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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믿으면 행복합니다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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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으면 행복합니다 (요 14:1~6)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소원은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가 행복해야 하나님도 행복해 하십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뜻과 소원도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하여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수고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살려고 열심히 돈을 벌고, 죽어라고 공부를 하고, 온갖 수고를 감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 사는 사람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산다는 말을 사용할 때 부자를 가리켜 잘 산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부자로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같은 뜻입니까?  가난한 사람은 다 못 사는 사람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부자중에도 못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난해도 행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잘 살려면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말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을 혼돈하고 산다면 그는 절대로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부자가 되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1. 길과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6)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사랑 받는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때문에 제 아이들이 귀합니다. 천하보다 귀하고 제 생명보다 귀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제게는 몹시 귀하고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 관계없이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천하 만물보다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생명보다 여러분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마음이 십자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멸망할 운명에 놓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그런 비싼 대가를 지불하셨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천하보다 크고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존재가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목적도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우리 뜻대로, 우리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사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 할 때에만 우리의 존재가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도를 닦았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있다고 저들은 믿었고 그것을 찾았습니다. 길을 알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을 모르면 아무리 가까워도 갈 수 없습니다. 서양의 선조들은 철학을 하였습니다. 철학의 궁극적인 관심은 진리였습니다. 진리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길 맞습니다. 삶의 길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세상의 삶의 이치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길을 찾아 헤멥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을 찾습니다.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습니다. 가족들과 화목하게 잘 사는 길을 찾습니다. 자유하는 길을 찾습니다.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길을 찾습니다. 그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길을 따라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길을 따라 가면 쉽게 도달합니다. 아무리 가까와도 길이 없으면 또는 길을 모르면 도달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길을 찾다가 찾지 못합니다. 불행하게 살다가 끝납니다.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죽습니다. 불화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나고 맙니다.  길을 찾는 것은 전 인생을 투자하는 것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 성현중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만족하다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길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리 즉 삶의 이치시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삶이 우리가 본받을 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길이며 인생을 행복하고 귀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이치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라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십니까? 예수님을 닮아가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길이라고 믿지 않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가짜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이, 안전한 길이 여러분앞에 놓여 있는데 길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십니까? 길되신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야 행복에 도달합니다. 잘 살게 됩니다. 사람답게 살 수 잇습니다. 

세상에는 거짓으로 가득차 잇습니다. 거짓말이 넘칩니다. 거짓 사랑이 천지입니다. 거짓에 속지 않아야 인생을 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교묘해서 거짓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짓에 속지 않으려면 참된 진리안에 있어야 합니다. 진짜 돈을 늘 만지는 사람은 아무리 교묘하게 진짜처럼 만든 위조지폐라도 금방 식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친밀함을 맛보며 사는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거짓을 분별할 능력이 있습니다. 이단에 속지 않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종교에 속지 않습니다. 틈만 있으면 속여 멸망으로 이끌려는 악한 무리가 많기 때문에 진리를 분별하기 위해서 예수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대로 한번 살아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으로 길을 삼고 예수님으로 삶의 법칙을 삼아 한번 살아 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이 진리라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서 인생의 행복을 풍성하게 누리기 바랍니다. 
    
2. 생명을 소유해야 합니다.(6)
  
얼마전 무디 방송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나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화장지, 헤어 스프레이 같은 너무도 하찮은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은 사치품에 불과할 것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밥한 그릇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만일 병을 얻어 고통속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약을 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생명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찮은 것에 우리의 생을 허비하고 사소한 일에 목숨까지 거는 경우도 흔히 볼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존심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많습니다. 체면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많습니다. 돈에 목숨을 걸고, 헛된 욕심에 생명을 거는 이가 많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고 치장하여 사람들의 찬사를 듣는 것에 생명을 거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이 생명이라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그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세상에 모든것을 소유한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부모를 통해 주어진 생명이 이만큼 중요하고 귀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욱 귀한 것은 우리 영적인 생명입니다. 영의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고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심을 감사합시다.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감사합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살 때 오는 질적으로 풍성한 삶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질의 삶은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 10: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인 톨스토이는 1879년 그의 고백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기술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기독교를 거부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인생에서 얻을 수 잇는 최대의 쾌락을 얻고자했습니다. 모스크바의 사교계에 진출하여 엄청난 술을 마셔대고 난잡한 사생활과 도박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돈을 버는 일에 야망을 품었습니다. 그는 유산과 자신이 쓴 책 때문에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그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공과 명예, 사회적 지위를 추구했고 다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래 좋아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하고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고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결혼하여 예쁜 아내와 사랑스런 많은 자녀들에 둘러 쌓여 있었고 모든 야망을 이루었고 완벽한 행복으로 보이는 것들에 둘러 쌓여 있었으나 한 가지 질문이 그를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잇으며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소멸시키지 못하는데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 답을 찾고자 과학과 철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앞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시골에 갔다가 농부들은 이미 그 답을 알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소망중에 살기에 죽음의 권세에 눌려 불행한 자신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음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톨스토이도 깨닫고 길과 진리이며 생명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깊이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안고 잇는 인생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을 통하여 발견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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