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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구원 사랑의 불변성 (호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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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사랑의 불변성 (호 11:1~11)


'호세아'란 이름의 뜻은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자기 아내 '고멜'을 사랑했다고 하는 것이 호세아서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예수(호세아)가 자기 백성(고멜)의 죄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용서하고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왕 같은 족속이 된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으로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불변적 속성'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더 구체적으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자기사랑이 고멜에게, 에브라임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Ⅰ. 선택적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1절에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내가 사랑했다'는 말은 '내가 그를 택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곧 에브라임(이스라엘, 고멜)이 '내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법적인 양자관계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4-16, 갈 4:5-6). 사도 요한은 신생관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요 1:12, 갈 3:26).

이스라엘의 경우 '내 아들'이란 출애굽 때 처음으로 불린 이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4장 22-23절에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에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장자'가 있고, '바로의 아들', '바로의 장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알려 주는 내용을 '내가 내 아들을 사랑했다'고 한 경우나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선택)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표현하였습니다(말 1:3). 

Ⅱ. 애굽에서 불러내신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1절 중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애굽은 바로 왕의 통치 영역을 말합니다. 이곳은 선민이 고역을 당하던 장소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고 있는 이 세상을 뜻합니다.
'불러내었다' 함은 포로로 잡힘과 사망에서의 자유와 해방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기 피로 해방시킬 사실을 예시하는 것입니다(롬 8:1-2). 

언제 애굽에서 불러내었는가?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호 11:1)라고 하였습니다. '어리다'는 말은 '철없고,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의 삶을 가리킵니다. 신약적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를 가리킵니다. 저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도 애굽의 학대 아래서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내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합니다.
  
저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과 생활을 하였습니다. 호세아 11장 2절에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전 역사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반하고 배은했는가를 알려 주기도 합니다. 
  
호세아 11장 7절에는 저들이 결심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셨기 때문에 저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까지 인도받은 저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앗수르 사람의 임금 앞에서 살기를 원했을 때도, 계속해서 저들을 사랑하여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Ⅲ. 양육하는 사랑입니다. 

1. 걸음을 가르쳐 주신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3절에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대명사입니다. '내가'라고 하는 말이 중대합니다. 하나님이 에브라임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나오는 걸음을 가르치고,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자녀의 손을 붙잡아 주면서 걸음을 가르쳐 줌과 같습니다. 

2. 품에 안으신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3절에 「내 팔로 안을지라도…」라고 하였습니다.
'팔로 안음'은 '사랑과 보호와 안전'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1장 12절에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3. 고쳐 주시는(치료하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3절에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하였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같이 예수는 죄인의 죄를 고치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마 9:12-13).

4.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이끄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4절에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라고 하였습니다.
짐승은 노끈으로 이끕니다. 전쟁 중의 장수는 무력으로 병졸들을 이끕니다. 통치하는 임금은 권력의 힘으로 이끕니다. 이른바 인륜의 도덕은 계율과 감화로 이끕니다. 
그러나 범죄한 죄인들의 영혼은 '사랑의 줄', 곧 '십자가의 줄'로 이끕니다. 생명은 생명으로만 이끕니다. 그래서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의 줄이 바로 은혜의 줄입니다. 

5. 멍에를 벗기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4절에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가축들이 먹이를 먹을 때와 활동할 때에 자유를 주기 위해 목자들이 취하는 방목수단을 의미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유와 해방, 곧 죄에서의 구원과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였습니다. 
  
애굽 종살이의 멍에, 이 세상의 온갖 종류의 죄악의 멍에를 벗겨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호세아 10장 11절에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뜻을 따라 사람을 태우고, 밭을 갈고 있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사망의 멍에가 아닌 생명의 멍에, 사랑의 멍에를 새롭게 메웠기 때문입니다. 주님은「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하였습니다.

6. 먹을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4절 중에 「…저희 앞에 먹을 것을 두었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공급하신 생명적 은총의 공급 등을 의미합니다. 불기둥, 구름기둥, 단물, 반석의 물, 만나와 메추라기, 종려나무와 생수 등을 뜻했습니다. 
  
바로 생명의 양식이요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랑을 예시하는 진리입니다. 그 후에 저들에게, 신명기 7장 13절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양식을 먹게 했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 풍성한 곡식이 있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랑, 즉 아들로 선택한 사랑, 불러내신 사랑, 걸음을 가르치고, 품에 안아주고, 고쳐 주고, 사랑의 줄로 이끌어 주고, 멍에를 벗겨주고, 먹여주고 양육하는 사랑은 그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Ⅳ. 결코 멸망시킬 수 없는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8절에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 도시가 하나님의 천벌로 불심판을 당할 때 함께 멸망을 받은 그 이웃의 도시들입니다(신 29:23).
  
그러나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은 버릴 수 없고 놓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내가 어찌…」라고 하심은 에브라임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사랑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변심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결심까지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앗수르 왕에게 붙여 종살이를 하게까지 징계하였습니다(호 11:5-6). 그렇게 해서라도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이스라엘을 향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기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로 그는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셨습니다. 버릴 수 없고 놓칠 수 없는 이스라엘이라고 하였습니다.

Ⅴ. 불타는 긍휼의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8절 하반절에서 9절 상반절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브라임)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긍휼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사랑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긍휼이 불타고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온전히 뜨거운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창세기 43장 30절에 요셉이 동생 베냐민을 보고 그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 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라고 한 경우와 같습니다.

Ⅵ. 궁극적 구원의 사랑입니다. 

호세아 11장 10-11절에 「저희가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은 결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궁극적 구원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서편, 곧 바다 건너편 섬들에서, 남방인 애굽에서, 동방을 대표하는 앗수르에서 새같이, 비둘기같이 영원한 생명의 피난처 되신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렇습니다. 「…내가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사 60:7-8)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호 11:11)고 하신 말씀은 「내 아버지 집」에서의 영원한 정착과 안식을 예시하는 말이 됩니다(요 14:1-3).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의 사랑입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브라임(이스라엘)은 고멜이요 고멜의 자식들입니다. 저들은 배신과 배약과 배은의 죄로 충만하였습니다. 불 같은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받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에브라임은 자기 죄 때문에 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 큰 이유는 에브라임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민(聖民)이요 선민(選民)이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구속받고, 가나안으로 인도받고, 양육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걸음걸이를 배우고, 품에 안기고, 치료를 받고, 먹여줌을 받고, 압제자의 멍에로부터 벗겨짐을 당하고, 사랑의 이끌림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저들은 아드마와 스보임같이 멸망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거기서 영생의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란 증거가 됩니다. 
  
시편 103:8-14절에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죄 때문에 망할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궁극적 사랑'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아 멘 - (석원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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