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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과 같이 있습니다 (막 4: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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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같이 있습니다 (막 4:35~44)


내게 단 한번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설교를 할까 하는 책속에 길버트 체 스텐튼이라는 분이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두려움을 없애는 설교를 하겠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통된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의 첫 마디도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마리아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 요셉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 들의 목자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두려워 하지말라. 왜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같이 게시겠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 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 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 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셨습니다. 

14절에는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 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이사야 43장 1절 이하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물 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야곱에게도, 요셉에게도.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다윗에게도. 그 외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두려워 하지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하도 두려워하니까? 이런 유우머시리즈가 생겨났지요. 무서워시리즈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섭데요. 그러면 뭐라 하나 무섭나 입니다. 반대로 네가 무섭다 무서워유 한데요. 같이 사는 남자가 무서우면 무섭군이고 여자가 무서우면 무서운 걸입니다. 하루하루가 무서운 사람이 있어요 이런 분은 무섭데이 한데요. 비가 오는 것이 무서운 사람은 무섭지비. 하고 모든 것이 다 무서운 사람은 무섭다 한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됩니까? 그러나 두려워 하지마세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바다에 같이 타고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때문에 예수님이 배를 띠워 놓고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저도 하루에 다섯 번 어떤 때는 여섯 번을 설교하는데 그러고 나면 저녁때는 완전히 녹초가 됩니다. 

예수님은 더 하셨겠지요. 잠시라도 쉴 틈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배를 탄채로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하셨습니다. 가서 쉬시기도 하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런 저런 구상을 하시기 위함이겠지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태운채로 건너편으로 갑니다. 예수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고물에서 주무십니다. 

이 부분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 많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신 주님 그 모든 일이 생활이 되었습니다. 아무데서나 누우면 잠을 잘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지요. 환경이나 조건이나 소유나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계시는 주님입니다. 

그러기에 뱃머리에서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쭈그리고 주무시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잠입니다. 이 배는 큰 배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어선입니다. 그 고물이 얼마나 옹색하겠습니까? 그러나 곤히 주무십니다. 세상에 메이지 않은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 가득하게 찼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차면 어떻게 됩니까? 가라 앉습니다. 제자들이 겁에 질려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웁니다. 

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절 예수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희브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바다의신이 등장하는데 용, 또는 리워야단, 악어 , 라합이란 이름으로 등장을 합니다.(겔 29:7,시148:727;1 사30;7.51;9) 이 혼돈과 어둠의 괴물들은 바다를 지배하고 바다에 광풍을 일으켜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의 배를 부수고 물속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가서 죽게 만드는 두려운 존재 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바다 하면 공포의 신 과물이 살고 있는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그 바다에서 광풍을 만났습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배안에 탔지만 두려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지금 주님이 그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주님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으며 예수님이 가자고 하는 길을 가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으며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순종하는데 광풍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주를 섬기는 삶을 산다할지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슬픔과 환난으로부터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병고가 찾아올 수도 있으며 때로는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있으며 고통과 슬픔과 실망을 느끼는 경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풍랑이 면제 된다 - 이렇게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세상 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느니라. 세상을 이기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과 함께 하는 자는 또한 세상을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풍랑이 오지만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 14983~1546)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목숨의 위협을 당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 멜랑크톤(Philipp Me- lanchthon ; 1497~1560)이 그에게 어려운 문제가 없느냐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자 그는 “언제 우리에게 문제가 없었던 때가 있었느냐?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라는 답장을 보냈다고 합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고 풍랑이문제가 아니고 믿음이 문제입니다.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살림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가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끗이 죽자! 아이들을 재우고 가스를 켰습니다. 가스가 스며 나오는데 정신이 몽롱해져 옵니다.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그래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왜 기도할 생각은 못했는고?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빈 집 하나를 얻어 새 삶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훗날 자녀들은 모두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의 자서전적인 글 "근심이여 안녕"이라는 책 마지막 결론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백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요. 백 번의 절망보다 한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요."

두려움에 대한 오직 한 가지 치료약은 믿음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비바람이치고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고 물이 쏱아져 들어오는데 잠이 옵니까?예수님도 잠에서 깨어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바다가 어찌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입니다. 그래서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평안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선생님은 뭐 저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우리가 애쓰는 것이 안보이나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게 된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한 것이지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잠만 잘 수 있어요.

그런 제자들을 예수님이 책망 하십니다. 예수님이 깨어나셔서 잠잠 하라. 고요 하라. 하니까?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조용한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뭐가 그리 무섭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믿음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환란을 만나도 풍랑을 만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자동차를 몰고 나가면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빵꾸가 나면 어디 가서 빵구를 때우나 자동차가 가다가 서면 어디 가서 고치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 바퀴 하나 갈아 끼우는 제주가 없어도 조금도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요 어디가나 전화 한 통화면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타이어가 터져도 자동차가 갑자기서도 걱정을 안 해요. 전화 한통화면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우리를 다 이해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시는 것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프시기도 하셨고 목마르기도 하시며 쉬시기도 하시며 곤하게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시며 그리고 동정하는 마음도 갖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몸소 모든 것을 겪으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습니다. 

여러분! 가난하고 궁핍합니까?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가난을 아십니다. 여러분 외로우십니까?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으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으셨다고 느끼십니까? 예수님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외로움을 잘 아십니다. 

여러분 오해를 받아보았습니까? 부당한 비난을 받아보았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라 불렀으며 행악자라고 고소하였고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죄인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여러분 오해를 받았습니까? 비난을 받았습니까? 주님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십니다.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인생 의 폭풍이 일다가도 잔잔해집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어떤 폭풍이 불어 닥쳐도 평화가 있습니다. 차고 쌀쌀한 슬픔의 바람이 불어 닥칠 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평화와 위로가 있습니다. 걱정의 열풍이 불어와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평화와 안전이 있습니다. 의심의 폭풍이 신앙의 토대를 흔들 때에도 그리스도 예수가 계신 곳에는 굳건한 안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과 같이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면서 주님과 함께 있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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