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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물가의 생명소통 (요 4: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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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의 생명소통 (요 4:27~32)


1. 찬드라 구롱이라는 네팔 여인이 외국인 근로자로 우리나라에 입국했습니다. 
찬드라 구릉은 1993년 어느 날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신고를 당했습니다. 서울의 한 섬유공장에서 보조 미싱사로 일하던 네팔 노동자 찬드라 구룽은 공장 근처 식당에서 라면을 시켜 먹습니다. 

뒤늦게 지갑이 없는 사실을 안 찬드라는 계산을 하지 못하고, 식당 주인은 그를 경찰에 신고합니다. 경찰은 한국어를 더듬는 찬드라를 ''1종 행려병자''로 처리해 정신병원에 보냈습니다. 그렇게 갇힌 세월이 육년 사 개월. ''나는 네팔 사람이에요.''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강제 투약을 당해야 했습니다. 

라면 한 그릇 먹고 돈을 내지 못했다고, 외국인 근로자를 한국인 정신병자로 쉽게 단정하여 찬드라 구롱은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동에 갇혀서 사육당하고 말았습니다. 찬드라 구롱의 한국에서의 그 기막힌 고난의 이야기가 책으로, <말해요 찬드라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기록>2003년에 출판되었습니다. 

2.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 사람은 문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화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두고 무시하고 죽이는 기능도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입니다. 문화 속에 있는 역기능적인 요소와 악의 요소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전통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담을 쌓거나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자유 왕래도 못하게 하거나 언론과 소통을 통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소통 부재와 불능, 극한 대립과 투쟁, 수많은 경계선을 그어놓고 그 선 안에 들어오면 무조건 한패가 되고, 그 선 밖에 서 있으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우리의 정치와 문화와 종교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문화와 시간, 인종과 종교, 학연과 지연 등 모든 문화차이를 극복하고 생산적 인간관계를 맺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현대인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사회의 건강한 발전의 밑바탕에는 소통이 중요합니다. 

3. 클레어 레인스 외 2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심리학>이란 책을 썼습니다. 이 책 제1장에 성공적 소통을 위한 인간관계의 법칙: 핵심원칙 5가지를 제시합니다. 

1)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통점이 있다. 
2) 호기심은 호통의 빗장을 여는 열쇠다. 
3) 기대하라, 그만큼 얻을 것이다. 
4) 한 사람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라. 
5) 조건이 걸린 인간관계는 당신을 속물로 만든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문화와 전통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는 일이라면 과감히 저항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김이요,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장애인, 소외 된 사람들과 자기를 동일시했습니다. 예수님은 꿈이 없는 자에게 꿈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울증 환자에게 죄를 묻지 않고 치유와 회복을 일으켰습니다. 

4. 오늘 읽은 성경 요한복음 4장에 놀라운 대화의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라는 마을에 있는 우물가에 앉았다가 마침 물 길으러 온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사도 요한은 왜 이 사건을 요한복음 4장에 기록했을까요? 2장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과 3장의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말씀하셨듯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2,3,4장의 공통점은 ‘변화’, 트랜스포메이션입니다. 

선교사와 식인종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선교사가 어느 날 식인종을 만나 쫓기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도망쳤으나 막다른 길에 몰린 선교사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다. 
“하나님, 이 식인종이 기독교인으로 변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식인종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말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변화는 이런 거짓 변화가 아니죠! 예수 믿으면 양적인 변화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입니다. 생명 소통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통의 심리학>을 넘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심리학> 혹은 <인간의 전 존재를 새롭게 하는 심리학>의 깊은 경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성경은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5. 오늘 성경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을 살리는 소통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지리적 혈통적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서 사람 생명의 가치를 긍정했습니다. 긍정적 태도로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서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한 핏줄이었지만 기원전 721년에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앗시리아에 망하자 정복자 앗시리아의 이주정책으로 피가 섞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혼혈아, 깨끗하지 못한 이방인이 된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로 지나가면 지름길이지만 일부로 그리로 가지 않기 위해 요단강 쪽으로 빙 둘러서 갔습니다. 이것도 다른 형태의 명예 문화의 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마리아로 들어갔습니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남자가 외간 여자에게 말을 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예수님은 유대인 남자로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겁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여인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을 걸다니, 그것도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에게 인격적 대화를 하다니 아마 평범한 여자 같았으면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은 놀라면서도 예수님께 말을 했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은 평범한 가정의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낮 12시에 물 길러 온 것으로 보아 남의 이목을 피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땡볕에 더위로 다니지 않는 시간에, 그것도 친구도 없이 홀로 왔다는 사실이 이 여인의 신분을 말해줍니다. 남편이 5명 있었고 지금 있는 6번째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 말씀을 보아 결혼에 문제가 많았으며 가정생활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중고품’, ‘암소 가격 한 마리 보다 싸게 팔리는 여인’이라 했습니다. 

이 여인은 한 많은 여인이요, 내면의 상처와 분노와 우울증으로 시달렸을 것입니다. 때로는 부모를 원망하고 때로는 죄책감으로 떨었을 것입니다. 어떤 주석에 이 여인은 몸을 파는 여인으로, 어떤 주석은 노예로 팔려 다니는 여인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계급, 연령, 학력, 재산, 남녀, 서열, 문화수준 등 사람이 사는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어느 곳에나 없는 곳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가정과 지역사회와 정치에 영향을 미칩니다. 심지어 교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담, 이러한 경계선이 인간 사회의 특징입니다. 담이 없는 사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담을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가능성의 희망이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입니다. 

담력과 용기 뽐내는 초딩이 있었습니다. 종종 공동묘지를 찾았습니다. 비 내리는 저녁 무렵에 귀신을 만납니다. 너무 놀라 오금이 저려 꼼짝달싹 못하고 식은 땀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마침 교회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준 한마디, “어린이 여러분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는 찬송을 부르세요!” 가 생각났습니다. 막상 찬송가 가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귀신은 점점 다가와서 자기를 삼킬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찬송 하나가 번갯불같이 머리를 스치며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 귀신의 감동과 답송: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귀신 같은 사람,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받으면 감동 먹고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 

우리는 1997년 8월 5일 밤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합니다. 밤 10시 30분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괌 상공에 도착했던 대한항공 801편이 그만 추락하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추락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254명의 탑승객 중 228명이 사망했습니다. 기장은 총 9800시간 비행경력을 가진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보잉 747은 항공계에서 걸작으로 알려진 모델이었습니다. 한 때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되기도 했던 그 기체의 작동상태는 완벽했습니다. 

비행기가 사고 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그런데 왜 대한항공 801편은 추락하고 말았습니까? 블랙박스 최종 조사결과에 의하면,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는 ‘글라이드 스코프’라는 항공 유도등이 고장 났기 때문도 아니고, 스톰 셀이라는 악천후도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고장 나서 수리하던 그 한 달 동안 1500여 편의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물론 글라이드 스코프라는 유도등이 고장 났기 때문에 기장, 부기장, 기관사 세 사람이 협력을 잘 해서 시계 착륙을 하려고 했습니다. 
블랙박스가 증언해주는 비행기 추락 직전의 초를 다투는 순간의 기록이 추락사고의 원인을 규명해줍니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나와 파일럿들이 먼 곳의 불빛을 발견했을 때의 상황입니다. 날씨를 추적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던 터라 기관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 
기상 레이더 덕을 많이 본다고요? 그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육안에만 의존해서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기상 레이더에 뜬 걸 보세요. 계속 가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상 레이더에 뜬 걸 보면 날씨가 상당히 안 좋습니다. 그러니 육안에만 의존해서 시계착륙을 시도하는 것은 큰 사고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기관사는 뭐라고 말했습니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그러했지만 말은 이렇게 했습니다. 
“오늘, 기상레이더 덕 많이 본다.” 

이것이 서구문화와 다른 한국의 서열문화에서 온 완곡어법입니다. 한국문화는 듣는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말하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기관사가 보기에 자신을 충분히 말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장은 그 전날 새벽 6시까지 잠을 못 잤습니다. 비행시간이 9시간이 넘어야 초과수당을 받는데 괌까지는 8시간이라 초과수당을 못 받는 것 때문에 투덜거렸습니다. 극도로 피곤한 기장은 부기장과 기관사가 한국의 서열문화에 맞게 표현한 완곡어법의 힌트와 위험표시를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루아침에 일시에 이 모든 문화차이의 담을 다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담을 넘어서는 마음을 만들어줍니다. 성품과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새로운 시각을 열어줍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진정 나를 이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문화 속에 영적인 문제가 뿌리임을 보여주며 여인의 영안을 뜨게 함으로써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하는 가운데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할 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물, 생수, 영생수로 화제를 심화시킵니다. 그러면서 여인의 가장 아픈 점을 들추어냅니다. 바로 남편을 데려오라는 이야기, 남편 문제에 꼬이고 꼬인 인생의 실타래가 갑자기 풀린 것처럼 느껴지자 여인은 예배 장소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침내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의 영안이 열렸습니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만나주시고 대화해주시고 사랑해주시다니 이 큰 감격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음의 상처가 녹아내렸습니다. 한이 풀렸습니다. 문화의 장벽을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예화) 12제자 나무 이름과 베드로와 유다 나무의 이름에 따라 성장과 발육이 달라짐 

사랑은 생명을 살립니다. 이념과 사상은 자기편만 사랑합니다. 다른 편은 적이고 원수고 죽여야 할 대상이 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답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생수를 알려주시고 참된 영적인 예배를 가르쳐주시고 변화시키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 문화의 차이점을 넘어서 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용서와 화해와 치유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연 혈연 학연의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좌우 여야 진보 보수의 담을 넘어 생명 살리는 선교에 헌신해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의 담을 허물고 평화와 화해의 잔치를 벌여야 합니다. 
반목과 질시와 폭력과 분열이 극에 달해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담을 넘는 화해의 사신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화해의 사신이 되어 평화와 치유와 사랑과 희망이 지배하는 사회 만들기에 헌신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어지러운 시대에 참된 양심과 생명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약점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존감을 가지고 이방인의 뜰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처럼 사마리아로 들어가시고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모욕당하고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생명을 살리는 선교에 헌신하십시오. 

셋째 예수님은 생명 살림의 목적으로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한 생명이 살면 또 다른 생명이 살게 됩니다. 생명 번식의 법칙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변화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자기가 만난 메시아를 증거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놀라서 그 여인을 통해 예수님께 달려오고 예수님을 초청해서 잠시 지나가려던 예수님을 이틀이나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자기들 스스로 신앙고백하게 됩니다. 

오늘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적의 도구로 쓰시길 원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잠시 목을 축이는 물 긷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주고 달려갔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물동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도 세상 것에 얽매여서 불안해하고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간적인 담을 쌓고 명예 문화에 짓눌려서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주위에 없습니까? 혹시 여러분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인터넷에서 우리 시대의 역설이란 시가 회자되고 있어 소개합니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라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다 
말은 너무 많이 하고 
사랑은 적게 하며 
거짓말은 너무 자주 한다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잊어버렸고 
인생을 사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시간 속에 삶의 의미를 넣는 법은 상실했다 ... 

(제프 딕슨이 처음 인터넷에 올린 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은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영화 “한 사람의 힘” - 마지막 자막에 흘러내리는 글귀가 내 마음을 때렸습니다. 
“변화는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 사람의 힘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은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헌신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한 알의 밀알이 심겨져 썩으면 30, 60, 100배의 결실을 한다. 

6. 1956년 1월 Nate Saint, Jim Elliot, Ed McCully, Rodger Youderian, Pete Fleming 등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은 그들의 부인과 가족들과 함께 에쿠아도르 깊은 산지로 찾아갔습니다. 
짐 엘리엇을 비롯한 미국 하버드대를 마치고 장래가 촉망받는 5명의 젊은 영혼들은 식인종인 아쿠아족 선교를 위해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교의 꿈도 키워 보지 못한 채 선교지에서 5일 만에 죽게 됩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유능한 젊은이들을 그렇게 죽게 만든 선교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반대 여론이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러한 중에 어느 한 기자가 선교사 짐 엘리엇의 아내를 인터뷰하였습니다. 
기자의 비난에 가까운 질문을 들은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린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당시 원주민의 창에 찔려 죽을 때 신변보호용 권총이 손에 들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짐 엘리엇은 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짐 엘리엇의 아내를 비롯한 사람들이 또 다시 콜롬비아 밀림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편을 죽인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납하고 섬기게 되자, 짐 엘리엇을 죽인 추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후에 엘리엇을 죽인 추장은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손에 총을 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그의 말에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선교사들이 남을 죽이는 대신 자기가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다는 말을 듣고 ‘기키타’라는 선교사를 죽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을 듣고 그들의 포악한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사랑의 극치를 십자가는 지금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에게 기자의 질문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을 사랑?” 
“아닙니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십시오. 세상이 변화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로 마을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영적 교훈을 정리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지리적 혈통적 문화의 경계선을 넘어서 사람 생명의 가치를 긍정했습니다. 긍정적 태도로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문화 속에 영적인 문제가 뿌리임을 보여주며 여인의 영안을 뜨게 함으로써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생명 살림의 목적으로 생명 소통을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예수님 마음으로 문화의 담을 넘고 영적 개안을 하며 생명 살림의 목적으로 생명 소통을 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사회와 세상을 새롭게 하십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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