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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 (행 1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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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 (행 13:20~23)


I. 쓰임받는 행복

프로이드는 삶의 원동력을 쾌락이라고 보았습니다. 
애둘러는 돈의 힘이나 종교의 힘, 권력의 힘 등 파우워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빅토 프랭클은 「로고테라피」- 의미요법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상처를 치료하는 힘도 삶의 원동력도 바로 의미 meaning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에서 의미를 느낄 때 어떤 고통도 시련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그 고통의 의미를 가르쳐 주면 그것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미를 느낄 수 없을 때 작은 시련 앞에 우리는 금방 지치고 쓰러지게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에게 결혼한 딸이 있었습니다. 그 딸이 아이를 낳고 아이 하나를 키우느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코비 아빠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빠, 내 아이에게 몸과 시간을 다 빼앗기고 있어요. 난 언제 내 꿈을 이루어요?" "딸아, 너는 지금 가장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 시간에 쫓기지 말아라. 그 아이와 함께 네 꿈을 이루어 가거라.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 네가 가는 방향이 옳다면 그것을 감사하고 즐겨라."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일엔 의미가 있고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목적이 있고 연필 한 자루에게도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살 때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22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내 목적을, 내 꿈을, 
내 비전을 이루리라."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사람」「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쓰임 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할 일이 있다고 하는 것, 쓰임 받고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일찍이 루소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다. 때문에 사람은 자기 사명을 발견하기까지는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릇이라고 다 그릇이 아닙니다. 쓰임 받고 사는 그릇이 있고 쓰임 받지 못하는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보면 큰그릇이 쓰임받는 것이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들랑날랑 거리며 국 담고, 밥 담고, 반찬 담는 그릇 - 쓰임받는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쓰임받는 그릇을 만들지 아니하고 너도 나도 큰 그릇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어지러운 것이고, 교회가 신령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큰 드럼통 같은 것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김치나 담글 때 옆집에서 빌려다 써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밥상마다 오르내리며 쓰임받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셀목회 전도자 인도네시아 오바쟈 목사는 'You can be a leader! 당신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라는 구호를 외쳤고, 그 구호를 들은 교인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전에 사로잡혀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셀교회가 되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능한 사람인데도 버림당한 사람이 있고 무능한 사람인데도 크게 쓰임 받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버림받은 사람의 대표로 사울을 들고 있고 쓰임 받은 사람의 대표로 다윗을 들고 있습니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내가 그를 쓰겠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시겠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버리시고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교회를 쓰실까요?


II. 교회의 존재 목적 ① 예배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난다」고 했을 때 좋은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교회가 언제나 기도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교회의 가치나 종교의 가치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몇 년 동안 고생해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공개하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천이 벗겨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을 향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졌다면 그것은 제 의도를 벗어난 것이지요." 그는 유리잔이 예수의 표정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습니다. 

현대인들은 종종 예수의 손에 들린 광채 나는 유리잔에 환호하는 우를 범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와서 예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 그분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목적도 예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잘 짓는 이유도 교인들이 모두 함께 모여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매 예배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영광스런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비전 채플을 설계하면서 제 머릿속에는 온통 영광스런 예배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어떤 예배당이, 얼마만큼 큰 예배당이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영광스런 예배를 드리도록 해줄까? 영광스런 찬송, 영광스런 임재를 맛보기 위해 어떤 예배당을 지을까?

이것은 예배당이 커야 한다는 뜻도 화려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가 성막을 짓는 심장으로 다윗이 성전을 준비하는 심장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처소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는 교회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III. 교회의 존재 목적 ② 영혼구원

교회가 이땅에 존재하는 두 번째 목적은 천국복음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이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복음을 선포하신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은 그 머리의 뜻을 잘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 즉 천국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합니다. 

오늘 구원받은 우리가 교회에 나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의 양식입니다. 

- 말씀을 통하여 믿음을 얻습니다. 
- 말씀을 배우면 예수님의 성품을 닮습니다. 
- 말씀을 통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 말씀은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 말씀이 구원의 확신을 줍니다. 
- 말씀은 치유의 능력입니다. 
- 말씀은 희망을 줍니다. 
- 말씀은 인생의 안내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교회에 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한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우리교회도, 비전채플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잘 섬기고 상처로 얼룩진 이 땅을 찾아가 섬기는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내일의 천국가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엄밀히 말하면 친목단체나 구제기관이나 사회사업기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의 가족을 만들어 가기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IV. 교회의 존재 목적 ③ 한민족의 소망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고 희망의 빛이 솟았습니다. 해적떼들이 변하여 문명국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던 식인종들이 변하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부족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민족지도자들의 산실이었습니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꿈을 얻는 곳이었습니다. 

고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에서 한민족 5000년 고난의 역사는 십자가에 의해서만 풀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의해서만 그 의미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만 한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교회 비전채플이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모든 젊은이들이 꿈을 꾸는 동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민족의 지도자들을 만들어 내는 곳
- 세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들이 태어나는 곳
- 하나님의 세계 경영에 동참하는 인물들이 자라나는 곳
- 그 옛날 한국교회 본래의 사명,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한민족 희망의 동산이 되고 싶습니다. 

나아가 넘어지고 상하고 깨어진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상처 나고 쓰러진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강력한 팔이 되고 싶습니다. 두 날개로 비상하는 우리교회의 꿈이 어린교회들을 함께 안아 날아 오르고 싶습니다. 고양, 파주, 김포와 문산 - 경기 북부 이 지역이 통일 한국 영적 성지가 되고 한국교회 부흥의 새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가 바로 이곳에 세워진 목적이요 존재 목적이요 비전채플을 세우는 이유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려운 시대에 어렵사리 세워진 교회입니다. 교회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한국교회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여 부흥하는 교회의 비전, 성경적인 교회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하는 셀교회를 향한 몸부림,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권세있는 교회를 찾고 싶었던 열정... 
- 이 모든 것이 한국교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실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전채플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새시대, 새비전, 새그릇을 세우는 가족의 기도입니다. 모든 가족이 마음을 담아 세워가야 할 역사적 과제입니다. 힘이 들다고 쓰러지지 마십시요. 내 맘과 다르다고 너무 쉽게 비판도 하지 마십시요. 어떤이는 기도로, 어떤이는 격려로, 어떤이는 무거운 헌신으로... 각자의 은사를 따라 충성해야 합니다. -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목적이요 비전입니다. 


V.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사람 다윗

"다윗을 보니 그는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내 뜻을 이루리라."
"한소망교회를 보니 내 마음에 꼭 맞는 교회이다. 내 목적을 이루리라."
"한소망교회 아무개를 보니 내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내 비전을 이루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은 약자를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쓰신 첫 번째 이유는 대단히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다윗이 약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들어 쓰십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새라는 사람의 집으로 갑니다. 이새는 일곱 아들과 함께 몸을 성결하게 하고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가도록 하나님의 응답은 "내가 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8형제 중 막내로서 아버지도 그에게 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왕이 될 면접시험에 다윗은 빠져 있습니다. 

그때 사무엘이 묻기를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의 대답이 사무엘상 16:11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여기 막내라는 말은, 단순히 형제 서열상 막내라는 말만은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 약자였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택했습니다. 약자를 택했습니다. 

"막내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막내가 하나 있기는 한데 만나 보나마나입니다. 신통한 구석이 없습니다. 그 아이는 아닙니다." 이런 뜻입니다.

아버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형님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막내야, 우리 형제들 가운데 임금이 나올 모양이다. 우리는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러 갈테니 넌 여기서 양을 치고 있거라."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버지와 형님들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분명 난 아니야. 난 심부름이나 해야지.'

보십시오. 그의 부모는 그를 부정했습니다. 그의 형제들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자신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다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2. 하나님은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쓰십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두 번째, 우리를 주목시키는 단어는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쓰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사람도 쓰십니다. 무능한 사람도 쓰십니다. 죄가 많은 사람도 쓰십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없는 사람, 열정이 없는 세상, 성실하지 못한 사람을 쓰는 법이 없습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어린 양입니다. 때문에 자기라는 양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사람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 우리의 셀목장 가족을, 믿음의 가족들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맡겨진 사역 앞에 진실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을 다 거절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다윗의 중심이 어쨌다는 이야기입니까?

사무엘상 17장 적장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계속해서 그는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7)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두려워했고 그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높이는 다윗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마음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보셨습니다. 


4. 하나님은 성령의 사람을 쓰십니다.

사무엘상 16:13에 보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다윗과 함께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영적인 사람을 쓰십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하는 기도 가운데 이런 말을 합니다. 
"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다윗은 궁궐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주 앞에서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왕관을 거두어 가는 것 보다 성령을 거두어 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재물과 권세를 빼앗기는 것보다 주의 은혜를 빼앗기는 것이 더 두려운 줄 알고 살았습니다. 


5.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은 치루어야 할 댓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지도자로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까지 당당히 댓가를 지불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 일로 인해 사울 임금의 시기를 받아 쫓겨다녀야만 했던 고통스런 훈련의 시간들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임금의 미움을 받은 다윗은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정식 왕이 되기까지 자그마치 15년간을 쫓겨다녔습니다. 이러한 생활 가운데서 성경에 분명하고도 똑똑히 기록되어 우리의 주목을 끄는 단어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삼상 16:18, 18:28)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고 싶습니다. 

1. 나는 연약하기 때문에 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막내를 부르셨습니다. 연약한 우리교회를 당신의 뜻에 쓰실 것입니다. 
2. 당신 자신을 잘 지키십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양떼들, 하나님과의 관계, 당신의 영성, 당신의 믿음, 당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소중히 지키십시오.
3. 하나님은 당신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분을 의지하십시오.
4. 성령의 임재와 권능, 그분의 감동하심과 함께 하심을 잃지 마십시오. 
5. 이 일을 이루기까지, 당신이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쓰임 받기까지 치루어야 할 댓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교회 당신을 쓰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쓰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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