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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대상 10: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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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대상 10:13~14)


저는 바둑은 전혀 둘 줄 모릅니다. 그런데 장기는 조금 둡니다. 우리 막둥이가 장기를 배워 저를 이겨 보려고 기를 씁니다. 제가 져주질 않습니다. 
그런데 장기를 두다 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수불퇴’하고 안 물려주기도 하지만 사정사정하면 되 물리고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장기 게임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장기는 실수하면 됟졸릴 수 있으나 인생은 그 시간이 일단 한 번 지나면 다시 되 돌릴 수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머잖아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를 받게 될 때가 오게 되는데 그때 가서 삶의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되 물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분은 말하기를 “인생은 예행연습이 없다”했습니다. 그러기에 인생이 비극으로 마감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조심하지 않고 되는대로 살다가 비극적인 생애를 마감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대단히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생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의 인생 역정을 보면 무척이나 화려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는 명문 지파, 명문 가정에서 났습니다. 그리고 외모로 볼 때도 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사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무엘 선지자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가운데 제비 뽑기로 왕으로 세워진 사람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함으로 인해 예언까지도 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일을 시작하였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기뻐하면서 대단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집권 초반에는 아주 이상적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는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되게 생활을 합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엄청난 은총을 입고도 이를 유지하지 못한 채 그 말년이 불신앙과 허물로 비참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무엇이 사울로 하여금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왜 그는 말년이 비참하게 무너졌을까요? 
오늘 봉독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은혜 받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이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이유 

1.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보세요.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그는 말로가 비참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하는 자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복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모든 일에 저주가 임한다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까요? 
  
삼상 13장에 보면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지 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웃 나라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양상은 이스라엘에 극도로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로인해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울왕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속히 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오겠다는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은 백성들의 마음을 잡아보자는 궁여지책으로 그만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감히 자기가 집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제사를 다 마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온 겁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큰일이라도 보통 큰 일이 아닙니다. 이에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망령되이 행했다고 책망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 원인은 사울의 교만이었습니다. 권력을 잡아보니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 졌습니다. 그 교만이 자기도 제사를 집례 할 수 있다고 믿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울의 범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일을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를 않았습니다. 
아각 왕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사울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들은 다 살려두고 별 가치 없는 것들만 진멸을 하였습니다.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더 앞세운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죽이는 것보다 살려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행동을 보신 하나님은 마침내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삼상 15:11을 보세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행동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때 생겨난 유명한 성경구절이 있는데 성도 여러분 알고 계시겠지요. 

삼상 15:22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순종이 예배보다 낫습니다.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많은 헌금보다 낫습니다. 아멘? 
그러기에 제발 형편 앞세우지 마세요. 어쩔 수 없다고 핑계하지 마세요. 주의 종의 말을 순종하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육체 질병이 아닙니다. 가난이 아닙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과 교만입니다. 이것이 사울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든 것처럼 우리 인생도 비극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받은 은혜가 클수록 순종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높여주실수록 겸손으로 옷을 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으로 무장되기를 축원합니다. 
  
사울이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이유 


2. 점쟁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기 때문입니다.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신접한 자란 누굴 말합니까? 점을 치기 위하여 죽은 자의 영이나 악귀를 불러내거나 부림으로서 사후 세계와 교통하는 일명 영매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탄의 뜻이나 터무니없는 낭설을 퍼뜨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들을 따르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하라 했을까요? 레 20장에 보면 반드시 죽이라 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사울이 비록 믿음이 확고하지 못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장 미워하시는 신접한 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언제 갔었다는 말입니까?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습니다. 그때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습니다. 삼상 28:3을 보세요. 

삼상 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던 일은 그의 집권 초기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죽으니 잠시만이라도 바르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사무엘이 죽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웠습니다. 그의 마음이 크게 떨렸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힘의 원천이고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이신데 그런데 더 이상 자신과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겁니다. 
사실 인간이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면 마음에 병이 옵니다. 그 때문에 각 종 질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현상으로 죽은 것입니다. 
사울왕도 자기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전쟁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게 되자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간 것입니다. 자기가 죽였던 무당들을 자기가 의지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무당과 점쟁이 문화가 아주 발달 된 나라라고 합니다. 
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에 등록된 무속인만도 30만 여명이랍니다. 
그러니 비공식적인 기타 무당과 점쟁이까지 합치면 대략 우리나라의 무속인 숫자가 50만 명이 넘을 것이랍니다. 문화관광부가 발간한 ‘2002년 한국종교현황’에 의하면 2001년 말 현재 목사가 7만3천여 명, 불교 승려가 4만1300여명, 가톨릭 성직자가 1만2500 여명으로 나타난 바에 비하면 우리나라 무속인의 규모가 엄청난 셈이다. 2001년 통계가 그렇습니다. 
  
우리 문화를 살펴보세요. 
우리는 툭하면 고사를 지냅니다. 집을 지을때도 고사, 다리를 놓을때도 고사, 심지어는 영화를 찍을 때도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고사지내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 축구팀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이 제일 먼저 치른 것도 고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 회사가 우리 국내로 들어오면서 제일 이해 못하는 것이 돼지 머리 놓고 절하는 고사문화라고 합니다. 
  
이러니 우리나라를 누가 정상적으로 보겠습니까? 박대통령 때는 미신(迷信)이요 무속(巫俗)이라고 하며 무당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을 하나의 예술인으로 또 민속 문화가로, 심지어는 무형 문화재로 선정하기도 합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이 헛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결국은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 10:20절을 보면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귀신과 교제하면 결과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뻔합니다. 사울처럼 멸망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찾아온 위기는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이 이유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사 55:6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0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했습니다. 
  
신앙인의 최대 무기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입니다. 이 믿음과 기도가 없으면 신앙인은 힘을 상실하게 되는 겁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리라 굳게 믿으나 간혹 보면 신앙인이라 하면서도 아직도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남편의 진급이나 자녀의 시험 합격 등을 알아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녀를 결혼 시킬 때 궁합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를 할 때 길일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하며 그것을 따라 갑니다. 그것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망하는 길입니다. 사울의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헛된 것을 따르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은 이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단이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보세요. 신접한 자가 진짜 사무엘을 불러 올린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입니다. 영적인 기만입니다. 사무엘로 변장한 마귀의 메시지를 그대로 전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당의 요구에 천국 문을 열어주거나 사무엘을 보내주는 분이 아닙니다.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울이 비극으로 인생을 마감한 이유 


3.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다시 봅시다.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무슨 뜻입니까?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삼상 28:6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어느 정도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1)성심성의를 다해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그는 자기 죄를 회개를 하지 않고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묻다”는 단어의 히브리말 의미는 “주의하여 찾는다”는 뜻으로 그가 비록 형식적으로는 여호와의 뜻을 구했을지 모르나 전심으로는 구하지 아니했음을 시사해 주는 단어입니다. 
  
적어도 전심으로 구했다는 말을 할 때는 마음이 담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금식도 있고 눈물의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형식적인 기도는 안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기도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 없는 결과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영적 불이 꺼져 버린 것입니다. 심령이 메마른 땅, 갈라진 땅, 바짝 말라 버린 나무와 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종과의 관계 단절, 기도의 등한함, 이러한 것들이 그의 영성 부분들을 말라 버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같지 않은 채 인간적인 방법으로만 계속 나아갔던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사울 왕과는 달리 매사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던 사람 다윗은 어떠했나요? 
역대상 14장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다음 블레셋과 다시 싸우게 되는데 이미 전쟁의 경험이 많음에도 먼저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대상14:10을 보세요. 
10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의 진정한 신앙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도전해 온 블레셋과의 전쟁을 놓고 과거에 골리앗을 이긴 경험으로 싸우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 승리를 쟁취하는데 대상 14장 13절을 읽어보면 또 다시 침범 해 오고 이때도 다윗은 또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여 문제를 풀어갑니다. 
  
역대상14:13~15절을 보세요. 

13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골짜기를 침범한지라 14 다윗이 또 하나님께 묻자온대 하나님이 이르시되 마주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15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나가서 싸우라 너보다 하나님이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나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사울의 가문은 무너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윗에게 돌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성도들의 눈물 배인 기도를 멸시한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하시면서 기도의 삶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가장 큰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기도하십니까? 기도를 잃었습니까? 기도를 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위기가 내 곁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거울과 같은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기도를 잃어버린 사람, 기도의 불이 꺼진 사람 사울의 마지막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삶이 멈추었다면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기도 의 골방에 들어갑시다. 
  
성령님께 기도를 회복케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마른 뼈에 생기를 부으셨던 그 분께서, 오순절 다락방에 임하셔서 저들을 뜨거움의 사람들로 변화시키셨던 그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새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성경학교를 앞두고 전교인 수련회를 앞두고 기도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기도하는 분들이 몇 분 안 됩니다. 바라기는 이번주간 만이라도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의 일, 교회의 직장의 일, 모두 사람의 노력이나 수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속에 들어오셔서 개입해 주셔야만 열리고 풀려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울의 모습, 얼마나 가련하고 비참한 모습입니까? 
얼마나 불행한 죽음입니까? 이스라엘의 왕국시대를 연 위대한 왕이 왜 이와 같은 불행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사울의 패배가 과연 군사적인 열세나 전략의 부재 때문일까요?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외모가 준수해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의해서이며 사울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명령에 순종도 않고 나중에는 신접한 여인까지 찾아가고 하나님께 기도도 안하니 결국은 퇴출을 당하게 된 겁니다. 
  
인생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신앙도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흠 없이 죄 없이 완벽하게 살수는 없으나 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인생 말로가 비참하지 않도록 정말 깨어 있어야 하고 조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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