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도망에서 돌이킴 (욘 1:1~5)

  • 잡초 잡초
  • 260
  • 0

첨부 1


도망에서 돌이킴 (욘 1:1~5)
 

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서 1:3)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7-10)

오래 전 ‘도망자(fugitive)’ 라는 외국 영화가 시리즈로 TV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리차드 캠볼'은 의사로서 아내를 죽인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아 교도소로 행하던 중 버스전복으로 탈주하게 됩니다. 그 후 주인공은 '샘 제라드'라는 형사의 끊임없는 추적에 도망자가 됩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 당시 연속 4주 동안 흥행성적 1위를 기록했고 우리에게도 인기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도망자의 삶을 그렸습니다. 도망자의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고 불안한 것입니다. 도망자의 삶은 참된 자유와 평화가 없고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밋대의 아들인 선지자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에 가서 니느웨성이 멸망될 것을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성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까지 이르렀으므로, 그 큰 성 니느웨가 40일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을 멸망시키실 것(욘3:4)임을 외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으로 가지 아니하고 다시스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도망자인 요나는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그 자신을 감추고자 배 밑층에 내려가 잠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죄책감의 어둠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도망자의 모습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삶을 살면서도 참된 자유의 기쁨과 평화를 잃어버리고 영혼의 어둠과 답답함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망자의 모습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사람
  
도망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도망자 요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3절) 
  
도망자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도망자의 특성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입니다. 
  
처음인간 아담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는 따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은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만지지 말과 먹지 말라고 금하신 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은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대할 수 없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그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어두운 영혼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도망자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대하지 못하고 피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거절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기대하시는 뜻은 요나가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함으로 회개시켜 그 성을 멸망에서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니느웨성을 멸망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요나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과 다를 때,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요나에게 나타난 행동의 특성은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대하지 못하고 그 얼굴을 피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뜻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좌우를 분변 하지 못하는 십이만여 명의 어린아이들까지 멸망시키실 수 없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던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기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과 조화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요구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는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기대에서 오해된 신앙의 역사를 만드는 것을 봅니다. 나의 기대대로 되지 못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는 것과 다를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는 삶이 만들어 집니다. 내 뜻이 하나님의 뜻과 대립될 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뜻에서 벗어날 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도망자가 됩니다. 그러나 도망자의 삶은 실패자의 삶입니다.   
  
성서는 모세에 대하여,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신34: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말씀하실 때에, 얼굴을 마주 바라보시면서 명백한 말로 말씀하셨고(민12:8),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얼굴을 마주대하고 말씀하셨다(출 33:11)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뜻에 따라 신실했기에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고 살았습니다.
  
모세의 하나님을 대신하는 능력과 이스라엘 백성을 40년간 이끌어간 위대한 지도력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는데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듯 그리스도와 함께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는데서 아름답고 축복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저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히12:2)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기에 즐겁습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이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나무사이에 숨었던 아담과 같이 하나님이 두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십니까?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을 살피시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의 행실대로 보응 하시는”(렘17:10)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자로 살아가지 마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여 숨을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9-1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치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뜻으로 돌이키고 그 뜻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그러므로 도망자와 같은 어두운 영혼에서 자유 함을 받는 밝은 영혼의 사람이 되십시오.         
  
  
깊이 잠든 자
  
도망자는 깊이 잠든 사람입니다. 도망자는 깊은 영적 수면에 빠진 사람입니다. 양심이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찾아오는 양심의 괴로움에서 도망하고자 했습니다. 마음의 불편함에 진실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그곳에서 도망가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돌아가기를 바라는 내면의 음성인 불안감에 대답하기보다는 그곳에서 도망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방법은 깊이 잠드는 것입니다. 무감각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이 잠들었습니다. 폭풍이 일어나 배 안이 소란해 졌음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깊은 잠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는 영혼은 깊은 영적인 수면에 빠집니다. 영적인 불감증에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당연히 느껴야 할 양심의 괴로움이나 아픔에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무디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시는 참 기쁨과 평강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독수리과에 속하는 ‘세크타리’라고 하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다른 여느 새와는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새가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하면 새 중의 왕으로서 아무도 그 새를 쫓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반면에 이 새가 날개를 움추리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 두뇌의 기능이 둔감해진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땅에 앉아있을 때에 다른 동물이 와서 잡아먹으려고 해도 도망갈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이 새가 날개를 펴기만 하면 얼마든지 높은 하늘을 날아가기도 하고 그 높은 곳에서도 땅에서 다니는 어떤 작은 짐승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다고 합니다. 
  
인간은 ‘새크타리’ 새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고귀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버리면 사단이 와서 농락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낮 짐승과 같은 더럽고 무력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고 하시면서,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이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롬13:11-14)고 했습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신앙의 역사입니다. 이 잠에서 깨어나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무의식과 무감각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은혜 받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잠들어 있는 도망자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깨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똑바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폭풍을 일으키는 자
  
도망자는 폭풍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주는 사람입니다. 요나 때문에 배는 폭풍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순종하는 요나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이키도록 큰 바람을 바다위에 내리셔서 큰 폭풍을 일으키셨습니다. 다시스로 향하는 요나를 니느웨로 향하게 하시고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는 요나를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큰 폭풍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인간의 뜻을 꺾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큰 폭풍입니다. 큰 폭풍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고 깊이 잠들어 있는 요나를 깨우는 방법입니다.   
  
도망자의 삶은 폭풍을 일으키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요나 때문에 배의 사람들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도망자는 나 하나만의 도망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고통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사건에 사건을 만들고 문제에 문제를 만들어 내어 고통의 아픔과 괴로움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심약한 마가/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사도행전 15:36-40)

선장은 큰 폭풍 중에도 깊이 잠들어 있는 요나를 깨우면서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6절)고 했습니다.       
  
배안의 사람들은 폭풍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요나는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자백했습니다. 요나는 그 큰 폭풍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과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침으로 찾아온 것임을 말했습니다. 폭풍의 원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한 도망자에게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도망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사는 큰 폭풍의 역사인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어두운 역사는 무엇입니까? 부정부패에 의한 폭풍, 폭력과 파괴의 폭풍, 갈등과 자살의 폭풍들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역사입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러자 폭풍은 잔잔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요나의 뜻을 지배하자 폭풍은 잔잔해 졌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를 다시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선 요나는 도망치는 자에서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성이 망하리라고 외쳤습니다. 이 외침을 듣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니느웨성은 왕으로부터 온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성을 멸망에서 구원시키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신앙인이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맞이하시는 하나님께 돌이키셔서 그 분의 얼굴을 대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영적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폭풍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도망자의 모습을 극복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축복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