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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친구를 가졌는가? (요 1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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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를 가졌는가? (요 15:13~15)


1. 들어가는 말 

언젠가 「런던 타임즈」가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현상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타임즈」는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공모를 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타임즈」는 그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 셋을 뽑았습니다. 친구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 그때 찾아와 주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너무 괴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할 때, 그 말 없는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였고, 
세 번째는, “내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나면 기쁨이 배가 되고, 내가 고통스러울 때 만나면 고통이 반으로 감해지는 사람이 친구다” 

오늘 여러분은 이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지옥 같은 전쟁 속에서는 희생적인 우정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월남 전쟁 중에 있었던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란 두 친구, 짐과 토니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목숨같이 사랑하는 그런 친구들이었습니다. 월남 전쟁이 터지자 그들은 함께 군대의 부름을 받았고, 함께 훈련을 받았고, 그리고 함께 월남으로 파병되었고, 함께 정글 속에서 적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베트콩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는데, 토니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쓰러져 참호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호 건너편에서 부상당한 체 피를 흘리고 있었고, 베트콩의 집중 사격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참호 속에 숨어서 안타깝게 보고 있던 짐은 목숨을 걸고 토니를 참호로 데려올 것을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하사관이 그를 참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너무 늦었어. 그는 내버려 둬. 나가면 너까지 죽어” 정말로 부상당한 토니를 향해 참호에서 뛰어나가는 것은 총알받이가 될 수 있는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짐은 하사관이 잠시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친구를 향하여 집중 사격을 뚫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그 역시 총을 맞은 채 피를 흘리면서 이미 숨을 거둔 토니를 들쳐 업고 참호로 돌아왔습니다. 하사관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뭐랬어! 그는 이미 죽었고, 너도 죽을 뻔 했잖아. 너는 아무런 소용없는 일을 한 거야” 
그러나 자신도 피를 흘리면서 쓰러진 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사관님, 그러나 제가 제 친구를 찾아갔을 때, 그는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그렇습니다. 참된 친구란 이렇게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 그때 찾아와 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친구를 가진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행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란 당신의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고, 
항상 당신과 함께 하며 당신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 주는 
그런 친구가 곁에 있는 것입니다”(『소중한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 

2. 그 사람을 가졌는가? 

고 함 석헌 선생께서 이 친구와 관련하여 이런 시를 한 편 남겼습니다. 그 시를 소개합니다. 시의 제목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입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운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 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는/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 석헌 선생은 우리에게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우정과 신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참된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죽음마저 함께 나눌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께서 이 시간 저를 향해, 당신은 과연 그런 친구가 있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바로 그 친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과 함께 함 석헌 선생의 질문 6가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함 석헌 선생의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저는 20년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그 친구에게, 저희 집사람과 아이들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제가 6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 저의 식구들을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정말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먼 길 떠나면서 처자식을 마음 놓고 맡길 만한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2) 함석헌 선생은 두 번째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라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저는 그런 경험을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제 큰 매형께서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저희 매형께서는 컴퓨터 계통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사장이었습니다. 대우에서 상무까지 하다가 자기 사업을 차려 나왔습니다. 그런데 잘 나가던 회사가 그만 지난 IMF 때에 흑자부도를 맞게 되었습니다. 10억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그것이 먼저 부도수표가 되면서 자신의 어음 5억을 막지 못해, 결국 100억대의 회사와 건물이 다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희 매형께서 하는 말이 주변에 참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자, 그들은 더 이상 저희 매형 주변에 머물려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 같이 외면하고 피하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제 조카와 사귀던 아가씨의 집안에서도 그 아가씨가 제 조카와 사귀는 것을 못하게 했습니다. 제 매형께서 잘 나갈 때에는 제 조카를 집에 초대하고 양복까지 맞추어주던 사람들이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는 인간의 그 얄팍한 모습에 실망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라고 믿어지는 그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3) 함석헌 선생의 세 번째 질문입니다. 

“탔던 배 꺼지는 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타이타닉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애인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은 구명조끼를 포기한 체, 물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그 장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자기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구명대도 포기한 체 “제발 너 만은 살아다오”라고 말해주는 그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저는 가졌습니다. 제게는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살리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린 친구입니다. 

4) 함석헌 선생의 네 번째 질문입니다.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조롱하고, 욕해도, 그리고 심지어는 나를 죽이려고 할 때, “아니오, 그 사람만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오. 우리 모두를 다 희생한다 해도 그만은 살려야 하오”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제게 있는 그 친구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저주하고, 공격하고, “너는 형편없는 놈이야” “너 같은 놈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라고 비난해도, “아니야”라고 외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제게 “너는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다. 너의 생명은 온 천하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귀한 것이다”라고 말해 주면서, 나를 대신해서, 나를 위하여 불의의 사형장에서 죽임을 당한 그런 친구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제게는 있습니다. 

5) 함석헌 선생의 다섯 번째 질문입니다.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지고 있는가? 
이 시간 저희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던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저희 아버님은 19년 전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참 파란만장하고 고달픈 생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시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신 고 주기철 목사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굶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를 못했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학교에서 동방요배를 시키는데, 그것을 하면 큰일나는 것으로 교육을 받았기에 남들은 다 절을 하는데, 혼자서 굳굳이 서 있다가 계속해서 퇴학을 당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님이 순교하시고, 해방 후에 1년 반 만에 할머니마저도 암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저의 선친께서는 고아원에서 그리고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평생을 장로님으로 섬기시다가 가셨는데, 사실 그 분은 당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목회의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분의 마음속에 늘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학을 가 있다가 선친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말을 듣고 잠시 귀국했을 때, 마지막 밤을 저와 함께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네 엄마를 잘 보살펴라” 그리고 “내가 하지 못한 몫까지 네가 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분은 잠을 주무시듯이 참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수 없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우리 모두에게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순간에 여러분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저 친구 있으니”라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제게는 있습니다. 

6) 함석헌 선생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내가 세상적인 유혹에 넘어갈 때, 내가 돈 몇 푼을 더 벌기 위해 내 신앙양심을 팔려고 할 때, 옆에서 “아니야, 그 길은 바른 길이 아니야”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제게는 있습니다. 

3. 참 좋은 친구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이제부터 제게 있는 그 참 좋은 친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친구는 제가 정말 힘들 때마다 항상 저를 위로해 주고, 제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해도 비난하거나 야단치지 않고 항상 제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그에게 항상 실망을 주어도 제게 한 번도 실망의 기색을 보인 적이 없는 그런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실패하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 갈 때에도 결코 저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 때 일수록 제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너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너는 반드시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는 그런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행한 실수로 인하여 제가 사람들에게 무시와 손가락질을 당해야 할 것을 제 대신 받은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제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하여 제가 받아야 할 형벌을 저를 대신하여 받은 친구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저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저를 위하여 마침내 자기 목숨까지 내어 놓은 친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살리려 자신의 목숨까지 버렸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거나 의로운 사람이 결코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게 가장 소중한 이 친구가 누구인줄 아십니까? 이미 여러분들께서는 이쯤 되면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그 분이 누구신지 아실 것입니다. 
그 좋은 친구의 이름은 바로 예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잠시 후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과 원수의 세력들에 의해 체포되어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시고, 또한 온갖 멸시와 천대와 심한 매질과 채찍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모든 죄를 담고 있는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 손과 발에 못 박혀 처절한 고통 끝에 마침내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그런 엄청난 고통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너희는 이제 종이 아니라 나의 친구”라고 말입니다. 
나는 너희의 가장 진실 된 친구이기에,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된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죄 없으신 그 분이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자는...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마태 11:19).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친구라 불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 죄인이 되셨습니다. 

몇 해 전에 해외토픽에 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인디아나 주 어느 시골 학교에 열다섯 살 된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뇌종양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내일이면 뇌종양을 앓던 그 학생이 등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내일이면 친구가 온단다. 그런데 친구의 머리가 다 빠졌기 때문에 너희들이 잘 위로해주면 좋겠다”라고 얘기 했습니다. 선생님이 나간 다음 급우들이 전부 둘러앉아서 “어떻게 친구를 위로할 것인가?”를 놓고 토의를 했습니다. 함께 의논하는 가운데 한 친구의 제안으로 전부다 머리를 깎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너도나도 그 반 학생들이 전부 머리를 깎고 등교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제자를 위로할 것인가 밤새도록 생각하다가 결론을 얻지 못하던 차에, 교실에 들어가 보니 반 아이들이 모두 다 머리를 깎고 앉아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뇌종양으로 치료를 받고 등교한 학생도 친구들이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선생님도 학우들도, 모두가 다 친구가 돌아온 것을 함께 기뻐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참 좋으신 친구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머리를 깎으실 정도가 아니라, 즉 죄인의 친구라 불리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위하여 죄 없는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찬송가 487장은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 분은 대단한 가문이나 궁궐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고, 목수의 아들로 짐승의 여물통을 침대삼아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아마 이보다 더 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처럼 가장 낮고 비천하게 태어났기에, 이 세상에서 비천한 사람들을 가장 잘 이해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저 2천년 전에 척박한 땅 팔레스틴의 달동네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모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목숨처럼 사랑했던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는 쓰라림을 겪었기에,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인하여 눈물짓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아시고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 없이 가장 흉악하고 지독한 형벌인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셨기에,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는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아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죄인처럼 형벌을 받으셨기에, 죄를 짓고 죄의식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들을 도와주시는 참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성경말씀은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나가는 말: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이 시간 우리 가운데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과 문제들로 인하여 잠 못 이루는 분들이 있습니까? 함께 살고 있는 내 남편도, 내 아내도, 우리의 아이들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내 이 아픔과 쓰라림을 알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는 분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참 좋으신 친구 예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아니 그 분은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그 상처를 그의 피묻은 오른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계십니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위기상담 전문가이신 정태기 교수님께서 쓰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에 보면, 정 교수님께서 한 때 심각한 신앙의 위기를 당할 때에 소록도에 갔던 경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정 목사님은 기도가 목구멍으로 넘어오지 않고, 알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소록도에 무작정 들어갔습니다. 그가 소록도에 도착하던 날은 마침 수요일이었고, 예배당에 가보니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통성기도가 시작되었는데, 목사님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기도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도가 목사님의 귀를 파고 들었습니다. 그 기도소리는 머리를 치고 가슴속을 후벼 파는 소리였습니다. 

“하나님, 제게 주신 은혜가 어찌 이리 큽니까? 주님, 어찌하면 제가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까?” 
기도소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주여, 당신의 이 큰 은혜에 제가 어찌하면 만 분의 일이라고 갚을 수 있겠습니까?” 
정 목사님은 그 기도소리를 듣다가 도대체 무슨 은혜를 그렇게도 많이 받았기에 저런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싶어,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60이 넘은 듯한 흉측하기 이를 데 없는 늙은 노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센병이 얼마나 심했던지 얼굴의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머리, 떨어져 나가 움푹 패인 코, 짓무르다 못해 위아래가 붙어 버린 눈...그 눈으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목뿐인 손바닥으로 박수를 쳐가면서 목이 터져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정목사님은 자신의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곧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피처럼 붉은 통곡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두 시간이나 정목사님은 그렇게 통곡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 그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정 목사님은 그 분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뭐가 그렇게 고마우세요? 무슨 은혜가 그렇게 크신 것입니까?” 
그 때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문둥병에 걸리자 세상도, 피붙이들도 다 나를 버렸어. 물론 친구들도 다 떠나버렸지. 그런데 말이야, 이 소록도까지 나를 따라온 분이 계셨어. 그리고 내게 소망과 기쁨을 주셨지” 
“아, 할머니가 따라 오셨군요?” 
“아니야, 할머니는....예수님이 따라 오신거야!” (침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날 버려도 참 좋은 친구되시는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비참한 곳으로 떨어진다 해도, 주님께서는 거기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예수님이 다시 한 번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친구를 가지셨습니까? 
(이 시간 혹시 교회에 처음 나온 분이 있습니까? 이 시간 그 분들에게 참 좋은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 바로 여러분들을 돕는 영원한 친구가 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주저하지 말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친구로 맞아들이십시오. 예수님을 친구 삼아, 예수님과 더불어 인생길을 걸어가십시오. 그 순간부터 그 분께서 여러분과 영원토록 동행하시고, 여러분의 생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우정과 신뢰를 가지고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해 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인생길은 전혀 새로워질 것입니다.)
(주승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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