼이 무슨 말인가? 돼지 먹는 음식이 무슨 말인가? 무슨 악한 짓을 해도 나에게 오기만 하면 내가 뛰어나가서 얼굴을 비비고,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먹이고, 금가락지를 끼워줄 것이 아닌가? 내가 저 아들을 위해서 무엇을 아끼겠는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믿는 아버지, 우리가 믿는 예수는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여러분, 인생 살면서 고민이 있습니까? 힘든 일이 있습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여러분 앞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습니까?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엘리사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은 곧 우리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마른 뼈를 가지고도 죽은 사람을 살리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안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단하나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께 가십시오. 우리 주님께 가십시오. 우리 하나님의, 우리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놀라운 사랑이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정말로 놀라운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하나님께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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