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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으리라! (사 40: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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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앙망하는 자, 새 힘을 얻으리라! (사 40:29~31)

 
지난 주 금요일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힘이 드신지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영감∼ 나 좀 업어줘∼잉!"
할버지도 무지 힘들었지만 남자 체면에 할 수 없이 할머니를 업었습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걷고 있는데 할머니가 얄밉게 묻습니다.

"영감, 무거워?"
그러자 할아버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그럼∼ 무겁지!  얼굴은 철판이지, 머리는 돌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많이 무겁지!"
삐친 할머니가 내려달라고 해서 둘이 나란히 계속해서 같이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지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부탁합니다.

"할멈∼ 나도 좀 업어줘!"
기가 막힌 할머니가 그래도 할 수 없이 할아버지를 업고 걷습니다.  이 때 할아버지가 약올리는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한 마디를 합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볍지?"
할머니가 찬찬히 자상한 목소리로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며 대답을 합니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에는 바람이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싸가지 없지.  너∼무 가볍죠 잉∼!"

가는 말이 좋아야 오는 말이 좋습니다.  좋은 말을 해야 좋은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듣고 싶거든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말을 듣고 싶거든 아름다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에 이 땅에는 엄청나게 비가 왔습니다.  어느 신문에 보니까 하늘이 뻥 뚫렸다고 했습니다.  그냥 물을 갖다 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물이 그냥 흐르는 그대로 놔두면 논과 밭을 다 버립니다.  다 죽입니다.  농작물을 살리려면 물의 흐름을 통제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도 똑 같습니다.  내가 막 흘러갈 때 그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내 생각을 제어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의 줄을 계속 붙들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결국은 자기의 생각을 제어하는 능력입니다.  신앙이란 잘못되고 망령된 생각으로 막 흘러갈 때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면서 맨 마지막 열매가 절제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어떤 경우, 어떤 상황, 어떤 시련,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에다 붙들어 맬 수 있는 생각의 통제 능력,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믿음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벌써 그의 생각이 흐트러지면 다른 것들도 다 흐트러지고 맙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정말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아름다운 쪽을 보아야 됩니다.  힘든 때일수록 좋은 점을 보아야 됩니다.  "정말 내가 겨우 이것 밖에 안 되나?  이 한심한 것!" 그러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자기 속에 숨겨져 있는 좋은 점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생각의 흐름을 통제하시기 바랍니다.  파괴적인 사상이 내 생각 속에 흐르고 있으면 안됩니다.  절망과 허무와 낙심이 내 생각 속에 꽈리를 틀고 자리를 잡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이 내 생각 속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감사가 내 생각 속에 넉넉함으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건강하고 좋은 생각이 바른 행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감사와 은혜가 풍성한 생각이 기쁜 행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죄 없는 성자들의 박물관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사회적으로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사람들만이 모인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수많은 문제와 수많은 고통과 수많은 아픔을 가지고 병든 자들이 찾아야하는 병원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 무슨 의사가 필요 있느냐?  병든 자를 위하여 내가 왔느니라."

그러니까 아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 문제를 가지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내 놓으십시오.  희망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앞에 문제를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것은 인간에게든 하나님에게든 구하지 않으면 얻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낳은 내 자식도 그렇게 잘해주기만 하면 가만히 있어도 그 아이가 나에게 잘 해 올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구해야 해 줍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따라 하십니다.
"구하지 않으면 얻을 것도 없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자꾸 구하라고 하십니다.  더 큰 것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구하시기 바랍니다.  더 크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기도의 역사를 우직하게 믿고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기도를 하십시오.  구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어떠한 능력도 내는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경하지 마시고 잘하는 기도든 못하는 기도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일어나면 뭔가 잡을 것이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 길 최악의 순간에도 기도만 붙들면 뭔가 건질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는 그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람을 고르는 것은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선물을 줄 때에도 이것은 누구에게 줄까, 저것은 누구에게 줄까 사람을 구별해서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은 은혜라고 하는데, 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사람을 고르는 것처럼 그렇게 유별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까다롭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대단히 골고루 공평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내 속에 나는 종교성이 전혀 없다거나, 나는 성령을 제대로 못 받았다거나, 일주일 내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뿐이라거나, 나는 내 스스로 보고 또 보아도 하나님 앞에 주장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신은 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크고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힘을 원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시대일수록 우리들에게는 더 힘이 필요합니다.  돈이 힘이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지식이 힘이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고 합니다.  혹은 권력이 힘이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 있는 사람들 곁에 곁불이라도 쪼이려고 모여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적인 힘과 권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영원한 힘도 없고,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힘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시간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새롭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영원히 쇠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의 힘을 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의 이사야서는 1장부터 39장까지에서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멸망의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봉독한 본문 40장에서는 갑자기 희망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피곤에 지친 백성들,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 자포자기에 빠진 백성들 가운데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세상은 바뀌었는데 오히려 살기가 더 어려워질 때마다 우리 가운데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을 때에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여기에서 '소년'이란 피곤을 모르고 원기 왕성한 시절을 말합니다.  청년들은 여행을 하더라도 무박 3일입니다.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여행을 해도 거뜬합니다.  이것은 당시 신흥국가 앗수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장정'이란 경험과 인격이 완숙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오랜 역사와 힘을 가진 바벨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소년도 피곤하며 곤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장정도 넘어지고 쓰러져서 망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커다란 어려움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에 그들 가운데는 신흥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시간 동안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던 바벨론에 기대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선지자는 분연히 일어나 외칩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몽둥이를 드시면 바벨론도 망한다.  앗수르도 망한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한국교회도 힘을 많이 잃어 버렸습니다.  지난 세기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에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이었습니다.  이 땅이 전쟁으로 피 흘리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교회는 잠자던 민족정신을 일깨웠고 절망하던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이 일로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의 성장은 중단되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안티 기독교인들이 무서울 정도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의 십자가만 세워도 부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척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보다 문을 닫는 교회가 더 많습니다.  지난 세기에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교회들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도 어려워졌고 교회들도 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다시 힘을 내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망하게 되었다고 울부짖고 있을 때에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는 벌떡 일어나 외쳐야 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앞으로 전진해 가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리가 있다.  주의 백성들아, 꿈을 꿀지어다!  함께 달려가자!"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의 속담은 다릅니다.  "시작은 곧 성공이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는 시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준비만 하다가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향해 다시 도전하십시오.  아무런 도전도 없이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큰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아무런 도전도 해보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서 가만히 있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다음에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거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중심으로 하여 많은 원주민들이 저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은 마침 홍수 때를 만나서 물어 넘칠 정도로 흐르기 때문에 건너가는 길이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광야로 돌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아침 저녁으로 변덕이 심한 모래알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이끌고 간다는 것도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황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도 불안이 있을까봐 하나님께서 더 강도를 높여 말씀하십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그래도 불안이 있을까봐 하나님께서는 더 강도를 높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실제로 여호수아는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위대한 장군으로 알고 있지만 그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아주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야, 강하고 담대하여 앞을 향해 나아가라.  넘실대는 요단 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저 여리고 성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가나안 땅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나를 믿고 오직 앞을 향해 전진해 가라."
믿음을 가지고 여호수아가 넘실대는 요단강에 첫발을 들여놓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을 삼킬 듯이 세차게 흘러가던 요단강 물이 위로부터 멈추면서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광야 같은 인생을 달려왔는데 여전히 시련의 강물이 넘실대고 있습니까?  바로 그 심정이 여호수아의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발을 내딛어 보십시오.  비전을 향해 앞으로 전진하십시오.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지십시오.  믿음을 가지고 문제를 돌아보십시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실 것입니다.  넘실대는 요단강 물을 갈라 주실 것입니다.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을 쟁취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실패입니다.  초고성능 기관차라고 할지라도 정지하고 있을 때에는 차 바퀴 앞에 주먹만한 돌멩이 하나만 놓아도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100km, 200km 달리는 전차 앞에는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받아 가속을 붙여 가십시오.  전진해 가십시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지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날같은 믿음이라도 그 믿음을 붙잡고 전진해 갈 때에 큰 산과 같은 문제도 평지가 될 것입니다.  여리고성과 같은 문제도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될 것입니다.  내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때에 미래를 펼쳐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피곤에 지쳐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단어를 빌려서 현대인들을 표현하라고 한다면 "피곤한 사람들"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가방을 내팽개치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엄마, 나 피곤해!"  주부들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가장들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젊은이들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피곤하다!  피곤하다!"  사회 전체가 온통 피곤증에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피곤이라는 말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요 심리학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스트레스는 90%가 정신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가능성을 잘 개발하면 우리 인생의 90%의 문제는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앙의 힘, 말씀의 능력, 성령의 권능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해 관계로 모인 99명보다 한 사람의 신앙의 힘이 더 강하다."
 
그렇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신앙의 힘으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고단할 때일수록 위로부터 주시는 하늘의 능력으로 헤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도 나의 피곤함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피곤함과 무능함 때문에 좌절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본문 29절에서 이사야는 피곤함과 무능함으로 희망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본문 29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렇습니다, 여러분,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한때, 우리 나라에 와서 건강 강연을 하고 다녔던 이상구 박사의 글에 보면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은 쓰레기통과 같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쓰레기 같은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씻을 겨를도 없이 쌓아 왔던 아픈 마음의 번민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용서하고 시원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도저히 용서가 되지를 않습니다.  원수된 사람들이 내 마음을 괴롭힙니다.  난도질을 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내 안에 쌓여져 있습니다.  이 쓰레기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옵니다.
 
"하나님, 이 쓰레기를 맡아 주세요.  이 고통의 쓰레기를 맡아 주세요.  인생의 쓰레기를 맡아 주세요.  번민과 근심과 걱정의 쓰레기를 맡아 주세요."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의 모든 잡다한 쓰레기를 내려놓으면 하나님은 한번도 그 쓰레기를 되돌려 주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쓰레기 같은 문제를 맡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문제를 맡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삶에 말할 수 없는 어떤 쓰레기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으면 해결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문제를 사람에게 가지고 가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쓰레기를 던지면 오히려 아픔만 다가올 것입니다.  사람에게 위로 받으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만 다가올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내 아픔을 가지고 좀 위로 받기 위해서 찾아가면 그 사람의 아픔까지 나한테 집어던집니다.  내 인생의 짐이 무거워서 친구를 찾아가 보면 친구의 아픔과 무거운 짐까지 내가 받아 가지고 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에게는 참된 위로가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픔과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면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의 문제를 맡아 해결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드리십시오.  연약하면 연약한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모자라면 모자라는 그대로 서십시오.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은 겸손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을 쓰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다 내게로 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짐이 무거울 때마다 주님께로 달려나오시기를 바랍니다.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로 달려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힐 때마다 성령님께로 달려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의 쓰레기 같은 짐들을 다 맡아 주실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을 받은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는 크기가 비둘기하고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번 날개를 치며 날아가게 되면 하늘에 있는 모든 짐승들이 두려워 떨게 됩니다.  그 날개 쭉지에 날아가던 새들이 걸리게 되면 사정없이 찢겨지게 됩니다.  힘이 있는 새가 바로 독수리입니다.  그런데 독수리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힘있는 새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조류 연구가들에 의하면 독수리는 아주 어릴 때에 어미 새가 새끼를 등에 걸머지고 언덕 위로 올라갑니다.  구만리 창공으로 솟아 올라간 다음에 새끼를 집어던집니다.  아직까지 날개가 노랗게 채 자라지도 못했는데 그때부터 살아보겠다고 퍼득 퍼득 날고 몸부림을 합니다.  그러다가 벼랑으로 떨어질둥 말둥 할 때에 어미 독수리가 쏜살같이 내려가서 사뿐히 등에 걸머지고 창공으로 솟구쳐 올라갑니다.  그리고 다시 벼랑을 향하여 집어던집니다.  그러면 날개를 퍼덕 퍼덕거리면서 노력을 해봅니다.  그러다가 다시 떨어지려고 하면 다시 나꿔채서 창공으로 올라갑니다.  이런 훈련을 수 없이 반복하는 동안에 창공을 솟아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내 인생에서 실패를 안고 살아오신 분이 계십니까?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이 시간에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신앙생활에 실패의 흔적으로 얼룩지신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실패를 통하여 우리를 훈련시켜 주십니다.  신앙생활이 지금까지 실패했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시대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 높이 올라가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

한 젊은이가 등산을 하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길을 잃고 한 나절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산을 향해 올라가다가 숲이 너무도 깊고, 또 산세가 험하고 복잡해서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돌아가야 되겠다 싶어서 언덕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더 길이 복잡해 졌습니다.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고 마을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 한 현인이 나타나더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젊은이 길을 잃어버렸구만.  길을 잃어버릴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내려가면 점점 더 망한다네.  더 깊은 어려움에 빠진다네.  이보게, 이럴 때일수록 언덕 위로 올라가게나.  정상에 올라가면 언덕이 보이고, 마을이 보이고, 내려갈 길이 보인다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올라가야 합니다.  내려가면 망합니다.  내 가정의 재산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우리는 믿음을 확장해야 합니다.  권세가 올라가고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믿음을 상신시켜야 합니다.  올라가십시오.  올라가면 길이 보입니다.  올라가면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이게 됩니다.  올라가면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새 힘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여기에서 '앙망'한다는 말의 뜻은 새끼 새가 어미 새를 향하여 입을 좍 좍 벌리면서 먹이를 기다리는 그 모습을 앙망한다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앙망한다'는 말을 "믿고 바란다"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아버지,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봅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깁니다.  하나님은 파도를 일으키실 수도 있는 분이시며, 파도를 잔잔케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산을 세우시는 분이시며, 큰 산을 평지로 만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명을 이 땅에 보내신 분이시며, 인간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아버지 당신에게 있습니다.  당신만을 의지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우리는 앙망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습니다.  나 혼자 달려가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하도록 고독하게 나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았을 때에 새 힘을 얻게 되는데, 하늘의 새 힘을 얻은 사람의 특징을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세상이 비틀거리고 넘어져도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은 시간마다 때마다 새 힘을 얻어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새 힘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은 능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 새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피곤하여 지치고, 맥없이 비틀거리는 그 마지막 순간에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잘 되려면 먼저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셔야 합니다.  영혼의 날개가 힘차게 저어갈 때에 육신의 날개도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날개를 힘차게 저어갈 때에 사업과 직장과 건강의 날개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듯이 힘차게 날아오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주간 우리의 삶이 어떠한 형편에 처하게 될는지 우리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하나님만을 앙망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내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하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가정에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올라감 같이 힘차게 솟아올라 크게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인도하심이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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