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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의롭다 하심을 받은 감사 (눅 18: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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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심을 받은 감사 (눅 18:9~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 인정함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눅18:14/ 새 번역)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년 세 가지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신16:16-17)
  
유월절(逾越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칠일 동안 무교병(無酵餠), 곧 누룩이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은 무교절, 또는 무교병의 절기라고도 했습니다. 
  
맥추절(麥秋節)은 첫 열매를 거두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초실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절기는 유월절로부터 오십일 되는 때에 지켜지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첫 열매의 대표적 곡식이 보리와 밀이기에 한국성서는 보리맥(麥),자를 써서 맥추절이라 번역했습니다.
  
수장절(收藏節)은 한자로 거둘 수(收), 감출 장(藏), 마디 절(節)의 입니다. 이는 연말에 거둔 것을 저장하면서 지키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이때는 임시로 들에 초막을 짓고 기거했기 때문에, 초막절(草幕節) 또는 장막절(帳幕節)이라고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세 가지 삼대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절기를 지킬 때 빈손으로 하나님에게 보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하심을 잊지 말고, 감사할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우리에게 땅의 첫 소산을 양식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주일입니다.   
  
신앙의 삶은 감사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풍성한 신앙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말씀했습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고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d니정을 받는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 할 때에 그 감사는 잘못되거나 그릇된 감사가 되어 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가운데서 잘못된 감사를 드린 바리새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18:11-12)
  
이 바리새인의 감사는 그 감사의 목적과 내용과 방법에 있어 모든 것이 잘못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의 감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지 못하는 감사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리새인에게 있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바리새인은 자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나의 부끄러움을 용서해주시고 부족함에도 부족함 없도록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용납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의롭다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자기스스로 의롭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곳에 서서 자기 의를 자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 같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세리와 비교하면서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면서, 세리를 경멸하며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부끄러움을 용서하고 용납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면 그 은혜 안에서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이해해 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이해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의 종교적 행위를 과시하면서 자기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감사의 목적이 잘못된 것입니다.   
  
감사는 자기자랑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고 갖춘 것을 가지고 과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우월감을 드러내는 곳에는 자기 의를 나타내기 위한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 행동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잘못된 감사에서 나타나는 자기자랑이 만들어내는 판단과 정죄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4:2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 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4:11-12)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롬2:1-2)

감사의 목적과 내용이 잘못되면 감사의 태도가 잘못되어집니다. 바리새인의 나를 자랑하는 감사와 우월감을 드러내는 감사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무시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감사는 교만한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세리와 함께 할 수 없다고 다른 장소에서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따로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세리에 대하여 멸시하는 말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의로운 자임을 표명했습니다. 종교적 행위에 대하여 과시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태도는 교만함입니다.    
  
그러나 이 교만한 감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 감사일 뿐 아니라 패망의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 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21:24)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예수님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8:14)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 
  
죄인으로 취급받는 그로서는 거룩한 성소 가까이 나아가는 것조차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존경받는 바리새인 곁에 서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죄송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기에 멀리 서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리의 기도 다음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평가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였다고 하셨습니다.  
  
세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했을까 영상을 그리게 해 줍니다. 자기를 자랑하기보다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세리를 용납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음에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를 드렸음에 분명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이미 기도의 모습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 내세울 것이 없는 그로서는 겸손하고 또 겸손했을 것입니다. 그의 감사는 의롭다 하심을 받는 감사였음에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받는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감사 속에 하나님의 사랑받는 성도이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는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용납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교만이 아니라 겸손함입니다. 감사는 책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괴롭고 슬프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예화) 두 가지 이야기 󰒑 조인자 권사님  󰒒 어느 기독 CEO의 이야기
                        
감사는 두 가지 마음이 결합되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두 가지 마음은 고마워하는 마음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감사는 고마운 마음의 표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좋은 일이나 특별한 은혜를 입었을 때에 고마워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고마워하는 마음과 함께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에 감사하는 대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은혜를 소중히 여길 때에 그 은혜에 가치를 부여하게 됩니다. 또한 그 은혜를 주신 분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고마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그 고마움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는 감사는 감사의 대상을 기쁘게 해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고마워하는 뜨거운 마음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는 뜨거운 사랑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 뜨거운 마음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며 그 하나님을 우리의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강요적으로 감사하라고 하시기까지 하십니다. 구약성서에서 보면, 하나님은 각종 감사의 절기를 만들어서 감사할 것을 명하시기까지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로 감사하는 인생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함에서 우리의 인생이 복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감사의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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