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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많이 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눅 12: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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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신다 (눅 12:42~48)


예수님은 재림의 긴박성과 돌연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주께서 하신 비유가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까?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직답을 피하시고 다시 청지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고 하셨습니다. 
주인의 요구에 따라 성실히 책임을 다한 종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장 43-44절에 『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고 했습니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청지기에게 맡겼는데 그 종이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올 줄을 알고 노비를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해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종은 청지기의 직분을 오해하고 있는 매우 불성실한 종입니다. 생각지 않은 때에 주인이 왔습니다. 주인은 이 종에게 엄한 형벌을 내린다고 했습니다(12:46). 맡겨진 직임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았을 때 내려지는 형벌은 잘 했을 때 받는 축복(12:43-44)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죽인다고 하지 않고 맞는다고 했습니다. 본문 12장 47-48절에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대답, 곧 예수님의 비유는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Ⅰ. 각 사람이 받은 달란트에 대한 활용 의 교훈입니다. 

본문 12장 48절에 『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각 사람은 상이한 달란트가 있습니다. 각 사람이 받은 달란트의 질적 차등을 말하는 것은 크게 잘못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속에 활용적 달란트 즉, 생산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교환 가치의 달란트의 차등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컨대 지배냐 피지배냐, 수입이 많으냐 적으냐 등에 따른 차이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기간과 관계없이 영적으로 앞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자들입니다. 기도하는 은사, 봉사하는 은사, 희생하는 은사를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29절에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은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풍요한 미국은 오늘날 전 세계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청교도 정신의 건국이념이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큰 교회는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큰 교회의 인적 자원이나 공간 자원이나 물적 자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교회는 그러한 자원들이 절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교회만 보아도 소위 대형교회가 하는 일이 자기 교회만을 위한 가족주의적 교회 운동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대형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전혀 엉뚱한 일을 함으로 한국교회가 어리둥절할 때가 없지 않습니다. 혹자는 대형교회의 공해라고까지 충고합니다. 

상대적으로 대형교회는 신앙생활하기 편하다는 것입니다. 대형교회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힘들여 일하지 아니해도 된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많은 수의 성도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최우선 추구가 교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최우선 추구는 천국이 아닙니다. 참으로 무서운 것은 이런 사상이 빠르게 학습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습이 되고 훈련이 되면 합리주의자가 되고 마침내 극에 달하는 인본주의자, 곧 현재의 가치를 최고로 하는 쾌락주의자로 전락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유의 사람들을 가리켜 마태복음 24장 51절에 『 엄히 때리고 외식 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Ⅱ. 각 사람이 맡은 직함에 대한 책임적 교훈 입니다. 

본문 12장 48절에 『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할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의 강조점은 책임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으로 말단 사원보다는 상급계층이 많이 맡은 것이 사실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이 맡은 것이고 상대적으로 재산이 적은 사람은 적게 맡은 것입니다. 평신도에 비해서 교회 장로는 많이 맡은 것입니다. 한국에 비해서 미국은 많이 맡은 것입니다. 대형교회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교회에 비해서 많이 맡은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충성을 구하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여기 충성, 곧 피스토스( )는 신실성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 충성이니라 』는 '충성되다'라는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이 보실 때 충성되다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판단으로 충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에 의해서 충성된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충성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는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대신관계)는 순종입니다. 이것은 예배적 인격자를 말합니다. ② 사람과의 바른 관계(대인관계)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인화 협동적인 인격자를 말합니다. ③ 물질과의 바른 관계(대물관계)는 구별해서 드림입니다. 이것은 만인 제사장적 인격자를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청지기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11절에 『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민족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맡은 사명이 각각 다릅니다. 노아의 자손 중 셈족이 가장 우수했습니다. 그 중에도 히브리 민족은 신령한 은혜를 받은 선민이 되었습니다. 
함족은 일찍 니므롯의 바벨론 건설 이후 이성적 사고가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낙제였습니다. 야벳 곧, 아리야족은 백인의 조상으로 여러 방면에서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 민족의 사명도 각각 특색이 있습니다. 

헬라사람은 지혜로 20세기 문명의 토대를 쌓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플라톤의 이상국(理想國),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 철학과 수학은 현대철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사람은 종교로, 헬라사람은 학문으로 각각 인류에게 공헌을 하였습니다. 로마인은 법률로, 불란서 사람은 사상으로, 독일 사람은 과학으로 각각 현대 문명에 공헌하였습니다. 영국 사람은 이것을 정리하는 것으로, 미국 사람은 이것을 활용하는 것으로써 민족적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21세기에 대한민국은 각계 각층의 통계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IT 강국입니다. 조선(造船)은 세계 1위입니다. 후자는 이해가 갑니다. 왜냐하면 3면이 바다일 뿐만 아니라 남북의 왕래가 단절된 것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는 섬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IT나 전자제품들이 세계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체능 분야에서도 탁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 
경제분야입니까? 그렇습니다. 과학분야입니까? 맞습니다. 예술분야입니까? 그렇습니다. 교육입니까? 예체능 입니까? 틀림없습니다. 우주공학입니까? 전망이 대단히 밝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받아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운동 즉, 교회운동을 맡으라는 것입니다.

고(故) 소양 주기철(1897.11.25-1944. 4.25)목사님은 약 65년 전에 이미 예언적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민족은 서(西)에 히브리인, 동(東)에 한국 사람인가 한다. 기독교를 받은 오늘에는 기독교 역사상 동양에서는 가장 혁혁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장래는 세계 사람이 주목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의 진행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여러분들! 이 거룩한 사명을 다하여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자.

베드로는 사랑을, 바울은 믿음을, 야고보는 행위를, 각각 특색 있게 나타내었다. 아볼로는 학식으로써 지식 방면에서 가르쳤고, 누가는 의술로 또는 문장으로, 각각 받은 은혜에 보답하였다. 욥바의 도르가는 구제로, 빌레몬은 소유로 봉사하였고, 빌립보 교인과 루디아는 연보로 선교사업에 공헌하였으니 『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산정재 교인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방면과 지식방면으로는 물론 물질방면으로도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또한 시행할 바 책임이 중대하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이 주셨으니 많이 요구하실 것이다. 선배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잘 가르친 것이 많으니 주일을 잘 지키게 가르친 것은 우리교회 부흥에 한 큰 요소가 되었다. 그러나 십일조 헌금도 실행케 하였더면 한국은 큰 복을 받았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십일조 헌금을 바치기로 실행하자. 안디옥교회는 당시 4대 도시 중 하나인 위치로 보든지, 세계정신을 가진 점으로 보든지, 바나바와 바울 및 마나엔 등 인물로 보든지, 세계 전도에 모범이 되기에 적당하였다. 에베소교회는 아시아중심 교회로, 교리중심의 장점이 있으나, 사랑의 결함이 있었고, 서머나교회는 폴리갑 이래 팔백여명의 순교자를 가진 영광의 교회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재산 이외에 보잘 것 없는 교회였다. 

우리 산정재교회는 어떠한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교회가, 선교 역사상 새 기록을 남기고 있으며 한국의 예루살렘은 평양이요, 평양교회 중에도 산정재교회가 가장 많은 은혜를 받지 않았는가? 위치로 보아 한국의 예루살렘, 평양 중앙에 높은 산정재 대동강수 안하에 흐르고, 큰 들밖에 산이 둘렀고(長城一面溶溶水大野東頭點點山 - 金黃元 詩) 만호장안의 슬하에 벌려 있으니, 제일강산에 제일위치가 산정재가 아닌가! 

이렇듯 좋은 곳에 초라한 건물은 창조의 대공의 손상(損傷)이요, 산천의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것이다. 제일강산 제일위치에, 제일가는 교회를 세우자. 산정재교회는 인물의 축복을 받았고, 자연의 축복, 물질의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산정재교회에 많이 주셨으니, 많이 요구하신다. 

금(金)이 있는가? 금을 가져다 드리라. 은(銀)이 있는가? 은을 가져다 바치라. 여러분은 좋은 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집은 이대로 두겠는가? 받은 은혜가 많으니 새로운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하자." 주기철(朱基徹)<신앙생활 제11권 3호>

Ⅲ.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자는 벌을 받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본문 12장 47절에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맡겨진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때는 복이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맞(형벌)는다고 했습니다. 
아랍권에서는 남녀가 은밀한 장소에서 술을 마셨을 경우에 구속 수감되고 400대에서 700대의 매를 맞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0까지를 태(笞)라고 하고 60대 이상을 장(杖)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1:24). 
'맞을 것이요'(다레세타이, )는 '가죽을 벗기다', '때리다', '뜯어내다'는 뜻이 있습니다. 가혹한 형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고 지은 죄의 중함은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에 『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에 『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인 심판과 형벌은 인간에게 평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권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특권층들입니다. 특권은 반드시 의무가 수반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차별화 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이름뿐인 성도나 이름뿐인 직분은 그만큼 큰 형벌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의 제자로서 사도적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배신한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4절에 『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케네디 집안은 불행했습니다. 미국에 온 아일랜드인들은 주로 동부 해안도시에 정착했습니다. 1850년 뉴욕 시민의 3분의 1이 아일랜드계일 정도로 밀집도가 높았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은 이를 기반으로 정치력을 발휘해 1961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일랜드계 대통령 존 F. 케네디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후로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3명의 대통령을 더했습니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상징적 존재인 케네디 가문은 1840년대 패트릭 케네디가 보스턴에 이주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패트릭은 술 만드는 공장과 술집, 청과상 등으로 많은 재산을 모은 뒤 정계에 진출했고, 아들 조지프를 하버드대학에 보냈습니다. 조지프는 은행가, 실업가로서 성공해 1914년 보스턴 시장의 딸 로즈 피츠제럴드와 결혼했습니다. 조지프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을 지원했으며, 그 댓가로 주영(駐英)대사가 됐습니다. 

조지프의 소원은 아들을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케네디가의 아이들은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승부사 기질과 야망을 배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장남 조지프 2세가 전사하자 대통령 꿈은 차남 존으로 이어졌고, 존이 43세의 젊은 나이로 백악관 주인이 됨으로써 꿈을 이루었습니다. 마침내 '케네디 왕조'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케네디 왕조엔 불행이 잇따랐습니다. 존 F. 케네디와 3남 로버트가 암살당한 것을 필두로 직계가족 41명 중 이미 7명이 비명(非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밖의 가족들도 선천적 장애와 질병 그리고 각종 스캔들에서 헤어나지 못해 케네디가에 저주가 내렸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습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아들 존 F. 케네디 2세 부부가 경비행기를 타고 가다 실종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는 "만약 셰익스피어가 살았다면 반드시 케네디가의 불행을 주제로 비극을 썼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케네디가에 일어나는 잇따른 불행을 보면서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느낍니다. 케네디가는 미국 땅에서 술장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코올중독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 출세에 대한 야망에 사로 잡혔던 가정이었습니다. 

장로는 평신도 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안수 집사, 권사는 평신도 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은 많이 받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많이 받았습니다. 영생을 받았습니다. 천국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 오고 오는 자손들의 축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무엇을 더 받고 싶습니까?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믿고 기도했으면 이미 받은 줄 알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 추구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했습니다(말 4:10). 네 부모에게 효도를 하면 장수한다고 했습니다. 야베스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대상 4:10).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받았습니다(전 7:10). 참으로 많이 받지 않았습니까?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 『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학개 2장 8-9절에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운동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유대인의 충만한 수(롬 11:12),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 온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롬 11:26)인 십사만 사천(계 7:4)을 찾는 것이 우리의 존재의의 입니다. 

십사만 사천은 상징적인 숫자일 뿐 계시록 7장 9절에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라고 했습니다. 
자, 우리 모두 힘을 다하여 주의 일을 합시다! 명예보다 공적이 화려한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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