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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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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30)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짐이나 책임을 짊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려고 합니다. 한 가정에서도 무거운 짐을 남편은 아내에게 맡기고 싶고 아내는 남편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짐을 지면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어찌할 수 없이 짐을 지고 태어납니다.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받은 인생은 원하든 원치 않든 태어나자마자 죄인이요 불의한 자요 병든 자요 저주받은 자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고통스러운 존재인 것입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피하는 이 무거운 짐을 다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한두 명만 오라는 것도 아니고 부자와 훌륭한 사람만 오라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나 못 받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그 짐을 맡아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우리 마음속에는 밖에 드러내지 않지만 죄책과 정죄의 짐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이 이 세상에 살아계실 동안에는 목회한다고 바빠서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나 드리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늘 마음속에 정죄감이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을 잘 모시지 못했다’는 정죄감에 굉장히 괴롭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런 정죄감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좀 더 잘해줄 걸. 내가 좀 더 도와줄 걸’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결과는 마음의 정죄감인 것입니다. 시편 38편 4절에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또한 세속의 타락의 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타락해서 부패하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한 체하고 교육을 잘 받고 점잖고 훌륭한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지만 내부에는 부패한 탐욕과 욕심과 방탕의 정신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방되기를 원해도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됩니다. 술주정뱅이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하면 그만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또 마십니다. 도박꾼도 늘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 또 도박합니다. 자기 힘으로 벗어나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우리는 심신의 질병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한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마음이나 몸에 병들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몸의 병도 무섭지만 마음의 병도 무섭습니다. 오늘날 시기와 분노, 질투, 탐욕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줍니까?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이름모를 병들이 수없이 생겨서 우리는 육체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생활고의 짐이 있습니다. 요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길거리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직장에서 쫓겨나 손 털고 나왔습니다. 자식들은 학교에 다니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은 저주를 받아서 아무리 잘살려고 노력해도 고통이 쌓이고 괴로움이 쌓이고 어려움이 쌓이는 것입니다. 이 짐을 누가 벗겨 주겠습니까?

 또한 결국에는 죽음과 허무의 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바라며 자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고 보편적으로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늙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은 안 늙습니다. 그런데 몸이 늙어 갑니다. 마음은 튼튼한데 두 다리가 자꾸 떨립니다. 눈이 컴컴합니다. 어떻게 이 짐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들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죄의 짐, 타락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죽음의 짐, 이러한 것들이 다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현대인들이 모두 보편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질병입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지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혼란시키며 의지를 무력화해 우리 삶을 무너뜨립니다. 또한 마음의 슬픔과 불안을 증대시켜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 각종 암 등의 원인이 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질병 중에 80% 이상이 스트레스 때문에 온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종 취미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하면서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스트레스에서 놓여남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인생의 죄책과 정죄의 짐, 세속의 타락의 짐, 생활고와 질병의 짐, 죽음과 허무의 짐 등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2. 주님께 와서 짐을 맡겨라

 어떻게 해야 이 스트레스를 벗어버릴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 짐을 맡기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모든 슬픔, 고통, 괴로운 짐을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서는 주님께 기도로 아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서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짐을 청산해 주심을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셨습니다. 불의와 추악도 청산하셨습니다. 질병도 청산하셨습니다. 저주도 청산하셨습니다. 죽음도 청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만들어 주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믿음이란 상대를 믿고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진장이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닌 학교가 있는 곳은 언양입니다. 진장과 언양 사이에는 시냇물이 흘렀습니다. 거기에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된 다리 하나밖에 없는데 비가 오면 언제나 물이 넘쳤습니다. 흙탕물이 다리 위로 넘치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난 다음 집에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항상 고모 집에 갔습니다. 

고모부가 굉장히 몸이 튼튼하셨기 때문에 “고모부, 저 집에 가야 되겠는데 절 좀 도와주소” 그러면 곧장 나오셔서 제 손을 잡고 물가에 가셨습니다. 물이 세차게 흐르니까 저는 겁이 나고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모부가 “등에 업혀라. 내 목을 꼭 잡아라!”고 하시면 저는 업혀서 목을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고모부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그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흙탕물이 무릎까지 찼습니다. 세차게 물이 흐르는데 천천히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떼 갑니다. 만일 고모부가 넘어지면 저는 박살이 납니다.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모부는 언제나 저를 안전하게 건네 주셨습니다. 그 물을 다 건널 때까지 제가 고모부의 등에 얼마나 찰싹 붙어 있었는지 말도 못합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상대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책임을 지고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안식은 예수님께로 돌아와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이미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뛰어서 주님 품에 안겨야 합니다. 마음에 평안과 안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심이 오면 밀어내야 합니다. 불안이 오면 밀어내야 합니다. 기도로써 다 밀어내 버리고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어 놓으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평안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3. 삶과 인간관계의 짐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본을 따라 배우면 쉼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온유하라고, 어느 정도 겸손하라고 하셨느냐, 마태복음 5장 38절로 42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설교하면서 이 성경구절은 뛰어 넘었습니다.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왜 돌려 대야 합니까? 송사해서 속옷을 달라고 하는데 왜 겉옷까지 줍니까?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억지로 오리를 가야 되는데 내가 왜 십리까지 따라 갑니까? 그래서 주님이 너무 과도한 것을 요구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인생을 살아보니까 온유하고 겸손해서 양보하므로 논쟁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부귀, 영화, 공명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의 평화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마음이 불안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어도 마음이 불안한 사람이 무슨 행복이 있습니까? 행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거짓이 없는 참말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 뺏기고 거지가 될 것 같지만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합니다. 세계 역사를 봐도 독재자들이 세계를 정복한 것 같으나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주먹 쓰고 깡패 짓하고 흉악한 사람이 잘살 것 같지만 잘 못삽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 잘삽니다.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의 편에 계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로 21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합니다. 원수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먹여주라, 원수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마시게 하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게 됩니다. 머리에 숯불을 올리고 있으면 머리가 타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그 숯불은 뭡니까? 감동의 숯불입니다. 원수가 우리에게 와도 우리가 선을 베풀므로 그 마음에 감동이 돼서 숯불을 머리에 인 것처럼 타 내려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율법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변명하게 하고 원수를 갚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사랑은 무장해제를 시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하다는 것은 따뜻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랑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지면 원수를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를 낮추고 이웃을 존경하는 마음, 섬기는 마음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남을 섬기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은 전부 자신이 잘났다고 선전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나보다 남을 높여주고 내가 남을 섬겨주는 것이 우리가 평안을 얻는 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장애인 사역을 하기로 결심하고 교수직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당신 같이 훌륭한 교수가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인 도우미로 나가다니요”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사람들의 칭송을 늘 받고 사람의 높임을 받아서 예수님을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높은 자리를 떠나서 장애인들의 도우미가 되고 낮은 자리에 오니까 예수님이 바로 나와 같이 계십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섬기는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셨던 겸손한 삶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와 겸손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 분노와 미움과 원한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고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도전에 대하여 응전하지 않습니다. 많은 스트레스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의 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가 온유하고 겸손하게 인생을 산 것처럼 이것은 너희가 짊어지고 갈 멍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란 뭡니까? 짐을 짊어지는 도구입니다. 짐승들이 멍에 없이 짐을 지면 가죽이 벗겨집니다. 그러므로 멍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안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 예수님께 배우면, 겸손하고 온유한 멍에를 걸머지면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고 분노가 사라집니다.

에베소서 4장 2절로 3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멍에를 걸머지면 마음에 미움이 사라지고 분노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짊어지고 나가면, 모두 다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이 평안해 질 수 있습니다.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가면 부정적인 도전에 대해서 응전하지 않습니다. 남이 온갖 흉을 보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유와 겸손을 걸머지고 나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고 하고 나를 주장할 때 스트레스가 생기지 나를 버린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고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뒤따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해서 온유하고 겸손하고, 아내도 남편에 대해서 온유하고 겸손하면 거기에 무슨 알력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생기겠습니까? 우리가 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무정하고 몰인정하고 폭력을 사용하고 그렇게 하니까 투쟁이 있고 분노가 있고 고통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면 인간관계에서 평안을 얻습니다.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은 십자가에서 다 해결됐습니다.

 또한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고 살면 마음의 짐이 점점 사라지고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죄의 짐을 벗어 버리고 세속의 짐을 벗어 버리고 병의 짐도 벗어 버리고 저주의 짐도 벗어 버리고 죽음의 짐도 벗어 버리고 평안을 얻으십시다. 또한 예수님을 따라서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걸머지고 어느 곳에 가든지 ‘온유하고 겸손해야지, 온유하고 겸손해야지’ 그렇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의 짐을 십자가에 맡기고 온유하고 겸손함으로 멍에를 걸머짐으로 평안하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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