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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올속의 요,·나 (욘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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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올속의 요,·나 (욘 2:1~10)


지난 수요일 새벽, 서울역 뒤편의 한 노숙자 지원센터에서 700여명의 노숙자들과 함께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운집한 이들을 바라보며 창28장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청했던 야곱을 본문으로 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새벽만큼 설교하기가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설교를 하고 축도후 예배를 마치는 순간, 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강단주변, 앞쪽까지 꽉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알고보니 강대상 옆으로 문이 하나 있었는데 사실은 그 문이 배식하는 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한 때 대단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언젠가 저 역시 제 친구 목사를 그 틈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이란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욥바항에서 배를 타고 다시스로 향하던 요나처럼 말입니다. 바다는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예기치 못하는 순간, 큰 파도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요나도 한때 잘 나갔습니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았고, 모든 일들이 척척 순조롭게 자신이 뜻한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침(욘 1:3)'이란 단어가 요나에게 마술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는 계획을 가지고 욥바항으로 내려갔는데, 그 때 마침 땅끝, '다시스'로 가는 배가 뱃고동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마침'이란 마술에 걸린 요나는 이제 걱정할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자마자 배밑창에 들어가 깊은 잠을 청했습니다. 한숨 자고나면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이란 마술에 걸려 깊은 잠에 떨어진 요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통해(욘1:4, 11, 13), 나중에는 선장을 동원하시면서까지 그를 기어이 깨우셨습니다.(욘1:6). 하나님은 '마침'이라는 마술에 걸려 잠자는 자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환경을 통해서, 풍랑으로, 사람을 통해서, 내가 탄 배를 깨뜨리고, 깊은 바다에 던지시고, 물고기 뱃속에 던져 넣으시면서까지 기어이 깨우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다가(눅22:44) 그 기도를 멈추시고, 잠에 곯아 떨어진 제자들을 세번이나 찾아와 기어이 깨우시던 주님은 우리를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서라도 깨우십니다.

2장, 캄캄한 고기 뱃속에서 우리는 1장과는 전혀 다른 요나를 만나게 됩니다. 위액 분비물, 위의 수축작용, 거대한 고기의 몸부림, 숨을 쉴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는,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스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욘2:2). 무덤, 땅 밑의 세계, 죽음의 상태, 지옥, 음부라는 뜻입니다(잠1:12, 삼하22:6, 시18:5). 더 이상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절망의 현장, 그곳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욘2;2, 4, 6, 7). 나아가 요나는 그 스올,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욘2:9). 요나는 그는 무엇보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감사했습니다.(욘2:6).

망망대해에 던져지는 순간, 물고기에게 먹혔을 때,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의 생명이 지금 연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감사제목입니다. 비록 주변은 칠흙 같이 캄캄할지라도 그래도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게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그 자체가 진정으로 감사할 일입니다.(전9:4)

C.C.C의 김준곤 목사님이 딸을 하나님 품에 먼저 보내면서 '딸의 죽음, 그 존재의 제로점에서'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그이 딸 신희는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어린 두 딸을 두고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체중이 26kg까지 내려간 딸이 온몸에 바늘을 꽂은채 극한 고통에 몸부린친다. 몸을 뒤틀려 이를 악물고 신음하는 딸애의 고통을 보는 것은 정말 감당할 수 없었다. 아비 된 자로서 열두 번 더 딸의 죽음을 대신하고 싶었다.

드디어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방에서 모두 나가주기를 청했다. 둘이서 잠깐 동안 이나마 함께 있고 싶었다. 창백한 얼굴은 태풍뒤의 호수처럼 잔잔하다. 꽅 붙들고 있는 신희의 손목이 서서히 굳어지고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차츰 나는 언어도, 행동도, 존재조차도 정지된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냘픈 아이에게 이 가혹한 고통을... 

남겨진 두 손녀가 지붕위의 외로운 참새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니까 자꾸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딸의 죽음 이후 마음이 가난해 졌고, 욕심이 없어졌다.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자 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일까?...

제물 없는 제사는 있을 수 없기에.. 물고기 뱃속, 요나는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창28:16). 스올속에서 기도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결과, 그는 기적적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기도와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두 개의 열쇠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더 큰 감사의 씨앗과도 같습니다. 원수들의 음모에 빠진 다니엘(단6:10),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요11:40), 벳새다 들녘에서 펼쳐진 오병이어의 기족(요6:11), 모두 감사의 결과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혹시 풍랑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습니까? 혹시 스올에 던져진 신세입니까? 이 캄캄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현재 이자리에서 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 '기도한국 2009'의 자리에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하늘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동시에 다음 주일은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절기로(신16:10, 잠3:9~10), 지난 반년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는 주일입니다. 

요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려 전무후무한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 우리 손에 기도와 감사, 두 개의 열쇠를 쥐어주고 계십니다. 이 두 열쇠를 사용하여 캄캄한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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