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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빚진 자 (롬 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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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빚진 자 (롬 13:8~10) 
 

1. 빚지지 말라

성도 여러분, 빚 때문에 고생해보셨습니까? 경제가 어려우니까 빚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을 넘었다니까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지요.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도 빚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우리 주님의 특별한 위로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이 경제학>이라고 해서 ‘자녀들에게 경제 교육을 시키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자녀들에게 “빚의 무서움을 가르치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빚의 무서움”이란 ‘아무리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어도, 자신에게 그럴 힘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고, 또 ‘남의 것을 빌려서라도 그것을 하면, 그 빚으로 인하여 노예와 같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어릴 때 경제 교육을 정말 잘 받았습니다. 어릴 때, 빚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늘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지요. 저와 중학생 형님의 기성회비가 없어서 한숨 쉬고, 가난해서 수모 당하고, 돈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돈이 없으니까 가까운 친지 친구들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 분들 역시 별 여유가 없는 분들이라 당연히 ‘없다’고 하시는데 그 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들리는지 …. 

그리고 그 분들이 빌려준다고 해도 정작 우리에게 갚을 능력이 없으니까 그 분들이 찾아와서 ‘돈 갚으라’고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현실! 한 번은 고향에서 같이 올라와 한 동네에서 이웃해서 사시던 친지에게서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해서 그 분과 멀어졌는데, 아직 어린 저로서는 제일 안타까운 것이 그 댁에 못가면 <여로>라는 드라마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빚지지 말아야지, 절대 돈을 빌리는 일은 없어야지’ 하면서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로서는 제법 큰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결혼 할 때 부모님 몰래 친구 전도사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그 이유는 처갓집에서 제게 해주는 것은 많은데 제가 아내에게 해주는 것이 하도 없어서 빚지고 못사는 성미에 그만 빚을 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결혼 축의금 들어온 것 중에서 부모님 모르시는 것을 따로 두었다가 얼른 갚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돈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카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빚지는 것 같아서요.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첫 번째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8).” 이 “빚지지 말라!”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이나 재물에 관한 빚을 말합니다(참고, 신 15:2, 잠 14:9). 그러면서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리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빚이든지’ “빚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 호림익(胡林翼, 1812~1861)이라는 유명한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풍(楓)이라는 자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빚’에 대해 써놓은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름지기 빚을 안고 있으면 마치 뼈에 종기가 붙어 있는 것과 같다. 잘못하면 종기가 너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다.” 《사마광 외(장연 외 역), 아버지의 말 한 마디가 자녀의 인생을 바꾼다, 명진출판(주), 2004》 그런가 하면, 잠언 22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실제로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어떤 과부가 빚 때문에 아들을 종으로 빼앗길 뻔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엘리사가 이 과부를 도와주어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만, 빚이란 우리 뼈에 종기가 붙어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또 위험한 것이고, 사랑하는 자녀를 종으로 팔려가게 할 수도 있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가능하면 빚지지 않기 위하여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의 빚을 져라!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이 ‘절대로 빚지지 말라!’로 했지만, 오늘 본문과 다른 성경은 그 반대의 말씀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사랑의 빚 외에는 그 어떤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랑의 빚은 져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에 대한 빚은 지지 말되, 사랑의 빚은 져라. 돈은 빌리면 안 되지만, 사랑은 빌려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져라’는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보면, ‘사랑의 빚을 받아들여라, 너희가 사랑의 빚을 진 사람임을 인정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는 ‘본의 아니게’ “빚쟁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나라가 갚아야 할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자그마치 366조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 빚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결국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750만 원의 나라 빚을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국가의 빚도 문제지만, 각 가정이 은행 등을 통하여 지고 있는 빚도 문제인데요. 현재 우리나라 국민 한 가구 당 빚은 평균 3,960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는 나라 빚 750만원을 떠안고 있으며, 평균 4천만 원 정도의 가계 빚까지 안고 산다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이 말하는 빚은 그런 빚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빚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저와 여러분은 주님께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빚진 자라는 것을 알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그리고 하나님이 삶의 기회를 주셔서 살고 있는 이것이 빚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빚을 졌음에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채, 우리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온 것도 빚입니다. 우리로서는 그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빚을 탕감해주신 것도 빚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빚진 자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빚진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될까요? 아니 그 사랑을 돈으로 환산이나 할 수 있을까요?

오래 전, 프랑스의 어느 유명 화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오래된 화가의 작품에서부터 현재 화가의 작품까지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전시된 그림들 밑에는 예상 판매 가격이 적혀 있었습니다. 르노와르나 고호 같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백만 달러가 넘는 거액의 예상 가격이 붙여져 사람들로부터 ‘너무 비싸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상 가격을 적어놓지 않아 궁금증을 일으키는 작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림 밑에는 숫자 대신 영문으로 “값이 없다”(Priceless)는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그 값을 도무지 계산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이 바로 <모나리자>처럼 따질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성도 가운데는 자신이 주님께 진 이 사랑의 빚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모른다는 것을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모르는 것이고,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 형벌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잘 모르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빚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라도 그 빚을 갚아야지 갚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삶의 여유가 사라지고, 때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면, 그 빚에 대해서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정상 아닙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시편 116편 12절에서 “주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외쳤습니다. 주님께 받은 것은 너무나 많은 데 주님께 드리는 것은 너무나 적어 그렇게 외친 것이죠. 참으로 주님께 빚진 자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기록자인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 사랑의 빚을 진 자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소위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쓸 때 늘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말이며, 또 다른 하나는 “빚진 자”라는 말입니다. 본문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 로마서 1장 14, 15절에서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종”이라는 표현과 “빚을 진 사람”이라는 말에는 바울의 간절한 태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모든 것을 거저 받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 내가 누리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의 아드님의 생명이라는 빚을 졌고, 성자로부터는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쳐 우리를 대신한 빚을 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늘 동행하시는 보혜사 성령으로부터 받은 것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숨을 쉬는 것, 부모님,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 무엇보다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것, 건강 주셔서 일하고, 교회 다닐 수 있는 것, 모두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내가 힘겨워하는 일들조차 그것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사랑의 빚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빚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도 바울 사도처럼 이 “빚진 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의 빚을 지고, 사랑의 빚을 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고, 앞으로 또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빚진 자라는 의식을 항상 간직하면서 빚에 대한 부담보다는 감사함으로 그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사랑하라!

오늘 본문에는 명령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빚지지 말라!” 두 번째 명령은요? “너희가 빚쟁이임을 잊지 말라!” 그리고 세 번째 명령은, 쉽게 말하면 “이제부터 빚 갚으면서 살아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명령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이제는 갚으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받기만 했으나 이제는 갚을 수 있는 입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사랑의 빚을 갚지 못할 만큼 사랑에 가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오늘 본문을 보다가 제가 얼마나 감동을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전에는 우리가 “채무자”, 즉 빚지고 살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안에서 “채권자”, 즉 가진 것을 빌려주고 나눠주는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빚지지 말고 살자, 어려운 사람에게 빌려주기보다는 아예 그냥 주는 삶을 살자’는 생각과 각오를 자주 했었는데요. 저의 이 각오가 주 안에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돈이나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나눠줄 수는 없어도, 주님께 받은 이 놀라운 사랑으로 나도 빌려주고 거저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세상의 돈이나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값진 것을 가졌으니, 이제는 그것을 나누고 베푸는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❶ 먼저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의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본 ‘안종환’이라는 분의 시입니다. 

늘 곁에서 나의 손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당신이여 
당신이 내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에 내가 어찌 있으리오? 
언제나 마음 편히 다가갈 수 있는 당신이 있기에 
언제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 수 있는 당신이 있기에 
표정만 보아도 마음속까지 읽어주는 당신이 있기에 
난 너무 행복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받은 것은 너무 많은데 해준 것은 하나도 없는 
아, 나는 당신에게 빚진 자입니다. 
비록 이제 생의 끝자락에 와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죽는 날까지 하나하나 갚아가며 살고 싶소. 
지금까지 지은 빚 평생에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 못 할 거요. 
곁에 있기만 해도 든든하고 행복해지는 당신이여 
지금까지 나로 인해 흘린 눈물 내가 모두 닦아 드리리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사랑하는 분들께 사랑의 빚을 갚아가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❷ 두 번째로 여러분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갚으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방법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넉넉히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매일 통근 기차를 타고 회사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물론 외국의 이야기입니다. 기차로 경사진 언덕을 오를 때면 속력이 떨어져 철로 옆에 있는 집안이 들여다보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집들 중 이 젊은이의 눈에 띄는 한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늙은 노인이 항상 누워 있었습니다. 매일 그 모습을 본 젊은이는 가슴이 아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이름과 주소를 알아내 병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는 카드를 보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저 “날마다 철길을 통해 출근하는 한 젊은이가”라고 써서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날도 출근길에 젊은이는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방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집 유리창에는 큰 글씨가 씌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대에게 축복을!” 이란 글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청년의 작은 사랑이 노인을 병상에서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질적인 빚은 물질만 준비되면 언제라도 갚을 수 있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빚은 아무나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빚을 갚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❸ 세 번째로 여러분은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사람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4, 15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이 주님의 복음으로 놀라운 복과 은혜를 받았고, 또 복음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빚을 갚는 방법으로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으로 빚진 자는 돈으로가 아니라 복음으로 갚아야 합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김석균 씨가 지은 “주님께 빚진 자”라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1. 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 주님이 쓰시려했네. 죽음의 덫에 걸려있는 몸 주님이 쓰시려했네. 속죄하는 손 치유하시고 속죄하는 발 치유하셨네. 새 생명 얻은 이 몸 다 바쳐 주님께 영광 돌리리.
2. 먹물로 칠한 내 육신을 주님이 희게 하셨네. 십자가 보혈 증거 하라고 주님이 살리셨네. 기도를 할 때 음성주시고 찬송을 할 때 기쁨주시니 내 작은 입이 내 작은 몸이 주님께 붙들린 자라.
3. 평생 갚아도 빚진 자되어 주님께 빚진 자되어 주님 가신 길 택하였건만 눈물만 솟구치네. 생명주신이 주님이시라 능력주신이 주님이시라. 말씀전하여 복음전하여 주님께 빚을 갚으리.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라고 복음을 주셨는데 그것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빚이기 때문에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도함으로 복음의 빚을 갚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채무자이자 채권자의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릴 적부터 제 소신은 ‘빚지고는 못 산다’는 것입니다. 빌리는 것도 못할 일이고, 남에게 빌린 것을 갚지 않고서도 못 살겠고, 혹시 누군가에게 빌려준다고 주었는데 그 사람이 갚지 않는 것은 더 힘듭니다. 아마 이것은 여러분 모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의 빚에 대해서도 이런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돈을 빌리면 반드시 그것을 갚아야 하듯 주님께 사랑을 빌렸으니 그 사랑도 갚아야 한다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채무의식”과 “채권의식” 둘 다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채무의식이란 남에게 갚아야 할 것이 있는 마음이나 혹 받고자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채권의식이란 반대로 자기 것을 빌려주었거나 혹은 주고 싶은 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서로 반대되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해서는 채무의식을,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을 받은 가족, 친지, 친구, 성도와 교회를 향해서도 채무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무엇으로 보답할꼬!’ 그런가 하면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소외되고 어렵고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향해서는 채권자 의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즉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사랑,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 물질이든 무엇이든 그들에게 나눠주어야 할 사람임을, 그런 의무와 사명을 가진 사람임을 기억하고 실천하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항상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기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역시 이 빚을 갚고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곳에서든, 어느 때이든, 주님이 가라 하는 그날, 그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인 줄 알고 그들을 사랑하고 여러분이 가진 것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피 값으로 다시 살았으니 나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나를 대신하여 생명의 값을 치르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 다 주님이 주신 것! 내 생명, 가정과 일터, 기술과 직장과 기회 … 모두 다 하나님이 주신 것! 그것으로 주신 사랑에 보답하면서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놀라운 구원과 은혜와 복된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이 복음 전하는 것으로 주님께 빚 갚으면서 살자.’ 

이것이 빚진 자 의식이요, 오늘부터 여러분이 가져야 할 의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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