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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오신 이유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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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이유 (마 9:9~13)


지난 주일 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유일성의 모습은 죄 사함의 권능을 가지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도 할 수 있습니다. 무속 세계에서는 세력이 큰 귀신이 세력이 작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귀신 들린 병을 가진 경우에도 더 힘이 센 귀신이 나타나면 귀신 들린 사람에게 있던 귀신이 쫓겨 나가게 됩니다. 이를 두고 마치 귀신 들린 병이 낫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죄 문제이고, 이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친히 육신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지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하늘·땅·바다·열방을 진동시키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이 필요한 인생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 9:9)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당시 세리는 유대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여 로마에 바치는 일을 했는데 같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동족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하고 뒤로는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이 당시의 공공연한 현실이었습니다. 때문에 멸시와 천대의 대상이었으며 반민족주의자라는 지탄을 받았습니다. 세리는 한마디로 합법적인 죄인이자 도둑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의 부름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무런 주저함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동족으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았기 때문에 내면은 완전히 산산 조각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너무나 갈급하고 목말라 있던 상태의 마태는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을 부르시자 삶에 참 소망의 빛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돌아볼 정도로 삶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마태는 자신의 집에 잔치를 열어 다른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신의 친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이 변화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감격을 누린 사람은 그 기쁨을 자신만 소유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장에 가보면 이처럼 예수님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이 소유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마태와 마찬가지로 즉각 반응할 영혼들이 무수히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불신자 한 명이 구원의 자리로 나오게 되면 그 뒤에는 어마어마한 황금어장이 놓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사각지대요 재앙지대였지만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가는 순간 황금어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 현장에서 전도 캠프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현장에 나갈 때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대 사회에서 죄인의 대명사로 치부되던 세리 마태를 예수님께서 제자로 삼으신 이유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갖지 말라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안드레, 요한 등은 사회적으로 낮은 신분인 어부였지만 그렇다고 비난의 대상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죄인 취급을 당하던 세리 마태를 집어넣으신 것에는 모든 선입견과 편견을 깨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상대의 모습이나 형편에 선입견과 편견을 갖게 되면 결코 영혼 살리는 일에 성령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창세기 3장의 불신 현장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누구라도 전도대상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남자의 후손 모두는 원죄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범죄만 죄로 생각하고 원죄 —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난 근원적인 죄 — 는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반사회적 범죄는 인간이 만든 법질서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3장의 원죄 문제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범죄한 남자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이 근원적인 죄 문제를 포함하여 인간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남자의 후손은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현장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 빈부와 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저주받은 운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절대성·필연성을 확실히 믿고 현장에서 이를 선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 9:10~11) 마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 너무 기뻐 잔치를 베풀고 있었는데 이를 썩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부류가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째서 너희 선생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죄인과 교제하거나 접촉하면 그 죄가 감염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과의 접촉 자체를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2~13)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영적으로 병든 죄인을 치유하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의사로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죄를 지으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인간적인 행위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보혈을 통해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모든 흑암 권세를 깨트리시고 참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복음은 자유, 해방은 누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호 6:6 말씀을 인용하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예배)가 아니라 긍휼”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형식적인 제사보다 영혼을 살리는 긍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인 된 영혼을 바라보며 그들을 불쌍히 여겨 모든 저주에서 빠져나오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일임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약을 처방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약을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생명의 복음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영혼이 너무나 많습니다. 영적 시급성을 깨닫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를 다시금 깨달아 육신적 서론 인생이 아닌 영적 본론 인생을 살아감으로 현장에서 영혼을 살리는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마태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늘 본문 속에 포함하여 기록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자신처럼 큰 죄인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어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는 점을 알리고자 한 것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는 원래 ‘레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죄인 레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 전도자 마태로 서게 된 것입니다. 

이 마태에게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세리 출신답게 분석능력이 뛰어나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정리하는 일을 잘했습니다. 때문에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구조 자체가 대단히 체계적이고 내용이 풍성합니다. 

마태복음 5, 6, 7장이 바로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인 산상수훈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족보를 14대씩 셋으로 구분하여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해 놓기도 했으며, 13장에서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무척이나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는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세리 일을 하던 마태가 이제 그 재능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될 수 있으며, 변화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영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가치 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한 달란트를 숨겨두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 직분을 통해 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기도·직분(전도)에 생을 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정체성이 완전히 드러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매여 있는 물질 문제, 건강 문제, 가족 문제 등을 뛰어넘어 세계를 볼 수 있는 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넘어서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기도·직분(전도)을 통해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를 발견하여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고, 아직도 죄의식에 빠져 영적 감옥 안에 갇힌 자를 우리를 통해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하루하루 삶이 생명을 살리는 현장 전도 제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 형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회복시키시고 훈련시키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인생, 구원받을 영혼이 지금도 현장에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시켜 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허락하시어서 그들에게 참 자유, 참 해방, 천국을 회복시키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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