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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삼상 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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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삼상 28:3~7)
  

지난 주 우리는 삼상 27장을 통하여 다윗이 위기를 맞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이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결국에는 사울 왕에게 붙잡혀서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블레셋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가자. 그러면 사울 왕은 나를 추격하는 일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그를 따르는 6백 명의 동지들과 함께 블레셋에 속한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망명했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오랜 도피생활로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장기간의 투병, 연속된 사업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신앙적이 배려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약해지니까 사람이 무서웠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믿음이 약해지니까 사울 왕의 존재가 무서워졌던 것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라고 노래했던 그 입술에서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삼상27:1)”라는 나약한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언젠가는 사울 왕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니까 도망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망명을 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의지해보려는 불신의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으면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잘 유지하고 성장시키려면 항상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약해지면 사람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결국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위기는 급박한 바깥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흔들리는 믿음에 있습니다.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다윗은 뼈저린 고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중의 하나가 다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삼상28:1-2절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다윗은 이제 꼼짝 없이 블레셋의 선봉장이 되어 자기 동족의 가슴에 창을 던질 수밖에 없는, 칼을 겨눌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자기 백성을 죽이다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여갑니까?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심방을 하거나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내 인생이 꼬이는지 모르겠어요?”
“문제가 뒤엉켜서 어디에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뒤죽박죽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꼭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게 문제를 푸는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의 주인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지’
‘여러분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씁쓸하게 하는지’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도 하나님께 너무 하지 않았는지’
잘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삼상 27장은 다윗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겪은 위기를 소개한 내용이라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울 왕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겪는 위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4절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사울 왕은 군사력의 현저한 차이를 보고 두려워 하나님을 찾습니다.

6절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그러나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6절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구약시대에는 꿈이 중요한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이었습니다.
창 28장에 보면, 야곱도 벧엘에서 꿈에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창37장에 보면, 요셉도 꿈에 곡식단을 보았습니다.

또한 우림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편이었습니다.
우림은 둠밈과 더불어 대제사장이 착용하는 판결 흉패 안에 보관되었던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였습니다. 

출28:30절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 지니라.”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일어날 판인데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렇게 답답할 노릇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 사울 왕이 선택한 방법은 신접한 여인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7절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이것이 우리가 읽은 본문내용입니다.

저가 본문을 통하여 받은 은혜는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는, 하나님은 떠나면 사람은 초조하고 불안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을 만난 일을 의외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삼상28장 8절로부터 25절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무려 18절에 걸쳐 길게 서술했습니다.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것은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를테면 ‘어떻게 접신이 가능하냐?’ ‘어떻게 초혼을 할 수 있느냐?’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는가?’ 등에 대한 지식 말입니다.
궁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문은 그런 질문에 대하여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습니다.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을 찾은 이야기가 길게 서술된 것은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것입니다.

신접한 여인의 이야기에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급하게 구는 사울 왕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몇 군데만 살펴보겠습니다. 
10절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지금 사울 왕이 한 아녀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입장이 난처하더라도 한 나라의 왕이 아녀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지금 사울 왕은 한 아녀자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죽게 생겼는데 누구의 이름으로라도 맹세를 못하겠습니까?
또한 15절을 보세요.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니라.” 

사울 왕은 제 입으로 “심히 다급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0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사울 왕이 실신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든지 입술이 마르고, 입맛이 떨어지고, 밥맛이 다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은 초조해지고, 불안해지고, 다급해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위기 때에 그 진위가 드러납니다.
형통할 때에는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드러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듯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하나님을 떠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삶의 위기가 닥칠 때 믿음을 보이십시오.
하나님이 무릎을 탁 치시면서 ‘됐어!’ 하고 축복하게 되길 바랍니다.  

복음송가-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2. 두 번째 저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충격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다니........’
하나님은 사울 왕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삼상28:18절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그런데 역대기에서는 사울 왕이 실패한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역대상10:13-14절입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1) 사울 왕이 실패한 첫 번째 이유는, 사울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제사장만이 집례할 수 있는 제사법을 어기고 직접 집례했습니다.(삼상13:8-14)
그리고 아말렉인을 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 왕을 살려두고, 살찐 짐승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내 뜻대로 살 것인가의 갈등이며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책임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가 새벽기도회 때 말씀드렸잖아요?
아이가 공부를 안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가 넋두리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난 네가 반에서 일등만 한번 하면 원이 없겠다.” 
그랬더니 아들놈이 반응을 보입니다.
“아버지, 내가 반에서 일등하면 뭐해 줄 건데요?”

“네가 일등만 하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
“정말이에요?”
“그럼 정말이지. 일등만 해!”
“차 사달라면 사줄 거예요?”
“그래, 일등만 해봐!”
그날부터 아이가 공부를 합니다.

바깥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고,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책만 파고듭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 누가 당황하겠습니까?
약속한 아버지이지요?

“여보, 나 저놈한테 차 사줘야 하는 거 아니야? 돈 있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다음부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털 뽑지 말고, 다리 잘라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믿으십시오.
“나는 무식해서 성경을 해석할 줄 모릅니다. 읽는 대로, 듣는 대로, 보는 대로 믿습니다.”
이렇게 나가면 그다음부터 하나님이 당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는지 하나님을 당황시키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2) 사울 왕이 두 번째 실패한 이유는,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다는 것입니다.
곧 무당을 찾아가 앞날에 일어날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을 믿으면 흥하고, 우상을 믿으면 망합니다.
세계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우리 개인의 삶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중견기업 이상의 CEO의 공통적인 특징은?
특징이라고 했으니까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요?

㉠ 강남 지역에 살 것.
㉡ 57세 정도 될 것.
㉢ 서울 상대를 졸업할 것
㉣ 이씨 성을 가질 것
㉤ 기독교인일 것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 믿으면 복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3) 사울 왕이 세 번째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과 다윗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인본주의의 전형입니다.
죽어도 안 물어요?
뭐 하나님께 물을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잘 묻습니다.
‘올라가리이까 말리이까?’ ‘전쟁을 하리이까 말리이까?’ ‘갈까요 말까요?’
성경은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라고 가르칩니다.

호흡을 잠시라도 쉬면 육신이 죽듯이 기도를 잠시라도 쉬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다윗처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쉼 없이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사울 왕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3. 이제 기도 응답이 안 되는 경우를 간단히 정리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고백하지 않은 죄가 기도 응답을 방해합니다.

사59:1-2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2) 용서치 못한 태도가 기도 응답을 방해합니다.

막11: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3) 잘못된 동기가 기도 응답을 방해합니다.

약4:3절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의심할 때 기도응답을 방해합니다.

약1:6-8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려워진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초조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염려스러운 것은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다급할 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 사울 왕의 안타까운 처지를 살펴봤습니다.
기도응답을 방해하는 것들은 우리에겐 없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께 지혜를 허락하셔서 방해물을 제거하고 기도응답이 풍성한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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