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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시 96:7~9, 눅 9: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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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시 96:7~9, 눅 9:59~62)


현대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는 ‘사막에서의 편지’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분입니다. 카레토는 학생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가톨릭 대학교의 영성학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무런 소식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서 궁금해 했는데 뒤에 기별이 와서 알고 보니 사막의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에게 가장 합당한 자리가 대학교가 아니라 수도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촉망받는 교수의 자리를 버리고 수도사가 된 것입니다. 

카레토는 그의 책에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자리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자리 즉 맨 마지막 자리입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 자리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자리에 적합한 자, 적합한 자리 얻은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인된 거짓말이 몇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이 “에구, 괜찮은데”라고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중국음식집에서 “출발했어요. 금방 도착해요”라고 하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대학 수석 합격자가 “그저 학교 수업만 충실히 했을 뿐이에요”라고 하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음주운전자가 “딱 한 잔밖에 안 마셨어요”라고 하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간호사가 “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요”라고 하는 것도 그 하나입니다. 그리고 옷가게에서 “어머, 너무 잘 어울려. 맞춤옷 같아요”라고 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딱이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옷가게에 가면 “이 옷 아줌마 꺼네”라고 합니다. 딱 맞는 옷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에 속지 마세요. 그러나 정말 그 옷에 딱 맞는 사람, 그 나라에 딱 맞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맞춤형’이란 말도 많이 씁니다. 그 사람에게 적합한 상품이나 물건을 만들어준다는 뜻입니다. 맞춤형 복지, 맞춤형 교육, 맞춤형 보험까지 있습니다. 나에게 딱 맞는 상품이나 물건이 있다면 이것도 참 좋은 일입니다. 
  
한국여자 골프는 왜 강한지 아십니까? 1988년 최초로 미국 LPGA에서 우승한 한국인은 당시 32세의 구옥희입니다. 지난주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US 오픈에서 지은희선수가 우승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LPGA에서 한국계선수가 82승을 하였습니다. 지난해에는 한국선수들이 LPGA 9승을 하였습니다. 신지애선수는 지난해에 3승을 하여 통산 9승을 하였습니다. 신지애선수는 목사님의 딸이어서 더욱 관심이 갑니다. 한국 여자선수들이 골프를 잘 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올인 문화가 그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부모의 극성도 한 동력입니다. 그래서 ‘피겨맘’이란 말도 있고, ‘골프 대디’라는 말도 있습니다. 

골프는 90%가 멘탈 게임이라고 합니다. 테니스, 육상, 수영 등은 체격이나 체력이 서양인을 따라잡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골프는 정신력이 체력보다 더 강조됩니다. 골프는 힘과 섬세함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프는 비교적 체격이 적은 한국여성에게 적합한 스포츠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적합한 운동, 일,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은 중요한 성공의 요건입니다. 여자 양궁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손기술’이 양궁을 잘 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손은 양궁에 딱입니다. 
  
시편 96:8에는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라고 합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적합하고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이란 뜻입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유데토스’라고 하는데 ‘잘 놓여 있는’, ‘적합한’, ‘순응하는’이란 뜻입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 잘 놓여 있는 적합하고, 순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3월 15일에도 같은 본문, 같은 제목으로 설교하였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면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60절에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전파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이유입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 전파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일일까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 자들이 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이 문구는 누가만의 것입니다. 누가는 회개의 긴박성으로부터 전도의 긴박성으로의 바꾸어갑니다. 신앙인의 최고의 의무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기 위한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 전파입니다. 
  
각 시대마다 시대에 합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엘리야 시대가 끝나고 엘리사 시대가 됩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로 가시자 사도들이 예수님이 남기신 일들을 대신 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시대적 인물을 따로 준비하시고 그 시대에 적합한 인물들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예나 지금이나 합당한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다니엘 12:3에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한 자가 누구입니까? 전도자입니다. 전도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전도자가 지혜 있는 자보다 더 빛이 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빛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죤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는 교회는 단순히 화해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기만 하는 장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문사나 방송국은 소식을 받아 전해 주는 곳이지만 교회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그 말씀 때문에 몰려드는 장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전혀 새로운 사회적 완전체를 이루는 곳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이며 역사에 의미를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시편 118:17에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죽을 자격이 있습니다. 살아서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국민일보에서 한 설문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내가 해본 가장 좋았던 전도방법은?’이란 설문에 만날 때마다 전하고 힘들 때 기도해주기, 맛있는 음식 함께 먹기, 성경 등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기 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보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특별한 기술보다 전파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파에 대한 관심입니다. 전파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입니다. 열정과 간절함이 있으면 누구나 전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소식을 전파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오래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교회에서 학교가 있는 곳 까지 주일 저녁이면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하여 졸음이 왔다고 합니다. 사모님과 함께 오면서 좋은 졸음방지법을 개발했습니다. 어떤 한 사람을 정해놓고 계속 험담을 하면 졸음이 싹 가신다고 합니다. 물론 장난삼아 한 말이겠지만 사람들은 남의 얘기를 하면 자던 잠도 깹니다. 
  
험담은 어떤 사람의 정보를 남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험담전파는 열심히 합니다. 남의 험담은 너무 재미있습니다. 돈 안들이고 제일 재미있는 것이 험담이랍니다. 험담을 전파하는 것만큼 열정과 재미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 아마 하나님의 나라가 금방 확장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고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가 최우선인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62절에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 하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데 첫째 사람은 아버지를 먼저 장사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둘째 사람은 자기 가족과 먼저 작별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 하니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장사’는 가정적, 종교적,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무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율법을 공부하는 것보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보다, 유월절에 제사드리는 것보다, 할례를 시행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를 장사지낸다는데 반대할 수 없는 적절한 명분입니다. 그런데 세상 나라의 명분은 하나님 나라의 명분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로 하여금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게 하라”는 것입니다. 
  
‘가족 작별’은 집을 나가지 전에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아무 말 없이 나가면 금방 실종 신고라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작별인사를 하면 인사하는 중에 만류할 수도 있습니다. 인사하다가 발목이 묶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이 쓴 불평의 글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집을 나가면 출가라 하고 내가 집을 나가면 가출이라 한다.’ 그렇습니다. 가출은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집이 싫어서 나갈 때를 말합니다. 출가도 가족에게 연락하지 않고 나가는 경우가 있겠지만 집이 싫어서 작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카를로 카레토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창세기 22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사라와 의논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라와 의논했다면 사라가 분명히 말렸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발목을 잡혔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은 아들이나 아내보다 하나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우선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제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 제일주의로 세상의 일을 뒤로 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에 최우선이 되지 않으면 결코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우선이 되지 못하면 전도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 향기가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편지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우선이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 우선법칙을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라는 말은 농경문화의 산물입니다. 기원전 80년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드(Hesiod)의 말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자의 유일한 목적은 밭이랑을 곧게 가는 것입니다. 밭이랑을 매면서 뒤를 돌아보면 이랑이 곧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자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을 가진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곧게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 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대로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해야 합니다. 곁눈질하지 말고 앞을 똑바로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밭이랑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움직이지 않는 분명한 앞의 목표물을 보고 이랑을 파야 합니다. 어느 농부가 아들에게 소를 몰아 밭이랑을 갈게 하였습니다. 얼마 쯤 후에 나와 보니 이랑이 바르지 못하고 꼬불꼬불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앞에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따라 소를 몰아야 이랑이 바르게 된단다”하고 타이르고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다시 나와 보이 여전히 이랑은 비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 “내가 분명히 앞에 목표를 정해 놓고 소를 몰라고 하지 않았니?”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 대 아들은 “아버지, 분명히 앞에 목표를 정해 놓고 소를 몰았어요”라고 합니다. “그래 정한 목표가 뭐냐?” “예, 저기 풀 뜯어 먹고 있는 소요”. 아들은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길이 바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정한 목표를 향해 굳건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옆을 보지 말고 앞만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를 만들 때에 고객들이 들어갈 때와 똑같은 기쁨을 가지고 나올 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친절, 볼거리, 능률, 안전 이 네 가지 가치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가치 가운데 안전이 최우선의 가치라고 하였습니다. 안전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가치가 쓸 데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네 가지 가치가 무엇입니까? 은혜, 성장, 섬김, 선포입니다. 그 가운데 최고의 가치는 선포입니다. 선포가 최우선의 가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최우선의 가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선포가 교회의 최우선의 가치이어야 합니다. 이런 우선의 법칙이 분명해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헬라어 부사 ‘아크시오스’는 성경에 5번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실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사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합니다. 
  
유대인의 책에 대한 격언이 참 많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보면 이런 말들입니다. “만일 가난한 나머지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우선 금, 보석, 집, 땅을 팔아라. 마지막까지라도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비록 적이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식의 적이 된다.” 책이 가정의 물건 가운데 최우선이 됨을 강조합니다. 이런 그들의 생각이 노벨상 강국이 되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인구 600만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약 1,500만 정도 됩니다. 지금까지 105번의 노벨상 시상식에 유대인이 빠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생리 의학상 수상자가 48, 물리학 수상자가 44명, 화학상 수상자가 27명, 경제학 수상자가 20명, 문학상 수상자가 12명이었습니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이 유대인입니다. 노벨상에 가장 적합하게 인물을 배출한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는 전도하는 자입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한 자입니다. 

결론 

세상 가장 무서운 생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열 번째 무서운 생물이 빨간 독개구리라고 합니다. 아홉 번째가 버팔로입니다. 여덟 번째는 백곰입니다. 일곱 번째는 코끼리입니다. 여섯 번째는 악어입니다. 다섯 번째는 아프리카 사자입니다. 네 번째는 백상어입니다. 세 번째는 해파리입니다. 두 번째는 코브라입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은 예상 외로 모기라고 합니다. 왜 모기가 가장 무서울까요? 연간 말라리아 등으로 200만 명이 죽습니다. 매년 7,000만 명이 모기의 피해를 입습니다. 작지만 온갖 더럽고 위험한 것을 전파합니다. 전염시키고 다니기 때문에 가장 무섭습니다. 모기는 작지만 온갖 병을 전염시키고 다닙니다. 그래서 종교를 아편이라고도 하고, 전염병이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작고 힘이 없어 보이지만 독실한 영적 힘을 가진 신앙인이기에 가장 무서워합니다. 영적 기운을 가지고 있고, 힘이 있고, 전파력이 있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일은 기껏해야 60-70년 갑니다. 세상일은 아무리 잘 해도 나를 60-70년 기쁘게 해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영원합니다. 영원히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열정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으로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도, 하나님의 나라에 딱인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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