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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치료하는 하나님 (출 15: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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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하는 하나님 (출 15:22~26)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에덴동산처럼 안전하고 평화롭고 풍족한 곳이 아닙니다. 
마치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자 두루 다니는 험악한 세상이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죄악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조금만 긴장을 늦추면 균형을 잃어버리고 쓰러질 수밖에 없고,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이별하는 슬픔을 겪게도 되고,
잘 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부도를 만나 도산하는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불구의 몸이 되기도 하고
교통사고, 폭발사고, 붕괴사고, 화재사고와 같은 끔찍한 일을 당하여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혹시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 살면서 아무런 아픔과 상처도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험악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기 위해서는 
끔찍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고, 
그 과정 속에는 부서지고 깨지고 찢겨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며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고난과 아픔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마치 나 혼자만 이런 고난 가운데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남들은 모두 멀쩡하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고, 
나만 버림받고 외면당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벧전5:9-10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리시라.” 할렐루야!

사람은 모두 종류가 다를 뿐이지, 동일한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은 잠깐 당하게 하시고 
결국은 온전하고 굳건하게, 강하고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성도들이 가정을 심방해 보면,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 가정도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 나름대로 아픔과 상처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가정은 물질적인 문제가 있는가 하면,
어떤 가정은 건강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른 가정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난을 당합니다. 
부부간에, 동기간에, 친구간에 서로 주고받은 아픔과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영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다 좋은 것 같은데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좋아요.
때로는 귀신이 사로잡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내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상처를 받는다고 합니다. 
모태에서 조성될 때, 나의 잉태가 부모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했다면 이것부터 상처가 된다고 합니다. 
내가 잉태되어 있는 동안 엄마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의 분위기까지도 다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무의식 속에 남아서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흔들어 박사로 유명한 김창규 집사는 성령태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올바른 인격과 성품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태교가 중요하다면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받는 
멸시와 천대, 조롱과 핍박은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남기겠습니까? 
엄마 뱃속에서 간접적으로 받는 영향도 이렇게 큰데,
직접 자기 귀로 듣고, 자기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장면들은 모두 
우리의 삶 속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때로는 집단적으로 왕따를 당하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할 때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나 혼자밖에는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는 것 같은 외로움에 
실존적인 고민을 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상처들은 적절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채, 상처를 묻어두고 그냥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신은 아주 정상적인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언젠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 상처들이 영향을 주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큰 실수들을 연발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치료받지 못한 상처들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런 상처에서 자유로운 분들이 있습니까? 

참으로 감사하게도 오늘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서 
수르 광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애굽에서 나올 때에 가지고 왔던 물은 다 떨어졌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물을 얻지 못하여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보기 바랍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서 괴로운 것보다는 
마실 물이 없어서 괴로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음식은 40일을 금식해도 살 수 있지만, 
물은 마시지 못하면 훨씬 더 빨리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군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때
‘10분간 휴식’과 한 모금의 물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100km 행군을 하면서 뱃속에 넣고 가다가 꺼내먹는 오이의 맛은 꿀맛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목이 말라 본 적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광야에서 마라에 이르러 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그러나 그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절망감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드디어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고작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나무를 가리키십니다. 
그래서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 나무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 나무에 무슨 신통력이 있어서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였더니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시듯 
우리 하나님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료하시며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출15: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조건: 말씀에 순종하고 의를 행하며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는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육신의 질병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도, 정신도, 영도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렘30: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렘33: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겔34: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우리는 모두 병든 자입니다. 
마음에 병이 들었고,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합니다. 
정신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병원과 같은 곳입니다. 
병든 사람들이 모여와서 치료받는 곳입니다. 

마음의 병이 치료받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질병도 치료받기를 바랍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주신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치료하는 의사와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치료받길 바랍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이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의 사역도 가르치는 사역과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 
그리고 치유하는 사역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치료하는 일은 주님에게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중풍병자도, 눈 먼 자도, 청각장애인도, 다리를 저는 사람도 몰려왔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도 왔습니다. 

심지어는 귀신들린 자들도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눅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와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혈루증으로 12년 동안이나 고생하던 여인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이나 병들었던 사람도 일순간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하시고 세우실 나라는 
(계21:4)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질병이 없는 나라입니다. 완전한 치료가 이루어지는 곳.

그러나 우리가 치료를 말할 때 100% 온전한 치료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완전한 건강의 소유자도 없습니다. 
인간의 건강상태를 100등분을 했을 경우에, 70이상이면 비교적 건강한 사람
50이하이면 병자로 여기고 회복을 위한 치료를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할 때에도 
완전한 100%의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보다 더 호전되는 것도 치료라고 볼 수 있습니다. Improvement
많이 아팠는데 예전보다 좋아졌다면 이것도 치료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죽음은 가장 완전한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쳐 달라고 기도하다가 사람이 죽게 되면 절망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영원한 최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가는 영원한 천국은 다시 아픈 것도 고통도 눈물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죽음만이 가장 완전하고 영원한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었다고 해서 절망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물론 우리는 병원에 가서도 치료받을 수 있고, 약을 통해서도 치료받습니다.
그러나 사실 궁극적인 치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의사나 약이나 주사는 모두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원의 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수술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초자연적인 치료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치료는 육신적인 치료만 아니라 전인적인 치료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마음도, 영혼도, 가정도, 환경도 치료해 주십니다. 
개인만 치료하면 안 되고, 그 사람 주변에 환경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적인 압박으로 고통당하는 자가 위로를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다시 자기의 옛 환경으로 돌려보냈을 때 재발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환경을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관계도, 주변의 여건과 환경도 치료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치료는 때로 가치관을 변화시키기도 하십니다. 
돈의 노예처럼 살아가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것을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삶의 태도가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가난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십니다. 
이것도 또 다른 형태의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 이와 같은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이 치료하시면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의롭고 거룩한 삶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며 살던 사람이
이제는 아무리 이익이 오는 일이 있어도 바른 것이 아니면 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치료하신 증거인 것입니다. 
하나님 다스리는 자의 삶에는 평강이 있습니다. 

수많은 문제와 역경 속에서도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평강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의 삶에는 희락이 있습니다. 
샘솟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왠지 자신감이 있고 두려움이 없어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모든 병과 약한 것을 치료받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만지시며 치료해 주십니다. 
전인적인 치유가 이루어지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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