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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왜 믿음이 없느냐?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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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왜 믿음이 없느냐?  (막 4:35~41)

 
우리는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이 두렵습니다. 하는 일이 실패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또 내리는 결정이 옳은 것이지 몰라서 염려합니다. 자녀들이 잘 자랄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의 종류가 육백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아마 그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되는 진짜 두려움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는 것이 진짜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 같으면 세상에서 겪게 되는 모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두 가지 두려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반복해서 겪게 되는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두려움에 빠져서 헤맬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어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참 평안을 누릴 것입니까?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바르게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지형적으로 돌풍이 자주 분다고 합니다. 마침 돌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37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절박한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망망대해는 아니지만, 그리고 제자들 중에 어부들도 많았지만 한밤중에 광풍이 일고 배에 물이 가득 찰 경우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들은 허둥대며 그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매우 위급한 상황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과 전혀 다른 광경을 같은 배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고물은 약간 높으니까 물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느라 상당히 지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내면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적인 평화를 잃어버리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둥대는 제자들과 평안한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편안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일어나실 생각조차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이 그런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갔을 뿐입니다. 35절 말씀에 아주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그런데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믿고 따라갔는데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와 위기가 생기는 것을 오늘 우리도 종종 경험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도대체 살아 계십니까?"
"살아 계신다면 지금 어디 계십니까?"
"지금 주무시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왜 나를 돌보지 않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탄식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 세상을 탈출해서 갑자기 다른 세계로 옮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두려움이 끝이 나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두려움을 어떻게 대하고,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며, 그 두려움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때에 그것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두렵습니다. 제가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솔직히 인정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 4:38 하반절)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길 것 같으면 그 때부터 두려움은 더 이상 두려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할 하나의 문제로 바뀌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께서 취급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다루시고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시편 기자도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편 55편 22절 말씀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물론 잠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우리를 계속해서 사로잡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잠이 깨신 예수님은 일단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해서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막 4:39)
바람을 꾸짖으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병이나 자연의 폭력적인 힘이 모두 악한 영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람을 향해서 인격적인 존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그 명령이 떨어지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고 성경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두 가지 질문이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질문입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대립적인 개념입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것이고 믿음이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책망이 과연 타당합니까?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믿음이 강해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책망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여기서 제자들의 문제는 예수님의 정체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몰랐습니다. 어떤 사건을 두려워했다는 사실보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랐다는 것이 바로 그들이 책망을 들은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았다고 한다면 그들은 그 상황에서 그렇게 당황스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운 상황 자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이 거기 계신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체가 관건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해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동일한 것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고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힘, 자기들의 기술, 자기들의 경험으로 바람과 바다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 안에 계신 분이 누구신가 바로 알고 그분을 믿을 때 얼마든지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 늘 함께 계십니다. 그 주님은 지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하반절)

상황이 정리되고 예수님에게 따끔하게 꾸중을 들은 후 제자들의 반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4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그들은 비로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들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동일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형태의 다른 두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파도를 본 두려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제압당하는 것을 본 두려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옛날 제자들은 먼저 바람과 바다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서 진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게 될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 옛날 시인도 노래했습니다. 

시편 27편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그 어떤 광풍이 몰아칠지라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믿는 굳센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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