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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습 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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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습 3:14~20)

 
어느 40대 중년의 한 그리스도인이 노모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 주일 아침에 교회 가기가 싫어진다는 겁니다.  그가 쓴 편지에서 교회에 가기 싫은 이유 세 가지를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너무 힘이 들고, 둘째, 요즘 따라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서 짜증스럽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봉사자들이 준비 없이 봉사하는 바람에 예배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안 살아서 교회에 가기가 싫다는 겁니다.

아들의 이 편지를 받아본 어머님이 아들에게 회답을 보냈습니다.  아들아, 그래도 교회에 가야 한다.  네가 교회에 가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주일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는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지 네가 선택할 일이 아니다.  세 번째, 그래도 네가 교회 담임목사인데 가야지 안가면 되겠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가끔은 권태와 탈진,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사도 어떤 때에는 권태와 탈진과 낙심에 빠져 마음 아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지식 운동이 아닙니다.  신앙은 무슨 종교 운동도 아닙니다.  신앙은 어떤 교파 운동도 아닙니다.  신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무슨 성경운동도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문자적인 성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신앙은 영적 해방 운동입니다.  신앙은 그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명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온갖 치유의 영, 위로의 영, 능력의 영, 고난과 환난을 이기게 하는 영, 평화와 자유의 영,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서 그 영이 터지도록 하나님 앞에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생명체는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 살수 없습니다.  혼자의 힘은 무수한 속박과 구속과 환난의 연속이지만 하늘의 것을 받으면 살아납니다.  대지가 그렇게 타는 듯이 더워서 다 갈라지고 다 죽어 가지만 하늘의 것이 내리면 살아납니다.  하늘의 것이 임하면 살아납니다.  

하늘의 것이 들어가니까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늘의 것을 한 점만이라도 붙들면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낙심하던 내 아들, 그렇게 절망하던 내 딸, 그렇게 어려움 가운데 있었어도 하늘의 것을 붙잡으면 살아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마땅히 위의 것, 하늘의 것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죽어가던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금 하늘의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목회를 하면서, 또 목사가 되어서 여러분과 함께 이 길을 가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날이 가면 갈수록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도 강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재산이 많고, 세상적인 명예가 있어도 그 심령이 성령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그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적인 지식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그 심령이 성령님과 교통하지 않으면 감사와 기쁨과 감격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마다 때마다 성령님과 교통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시간마다 넘치고 하나님의 성령이 교통하여 은혜와 고마움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지혜와 감사와 감격이 넘치지 않으면 이것은 종교 생활을 하는 겁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그 심령에는 시간마다 감사가 넘쳐납니다.  때마다 감격이 충만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감사와 감격이 그 심령 깊은 곳에서 솟아나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붙들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감사하며 삽시다."  "감격하며 삽시다."  "고마워하며 삽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 충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축복의 주제입니다.  그것이 무슨 성령의 충만이냐?  그것이 무슨 성령의 충만을 받았느냐?  여러분, 논쟁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성령 충만은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대한 감화와 감동의 세계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님이 가르쳤던 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우리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그 길을 갈 수도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깨달아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 앞에 나옵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향한, 내 사업을 향한, 내 기업을 향한, 내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영이 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에 취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는 것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끝없는 꿈을 줍니다.  끝없는 이상을 줍니다.  끝없는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꿈을 꾸고, 이상을 보고, 예언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꿈을 꿉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모든 절망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렇게 주님을 따라 다녔지만 하나님의 영이 오기 전까지는 모든 상황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고 나니까 모든 상황을 정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이 역사가 여러분 속에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성령의 강력한 역사에 사로잡히시기를 축복합니다.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로 짐승처럼 줄줄이 끌려가서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 정신병동에 갇힌 것처럼 갇혀서 처참한 포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습니다.  아무런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낙심과 절망 밖에 무슨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갈 때에 에스겔이라는 젊은 청년이 나타납니다.  그가 어느 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 깨닫게 되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아!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가 있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는구나."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영이 그를 붕- 날리더니 어디를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는 골짜기마다 마른 뼈들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며 음성이 들렸습니다.
"에스겔아! 예언을 해라!  예언을 해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지금의 우리 집안을 들여다보면 마른 뼈들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우리 집안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내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을까?  그런데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거기 정신병동 같은 그발 강가에서 보는 것만 보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귀가 열리고 신령한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에스겔아! 예언을 해라!  예언을 해라!  예언을 해라"
"하나님, 뭐라고 예언을 할까요?"
"생기야, 임하라!  생기야, 임하라!  생령아, 저 죽은 마른 뼈들에게 들어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신앙은 무슨 학문이 아닙니다.  신앙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신앙은 현실적인 겁니다.

"생기야! 임해라!  생기가 임해서 사망을 당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살게 해라!"

그는 순종했습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서 에스겔 골짜기를 향하여 선포했습니다.  "생기야, 임해라! 생기야, 임해라!  생령아, 들어가라!"  그랬더니 죽었던 뼈들이 붙더니 일어나서 사람의 형상을 했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또 들립니다.

"다시 예언해라!  다시 예언해라!  생기야, 저들에게 임하라!"

그랬더니 저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군사를 이루면서 저들 속에서 나눠졌던 나라가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때의 발 길이 갈 때의 발 길과  달라져야 됩니다.  올 때의 눈빛과 갈 때의 눈빛과 달라져야 됩니다.  올 때의 심령과 갈 때의 심령이 달라져야 됩니다.  올 때의 모습과 갈 때의 모습이 달라져야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이 변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생령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한번도 신령한 체험을 못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권능, 절대적인 능력에 사로잡히지 못하고, 그냥 남이 믿으니 믿고, 남이 읽으니 읽고, 남이 공부하니 공부하고, 그래서 이 훈련된 신앙, 훈련된 의지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른 신앙은 훈련된 의지나, 훈련된 지식이 아닙니다.  훈련된 사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자기 훈련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기가 막힌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천만의 말입니다.  내 아내도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내 자식들도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생포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에 사로잡히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이 받은 첫 번째 축복입니다.
 
아무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 눈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축복합니다.  훈련된 지성, 숙련된 의지, 이것이 신앙생활의 마지막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때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사로잡히는 일입니다.  오늘 한 번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에 사로잡혀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맥빠지는 소리가 많습니다.  더구나 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어려운 환경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늘 백성들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지구촌이 전쟁과 괴질로 시끄럽고 경제가 도탄에 빠져도, 사회의 혼란에 현기증이 일어나도, 나물 먹고 물 마시고 거적대기를 걸치고 살아도 기가 죽어 살지 마십시오.  기운을 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그날에!  당시 시대적인 상황은 사람들의 기를 죽이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리빙바이블에서는 "기죽지 마라!" "힘을 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기록된 시대적인 배경은 요시아 임금이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임금의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폭정을 행한 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태양신과 바알신이 득실거렸고 우상숭배와 매춘행위가 나라 안팎에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국민들은 한결같이 가난과 사회적 혼란으로 저마다 절망과 낙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제 겨우 여덟살의 어린아이 요시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어리고 철없는 임금에게 나라와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기가 죽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밝아오는 구원을 바라보고 기뻐하라는 겁니다.  오히려 노래하라는 겁니다.  기죽지 말고 기를 펴고 살라는 말입니다.  위축되지 말고 힘과 용기를 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시온이란 유다 백성들을 의미했고,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했습니다.  여기에서 시온은 메시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믿음의 백성들을 의미했습니다.  한 마다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아, 기운을 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오늘 본문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13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부패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고 살았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절망에 빠져 살던 그때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신앙을 움켜쥐고 희망의 밧줄을 놓지 않았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남은 자들을 향해 이렇게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당시 모든 주변 국가들의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시온성 이스라엘에게는 기운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운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운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15절의 말씀인데,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니까 므낫세와 아몬의 끔직한 죄를 어린왕 요시아에게 형벌로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은 한 마디로 형벌 탕감선언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위축되고 움츠려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으며, 내가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갖지 못했으며, 양심을 위반했다는 이 죄 의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내게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질병이 찾아 올 때에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내게 형벌로 내린 무서운 아픔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합니다.  이 환난이 행여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 아닌가?  그래서 움츠려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주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셨다.  그러니 믿음의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유명한 소설가 헤밍웨이의 단편집 가운데 "세속의 신전"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입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아버지가 어느 날 집을 나간 아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그는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야, 아무 날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는 스페인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에 나갔더니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800여명의 젊은 남자가 저마다 자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헤밍웨이 자신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용서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사함 받은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를 정죄하는 어떤 소리에도 자유롭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바냐는 위축되어 기가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믿음의 백성들이여, 기운을 내십시오.  기죽어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형벌을 제거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운을 낼 수 있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위축되거나 기가 죽지 않고 당당하게 기운을 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을 결코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능히 없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진짜 아버지보다 더 진한 사랑을 가진 진짜 아버지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보다도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 말씀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의 그 두 손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의기 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잭 테일러(Jack Tailor)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부흥회를 하실 때마다 그 표어는 언제나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그 사실만을 가르치십니다.  대단한 부흥사도, 대단한 설교가도 아닌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라는 이 메시지만 한 주일동안 가르치고 나면 사람들의 삶이 바뀌어진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작은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무거운 짐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부림할 때, 외로이 고독에 지쳐 쓰러지고 있을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은 깊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능히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기운을 낼 수 있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을 다시 한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으실 때에 '너'라는 말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겠습니다.
"오주철이의 하나님 여호와가 오주철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오주철이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오주철이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오주철이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볼 때 가슴 부풀어 하시고, 따뜻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오주철이의 하나님 여호와가 오주철 가운데 계신다.  그 하나님이 OOO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OO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OO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라."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씀입니까?
 묻습니다.  여기 너라는 단어 대신에 여러분의 소중한 이름을 넣어도 확실한 진리의 말씀임을 여러분은 믿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이 땅의 권세자나 부자나 유명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 우주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강력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전되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거나 강한 성령에 직접적으로 부딪혔다면 우리는 숨도 못 쉬고 죽었을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게 꼭 필요한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도 그만큼 섬세하게, 배려가 넘치는 사랑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잠잠히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볼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십니다.  즐거이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기가 죽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기쁨에 겨워 춤을 추고 계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사랑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의 빛나는 눈동자와 윤기 있고 광채 나는 얼굴을 보십시오.  그의 밝은 표정을 보십시오.  인간 문제의 해답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이 사랑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기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느냐 하는 생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면 자기 가치를 발견합니다.  사랑 받고 있는 그것 때문에 "나는 살아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은 고기 반찬을 먹지 못해도 당당하게 인생을 헤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사랑하고 계신데 왜 기가 죽어 살아야 합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은 초막을 궁궐보다 더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 사랑은 지옥을 천국으로 변화시킵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나는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맞바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소중한 가치 있는 존재이다."  사랑 받고 사는 그 얼굴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무너져 가는 마지막 불꽃을 부둥켜안고 기가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결과를 우리는 요시아의 개혁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기죽어 살지 말라.  네 어깨를 늘어뜨리고 살지 마라.  용기를 내라.  힘을 내!"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펄펄 뛰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도끼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우상의 신당들을 부수어 버리고 성경을 열어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에 물든 습관을 저주하고 엎드려 통회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움과 원망 대신에 사랑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되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신혼 부부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새색시가 애교를 부리면서 새신랑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기, 13번처럼 섹시해서 나랑 결혼했어? 아니면 25번처럼 늘씬하고 예뻐서 결혼했어?"
그랬더니 무뚝뚝한 경상도 새신랑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바로 그 유머 감각 때문 아이가."

사랑하는 여러분, 유쾌하게 사십시오.  즐겁게 사십시오.  땅의 것을 바라보면서 기죽지 말고, 위의 것을 바라보면서 기운을 내십시오.  일어나십시오.  기죽어 살지 마십시오.  역사의 운행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지금 어두운 역경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한탄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이 넘어지지 않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그곳에서 일곱 번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고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뜻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십시오.  자신의 의지의 날개를 활짝 펼치십시오.  실행은 이론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믿고 행해 보십시오.  내 손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내 발이 닿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리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능하시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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