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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직 받지 못한 상급 (마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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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받지 못한 상급 (마 6:1~6)

 
맛있는 것이 생겼을 때 맛있는 거니까 나중에 먹도록 남겨놓자는 사람이 있고 맛있는 거니까 지금 먹어버리자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후에 돈이 필요할 때를 위하여 저축을 하자는 사람이 있고 쓰는 만큼 내 것이랬다, 다 써버리자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그 중간 어디쯤 계실 것입니다. 버는 돈을 다 저축할 수도 없지만 버는 대로 다 써버릴 수도 없습니다. 특별히 처자식이 있는 남자에게는 초이스가 없습니다. 참고로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 007을 보면 제임스 본드는 영국 해군 장교로서 월급을 많이 받는데 자기가 일찍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돈을 아끼지 않고 다 써버린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007 제임스 본드에게는 내일이라는 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오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인도하는 사람에게 현재의 희생을 강조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습니다. 60년대, 70년대 경제가 한창 발전할 때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현재의 희생을 독려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랬고 경제적으로도 그랬습니다. 현재는 힘들지만 잘 참고 인내하면 잘 살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참 다행인 것은 어느 정도는 그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망정이지 만일 희생은 희생대로 하고 그리고 좋은 날이 오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극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과거의 그 희생과 노력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발전하게 된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 애석한 것은 그때에 특정 계층에게 남보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노동자들이나 저층민들에게 남들보다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고 그들의 희생의 덕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미래에 목적을 위하여 현재의 희생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은 불쌍합니다. 마음껏 뛰놀지도 못하고 마음껏 여행도 하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공부나 하고 있으니까 불행한 일입니다. 이것은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장차 그들의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학업이든 진로든 직업이든 간에 미래의 길이 열릴 것을 위해서 지금 준비할 것을 가르칠 수밖에 없고 그리고 교육적인 효과를 위해서도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참을성 ․ 인내 ․ 노력 ․ 헌신 이와 같은 덕목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이런 덕목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크게 되면 이후에 알코올이나 도박, 약물 중독에 빠질 위험이 더 많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절제하고 참고 인내하고 때로는 희생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거저 배워지는 것이 아니고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TV에서 학생들 퀴즈 프로 보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장학퀴즈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나와서 퀴즈를 하는데 한번은 진행자가 참석한 고등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성교제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남학생이 대답하기를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그때 가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말한 것입니다. 많은 청소년이 이런 꿈을 갖고 현재에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학생도 자기가 의도하던 목적지에 가보면 거기에 온 사람들이 다 똑같은 규칙대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모든 종교에 대해서 그리고 특별히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천국의 막연한 상급을 빌미로 현재의 고난이든 현재의 불의든 현재의 부조리를 참을 것을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참으면 이후에 천국의 상급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약할 수 없는 천국의 상급을 비꼬는 말로 Pie in the sky 라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과자, 하늘에 있는 케이크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늘에 있는 과자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것인지 천국을 믿지 않는 것인지 현세만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설령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금세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 유일하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마시고 싶은 대로 다 마시고 ,화를 내고 싶은 대로 다 내고, 앙갚음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은 본적이 없는 는 것 같습니다. 

내세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찍 죽습니다. 병에 걸려서 죽습니다. 성인병에 걸려서 죽든 간이 고장이 나서 죽든 아니면 사람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아니면 알거지가 되든가 사람들에게 기피인물이 됩니다. 외교적으로 말하는 Persoa Non Grata(페르소나 논 그라타)-기피인물이 돼버립니다. 

내세를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황제라도 재벌이라도 어느 누구도 지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지혜입니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르트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것을 자기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았느냐? 그건 아니에요.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자기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살았을 것 같은데 본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내세가 있다고 믿든 믿지 않던 간에 자기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서만 사는 것처럼 허무한 것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돈을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쓰면 행복할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허전하고 허무하고 권태가 옵니다. 그게 즐겁지가 않습니다. 밤새 고스톱을 쳤더니 참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밤새 고스톱을 쳤더니 졸리다든가 재미가 좀 있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내가 밤새 놀음을 했더니 정말로 기쁘다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기쁨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화를 있는 대로 내 보세요. 내고 싶은 대로 규제받지 않고 화를 내 보세요. 그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요. 그건 잠깐이고 곧 후회를 느낍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파지고 서글퍼지고 눈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람은 화를 있는 대로 내고 욕하고 싶은 사람 원하는 대로 욕을 할 수 있으면 시원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마음이 괴로운 것을 경험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느냐? 선한 일을 하면 마음이 기쁘고 나쁜 일을 하면 마음이 괴로운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습관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누가 가르쳐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천성적이고 본능적이고 직관적입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우리 맘이 기쁘고 나쁜 일을 할 때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숨고 싶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보편적인 인간의 현상입니다. 이건 교육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본능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지성보다 더 분별력이 있고 더 지혜롭고 더 똑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할지라도 내 가슴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느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허무하지만 행복을 남과 나누고 즐거움을 남들과 나눌 때 그것이 우리에게 즐겁고 보람이 되고 그건 누가 가르쳐서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도 사랑으로 살 때만이 우리의 삶이 보람 있고 의미 있도록 프로그램 해 놓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이 계신 것, 그분의 속성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Pie in the sky를 말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아마도 내세가 없다는 것보다는 하도 기독교가 종교인들이 내세만을 강조하다보니까 이 세상에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고 이 세상을 바꿔야 될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냥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보고 넘어가는 것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느냐. 예수님은 맛있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맛있는 것을 이후를 위하여 남겨두셨느냐 아니면 맛있는 것을 지금 다 드시는 분이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후의 것으로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래서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보이시기 위해 하신 일 중의 하나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병자들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고쳐주신 것이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사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성령의 능력, 권능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어둠의 권세, 죄의 권세가 물러가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다 지금 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과 같다, 겨자씨와 같다, 그 말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행 중입니다. 겨자씨를 심으셨습니다. 이후에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자라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척도는 무엇이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했는데 상급을 지금 다 받지 못하더라도 이후에 받을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척도입니다. 그걸 믿고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그게 아니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상급과 공의와 나라가 장차 임할 것을 믿고 그리고 현재를 인내하면서 사는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아들은 과자를 주면 밤에 잘 때도 그걸 손에 쥐고 잔다고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내 손에 붙잡은 것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지금 볼 수 있어야만 그게 내 것이다. 그 이외에는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보이는 것만 진짜라고 생각하셨다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후의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승리를 믿기 때문에 현재의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믿음으로 사셨어요. 예수님도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기 의를 사람들에게 보이는 사람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은밀하게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 갚으시리라’고 했어요. 하나님이 안보이시는 것 같지만 다 보고 계십니다. 은밀히 보고 계십니다. 그건 믿음을 요구하지요. 하나님이 보고 계신지 안보고 계신지는 나는 알 수 없는데 갚으신다고 하니까 그걸 믿는 사람은 내 의를 은밀하게,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고 못 믿는 사람은 지금 사람들이 다 알아주고 인정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것이 아닌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것이 상급이든 공의든 위로든 무엇이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는 날이 옵니다. 그걸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믿음으로 사셨고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것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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