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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신분, 자녀-상속자 (롬 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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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신분, 자녀-상속자 (롬 8:12~18)

    
지난 주일에 ‘영광스런 신분,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며 나는 부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도다운 삶을 살고 있는가 고민해보자고 했었습니다. 한 주간 고민 좀 해보셨는지요.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 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한걸음 더 성숙한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성장되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말씀 듣고 문 밖으로 나가면서 자동으로 다 삭제하고 성도다운 삶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묵상도 없이 한 주간을 바쁘게 지내다가 주일이 되어 습관적으로 이 자리에 와있는 분은 없는지요.   

고속비행을 하는 전투기가 고공 선회 훈련 중에 추락하였다는 기사를 종종 접합니다.  제트기를 조종하던 파일럿이 고속 비행 중에 업치락 뒤치락 방향을 바꾸며 날다가 하늘로 급상승한다는 것이 순간 착각으로 땅을 향해 급강하하여 곤두박질 치고 만 것입니다. 너무도 빠른 속도 때문에 주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각을 의지하여 순간 판단으로 조종간을 당겼는데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돌진한 것이지요.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도 가끔 내 인생의 비행 중에 이런 혼란과 착각으로 급상승이 아니라 급강하하여 그만 땅에 곤두박질하는 경험을 합니다. 인생 길에 잘 못 방향을 잡았는데 내 스스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급가속을 하다가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나가 떨어지게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께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길되신 주님 대신 나의 판단을 의지하고 세상의 넓은 길을 향해 돌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기판으로 삼고 내 길의 방향을 점검하며 살아야 하는 조종사가 계기판을 무시한 채 자신의 경험과 관록과 감각을 의존하고 냅다 달리려고 합니다. 세상이 주는 안전함과 안락과 행복에 익숙해져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인지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편안함인지 구분을 못하고 정신 없이 빠져들어가는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13절, 14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가? 나의 비행이 정치 비행인가 거꾸로 곤두박질하는 전복 비행인가 방향을 분명히 하며 살기 바랍니다.  항로를 벗어난 비행사를 향해 관제탑으로부터 경고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경고음을 즉시 알아듣고 항로를 변경하면 살지만, 경고를 못듣거나 무시하고 계속 내 방식으로 가면 머지 않아 위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받은 성도는 성도로서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잘 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하다면 정말 잘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비행 항로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 말씀의 연속이 됩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성도’라는 신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영광스런 이름이라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영광스런 신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내 아들 내딸’ (사43:6) 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버지’(사63:16, 64:8) 라 불렀습니다.    

신약에 와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21, 롬10:13) 하였고,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즉 특권을 주셨다’(요 1:12)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4)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즉 관제탑에서 우리의 비행 항로를 살피시며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를 아들과 딸이라 부르시고 오직 자녀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또한 선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신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특권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로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나의 아버지라 부르셨던 그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실 때 독특하게 사용하신 호칭은 ‘아바 아버지’였습니다. 아바는 아람어로 ‘아빠’라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사랑하는 아버지, 믿음직스런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친근한 용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하나님은 ‘아빠’셨습니다. 이런 친근한 관계를 우리에게도 허용하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셨으니 오직 자녀된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늘에 계신다 함은 세상을 초월해 계시는 능력있는 아버지이심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하늘 아버지는 인간 세상에 제한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을 초월하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세상 사람들의 복잡한 형편을 알고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초월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저 멀리 우주 밖에만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나와 아주 가까이 계시는 아빠이십니다. 나의 소원과 염려를 이미 알고 계시며 나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자상한 아버지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아버지께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하실 때 또는 찬송부를 때 아무런 어색함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십니까?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 이것이 자녀된 사람의 특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고 하십니다.   후사는 대를 잇는 아들 곧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을 아버지의 유업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영광의 보좌에 앉아 모든 민족을 불러 모아 심판하실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녀들을 향해 주시는 말씀이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입니다. 예수께서 그 영광스런 나라의 보좌에 앉아 만국을 다스리실 때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영광을 나누는 엄청난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가 누리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상속자는 그리스도의 영광뿐 아니라 고난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위하여 하늘 보좌를 사양하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신 아들이셨습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구원의 능력도 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우리에게 머물러 있고 우리는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영광의 그 나라로 들어갈 길을 열어주셨고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상속받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니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참고 견딜 수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고 그 영광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보호하여 넉넉히 이기게 하시니 이 또한 자녀된 사람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녀가 누리는 특권은 죽어서 가는 천국, 죽은 다음에야 상속받는 천국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 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풍성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특권입니다.

또 하나 자녀가 가지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비와 긍휼로 용서하시고 아들은 어떤 죄도 아버지께 고백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엄한 아버지가 두려워 잘못을 고백하기 어려워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어떤 실수와 실패, 심지어 온 세상이 비웃고 경멸하는 죄까지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고백하는 자식을 끝내 용서하지 않고 매몰차게 내치는 비정한 부모가 간혹 있지만 하늘 아버지께서는 돌아오는 자녀를 무정하게 내쫒지 않으시고 항상 품에 안으십니다.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비유로 설명하신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아들 이야기처럼, 아버지는 돌아오는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아버지와 형의 간섭 없이 마음껏 살고 싶었던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챙겨 집을 나갔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싶어 외국으로 나갔는지도 모릅니다. 작은 아들은 돈이 충분하면 인생이 즐거우리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돈이 넉넉히 있을 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친구도 따르고 여자도 따르며 주변에는 항상 흥청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이 아들은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별이 안되는 전복 비행을 하면서도 자기 만족과 착각 속에 조종간을 쥐고 있는 파일럿과 같습니다.     

결국 돈 떨어지고 그 땅에 흉년까지 들어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돼지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돼지와 몸 싸움하며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주린 배를 채우려 했지만 그것조차 주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에 울리는 경고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얼마나 잘못을 하였는가 깨달았고 드디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동안 전복 비행을 하며 급추락하던 방향을 바꾸어 정치 비행으로 돌아섰으며 거기서부터 급상승 기어를 당기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로 날마다 문 열어놓고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들이 돌아오던 날 아버지는 저 멀리서부터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흉한 꼴로 돌아온 더럽고 냄새나는 아들을 측은히 여기고 달려가 품에 안고 그 얼굴에 입맞추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베풀 수 있는 사랑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누리는 자비와 용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엄하게 징계하시는 아버지이시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엄한 아버지 모습을 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꾸지람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느니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누구나 잘못하면 징계를 받는 것이니 만일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는데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육신의 아버지는 잠시 자기 뜻대로 징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심으로 그의 거룩에 동참하게 하시느니라.징계를 받는 그 순간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프지만 그 징계를 통해 연단을 받은 사람은 나중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을 것이니라’ (히12:5-11)

제가 중학교 2학년 쯤일 때 아버지께 제 어린 인생 최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호되게 매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주일이었는데 제가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돈을 쓸쩍하여 하루 종일 바람을 쐬고 저녁 예배가 시작될 즈음에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철 없는 어린 마음에 나홀로 기차여행을 하고 싶어 아버지 허락도 안 받고 내 맘대로 아버지 돈 가져다가 하루 종일 기차 타고 전에 살던 도시까지 갔다가 다시 기차 타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한테 속된 말로 뒤지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아버지 호주머니를 쓸쩍 한것도 잘못이고 주일날 그런 못된 생각,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매를 맞아도 싼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저에게 대단히 화가 나셔서 혼 좀 나봐라 하셨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매로 다스리는 광경을 보고 아들 잡겠다 싶어 ‘애 죽겠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말리셔서 겨우 상황이 끝이 났습니다. 매를 맞는 순간 얼마나 아프고 부끄러운지 아버지 바지가랑이 붙잡고 다시는 그런 짓 안하겠으니 용서해달라고 매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문의 반성문을 제출하라는 아버지의 호통을 듣고 저도 이후로 다시는 아버지께 매 맞을 짓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그날 아버지의 매가 저에게는 마지막 매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아버지가 무섭고 어려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지금 연세 드신 아버지를 뵈면 그렇게 엄하시던 모습보다는 잔잔한 정이 더  앞서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이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자식이 바르게 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채찍이었기에 그 순간은 서로 힘들었지만 그 징계로 인해 아들이 살게 되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오고 끝 없는 고난 속에 살도록 하시는가?   이게 무슨 하나님 자녀의 삶인가 의심이 들 때도 있지요?  그렇습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은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하여 꼭 통과해야만 하는 연단의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며 길이 참고 기다리면 우리의 성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나의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아버지께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하고 손들고 나오는 수 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버지 유산 챙겨들고 집을 나간 아들처럼 아버지 간섭이 귀찮고 아버지 그늘이 싫어 멀리멀리 떨어져 내 맘대로 살다가 내 잘못으로 받는 시련이니 속히 손들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오래 버텨봐야 매만 더 벌고 더 오래  고생할 뿐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하나님 등지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니면 지난 몇 년간 그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막 아버지와 관계가 회복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전히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하고 자만합니다. 착각도 고단수인데 고집 또한 노새처럼 세고 절대로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아 사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 안 짓고 선하게 살면 되지 꼭 예수 믿고 교회 다녀야 하나?’  ‘주일성수?   하나님께 대한 내 마음이 중요하지 꼭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형식이 중요한가?’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주께드려 헌신하라?    그런 것은 사람을 교회에 묶어두려는 가르침이지 기독교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야’ 하면서 나름 고집스런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몰라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에 그 귀한 사랑을 깨달았던 적이 있고 그 사랑 안에 살았지만 잠시 아버지 품을 떠나 내 맘대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문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주기도문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없어도 스스로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이라면 자녀된 도리를 다 함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기도가 참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용납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마치며 복음송 ‘너는 내 아들이라’ 를 함께 불러봅시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지금 힘들고 지친 분들 있지요? 시간이 여기서 그만 딱 멈추었으면 하는 분들도 있지요?  기다리시는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제가 아버지께로 갑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날마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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